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교황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4. 22. 16:57

325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4월 22일)

어제(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셨다. 향년 88세이셨다. 그 분의 말씀 중 다음 3 가지를 <인문 일지>에서 공유하였고, 늘 내 생각으로 갖도록 노력했다. 다시 공유하며, 교황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
▪ “인간의 고통 앞에 정치적 중립은 없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결심을 다시 공유한다. 나도 다시 한 번 같은 결심을 해본다.
- 험담하지 않는다. (Don't gossip) 다른 사람에 대한 말을 적게 하고,  한다면 가급적 덕담을 한다.
-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Finish your meals) 내가 남긴 음식은 굶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음식이다. 게다가 지구적인 삶을 위해 음식 쓰레기를 남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낸다. (make time for others) 무재칠시(돈을 쓰지 않고 보시할 수 있는 7 가지)중에 가장 큰 보시이다.
- 검소하게 생활한다. (Choose the 'more humble' purchase) 아낀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한다.
-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간다. (Meet the poor in the flesh)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Stop judging other) 우리는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러나 다른 이가 나에대해 말할 자격은 있다. 다만 무시하면 된다.
- 생각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된다. (Befriend those who disagree) 다양성은 내가 갖고 있는 프레임을 깰 수 있다.
- 맹세하는 것을 두려워 않는다. (Don't be afraid to say "forever") 지키지 못할지라도 자주 결심을 하는 것은 더 성숙해지는 길이다.
- 주님께 요청하는 습관(기도)를 갖는다. (Make it a habit to 'ask the Lord')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청하는 것은 그 분을 믿는 것이다. 가급적 주님의 기쁨이 되는 일을 청하면 더 좋다.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마태 7, 7-8)
- 행복하게 산다. (Be happy)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아무 것도 없으며,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 뿐이다." (헤르만 헤세)

교황님은 겸손함과 가난한 이들을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가톨릭교회를 넘어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이 우리 모두를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자비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등불이 될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위안을 찾는다.

 

1
오늘 공유하는 사진은  모과나무 꽃이다. 언젠가 나는 어느 책에서 다음 표현을 읽은 적 있다. “모과나무처럼 뒤틀린 심사(心思)”. 잎과 꽃이 없는 겨울에  모과나무를 보면,  몸통이 뒤틀려 있다. 이 나무의 이름은 가을에 익는 노란빛의 매혹적인 열매 이름이 모과이기 때문이다. 그 모과도 울퉁불퉁 못 생겼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모과의 향기는 기가 막히다. 모과는 목과(木瓜)에서 나와, 그 의미는 '나무의 참외'라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나도 잘 모른다. 

모과 꽃은 특별히 진한 향기가 없으니 벌이 가끔 찾는다 해도 ‘향기 나는 듯 마는 듯’한 꽃이다. 게다가 빛깔 또한 원색이 아니라 은은한 분홍빛이니 ‘빛깔로 드러내고자’하는 꽃이 아니라, ‘조금씩 지워지는 빛’이다. 잎이 무성해서야 꽃이 피니 ‘나무 사이에 섞여서/바람하고나 살아서/있는 듯 없는 듯’한 꽃이다. 

그럼 오늘 공유하는 시어에 있는, "모과 꽃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분명 꽃은 피지만 잎에 가려 ‘눈에 뜨일 듯 말 듯’하는 것처럼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 조용한 삶일 것이다. 그런데 나무는 그렇지 않다. '뒤틀린 심사'를 모나 나무에 비유한다. '심사(心思)'란 "어떤 일에 대한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흥부전』에도 이런 표현이 나온다. “이놈의 심사 이러하야 모과나무같이”. 나무와 꽃이 다르다.

생각이 비뚤어지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쉽게 말하고 행동한다. 모과나무처럼, 심사가 뒤틀렸으면, 모과 꽃 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이목을 끌지 않고 조용히 있었으면 한다. 아니면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고, 해석하고 확대하면서 자기 삶을 꾸리는 사람은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지적 '부지런함'이란 단독자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따라하기'의 '편안함'과 '안전함'에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불안과 고뇌를 감당하며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계속 파고 들어가 가능해지도록 '틈'을 벌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대답에만 빠지지 말고, 질문하는 사람이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모과꽃/도종환
 
모과꽃처럼 살다 갔으면
꽃은 피는데
눈에 뜨일 듯 말 듯
 
벌은 가끔 오는데
향기 나는 듯 마는 듯
모과꽃처럼 피다 갔으면
 
빛깔로 드러내고자
애쓰는 꽃이 아니라
조금씩 지워지는 빛으로
 
나무 사이에 섞여서
바람하고나 살아서
있는 듯 없는 듯


2
지금부터는 어제 다 공유하지 못한 <지산 겸> 괘 이야기를 이어간다. <<주역(周易)>>은 정해진 운명인가? 아니다. 바꿀 수 있다. <<주역(周易)>>의 역(易)은 ‘바꿀 역’자 이다. 지금 어렵다고 한탄만 할 일은 아니다. 이치에 맞게 변화를 꾀해야 한다. '궁즉변 변즉통(窮卽變 變卽通)'이다. 궁하면 변화를 꾀해야 하고, 변화되면 통하게 된다는 말이다. <<주역>>의 핵심은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역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이다. "역(易)"은 흐름 바꾼다는 거다. 여기서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를 말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거다. 그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거다. 이게 통(通)인 거고 닫히는 것이 아니라 열리는 상황이다. 고 신영복 교수는 <<주역>> 사상을 한마디로 하면, "변화"라 했다. 변화를 읽음으로써 고난을 피하려는 '피고취락(避苦取樂)의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변화를 사전에 읽어 냄으로써 대응할 수 있고, 또한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는 거다.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이다. 선택된 여러 부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것이 자신의 일상이다. 그러니 우리는 성찰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갖고 관계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서 성찰은 자기 중심이 아니다. 시각을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 가를 깨닫는 거다. 이러한 관계에 필요한 것이 <<주역>>은 절제와 겸손이라 말한다. 여기서 절제와 겸손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로마법이 로마 이외에는 통하지 않는 것을 잊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우며, 자기의 존재를 상대 화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제는 자기를 작게 가지는 것이다. 주장을 자제하고 욕망을 자제하고, 매사에 지나치지 않도록 하는 거다. 그러면 부딪칠 일이 없다.

어제 다 못 읽은 <지산 겸>괘의 <대상전>부터 다시 공유한다. 이 괘의 <<괘상사>>는 "象曰(상왈) 地中有山(지중유산)이 謙(겸)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裒多益寡(부다익과)하야 稱物平施(칭물평시)하나니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땅 가운데 산이 있음이 겸(謙)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 적은 데에 더해서,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고르게 한다.” TMI: 裒:덜 부·줄 부·모을 부·포로 부, 寡:적을 과, 稱:저울질할 칭, 施:베풀 시. 땅 위로 솟아 있어야 할 산이 땅 가운데에 낮게 처하니, 이러한 상을 보고 군자는 많은 것은 덜어내어 적은 데에 더하고, 모든 상황을 잘 저울질해서 사회의 형평(衡平)과 평등(平等)을 구현하여야 한다. 사회정의(社會正義)의 기본 핵심은 형평과 평등에 있다. 사회의 병폐가 되는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누진세(累進稅) 등의 세금정책을 통해 재원(財源)을 마련하고, 그 자금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지혜택을 구현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겸(謙)은 사회정의(社會正義)이고 평등(平等)을 구현하는 원리이다. 가진 것이 많다고, 인지도가 높다고, 직급이 높다고, 뽐내거나 까불지 말아야 한다. 대동(大同)과 평등(平等)의 가치를 <<주역>>이 표방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곧 '천지의 도'이기 때문이다.
 
"부다익과 칭물평시"는 <<도덕경>> 제77장의 " "天之道(천지도) 其猶張弓與(기유장궁여) 高者抑之(고자억지) 下者擧之(하자거지) 有餘者損之(유여자손지) 不足者補之(부족자보지): 하늘의 도는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다. 높은 것은 억누르고, 낮은 것은 들어올린다. 남으면 덜어주고, 모자라면 보태 준다"와 일맥상통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높은 산을 깎아 낮아지고, 그 덕택으로 낮은 곳은 메워져 높아진다. 위쪽 연못에 물이 차 넘치면 그 물은 자연히 아래쪽 연못으로 흘러 들어 그것을 채운다. 이렇게 남는 쪽에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쪽에 보탬으로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노자는 당시 불평등한 사회를 비판하며 부자의 부를 덜어서 빈자에게 더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거다. 그래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人之道則不然(인지도즉불연) 損不足以奉有餘(손부족이봉유여): 하늘의 도는 남는 데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데에 보태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모자라는 데서 덜어내어 남는 데에 바친다." "물이 한번 쓸고 가면 둔 턱은 깎이고 움푹한 곳은 뻘로 채워진다. 이런 것이 자연 현상이다. 불평등 구조를 화해구조로 끊임없이 리벨런싱하는"(김용옥)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서 리더는 부자의 여유를 덜어 빈자의 부족함을 메꾸어야 한다. 노자는 이러한 자연의 법칙, 존재의 법칙을 가지고서 인간세의 당위를 요청한다.

'약자를 보호하라"는 거다. 왜냐하면 "남는 데서 덜어내 모자라는 데 보태는 것이 하늘의 도(天地道)"이기 때문이다. 이 장의 키워드는 "보부족(補不足)", '부족한 자에게 나눔을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베풀라'이다. 베풀어야 할 사람이 베풀기는 커녕 더욱 가지려고 하면 강제로 베풂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 공자의 충고를 잘 새겨서 겸손을 실천해야 한다. 마음만 겸손하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것의 높이에 '겸손'을 대입함으로써, 하늘과 땅과 귀신과 사람이 돕고 좋아하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겸손은 곧 평등의 실천이다.

3
겸손은 부유한 사람 들만이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니다. 나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아집은 우리가 사람에게서 느끼게 되는 겸손하지 않음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틀렸다고 대놓고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을지라도 자기 입장을 확고히 정해둔 채 타협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것 역시 마음이 자기로 가득하기(盈) 때문이다.  자기를 내세우겠다, 자기의 주장만을 관철시키겠다는 오만의 발로이다. 그리고 상대의 말과 글을 전체 맥락에서 파악하려 하지 않는 것 역시 겸손과는 거리가 먼 태도이다. 대부분의 경우 악의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 그 의도가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맥락에 담긴 인식과 취지를 깡그리 무시한 채 기획된 이미지만 부각시키는 말을 남발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기레기' 언론들에게서 참을 수 없는 천박함을 느낀다. 최근 조기 대선 구면에서 그릇이 되지 않는 여러 정치인들이 내뱉는 말들이 그렇다. 겸손하지 않으니 그들에게 유종의 미가 있게 될 리 만무하다. <<주역>>이 말하지 않는가?

4
<지산 겸> 괘의 '괘사'는 후덕한 산이 땅 아래에 있듯이 부유함을 덜어서 가난함에 보태어 사회의 형평을 유지하고, 상황을 잘 판단하여 공평하게 베풀어라. 이를 "칙물평시(稱物平施)"라 한다. 지금까지 읽은 괘들의 괘사를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시작한다.
▪ 제1괘 <중천건>: 자강불식(自强不息) - 천지의 운행이 쉬지 않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라.
▪ 제2괘 <중지곤>: 후덕재물(厚德載物) - 대지가 모든 만물을 싣고 있듯이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포용하라.
▪ 제3괘 <수뢰둔>: 창세경륜(創世經綸) - 우리는 천지가 열리니 만물을 창조하고 세상을 일으켜 천하를 다스리라.
▪ 제4괘 <산수몽>: 과행육덕(果行育德) - 바름을 기르기 위해 과감히 행하고 덕을 길러라.
▪ 제5괘 <수천수>: 음식연락(飮食宴樂) - 밖에 험한 상황이 있으니 안으로 힘을 기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리라.
▪ 제6괘 <천수송>: 작사모시(作事謀始) - 상황이 어긋나 분쟁의 기미가 있을 때 전체의 정세를 잘 판단하고 일을 도모하라.
▪ 제7괘 <지수사>: 용민휵중(容民畜衆) - 전쟁 등 큰 일을 수행하기에 앞서 백성을 용납하고 각자의 역할에 맡는 기량을 습득하도록 훈련하라.
▪ 제8괘 <수지비>: 건국친후(建國親侯): 전쟁이라는 고통을 딛고 천하를 평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올바른 재상을 등용하고 지방 제후를 친히 하라.
▪ 제9괘 <풍천소축>: 의문축덕(懿文畜德) - 문명과 문화를 아름답게 하고 덕을 길러라.
▪ 제10괘 <천택리>: 변정민지(辯定民志) - 밟아 온 이력과 역사를 보아 백성의 뜻을 잘 분별하여 정하라.
▪ 제11괘 <지천태>: 보상천지(輔相天地) - 천기와 지기가 잘 교류하여 천하가 태평하듯이,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여 국가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라.
▪ 제12괘 <천지비>: 검덕피난(儉德辟難) - 태평한 시대가 지나가고 어렵고 비색한 때가 오면, 어지러운 세태에 영합하여 부를 누리지 말고 어려움을 피하라.
▪ 제13괘 <천화동인>: 유족변물(類族辨物) - 하늘 아래에 태양이 만물을 비추듯이, 천하가 문명하여 함께 하면서도 각각 저마다의 성질과 특성을 헤아리고 상황을 잘 판단하라.
▪ 제14괘 <화천대유>: 순천휴명(順天休命) - 태양이 하늘 위로 솟아 천하를 비추듯이 악함을 막고 선함을 드날려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르라.
▪ 제15괘 <지산겸>: 칙물평시(稱物平施) =  후덕한 산이 땅 아래에 있듯이 부유함을 덜어서 가난함에 보태어 사회의 형평을 유지하고, 상황을 잘 판단하여 공평하게 베풀어라.

5
"부다익과 칭물평시"의 의미를 찾다가. 이런 좋은 글을 만났습니다. "天不生無祿之人(천불생무록지인) 地不長無名之草(지부장무명지초)". 이 말은 '하늘은 녹(祿) 없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하늘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내놓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또한 누구에게나 존재의 이유가 다 있다는 것이고, 그 존재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무한한 자연주의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자기 밥그릇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바로 이런 말인 것 같다. 이 '녹(祿)'자는 관리의 녹봉을 의미하는 글자인데 결국 '무록지인이 없다'는 얘기는 '인간이 저마다의 일이 있고 그에 따라는 벌이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 표현에 "부다익과 칭물평시(裒多益寡 稱物平施)"를 덧붙이면, 참으로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덜어 적은 것에 보태고 물건을 저울에 달아 고르게 베푼다. 평시(平施)하는 것이 무척 필요한 세상이다.

'많은 것을 덜어 부족한 것에 보태고 만물을 저울질하여 고르게 베푼다'는 뜻의 "부다익과 칭물평시(裒多益寡 稱物平施)]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이 말이 <<주역>>에 나오는 것인 줄 몰랐다. 춘추전국시대 때 조나라에 공손룡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엇이든 한 가지 재주만 있으면 누구나 식객으로 붙들어 두었다고 한다. 하루는 고함을 잘 지른다는 사람이 찾아와 머물기를 청하자 흔쾌히 맞아들였다. 그 사람은 일 년이 넘도록 하는 일없이 놀고먹었지만 주인은 싫은 기색 하나 없었다. 어느 날 공손룡이 연나라에 다녀오다가 큰 강을 만나 길이 막히게 되었다. 그날 안으로 꼭 건너야 했기에 멀리 강 건너의 뱃사공을 불렀지만 아무리 소리쳐도 사공은 듣지를 못했다. 드디어 때를 만난 그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언덕 위에 올라 천둥 같은 고함을 질러 댔다. 그러자 소리를 들은 뱃사공이 배를 저어와 일행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제 역할과 몫을 타고난다고 한다. 다만 매사에 열심히 최선을 다 하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많은 것을 덜어 적은 것에 보태고 물건을 저울에 달아 고르게 베푸는 것,  즉 '평시(平施)하는 것'이 무척 필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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