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현 시대는 한 가지 우물만 파면 생존도 어려워질 것이라 본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5. 2. 16:08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4월 29일)

가급적 책을 사지 않으려 했는데, 지난 주는 무려 5권이나 샀다. 그 중에 가장 두꺼운 것이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이다. 무려 696페이지 짜리이다. 지은이 앵커스 플레처이다. 그는 신경과학자이며 문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폴리메스(polymath)이다. 창조라는 말은 신만이 하는 일이다. 인간은 신처럼 흉내를 내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이 하는 일은 창조라기보다는 창의성이라 해야 옳다. 그 창의성이란 서로 연결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연결은 자신이 쌓아 올린 지식과 경험의 연결이다. 스티븐 잡스가 한 말이다. 이를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경험했고 그 경험들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폭넓은 기술과 지식, 경험을 갖추고 있으면 더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 생기고 창의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된다. 이들을 폴리메스라 한다. 그들은 서로 무관하다고 여기는 곳에서 연관성을 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다빈치이다. 다빈치의 눈에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보였다고 한다.

현 시대는 한 가지 우물만 파면 생존도 어려워질 것이라 본다. 폴리매스는 사전적 의미로 "박식가'를 뜻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폴리매스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며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닌 사람이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고, 연결을 통해 창의성으로 이끌며, 총체적 사고와 방법론을 사용하여 시대를 이끌어 간다.

새로운 지식이 쏟아지고, 기술 트렌드가 시시각각 바뀌는 시대에 특정 전문성으로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존 조직이 없어지고 새로운 부서가 빈번하게 만들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영화 <마션>에서 처럼, 예측 가능의 범주를 넘는 상황에서 창의적인 발상과 논리적인 대응으로 자신에게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구조팀이 올 때까지 몇 년을 홀로 기다려야 하지만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은 턱없이 부족하자, 주인공은 화성 기지에서 씨감자를 발견한 뒤에 자신의 분비물을 이용한  거름으로 감자를 재배하고, 수소를 연소시켜 물을 만들어 살아 남는다.

세계 역사상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은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문제 해결 능력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이런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르네상스 맨" 또는 "폴리메스(박식한 사람)"이라 한다. 예컨대,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현대의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이들이다.

이 폴리메스의 특징은 호기심이다. 이런 호기심을 키우려면, 한 우물만 파서는 안 된다. 목표 중심의 인간으로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루는 장인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놀이를 즐길 줄도 아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즐겁게 유희하는 인간)가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서, 기계와 인간의 역할을 재설정하다 보니 인간의 호기심 등 인문학적 기초 소양을 갖춘 사람이 주목을 받는다. 그래 나는 이 책을 "문학" 대신 "인문학"으로 바꾸어 읽을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를 쓴 앵거스 플레처는  두 분야의 열정을 결합하여 문학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생리학적, 약리적 효과를 총체적으로 파헤쳤다. '스토리 사인언스'라는 새로운 분야를 탐구한 이 책은 문학 수업 시간에 배웠으면 하는 것들을 모두 알려준다.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상상적인 표현을 테크놀로지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오늘은 "잃어버린 테크놀로지"란 제목을 붙인 <서론>의 내용을 공유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질문을 한다.
1. 문학이 무엇을 하는 가? 이 질문은 문학 작품의 구체적인 심리 효과, 즉 감정과 어떻게 연결되는 가를 보는 거다.
2. 문학이 그 일을 어떻게 하는 가? 그런 효과를 도출하는 특정한 문학 발명품 - 플롯, 캐릭터(등장인물), 이야기 세계(storyworld, 스토리가 펼쳐지는 세계, 즉 배경), 서술자 등 - 을 찾는 것이다.

<<시학>>에서 발굴한 첫 번째 발명품은 문학이 "정신 고양제(soul lifter)라는 거다.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으며, 감정적 고양을 경험한다. 그 고양을 그리스어로 '타우마제인(thaunawein)'이라 한다. 요즘 말로 바꾸면 '경이(wonder, 驚異, 놀랍게 신기하게 여김)'이다. '경이'는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삶이다. 놀랍고도 신기한 감정에 휩싸이는 거다.

나는 '타우마제인'이라는 말을 고 이어령 교수한테 배운 적이 있다. 그는 평생을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재미나게 살아 오셨다 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자기 다움'은 실제로 나만의 물음표와 느낌표를 이어주는 여정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회의는(물음은) 하나의 기쁨을 낳고, 또 하나의 기쁨은 새로운 의문을 낳는다. 이렇게 순환한다. 고 이어령 교수에 의하면, 깨달을 때의 환희를 '타우마제인'이라 했다. 그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쓴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을 향해 썼고, 자신이 발견한 '타우마제인'이 벅차서 쓴 거라 했다. 앞에서 말했지만, '타우마제인'이란 그리스어로 '경이로움', '놀라움'을 뜻한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한 관찰과 숙고와 함께, 우리가 인간의 지성을 무엇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나도 매일 아침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를 쓰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독자가 같이 읽고 공감해주면 신이 난다. 우리는 '타우마제인'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그래 매일 글을 쓰며 발산하고, 그 발산한 만큼 수렴을 하고 싶게 만들어, 또 책을 읽고, 주변을 관찰하게 된다. 발산과 수렴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거다. 그래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앵거스 플레처에 의하면, 그리스 극작가들은 경이, 즉 '타우마이젠'의 더 큰 가능성을 전달하고 어떤 발명품을 고안했는데, 그게 '플롯 반전(plot twist)'이라는 거다. '플롯 반전'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뒤틀리지 않은 일련의 사건들을 연결하는 마지막 고리이다. 그 마지막 고리가 너무나 충격적이라 방향이 확 꺾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결국 이야기의 흐름이 뒤집어져 우리를 뜻밖의 장소로 인도한다. 이때 우리는 '타우마이젠'을 선물 받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플롯 반전의 밑바닥에 "확장(stretch)"이라는 문학 발명품이 하나 더 있다. '스트레치'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 단어의 뜻은 가지개를 켜며 몸을 뻗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정신과 감각도 스트레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스트레치, 즉 확장은 플롯이나 캐릭터, 이야기 세계, 서술 스타일 또는 스토리의 다른 핵심 요소에서 일반적인 패턴을 취한 다음 그 패턴을 더 확대하는 것이다. 가령 평범한 대상을 은유로 확장시키는 데서 오는 놀라움, 언어의 규칙적 리듬을 시적 운율로 확장시키는 데서 오는 황홀감, 평범한 인간을 영웅으로 확장시킨 데서 오는 경외감이 그 예이다.

이 정신과 감각의 스트레치인 확장은 우리 뇌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관심의 전환'과 연결된다고 한다. 관심사를 밖으로 돌리면, 자아 인식과 관련된 뇌 영역인 두정엽의 활동이 감소하는 거다. 그 결과 우리는 자아의 경계선이 사라진다고 느낀다는 거다. 심지어는 '무아지경(無我之境)' 이르기도 한다는 거다. 이런 신경적 느낌 때문에 우리는 책이나 영화에 '푹 빠져서' 우리의 인간적 한계를 잊을 수 있다는 거다. 게다가 이러한 망각이 우리 뇌를 자기초월적 경험으로 이끈다고 21세기 신경과학자들 주장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의 신경 회로를 더 큰 존재에 몰입 시킴으로써 관대함과 행복감을 높여 결국 우리의 기분을 '과학적 샹그릴라(Shangri-la,꿈의 낙원)'에 한증 더 가깝게 고양시킨다는 거다.

그 외 더 멋진 발명품이 그리스 비극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오늘은 여기서 멈춘다. 문학은 온갖 방식으로 우리의 정신 건강을 개선시킨다는 거다. 건강 하려면, 다음 세 가지가 다 건강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육체의 건강, 정신의 건강 그리고 태도의 건강.

책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실용적인 것, 또 하나는 인문서이다. 둘 다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지만, 차이는 나와 우리의 차이다. 자기 계발서 같은 실용서는 독자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성장하는 걸 목표로 하고,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키기보단 환경에 순응하며 개인의 성장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실용서는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는 수명이 짧다. 인문서는 다르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혹은 우리 인간이 사는 세상의 이치를 다룬다. 실용서는 속독해도 되지만, 인문서는 숙독해야 한다. 인문서는 우리 인생의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문서는 인간이 짐승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삶을 지향하는 모든 인간 활동의 기본 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책은 무겁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침 사진은 매일 다니는 산책 길에서 찍은 거다. 나도, 나무처럼, 살아야하는데……

책이 무거운 이유/맹문재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그 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만을 너무 생각하느라
자살한 노동자의 유서에 스며 있는 슬픔이나
비전향자의 편지에 쌓인 세월을 잊을지 모른다고
때로는 겁났지만
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몸무게를 달고
생활계획표를 짜고
유망 직종을 찾아보았다
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가를 보여주었다

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 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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