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찬란한 것은 늙지 않기 때문이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4월 24일)
꽃이 찬란한 것은 늙지 않기 때문이다. 필 때 다 써 버리기 때문 같다. 꽃의 피 속에는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고, 말과 분별이 없기 때문 같다. 눈부신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찬란한 착란이다. '나의 노년은 피어나는 꽃입니다. 몸은 이지러지고 있지만 마음은 차오르고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문장이다. 늘, 지금을 탕진하는 것들은 황홀한 향기를 내뿜는다. 태양이 저물 때도 황홀한 이유다. 이렇게 봄 날은 우리를 들뜨게 한다. 꽃들이 지천이다. 촌스럽게 빨간 영산홍, 순백의 철쭉 등등 온 마을이 꽃이다.
풀과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그 누구도 닮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풀이 지닌 특성과 그 나무가 지닌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눈부신 조화를 이루고 있다. 풀과 나무들은 있는 그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신비를 꽃피운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들의 분수에 맞도록 열어 보인다.
옛 스승 임제 선사는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라는 말이다. 이를 말 그대로 하면,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모두 참 되다”는 뜻이다. 진정한 주인이라면, 자기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곳이 주인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오늘 아침 사진의 꽃처럼 말이다. 오늘 사진의 꽃은 애기똥풀 꽃이다. 줄기나 잎을 뜯으면 노란색의 유액이 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꽃들에게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어디서든지 자신이 주인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굳이 절에 들어가지 않아도 일상의 삶 속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생각을 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자이다.
근기(根氣)라는 말이 있는데, '근본이 되는 힘'이라는 말이다. 이 근기가 두텁지 못한 사람, 중근기 사람들은 심고 가꾸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수확에만 마음이 가 있는 사람이다. 끝내 그런 이들은 결과 따위에는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 하며, 도량이 넓은 척할 뿐이다. 우리는 근대 이후 '중근기의 병자'를 대량 생산하는 체제 속에서 살아 왔다. 교육의 확대와 지식산업의 발달, 특히 디지털 정보 기술의 극대화로 하근기에 멈춘 인구가 대폭 줄어든 대신, 중근기 고개를 넘어 상근기로 진급하는 공부는 공식적인 교육 과정이나 교육 이념에서 아예 자취를 감춘 형국이다. 이게 문제이다. 그래 나는 인문 운동가로 매일 <인문 일기>써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 중근기 고개를 넘어 상근기로 건너가는 공부를 하자는 거다. 자기 몸과 마음을 닦아 인간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공부, 스스로 부처가 되어 중생을 건지는 공부, 또는 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공부는 진지하게 하면 할수록 손해 보게 되어 있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공부하며 늘 배워야 한다.
꽃에서 배워, 무슨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하기 싫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스스로 그 상황의 주인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런 일은 '어디서나 어떠한 경우에도 얽매이지 않아 주체적이고 자유 자재 함'으로 설명된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자유와 행복의 길이 시작된다.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일을 대하고 처리해 나가면서 즐거워하는 것이 행복이고,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 기보다 해야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철쭉은 철쭉 답게 피면 되고, 민들레는 민들레 답게 피면 된다.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이런 인문 정신을 이 봄에 꽃에게서 배우는 거다.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해 옛 스승은 다시 말한다. "일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다만 억지로 꾸미지 말라. 있는 그대로가 좋다." '일 없는 사람'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그 일에 빠져 들지 않는 사람, 일에 눈멀지 않고 그 일을 통해 자유로워진 사람'을 말한다. 억지로 꾸미려 하지 말라. 아름다움이란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본래 모습 그대로가 자신만이 지닌 특성의 아름다움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어제는 봄 밤에 취했다. 나는 나를 '와인, 술 파는 인문 운동가'라 부른다. 그랬더니, 어떤 한 지인은 더 쉽게 '술 파는 철학자'로 고쳐준다. 내가 와인을 알게 되고, 전문가로 밥 벌이를 하게 된 것은 유학 시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시는 이유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괴로움을 견디는 게 훨씬 수월하였기 때문이다. 와인을 많이 마시면 몸이 괴롭다. 그러나 괴로움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어 와인을 마신다. 외로움을 주고 괴로움을 받는 정직한 거래가 와인 마시기이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다 보니, 와인 맛의 10%는 와인을 빚은 사람이고, 나머지 90%는 마주 앉은 사람이다. 우리는 알코올에 취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취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에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는 내 앞에 앉은 사람에게 우리는 취한다. 그는 내 외로움을 홀짝홀짝 다 받아 마시고 허허 웃으면, 우리는 그 맑은 표정에 취한다. 그래 나는 나를 '와인 팔며 마시는 인문 운동가'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후회한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이 말은 100% 다 맞는 말은 아니다. 행복이란 맛있는 거 먹고, 일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과 관련된 것들을 많이 생각하지만 이와 같은 소소한 행복도 삶에서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 있을 때만 약속한 행복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흔히 소확행(사소한 것에 확실한 행복)을 이야기 한다. 이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이다. 일상의 작은 일들이 주는 행복이 그가 누리는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큰 행복에 빠져 있다가 작은 행복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작은 행복을 연료로 큰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소소하고 작은 행복이 그의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잘한 행복이 전부인 줄 알면 하루키에게 속는 것이다. 소확행이 전부인 젊은이는 자기의 포부나 꿈이 없이 자본주의의 부스러기나 먹으며 얻는 심리적 만족감이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최진석 교수의 한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수업>>)
어제는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우리의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 서야 깨닫는다는 거다. 사람들은 즐겁지 않은데도 웃고, 가슴이 맞닿지 않은데도 관계를 맺고, 절망적이지만 밥을 먹는다. 삶은 하나의 기회이며, 아름다움이고 놀이이다. 그것을 붙잡고, 감상하고, 누리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 책은 말한다. 살고(Live), 사랑하고(Love), 웃으라(Laugh) 그리고 배우라(Learn). '4L'이다. 4 리터가 아니라, '네 가지 L'이 "인생수업"의 과목이란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라는 것 외에는 다른 숙제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봄 밤에는 취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너무 주먹을 꽉 움켜쥔 체 살았다면, 이제는 손바닥 위에 부드러운 깃털이 놓인 것처럼 평화롭게 손을 편 채로 살고 싶다면 말이다.
봄밤/권혁웅
전봇대에 윗옷 걸어 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 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함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 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
그가 전 생애를 걸고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
다시 직립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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