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은 부활절이고, 동시에 일 년의 24절기 중 곡우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4. 20. 13:52

325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4월 20일)

1
오늘은 부활절이고, 동시에 일 년의 24절기 중 곡우이다. 즈와외즈 빠끄(Joyeuses Pâques)! 프랑스어로 '부활을 축하합니다'란 말이다. 영어로는 "해피 이스터(Happy Easter)!"라 한다. "축 부활", "찬미 예수님, 부활을 축하합니다." 오늘이 부활 주일이다.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할렐루야)'는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뜻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 2CELLOS의 <Benedictus>를 여러 번 들었다. <베네딕투스>는 즈카르야의 노래 "Benedictus deus Israel(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에서 나왔다. 이건 루까 복음 1장 68절이다. '찬미'란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나 위대한 것 따위를 기리어 칭송함"인데, 여기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기리는 노래'라고 보아야 한다. 길가의 나무 등을 보라. 하느님은 어느 가지 하나도 소홀히 다루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의 하느님에게 가는 길은 '예수가 하느님이다'라고 끊임없이 고백하고 갖가지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들과 뭇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 분 사랑이 우리에게 완성됩니다.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요한 1서 12-16)

예수의 부활절은 각자 스스로 변화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터닝 포인트를 주는 날이다. 그래 부활은 희망이다. 우리도 과거의 잘못된 낡은 악습과 어두운 절망은 모두 무덤 속에 묻어두고 희망 가득한 새 삶으로 이 봄과 함께 부활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부활의 의미로 사는 것이다. 그 길은 봄처럼, 얼어붙은 땅을 뚫고 어린 생명이 싹을 틔우듯이 노력을 해야 한다.

"두보(杜甫)의 시 절구(絶句) 중에 '올봄도 보아하니 또 지나간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싹이 돋고 꽃이 핀다고 봄이 아닙니다. 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 의미가 있지요. 긴 겨울을 버텨온 사람만이 이 계절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조광호 신부) 여기에 이런 덧붙임을 한 분은 정경숙이라는 분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만났다. "돌아보면 힘든 시간이었지만, 괜찮다. 묵묵히 버티며 잘 살아냈다. 아픈 만큼, 강인하게 언 땅을 딛고 일어날 것이다. 이제 다시 봄이다."(정경숙)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이 지상을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 에서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죽어서 삶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아마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이다.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이 어쩌면 부활이 아닐까? 예수의 제자들은 자신을 구원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남들을 위해서 죽으려고 했고, 삶 전체를 걸고 복음을 알림으로써 남을 구원하려고 했기에 구원 받은 거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특권과 독점의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서 더 살고 싶어한다.  서로 고마운 관계임을 알고 사랑을 실천해야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가 된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며. 예수의 부활절은 우리에게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각자 스스로 변화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터닝 포인트를 주는 날이다. 평화는 "사랑과 정의가 충만한 상태"로 부단히 노력해야 이루어진다. 봄처럼, 얼어붙은 땅을 뚫고 어린 새 생명이 싹을 틔웠듯이, 희망의 싹을 갖고 8월 3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무탈하게 정권이 교체되고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2
"모든 생명의 본질은 사랑, 나누는 것입니다."(조광호 신부) 이 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부활절이 오늘이다. 부활절 날짜 계산법은 춘분(春分)이 지난 다음 만월(滿月, 보름, 음력 15일)이 지나서 오는 첫 번째 주일이다. 즉, 춘분 이후에 보름달이 뜨는 음력 15일이 지난 후 첫 번째 주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부활절 날짜는 매년 달라진다. 2025년 부활절은 오늘 4월 20일이다. 서양에서 가장 큰 축제 중의 하나가 부활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교회의 종들이 로마에서 프랑스 하늘로 날아오다가 초콜릿으로 만든 계란을 떨어뜨렸고, 이것을 아이들이 정원에서 주웠다고 한다. 계란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끝으로 부활절을 라틴어로는 파스카(Pascha), 프랑스어로는 빠크(Paques), 영어로는 이스터(Easter)라 한다.


계란 후라이가 아닌 생명으로 살려면,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면 생명(병아리)으로 부활하지만 남이 깰 때까지 기다리면 계란 후라이 밖에 안 된다.  우린 우리의 관습의 틀을 벗고,  고정 관념을 깨뜨려, 매일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부활의 새 생명과 새 빛이 어려움 중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따뜻이 비치기를 기도한다."

 

3
예수는 당시 절대왕권이 있던 세상에서 "모든 이는 하느님의 자식이다", "하느님은 사랑 이시다'라고 주장하시다, 결국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셨다. 이는 예수의 몸의 부활보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했던 예수님의 정신이 부활한 것이다. 하느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다. 이러한 사랑의 하느님에게 기꺼이 가는 길은 '예수가 하느님 이시다'라고 고백하고, 갖가지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지혜로 사람들과 뭇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다시 기억해야 한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에 서가 아니라, 그를 사랑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발견된다. 죽어서 삶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속에 매력(魅力)이 있다. 아마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소크라테스도 그 속에 넣는다.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이 어쩌면 부활의 의미가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부활을 통해 '고난의 역사'를 '희망의 역사'로 바꾼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 용기와 사랑을 실천하며 위기를 희망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는 '부활의 역사'로 식민지에서 해방을 독재에서 민주주의를, 절대 빈곤에서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특권과 독점의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서 더 살고 싶어한다. 곧 우리는 중요한 선거가 있다. 그 선거를 통해, 그런 사람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고마운 관계임을 알고 사랑을 실천하는 성숙하고 건강한 시화가 된다. 예수의 부활의 의미를 기억하며 선거를 해야 한다.

4
오늘은 또한 24 절기 상, '봄 비가 백곡(백곡)을 윤택하게 한다'는  곡우(穀雨)이다. 그런데 비는 어제 밤 잠깐 동안 충분하게 내렸다. 매우 희망적이다. 올해는 새 대통령과 함께 대 풍년을 맞을 것 같다. 곡우는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으며, 봄의 마지막 절기에 해당한다. 곡우의 ‘곡(穀)’은 곡식을 뜻하며 ‘우(雨)’는 비를 말한다. 두 단어가 합쳐져 ‘봄비가 내려 백곡(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상들은 곡우를 한 해 농사를 책임질 비가 내리는 중요한 시기로 여겼다. 그래서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다양한 속담들이 전해 지고 있다. 곡우 때는 농사 뿐 아니라, 조기 잡이도 활발해진다. 이 시기에 잡은 조기는 조기 중 으뜸으로 '곡우 사리'라고 부른다. 농사를 중시했던 과거에는 벼를 파종 하는 곡우 시기에 죄인도 잡아가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등 중요한 절기였다. 그래 <곡우>라는 시를 오늘 아침 공유한다. 

곡우/정우영

봄비 그치자 아침 이내
포근포근 산자락을 감아 돈다.
느른하고 불안하다.
이런 날이면 천산 누옥(漏屋)의 우리 어머니,
육탈의 가벼운 몸 또 근질근질하실 게다.
천명(天命)도 아랑곳없이 떨쳐 일어나
요정처럼 날래게 묵정 밭을 일구실 게다.
어허, 저기.
천산에서 뜯어 흩뿌리는 모정(母情)이
무지개 되어 훨훨 땅바닥에 날아 내린다.
눈이 부셔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너무 환해서 비릿한 눈물 번진다.


곡우 무렵 내리는 비는 생명을 움트게 한다. 잠자던 곡물은 깨어나고, 나무는 몸에 물을 가득 채워 싹을 틔운다. 농부는 볍씨를 물에 담그고 못자리를 준비한다. 한 해 농사의 시작이다. 봄비 그친 아침, 앞산에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감돌자 시인은 느른하면서도 불안해진다. 살아생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어머니가 “천산 누옥"에서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천상의 “묵정 밭(오래 내버려 두어 거칠어진 밭)을 일구실” 것 같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다. 다음은 이 시를 소개한 김정수시인의 덧붙임이다. "'어허, 저기', 앞산에 무지개 뜨자 불안은 기쁨으로 바뀐다. '천산에서 뜯어 흩뿌리는 모정'이 무지개라는 상상력은 참으로 놀랍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고요히 안에 담고 있던 슬픔이 한결 가벼워진다. 천상의 어머니와 지상의 아들은 나비처럼 '훨훨 땅바닥에 날아 내'” 무지개로 연결돼 있고,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사라진다. 그래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까지 사라진 것은 아닌지라 눈물이 번진다. 아직도 보내지 못한 어머니는 시인의 마음속에 영원히 산다." 내 어머니도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고 계신다.

5
해의 움직임에 끊어짐이 없는 것처럼, 절기 역시 하나의 연결된 흐름으로 읽어야 한다. 입춘부터 봄기운이 서서히 돌기 시작하면 우수의 비에 언 땅이 녹는다. 땅이 녹으니 그 안에서 잠자던 동식물이 깨어나는 게 경칩이고, 그렇게 깨어난 자연의 모든 것들이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 게 춘분, 이후 산천에 꽃이 만발하고 곡식을 기를 수 있을 만큼 봄이 깊어진 때가 청명과 곡우이다. 절기 상 어느 무렵을 지나는 지금'에는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 쌓여 있고 다가올 시간의 단서가 숨어 있는 셈이다. '철 들다'라는 말은 바로 이 절기, 제철을 알고 사는 것을 뜻한다. '철부지'는 지금이 어느 때 인지를 알지 못하니(不知, 부지) 어리석다는 의미이다. 때를 알아야 하는 것은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씨 뿌릴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가 어긋나고,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에겐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처럼, 결국 철이 든다는 것은 지금이 어떤 계절인 지를 알고 제 때 해야 할 일을 하며 산다는 것, 봄이 오면 나무는 꽃을 피우고, 새들은 둥지를 짓고, 농부는 씨앗을 뿌린다. 우리도 역시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도록 태어났다.

다 제철이 있다. 알맞은 시절을 산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촘촘히 느끼며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챙겨야 할 기쁨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 보는 일이다. 비 오는 날과 눈 내리는 날 어디에 있고 싶은 지 생각하며 사는 것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거다. 올해는 김신지 작가가 보여준 연례 행사를 따라가 볼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내년에는 나 만의 "제철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러면 나 만의 일상에 나만의 '기다려지는 일들'이 쌓일 것이다. 작가는 곡우 무렵의 숙제를 세 가지 주었다.
▪ 봄 비를 보며 또는 기다리며 돌미나리전을 해 먹거나 사 먹는다.
▪ 가장 밝은 연두와 분홍으로 빛나는 이맘때의 봄 산을 올라 색깔을 즐긴다.
▪ 3개월 뒤의 나를 위해 제철 행복을 미리 심어 둔다. 

행복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행복을 위해 우리는 시간을 내야 한다. 우선 하루의 일과와 의무 사이에 틈을 내야 한다. 점심 시간에 10분이라도 산책을 하거나 늦은 퇴근 길에 맛있는 요리를 포장하면서 일상에 틈을 주는 거다.

곡우에 즐길 음식은 돌미나리전에 비빔국수를 먹는 거다. 바삭하게 익은 미나리전 가장자리를 떼어 먹기를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기름진 맛 뒤에는 매콤하고 새콤한 비빔국수를 한 입 먹는 거다. 그리고 가능하면 막걸리도 한 잔 하는 거다. 이런 식으로 제철에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사는 재미를 느끼는 것은 이런 작은 움직임이 모여 삶에 생기를 더해준다. 그리고 틈을 내 봄 산을 바라보거나, 오르는 거다. 곡우 무렵의 연두 빛은 너무 애처롭고 맑다. 

 

봄 산은 꿈틀거린다. 온 거리와 공원에 짙게 붉은 철쭉 꽃이 융단처럼 펼쳐지지만, 지금은 숲으로 가야 한다. 신록(新綠)이 절정이기 때문이다. 연둣빛과 연 초록 빛 신록의 그러데이션이 상록수의 진 녹색 잎과 검붉은 나무껍질에 대비된 모습은 숲을 무대로 봄볕이 연출하는 벅찬 광경(光景)이다. 신갈 나무 숲은 이미 물이 올라 연둣빛 새잎을 펼쳤고, 층층나무와 팥배나무는 연 초록 잎을 밀어 올린 뒤 꽃 몽우리를 빚고 있다. 아직 귀룽 나무나 산벚 같은 벚나무류와 꽃 사과, 아그배, 야광나무 같은 사과나무류는 흰 꽃으로 숲 구석구석을 환히 밝히지만, 뒷배경으로는 이미 신록을 준비해 두었다. 아까시아 나무에 새잎이 솟는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거리의 나무들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채워지며, 수채화가 유화가 될 것이다. 숲의 아래 쪽은 진 녹색, 중간은 초록, 위 쪽은 아직 연두로 짙고 얕은 '녹색의 향연'은 좀 더 계속될 것이다. 봄이 꼭대기를 쫓아가며 농담(濃淡, 진함과 묽음)의 붓질을 해댈 것이다. 드문드문 섞인 솔숲이 암록(暗綠, 어두운 초록색)일만큼 신록이 눈부실 것이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색이 변화하며 형형색색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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