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기다려라’(Wait)라는 말은 거의 언제나 ‘안 돼’(Never)라는 말이었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4. 24. 08:51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4월 23일)

세상이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안 든다. 그래도 봄 꽃들은 자기 일을 착실하게 한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한국 미디어는 '높은 수준'의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그래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이봉수 원장의 글을 믿고 읽는다. 그리고 공유한다. 그게 인문 운동가의 역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달 칼럼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무부의 영어 명칭은 ‘정의부’(Ministry of Justice)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내정자는 “나쁜 놈만 잘 때려잡으면 된다”고 말했는데 ‘나쁜 놈은 누가 정하느냐’고 되묻는 기자가 왜 없는지 모르겠다. 국민 중에는 그를 ‘나쁜 놈’으로 지목하고 싶은 이도 있으리라. 인권보호 부처의 최고 책임자로서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세상의 많은 불의는 일부 집단이나 독재자가 ‘정의’를 독점하고 ‘적 만들기’를 하면서 빚어졌다." "늘 ‘시기상조론’을 펴거나 시류에 따라 말을 바꾸는 이들이 가짜다."

우리 형법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 받는 엄상섭 국회의원은 1954년 법전편찬위원회 공청회에서 “우리나라도 조만간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해방 직후에는 경찰이 너무 힘이 센 데다 친일 경력자도 많아 견제 차원에서 검찰에 일시적으로 수사권까지 주었다고 한다. 그 ‘조만간’이 해방 이후 7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는 거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세계에서 비교 대상국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 등을 한 손에 틀어 쥔 검찰은 국민의 인권 보호를 하기보다 독재의 도구로 작동한 때가 많았고, 일관된 제 식구 감싸기는 ‘불멸의 신성가족’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그러다가 드디어 검찰총장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측근이 법무부 장관 지명을 받자 반대 진영에서는 ‘검찰공화국이 완성됐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기다려라’(Wait)라는 말은 거의 언제나 ‘안 돼’(Never)라는 말이었습니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비폭력 시위를 주도하다가 투옥된 뒤 띄운 편지의 한 대목이다. ‘시기상조’ 등 온갖 핑계를 대며 인종차별을 철폐하지 않으려는 백인들의 의도를 꿰뚫어본 것이다." 이봉수 원장의 말이다.

그의 지난 달 칼럼도 찾아 보았다. 거기서, 그는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을 소환했다. 페르낭 브로델은 기존 역사학에 반대하여 개인 대신 집단, 연대(年代) 대신 구조(構造), 정치 대신 사회를 탐구했다. 이봉수 원장은 "인간 삶의 조건을 결정짓는 구조는 지중해와 같은 지리적 여건이나 벼·밀·옥수수로 나눠지는 대륙별 주식 작물 등 훨씬 장기지속되는 요인들이지만, 기득권 카르텔의 승리로 끝난 한국의 대선 평가에도 유사한 분석틀을 활용"할 수 있었다 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은 노론이 장기집권에 들어간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뿌리가 깊다. 그들의 권세는 일제강점기로 이어져 일본 귀족작위를 받은 76명 중 57명이 노론 계열이었다는 책도 나왔다. 친일파는 해방 후에도 정계, 언론계, 학계, 법조계, 군대와 경찰의 핵심요직들을 차지했다"(이봉수)는 거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 '나까무라 스미스', '철면피 스미스'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창씨 개명을 한 '나까무라'가 미군정이 들어서자 '스미스'로 이름을 바꾼 뒤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일본에 붙어 출세한 사람이 미군에 붙어 기회주의 적었던 사람을 '철면피 스미스'라 한다. 반성 없는 자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정당이지만 민주당도 일부는 기득권층 엘리트 카르텔에 편입돼 진보정당으로 부르기도 민망한 상태다. 이번 대선에서 서울은 거주하는 아파트의 값과 윤석열 후보 득표율이 정비례했는데, 몰표를 준 이들의 표심에는 ‘욕망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본다."(이봉수)

'꼰대'라는 말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최근에는 꼰대 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어원에 대해서는 영남 사투리인 "꼰데기'와 프랑스어 '꽁뜨(comte, 백작)'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프랑스 식으로 발음하면, 꽁뜨인데, 이를 "콩테"라 읽으면서 이를 일본식으로 다시 바꾸어 '꼰대'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이완용 등 친일파들은 백작, 자작과 같은 작위를 수여 받으면서 스스로를 '콩테'라 불렀는데, 이를 비웃는 사람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라 불렀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완용 꼰대'라 불렀다고 한다. 그 속에는 친일파들이 보여준 매국노와 같은 형태를 '꼰대 짓'이라 했다는 것이다. 인문운동가로 나는 이 '꼰대'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어 사회 분열의 원인이 된다고 본다.

이완용이 어떤 사람인가? 일본에 나라 팔아 넘긴 그가 죽기 직전 친아들에게 남긴 유언이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이라 한다. 아직도 친일파들이 우리 사회에 건재하고 있다. 우린 지금 자식들에게 뭐라고 하나? 무조건 1등하고, 좋은 대학 가라고 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정신적 '친일파'가 아닐까? 이완용은 일제의 주구(走狗 사냥할 때 부리는 개)로 활동하며, 권력을 얻고, 호의호식(好衣好食,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음)하던 X이다. 나라를 팔아먹고 죽는 날까지 편하게 살았다. 그가 위와 같은 유언을 하고서, 한 마디 더 덧붙였단다. "힘없는 다리 부축해달라고 남에게 부탁한 것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 먹은 일이라고 매도 당해야 하는가?"

다시 오늘의 화두로 돌아온다. 장기 지속되는 구조를 우리 정치현실에 원용해 보면, 반복되는 기득권층의 재집권이 설명된다. 민중의 개혁의지가 체제나 제도 변화로 안착하지 못하고 외세나 기득권 세력에 압도당해온 것이다. 그 사례들의 나열을 보면, 얼른 고개가 끄덕여 진다.
- 동학혁명 이후 청·일 지배,
- 4·19혁명 이후 5·16 쿠데타,
-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전두환 집권,
- 1987년 6월항쟁 이후 노태우 집권,
- 촛불혁명 5년 만의 윤석열 집권은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희망도 있다. "장기지속 구조는 이처럼 억압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가 큰 충격을 받고 일탈했을 때 정상 궤도로 복귀하는 동력도 된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좌절된 혁명들도 장기지속 구조를 형성해 새로운 변혁의 불씨로 되살아나곤 한다"(이봉수)는 거다.

"정책은 실종되고 정치와 언론이 부추긴 증오와 혐오가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오류’에 가까운 투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5년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이 또한 정치교육의 반면교사가 된다면 정상복귀의 동력은 계속 축적될 것이다. 역사는 비틀거리면서도 진보한다고 믿고 싶다." 이봉수 원장의 멋진 분석이다. 헝클어진 내 마음이 풀린다.

2022년 봄 대한민국에서 들리는 파열음들이 요란하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난히 앞 정권과 자기들을 차별화하고 앞 시대와 단절하는 예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없지 않았겠으나 그러한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당연하게 여기게 된 면도 있는 것 같다. 앞사람으로서 뒷사람을 부정하고 뒷사람으로서 앞사람을 미워하기만 하는 관성에 휩쓸려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더구나 이번에는 0.73%의 승부로 권력의 주체가 바뀌어서 신구 권력 간 갈등이 두드러져 보인다. 부정과 미움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은 소설가 이승우의 지적이다. "엄청난 차이로 졌든 아깝게 졌든 졌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10대 0이든 1대 0이든 승과 패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 조언은 진 쪽을 향한 것이지 이긴 쪽을 향한 것이 아니다. 간발의 차로 이긴 쪽은 자기들의 승리가 질 수도 있었던 승리였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10대 0 대승과 승부차기 신승은 같은 승이 아니다. 승자와 패자의 마음이 이럴 때 부정과 미움의 관성에서 벗어나 소통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의 글판에는 김사인 시인의 시 <공부>의 일부가 금년 봄 편으로 걸렸다.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이어지는 시구가 "다 공부지요’이다. 그러니까 좀 견딜 만하다. 이 구절의 앞 행은 "갈잎 지고 새움 돋듯"이다.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이 갈잎 지고 새움 돋는 것과 같은 자연의 이치라는 것이다. "지고 돋고 가고 오고 죽고 태어나고…. 그런 자연의 큰 운동을 닮아 기꺼이 보내고 맞고 해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이 구절을 읽었다." (소설가 이승우)

공부/김사인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끓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듯 사람간의 관계도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임을 배우는 것이 '인생공부'라고 한 비유가 멋지다. 각박한 현실이지만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따뜻한 시선이 있어 좀 더 성숙한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를 읽었다. 실제로 교보생명 관계자는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다가오는 계절의 틈새에서 우리를 위로하는 공동체의 따뜻한 시선이 있음을 상기하자는 의미로 이번 문안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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