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연은 무위하고 다투지 않는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4. 21. 10:54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4월 21일)

몇일 전 우연히 ‘2017 BMW 댈러스 마라톤을 빛낸 최고의 장면’이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https://youtu.be/sbXy2vkJxSk?si=EIAD7aM2kird4Beo


이 영상은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각각 1위와 2위로 달리던 주자가 마라톤을 하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막상막하로 1ㆍ2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성부 1위로 달리고 있던 뉴욕의 정신과 의사인 첸들러 셀프가 결승선을 고작 183m를 남기고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다리가 완전히 풀린 '첸들러 셀프'는 더는 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이 때는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던, 2위 주자에게는 우승을 할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였다. 그런데 2위 주자, 17세의 고교생 아리아나 루터먼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행동을 시작한다. '첸들러 셀프'를 일으켜 부축하고 함께 뛰기 시작한 것이다. 의식을 잃을 것 같은 첸들러 셀프에게 아리아나 루터먼은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결승선이 바로 저기 눈 앞에  있어요" 라고 끊임없이 격려하며 함께 달린다. 그리고 결승선 바로 앞에서 아리아나 루터먼은 '챈들러 셀프'의 등을 밀어 그녀가 우승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쓰러졌던 그녀는 2시간 53분 57초로 이날 여자부 우승을 차지했다. 준우승을 한 루터먼은 댈러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를 일으켜 세우는 것밖에 없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 국민들의 시선은 1등이 아니라 2위로 들어온 17세의 소녀 아리아나 루터먼에게 쏠렸다. 그리고 더 큰 환호와 찬사가 쏟아졌다. 이는 영원히 지구촌에서 함께 살아야만 하는 인류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지, 어떠한 행동이 우리 모두에게 바람직한 행동인지를 보여주고 깨닫게 한다. 진정한 승부는, ‘경쟁’이 아니고 오히려 ‘상생’ 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경기에서 정정당당한 승부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 영상을 보고, 나는 바로 노자를 소환했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道)로 시작하여, 부쟁(不爭)으로 끝난다. 이를 연결 지으면 ‘도는 곧 부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쟁투(爭鬪)가 난무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피폐 되어 가는 험난한 시대를 살면서 내린 결론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도 경쟁이 너무 심하다. "경쟁사회에서 밀려나 거리에서 헤매는 우리 손님들이 또다시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워서는 절대로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1등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력이 아니라 따뜻한 가족, 따뜻한 이웃,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경쟁을 하면 나 외에는 모두가 이겨야 할 적입니다. 나보다 귀한 남을 만나야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보다 귀한 남을 만나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삶이 열립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사랑으로 보듬고 계신 서영남 이종 사촌형의 따뜻한 말이다.

다시 노자 이야기로 돌아온다. 노자는 <<도덕경>> 전편을 통해 '부쟁(不爭)'을 강조하였다. "상선약수(上善若水)"로 시작되는 제8장에서는 "수선리만물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고 했고, 제22장에서는 "부유부쟁(夫唯不爭) 고천하막능여지쟁(故天下莫能與之爭) 다투지 않기 때문에 천하의 어떤 것도 그에 맞서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제68장에서는 "선용인자위지하(善用人者爲之下) 시위부쟁지덕(是謂不爭之德)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스스로 아래에 거하니 이를 일컬어 부쟁지덕이라 한다"고 했고, 제81장에서는 "성인지도(聖人之道) 위이부쟁(爲而不爭) 성인의 도는 일을 도모하지만 다투지 않는다"는 말로 <<도덕경>>을 마무리하고 있다.

'부쟁'에는 노자 사상의 핵심인 "무위자연"과 평화, 공정이 응축되어 있다. 자연은 무위하고 다투지 않는다. 가을은 겨울을 이기려고 다투지 않고 겨울도 봄을 이기기 위해 다투지 않는다. 가을은 때가 되면 묵묵히 자신을 비우고 겨울에게 때를 넘겨주고 겨울 또한 때가 되면 따뜻한 봄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 다투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가을이 있고, 또 다른 겨울이 있게 된다. 각자의 분수와 영역을 지키면서 서로 다투지 않기에 세상은 평화로워진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지면 분쟁(分爭)이 발생하지만 욕심을 비우면 '부쟁(不爭)'하게 되고 세상은 공정해 진다.

노자는 자신의 능력을 베풀고, 진리를 말하고, 깨달음을 전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한다. 그 '성인'은 자신의 가진 것을 자신의 울타리에 쌓아 놓지 않는다. 소유에 대한 집착은 파멸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은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깨달음을 전하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큰 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안다. 주었지만(與), 더 많아지고(多), 베풀었지만(爲) 더 갖게(有) 된다는 노자의 논리 속에는 쌓지 말고 베풀라는 '성인'의 삶이 있다. 통장에 돈을 쌓아 놓아도 내가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와 금의 무게만큼 삶은 더 짓눌리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노자는 '성인'은 쌓아 놓지 않는 사람(聖人不積)이라고 정의한다. 오늘 공유하는 영상 속의 그 고등학생에게서 노자가 말하는 '성인'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나는 노자 <<도덕경>> 제66장에 나오는 "선하(善下)"라 말도 좋아한다. '상대방 밑에 자신을 둘 줄 아는 거'다. "부쟁의 지혜"이다. 나는 이 보다는 "앞서고자 하면 반드시 그 몸을 뒤에 두어야 한다"는 '겸양지덕'과 단순히 "부쟁(不爭, 싸우지 않음)"을 넘어서는 다양한 리더의 철학으로 읽었다. "부쟁"은 성공한 자의 신의 한 수라는 거다. "선하"는 과정이고 그 결과가 부쟁으로 성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강(江)과 바다(海)가 깊고 넒은 물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아래로(下) 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골짜기(百谷)의 물이 그 곳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노자는 '부쟁의 철학'을 주장한다. 상대방과 나의 손실 없이 부드럽게 이기는 방법이 노자가 원하는 승리 방법이다. 이를 박재희 교수는 "노자의 유약 승리법"이라 했다. 씨우지 않고 상대방의 가슴에 못박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초라하지 않으려면 대인관계를 잘 하여야 한다.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은 인생에서 실패한 이유에 대하여 조사를 했다. 그에 따르면,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이 부족했다는 이유는 15%에 불과하였고, 나머지 85%는 잘못된 대인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은 이기주의가 강해진다. 노욕(老慾)이 생긴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폭군 노릇을 하고, 자기도취에 몰입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질 수 있다. 또는 염세적이고 운명론적 생각이 지배하는 페이탈리즘(fatalism, 운명론)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사람의 대인관계는 결국 초라해 진다.

인간관계는 중심축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물질 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 사람은 나이 들수록 초라해 지고, 일 중심이나 '나' 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면, 타인 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따르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결승점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 후반전의 인생은 여생(餘生)이 아니라 후반생(後半生)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오늘 공유하는 시와 같은 "친구"가 아닐까? 나 자신이 먼저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

후반생의 친구는 가까이 있어야 하고, 자주 만나야 하며, 같은 취미면 더 좋다. 이런 가운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린 그를 매우 반갑게 생각하고, 그와 음모를 꾸민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친구의 우정이란 '음모(陰謀, 몰래 꾸미는 일)'라고 말했다. 이 음모의 시작은 서로 공감(共感)하는 것이다. “아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하며, 뭉클한 위로를 받을 때가 공감하는 순간이다. 그래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보다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아픈 이야기 힘든 이야기 털어놓을 수 있는, 허물 없이 서슴없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기를 나누며 위로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친구, 나의 속내를 가식없이 들어내도 괜찮은 편안한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니 내가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

친구/홍수희

오랜 침묵을 건너고도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라는 이름 앞엔
도무지 세월이 흐르지 않아
세월이 부끄러워
제 얼굴을 붉히고 숨어 버리지

나이를 먹고도
제 나이 먹은 줄을 모른다네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
애정이 있으되 묶어 놓을 이유가 없네
사랑하되 질투할 이유도 없네

다만 바라거니
어디에서건 너의 삶에 충실하기를
마음 허전할 때에
벗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신은 우리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셨네
우정의 나뭇가지에 깃든
날갯짓 아름다운 새를 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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