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산다는 것은 내가 어느 곳으로 걸어 가는 것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5. 1. 15:05

325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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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사진은 세종시에 있는 산림 박물관의 황톳길이다. 지난 주말, 올해 처음으로 갔다. 밖으로 나와 혼자 경치 좋은 길을 걸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할 자유를 얻는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그런 것은 혼자 걸을 때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면, 자연의 것들이 보내는 신호를 흘깃 보면서 자신이 자연 속에 속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타인에게 덜 의지하려는 각오를 만날 수 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 우리는 새로운 감각을 만나게 된다. 예컨대, 강물을 들여다 보면서 시간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우리 자신도 새로워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얻는다. 그리고 그러한 감각을 가지고, 우리는 일상이 잘 유지되게 하여야 한다. 그래 틈나는 대로 맨발 걷기를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후회하고, 내일을 희망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습관처럼, 어제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그렇게 산다. 산다는 것은 내가 어느 곳으로 걸어 가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보면, 내가 사는 삶은, 물처럼, 흘러간다. 그냥 간다.  삶이 너무나 힘들어도 세월은 위로해주지 않는다.  버거운 짐을 내리지도 못하고 끝없이 지고 가야는 데 어깨가 무너져 내린다.  한없이 삶에 속아 희망에 속아도 희망을 바라며 내일의 태양을 기다린다.  낭떠러지인가 싶으면 오를 곳을 찾아 헤매이고 암흑인가 싶으면 빛을 찾아 한없이 걸어야 한다. 죽음의 끝이 다가와도 애절하게 삶에 부질없는 연민을 갖는다.  산처럼 쌓아 둔 재물도 호사스런 명예도 모두 벗어 놓은 채,  언젠가 우리는 그렇게 떠나 다시 걸어야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냥 걷기만 하세요/법정

한 걸음,
한걸음 삶을 내딛습니다
발걸음을 떼어 놓고 또 걷고 걷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짊어지고 온 발자국은 없습니다

그냥
가버리면 그만인 것이
우리 삶이고 세월입니다

한 발자국 걷고 걸어온 그 발자국
짊어지고 가지 않듯
우리 삶도 내딛고 나면 뒷발자국
가져오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냥 그냥 살아갈 뿐
짊어지고 가지는
말았으면 하고 말입니다

다 짊어지고
그 복잡한 짐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냥 놓고 가는 것이
백번 천 번 편한 일입니다

밀물이 들어오고
다시 밀려 나가고 나면
자취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애써 잡으려 하지 마세요

없어져도
지금 가고 있는 순간의 발자국은
여전히 그대로일 겁니다

앞으로 새겨질 발자국
삶의 자취도
마음 쓰지 말고 가세요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가는 겁니다
우린 지금 이 순간
그냥 걷기만 하면 됩니다

2
생명은 근원적으로 '활동'과 '네트워크'를 좋아한다. '관계'와 '활동'이 생명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소유와 성공, 곧 돈과 물질에 관련된 것만 매달리면 꼭 막히게 되고, 끝에서는 허무할 뿐이다. 살맛이 나려면, 어떤 활동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계속 어딘가로, 누군가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길 위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할 때 그걸 연결해 주는 건 지성밖에 없다. 사업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교환관계에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지성을 통해 누군가와 친해지면 그 공간이 바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 온다. 그 일상 속에서 소유보다는 사람, 즉 존재로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서로의 생각이 접속을 한다. 이런 접속을 통해 가치가 생성된다.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이지, 유에서 유가 나오는 것은 유통기한이 아주 짧다. 돈 놓고 돈 먹는 것은 굉장히 유용하고 효율적이지만, 그건 순식간에 다 거덜나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무에서 유가 나와야 가치가 되는 거다. 원래 보이지 않는 지혜에서 물질이 나온다. 예를 들면 디지털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정보가 온갖 더 한다. 이 무형의 자산 없이는 물질만 갖고 돌려 막기를 할 수 없다. 정신적인 자산을 가지고 있을 때는 설령 망해도 그 다음에 이 실패에서 뭔가 배우고 도약할 수 있는 베이스를 갖게 된다. 그런 사람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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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면서도, 우리는 일상에서 활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고, 접속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폐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관계가 단절된다는 말이다. 다른 것들과 접속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생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감각의 차이만 만들어 낸다. 차이의 생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삶의 큰 즐거움이고 의미가 된다. 반대로 감각만이 늘어나는 게 중독이다. 이를 피하고, 하루가 재미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생활의 규칙을 만들어 보는 거다. 고미숙의 주장이지만,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 목적론이 해체되어야 한다. 일상이 리듬을 타야 한다. 리듬을 잃는 이유는 목적에 도달한 다음에 살겠다는 목적론이 문제이다. 매일의 일상은 리듬을 타야 한다. 일상이 그 목적에 종속이 되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의 무상함 앞에서 그냥 주저 앉게 된다. 매일 매일을 하는 과정으로 여겨야 한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자유, 행복을 오늘의 조건 안에서 어떻게든 구현해 내는 거다. 아프면 아픈 대로, 아픈 상태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상태에서 지유와 행복을 위한 액션을 취하는 거다.
▪ 그리고 시간에 리듬을 탄다. 이 기술은 노년에 더욱 필요하다. 메 순간을 나 스스로 과정으로써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죽음도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다.
▪ 그리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산다. 그러는 가운데 인간, 자연 그리고 내가 늘 만나는 사물들과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상품 소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작고 있는 물건을 깨끗하게 하고 변형시켜 나에게 맞는 물건을 고쳐 사용하면, 신상품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이를 프랑스에서 '브리콜라주'라 한다. 그러면 물건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이게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는 거다.
▪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해야 할 친구를 만난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는 웃는다. 그리고 웃어야 한다. 왜냐하면 웃음은 생명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활동으로써 웃음과 이야기를 연마하고, 내면에서는 어제 몰랐던 것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이게 지성이다. 그 지성으로 내적인 충실함과 외적인 활동이 리듬을 타야 한다. 고미숙은 이런 일상을 줄여서 이렇게 말한다. "명랑하고, 지혜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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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냥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삶은 누리는 것이다. 삶을 누리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열쇠를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깨닫지 못한 인생의 경험과 삶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수많은 우연으로 점철된 여행이다. 여행의 목적은 종착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여행길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더없이 큰 기쁨일 것이다. 미완성인채로 여행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삶에 재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그저 감탄하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세상은 즐거운 일들로 가득 차게 되고, 삶은 신나고 재미있어 진다. 인생과 연애를 하듯 살게 된다. 삶에는 이론이 없다. 삶은 그냥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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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이상한 나라"(김누리 교수)가 된 것일까?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짚었다고 한다.
▪ 끝없는 경쟁
▪ 극단적인 개인 주의
▪ 일상의 사막화
▪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여기에다 살인적인 경쟁 후에 승자가 독식하는 정글 사회이다.  김누리 교수의 주장을 하나 더 공유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거다. 이번 기회에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인 일상의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 누리 교수는 그 이유를 우리 사회가 아직도 군사문화의 전면적인 지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도 대학에서 군대식으로 학생들 군기를 잡고, 운동 선수들이 정기적으로 해병대 훈련장 같은 곳에 '정신 교육'을 받고,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군 생활하는 것을 방영하고 우리는 그걸 시청한다. 이런 것들을 김 교수는 '일상의 파시즘'으로 우리 내면에 아직도 '파쇼적 심성 구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아직도 정치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는 공개적으로 불의(不義)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정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들의 연합체이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와 이러한 심성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독재의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 좋은 설명이다.

김 교수는 민주주의를 네 영역으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정치 민주화,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화 그리고 문화 민주화. 민주주의란 한 사회 구성체의 작동원리 전체를 포괄하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층위로 세분해서 살펴보는 것은 좋은 분석이라고 본다.
▪ 사회 민주화는 사회 각 영역에서 개별 조직내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까지 자치적인 운영을 하고, 자율적인 결정을 하느냐 하는 정도를 뜻한다.
▪ 경제민주화는 기본적으로 경제 기구, 특히 기업 안에서 과연 어느 정도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가를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주화가 안 된 곳이 기업이다. 한국에서는 노조 조직률이 10% 밖에 안 된다. 한국의 많은 기업에서 소유자가 그야말로 전제 군주처럼 행동한다. 언젠가 읽은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 이수인 과장이 독일과 프랑스의 노동권 교육에 대해 강의하던 노동운동가 구고신 소장에게 묻는다. “저기… 프랑스 사회는 노조에 우호적인 것 같은데,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이고 지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구고신 소장이 명쾌하게 답한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소? 사람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거요. 노동운동 10년 해도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인간이란 말이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갑 질은 그 개개인의 인성이 잘못돼서 그런 면도 물론 있겠으나, 제도적으로 그걸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래도 되는 사회"에서 "그러면 안 되는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총합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 민주주의는 바로 이 관계들의 민주적 변화를 뜻한다.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우리 자식들을 위한 사회를 위하여. 오로지 우리는 내 자식만, 나만, 이런 집단적 또는 개인적인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인생이 돈만 벌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권력을 얻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영적 성숙을 보며, 자신의 영토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확장 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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