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좀 덜 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금년에 새로 부임하신 우리 동네에 있는 KAIST 이광형 총장의 발언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평소 내 생각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 분을 오래전부터 조금 알고 있다. 내가 대전 프랑스문화원 원장 하던 시절에 알게 된 분이다. 세월이 흘러 그분이 총장이 되셨다. 취임을 하시면서 그분이 하신 말들이 내 생각과 같다. 그래야 세계 일등이 아니라, 세계 일류가 된다고 본다. 인류만이 새로운 장르를 만들 줄 알기 때문이다. 그분의 이야기들을 좀 공유한다.
"남이 낸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질문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그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인문예술과 과학기술이 융합된 디지털 인문 사회학 교육이 필요하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고 있고, 카이스트도 AI대학원을 설립해 집중 육성하고 있지만 10-20년 후 AI가 일상화되어 있을 세상을 내다보고 포스트 AI 연구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공부, 즉 인문학 기반을 쌓아야 한다."
"세계 최고가 아니라, 세계 최초 연구를 하자는 '1랩 1최초 운동'도 따라가기가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남과 다른 생각으로 해야 가능하다." "남을 따라가는 것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How에서 What으로 연구문화를 바꾸겠다." "시시한 것 따라하기 안 하고, 세계 최고의 것"을 하자. "공부 좀 덜 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오늘은 모처럼, 내 고향 공주에 간다. 그곳에서 정동식 화백 전시회가 있다고 해서 간다. 마냥 집에만 있을 순 없다. 그래 소수 인원과 가까운 곳에 가 호기심을 채우기로 했다. 그리고 꿈을 꾸기로 했다. 오늘 아침 시는 이기철 시인의 <내가 바라는 세상>이다. 시를 공유한 다음은 내가 바라는 내 삶 이야기를 지난 화요일에 이어 계속한다. 잘 안 되지만, nobody 삶. 오늘 아침 사진은 우리 동네에 정착한 몽골에서 온 젊은 부부이다. 어린 딸도 있다. 오른 쪽의 여자분은 내 딸이 우리마을7대학에서 천연 비누 등 천연 DIY를 배우면서 알게 된 사라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다. 내가 우리 집에 초대한다고 했더니, 금방 신랑과 딸을 데리고 어제 저녁에 왔다. 구김이 없는 젊은 부부였다. 내가 유학하던 시절에 잘 해주었던 그 분들을 기억하며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며 도와줄 생각이다. 오늘 시처럼, "내가 바라는 세상"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이기철
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
한 번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 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
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꽃이 된 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입니다
마을마다 살구꽃 같은 등불 오르고
식구들이 저녁상 가에 모여앉아
꽃물 든 손으로 수저를 들 때
식구들의 이마에 환한 꽃빛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어둠이 목화송이처럼 내려와
꽃들이 잎을 포개면
그날 밤 갓 시집 온 신부는
꽃처럼 아름다운 첫 아일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 혼자 베갯모를 베고
그 소문을 화신처럼 듣는 일입니다
지난 4월 20일 난 내 나름의 공식 하나를 만들었다.
I'm everything = Everybody = 오만, 자만 = 대단한 자
I'm something = Somebody = 허영 = 특별한 자
I'm nothing = nobody = 겸손 = 아무 것도 아닌 자
그러면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예로 들며, 이 이야기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흥미진진한 여행 이야기이다. 그는 험난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결말이 이르러 그는 원래 찾으려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얻는다. 대체로 그것은 깨달음이다.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키클롭스를 만난 이후, 신중 해진다. 예를 들어 파이아케스인들은 바닷가에 표류된 오디세우스를 누구인지도 모른 채 환대한다. 그런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내세우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고향인 이타케로 들어갈 때도 그는 누더기를 걸친 걸인의 모습으로 위장한다. 하녀들이 좋은 잠자리를 마련해주어도 사양하고 "무두질하지 않은 소가죽과 양들의 모피들을 깔고 바깥채에서 잔다. 그는 섬 바디(somebody)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자만과 허영으로 화를 자초한 이후부터는 노 바디(nobody)로 스스로를 낮추었고 그 덕분에 고난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귀향한 오디세우스가 맞닥뜨린 현실은 공교롭게도 키클롭스가 겪은 일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다. 흥미롭다. 오디세우가 집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였다. "내 어머니는 싫다고 하는데도 구혼자들이 치근대고 있는데 (…) 그들은 날마다 우리집에 찾아와 소들과 양들과 살찐 염소들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잔치를 벌이며 반작이는 포도주를 마구 마셔 대고 있소이다." 이제 오디세우스는 주인의 입장에서 습격을 감행한 무도한 자들을 축출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는 구혼자들을 모두 연속해서 죽이고, 그들에게 협력한 열 두 시녀들(우연찮게도 키클롭스의 동굴에 갇혔던 오디세우스의 부하들과 같은 숫자다)의 목을 궁전의 들보 매단다. 평화가 회복되고 에디세우스는 여행자에서 정주민으로 돌아 온다. 그러면서 그는 아내를 구하고 가정을 회복한다.
자신이 독립적고 주체적이 못하고, 약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타인으로부터 확인 받고 싶어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타인의 환대와 인정, 선물을 필요로 한다. 물론 자본주의 이런 습격을 부드러운 거래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 거래로 모두가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어서 누군가는 동굴로 돌아온 키클롭스의 마음으로 외부인을 적대하거나 무시한다. 그럴 때 우리는 더 불안과 좌절을 겪고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 불필요한 고난으로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러므로 삶의 지혜는 스스로를 낮추고 노 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은 자만과 허영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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