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4월 23일)
어떻게 하면 분리된 자아가 온전해질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인간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고, 그냥 내버려두면 자기도취와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영혼과 역할을 다시 결합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파커 J. 파머는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커뮤니티를 "신뢰의 서클"이라 불렀다. '진정한 커뮤니티'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분별 없고, 공격적이고, 자축하고, 조종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부드럽고, 정중하고, 경건한 방식으로 자아와 세상을 소중히 여긴다. 이 '신뢰의 서클"에 있는 이들은 안으로 자신의 온전성에 다가가고, 밖으로 세상의 필요에 다가가면서 그 교차점(경계)에서 자신들의 삶을 산다. 그러면서 자신이 변화되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기꺼이 맞아들인다.
신뢰의 서클 안에서는 내적인 탐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믿음을 가지고 있다.
- 누구나 자신 안에 내면의 교사가 있고, 그것의 안내가 이데올로기, 집단의 신념, 제도, 지도자들의 안내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
- 서로 교류하면서 내면의 교사가 하는 말을 분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믿음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1) 내면의 진실로 향하는 길은 혼자서 가기에는 너무 험하다. (2) 그 길은 자취가 너무 흐릿하다. 그러므로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통찰력을 얻어야 한다. (3)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난관들이 나타난다. 따라서 내면의 교사가 속삭이는 낯선 땅으로 과감히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여행에서 길을 잃으면 지도를 보거나 그곳 사람들 한테 길을 묻거나, 길을 아는 택시 운전사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의 여행에서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안내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의 서클은 다른 이들 앞서 자신이 선택한 방식에 따라 스스로 분별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준다. 다른 이들은 단지 자신이 자신의 영혼을 초대해서 스스로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돕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의 내면에 지닌 두려움이 무엇이고, 진실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도록 주위에 공간을 마련해 줄 뿐이다. '신뢰의 서클'에는 '영혼 또는 참자아가 실재하며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과 '영혼은 특별한 관계에서만 안전을 느낀다'는 두 원칙이 있다.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하길 원한다면, 영혼의 힘을 믿고, 다른 이들의 조언을 듣기보다 자신의 내면으로 깊게 들어가 자신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영혼이 자신의 삶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일상을 지배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일상을 지배하자는 마음을 습관이 되게 하였다. 그래 이제는 자연스럽게 눈을 뜨자마자 이를 닦고, 혀를 닦는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잠든 내 세포들을 깨운다. 그리고 오늘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짠다. 나는 오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건 배철현 교수한테 배운 거다. 나도 오늘을 나에게 만족스럽도록 만들어주는 격식(格式), 즉 시간표(時間表)를 만든다. "하루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더 나은 자신, 더 숭고한 자신, 자신이 스스로 제3자가 되어 관찰해도 ‘괜찮은 자신'을 위해 발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표'가 필요하다. 시간은 양적이지만, 시간표는 질적이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시간표는 멈춤이다. 시간은 늙음이지만 시간표는 젊음이다. 시간은 객관적이지만, 시간표는 주관적이며 사적이다. 시간은 알몸이지만 시간표는 내가 오늘 갖추어야 할 의복이다." 배철현 교수의 멋진 해석이다.
그리고 매일 <인문 일지>를 쓴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 일기를 썼다고 한다. 그의 <<명상록>> 제2권 1단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일아침 나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오늘 나쁜 사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건방진 사람, 속이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 그리고 적대적인 사람을 만날 것이다. 선과 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것이다. 나는 이들 때문에 해를 입을 수 없고, 화를 내지도 않을 것이며 미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무작위(無作爲)로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이 아우렐리우스를 당혹스럽게 만들거나 슬프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일들을 이미 예상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일어난 이유, 성가신 일들의 원인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의 특징은 무작위다. 내가 예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무작위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정한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목표를 위해 매일 훈련하며 정진하는 사람에게, 일상의 난제들은 그를 숭고하게 만드는 스승들이 될 뿐이다.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은 나에게 스승들이라고 생각한다. '무작위'란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다. 오히려 영어로 '랜덤(random)'이란 말이 더 익숙하다. 무작위의 사전적 정의는 '일부러 꾸미거나 뜻을 더하지 아니함'이다.
난 "수처작주 입처개진(數處作主 入處皆眞')이란 말을 좋아하고 실천한다.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있는 그 곳이 진실된 곳"이란 말이다. 다시 말하면,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것이다. 주인이 되지 못할 자리에는 안 가는 거다. 그러나 더 큰 의미가 있다. '네 삶의 주인이 되라'는 말이다.
'수처작주'를 실천하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무슨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하기 싫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스스로 그 상황의 주인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처작주'는 '어디서나 어떠한 경우에도 얽매이지 않아 주체적이고 자유자재함'이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는 것이 자유와 행복의 길이다.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일을 대하고 처리해 나가면서 즐거워하는 것이 행복이라 보기 때문이다.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해야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처작주'의 마음을 가지려면, 비교 분별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비우고, 그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 된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니, 집착을 버리고 유연해지는 것이 '수처작주'의 시작이다. 미음을 비우고(분별심과 집착), 삶을 놀이로 만들면, 자유롭고, 즐겁고 행복해진다. 그때부터 '수처작주'의 삶이 시작된다. 자아의 실현이나 완성은 장소에 좌우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소를 지배하는 자신의 사명이 결정한다.
분별의 마음을 비운다. 사물의 차이를 구별하는 분별과 마음을 분별하는 것은 다르다고 본다. '수처작주'가 되면, 자신과 세상을 "그냥 둔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그냥 둔다/이성선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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