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의 문법은 변화(變化)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4. 30. 18:56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와인 일기

속절없이 "잔인한" 4월이 다 갔다. 오늘이 4월 말이다. 4월이 잔인한 달인 이유는 자연이 매일매일 자신을 변신시키지만, 인간은 주저하고 안주하고 편함에 취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낙엽들을 헤치고 삐쳐 나오는 풀잎들은 현재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항상 자신이 변화해야 할 모습으로 변한다. 만일 내일도 이런 모습을 간직한다면, 그 풀잎들은 죽은 것이다. 자신이 되어야만 하고 될 수 있는 모습으로 매 순간 변한다. 이런 식으로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은 그 개체만의 고유한 성격이 있어, 인간을 제외한 동물과 식물은, 그 고유한 특징을 시산과 계절의 흐름에 맞추어 조화롭게 변신한다. 그 속도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할 정도이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모든 인간이 세상에 다른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그 신분은 공동체인 도시에서 자기 나름의 고유임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각자 그 고유 임무에 따라 각자 도달해야 할 이상적인 상태를 그리스어로 '아레테'라 한다. 우리는 흔히 이걸 덕(德)으로 번역하지만, 이해가 쉽지 않은 단어이다. 아레테는 그리스 어에서 '선, 탁월함, 남성 다움, 힘, 용기, 성격, 명성, 영광, 위엄'이란 의미 뿐만 아니라, '기적, 경의, 경배의 대상'이란 의미도 있다. 이 다양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의 공통점은 '고유(固有)'이다. 우리 모두는 고유(固有)하기 때에, 세상에 하찮은 일은 하나도 없다. 어떠한 일을 하든, 진심으로 헌신하고 노력한다면, 그 일은 세상에서 가장 고유하고 귀중한, 즉 고귀(高貴)한 일이 된다.

그리고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의 문법은 변화(變化)이다. 눈 깜박할 사이의 나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재의 나에 만족하고 탐닉하고 안주하는 사람은 시시하다. 미래에 자신이 건축해야 할 자신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면 신나고 즐겁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위해 변화무쌍하게 변화 중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엉뚱함, 신남, 거침 없음에 매료된다.

변화하는 인간은, 지금까지의 자신을 살해하고 앞으로 될 자신을 시도하고 연습하는 사람이다. 인류의 현인들은 이 과정을 해탈, 각성, 회개, 희생, 오상아(吾喪我, 내가 나를 장례시킨다), 그로시스 등 각 문화 전통에서 개념들을 만들어 냈다. 현재의 내 모습에 대해 불만을 깨닫고 그 모습을 과감하게 버리는 행위가 희생이다. 어제는 이런 저런 일로 초저녁부터 와인을 마셨더니, 머리가 아프다. 꽃잎이 지는 4월 붙잡지 않고, 연 초록 속 깊어 가는 푸른 5월을 맞이하리라.

4월이 떠나고 나면/목필균

꽃들아, 4월의 아름다운 꽃들아.
지거라, 한 잎 남김없이 다 지거라
가슴에 만발했던 시름들
너와 함께 다 떠나버리게

지다 보면
다시 피어날 날 가까이 오고
피다 보면 질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
새순 돋아 무성해질 푸르름
네가 간다 한들 설음 뿐이겠느냐

4월이 그렇게 떠나고 나면
눈부신 오월이 아카시아 향기로
다가오고

바람에 스러진 네 모습
이른 아침. 맑은 이슬로 피어날 것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그 사람이다. 그 될 수 있는 그 사람이 가능성이며 희망이다. 희망은 가능성에서 나온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 당위이며 의무다.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자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자신의 노력을 통해 깨닫고, 그것을 위해 매일매일 수련하여 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자신이 되고 싶은 자신을 선택하여 자신으로 만들 때, 행복하다.

희망은 우리를 살린다. 희망은 언제나 믿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믿는 자만이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진다. 승리는 언제나 희망을 품고 자신의 목숨을 건 자의 것이다. 희망(希望, 프랑스어로는 espoir)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그리고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 또는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가장 마지막에 죽는 것이 희망이다"라는 독일 속담을 알고 있다. 희망의 손을 뿌리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것이다. "정의가 정의로워야 하고, 사랑이 사랑스러워야 하고, 문화가 문화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희망은 희망적이어야 한다." 언젠가 우리 동네 아파트인문학에서 하일선이라는 교수가 했던 말이다. 그 교수는 희망을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정의하고, 그 정의에 '누가' 와 '무엇'을 넣으면, 교육이 희망이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볼 수 있다고 했다. 누구의 자리에 내가 들어가면,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음,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희망인 것이다. 그러면 희망을 이렇게도 정의했다. "희망은 '절망하지 않기'이기도 하다" 그 분은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나 아닌 외부의 모두에게도 희망의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하교수는 "희망의 자리"를 나 아닌 친구, 이웃, 학교, 직장, 국가로 넓혀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교육이 다음과 같이 희망인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 교육이 개인(나)이 희망의 자리가 되도록 하는 일: 학교교육, 평생교육
▪ 교육이 부모(가정)가 희망의 자리가 되도록 하는 일: 부모교육
▪ 교육이 교사(학교)가 희망의 자리가 되어야 하는 일: 교사교육
결국 나, 부모, 선생님(학교), 사회가 희망의 자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다. 여기서 교육의 본질은 자기실현(자아완성)이다. 우리 인간으로서 자기실현은 "인간 다움"이 되는 것이고, 나(개인)로서의 자기실현은 '나 다움'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가족과 사회를 통해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행위를 외부로부터 수용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만든다. 배철현 교수는 이걸 '자기화(自己化)'라고 부른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 친지, 공동체, 도시 더 나아가 세계와 우주까지 자기화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개인이 아니라 시민이나 세계 시민, 더 나아가 우주적인 자아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든 체계가 윤리이다. 그 내용은 친절, 배려, 용서, 사랑과 가치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에게 선물로 주어진 하루는 자신이 되어야 할 그 무엇을 발견하여 '자기 자신으로 만드는 '자기화의 과정'이다. 자신이 되어야 할 자신이 없으며 타인을 흉내 내고 부러워 한다면,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은 온전히 자신이 될 때 행복하다. 오늘도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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