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4. 19. 09:53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4월 19일)

어제 못한 신화 이야기를 한다. 나르키소스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꽃미남’이었다. 강의 신 케피소스의 아들로서 빼어난 외모를 갖고 태어났다. 그런데 태어나서 얼마 후에 눈먼 예언가 테이레시아스가 지나가다가 나르키소스의 얼굴을 바라보고 이렇게 예언하였다. “이 아이는 자기 얼굴을 보지 않아야 오래 살겠다.” 즉 자기가 자신의 얼굴을 보는 그 날이 죽는 날이 된다는 것이다.

테이레시아스가 누구인가? 계룡산이 아니라, 올림포스 산의 ‘도사’이다. 테이레시아스가 어느 날 숲 길을 걷다가 서로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말하자면 사랑에 빠져 있는 한 쌍의 뱀을 본다. 물론이 장님이 되기 전이다. 그런데 테이레시아스는 이걸 보고는 그냥 지나가지 않고 지팡이로 둘을 떼놓았다. 그 순간 테이레시아스는 여성이 되어버린다. 그는 여성인 채로 7년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숲길을 걷다가 서로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한 쌍의 뱀을 또 본다. 여성인 테이레시아스는 그냥 지나가지 않고 또 지팡이로 둘을 갈라놓는다. 그러자 테이레시아스는 남성으로 되돌아온다. 양성을 다 경험한다.

최고의 '도사'인 테이레시아스는 신화에서 육안을 잃은 장님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는 마음의 눈, 심안을 얻는다. 그가 눈이 멀게 되고, 이런 심안(心眼), '마음의 눈'을 얻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올림포스 산에서 어느 날 제우스는, 사랑에 빠지면 남자가 더 좋아한다 느니 여자가 더 좋아한다 느니 하는 문제를 놓고 아내 헤라와 가벼운 입씨름을 한다. “사랑으로 득을 보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일거요. 여자 쪽에서 보는 재미가 나을 테니까.” 제우스의 주장에, 헤라는 여자가 좋아하는 게 아니고 남자가 더 좋아한다고 우겼다. 제우스는 여자가 되어 본 적이 없고, 헤라는 남자가 되어 본 적 없으니 당연하다. 그 때  “그럼 테이레시아스에게 물어보자”라고 하였다. 그 때 테이레시아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남자는 사랑하되 그 마음으로 기다렸던 기쁨의 열 몫 중 하나밖에는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이미 마음의 기쁨이 되니 열 몫을 다 누리는 것이지요.” 즉 사랑에 빠지면, 여자가 아홉 배쯤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왜 그런지 솔직히 잘 모른다. 그러자 헤라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이 테이레시아스를 장님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제우스가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신들의 세계에서는 한 신이 매긴 죗값을 다른 신이 벗길 수 는 없다. 그래서 제우스는, 보는 능력을 빼앗긴 테이레시아스에게 대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주었다. 다시 말해 육안(肉眼)을 잃고 장님이 되는 대신에 심안(마음의 눈)을 얻게 된 것이다. 재미나지 않습니까? 눈을 감음으로써, 즉 현상을 보고 있지 않아야 직관이 생긴다는 뜻이다. 즉 눈은 보이지 않아도 직관만 있으면 사물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인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여성적인 측면을 알 수 있다면, 여성들은 자신의 남성적인 측면을 알 수 있다면, 우리 자신에 관한 한, 신들이 아는 수준, 혹은 신들이 말하는 수준 이상의 수준으로 알기까지 이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결혼을 통해서만 사람들은 그런 수준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혼이라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이성(異性)의 측면과의 만남이다.”(<<신화의 힘>>, p 368). 테이레시아스가 인간의 미래를 훤히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은 양성인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테이레시아스가 육안을 잃고 장님이 되는 대신 심안, 마음의 눈을 얻어 앞일을 헤아리게 된 사연의 또 다른 버전이 있다. 테이레시아스가 숲 속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아테나 여신의 알몸을 훔쳐보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신들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테이레시아스의 눈을 쓰다듬었는데, 그 때부터 테이레시아스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신은 장님이 된 테이레시아스가 측은했던지 다른 한 손으로 그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테이레시아스는 육신의 눈을 잃는 대신 마음의 눈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아테나 여신에게 드린 감사의 기도는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감사해야 할 내용이 얼마나 많은가를 느끼게 한다. “영원한 파르테노스(성 처녀)시여. 한 손으로는 치시되, 한 손으로는 거두시니 감사합니다. 겉 보는 것을 거두어가시고 속 헤아리는 권능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육신의 눈동자보다 더 큰, 그리고 더 깊은 눈동자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잃고도 얻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테이레시아스는 ‘징조를 미리 읽는 자’, ‘선견자’, 즉 ‘미리 아는 자’라는 뜻이다. 그가 한 예언들은 신화 속에서 세 번 등장한다. 나르키소스의 손을 한 번 만져보고는, “네가 너를 아는 날이 네가 죽는 날”이라고 예언 했을 뿐만 아니라,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와 그의 아들 오이디푸스의 앞일을 예언했던 자이다. 그리고 뒷날 아르고 원정대가 테바이에서 만나게 되는 예언자, 저승에서 오디세우스에게 귀향길을 일러준 예언자이다.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염려한 나르키소스의 부모는 집 안의 거울을 모두 치워버리는 한편, 물의 요정들에게 명하여 나르키소스가 접근하면 수면을 흔들어버리게 했다. 그래서 그는 청년이 될 때까지 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랐다. 나르키소스의 얼굴은 갈수록 아름다움을 더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숲의 요정 중에 에코라는 요정이 나르키소스을 사랑하게 된다.

에코는 숲의 요정이었다. 그녀는 달과 숲 그리고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따르는 예쁜 요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단한 수다쟁이였다. 그녀는 일단 한번 입을 열었다 하면 상대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해 상대방의 혼을 빼놓기 일쑤였다. 이렇게 수다를 떨다가, 헤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어느 날, 제우스가 요정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추적하던 헤라가 길에서 에코를 만난다. 헤라는 그녀에게 제우스의 행방을 물으려 했다. 그런데 에코는 자신의 특기인 수다를 떨었다. 그런 바람에 헤라는 제우스를 놓치고 말았다. 화가 난 헤라는 에코에게 저주를 내렸다. “이 수다꾼아. 너 때문에 제우스가 바람 피우는 현장을 놓쳐버렸다. 너의 잘난 혀에 저주를 내린다. 이제부터 너는 남이 말을 꺼내기 전에 절대 혀를 놀릴 수 없고, 말대답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도 누가 한 말의 마지막 한마디만 입 밖으로 낼 수 있다.” 가끔 수다쟁이를 만나면 에코 요정이 생각난다.

헤라의 저주로 상대가 말을 걸어오기 전에는 먼저 입을 열 수 없게 된 에코가 어느 날 나르키소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먼저 말을 할 수 없었던 에코는 늘 나르키소스의 곁을 맴돌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르키소스가 친구를 잃어버렸는지 큰 소리로 “가까이에 누구 없나?”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에코가 말을 받아 “없나?”라고 대꾸했다. 그 여자 소리에 나르키소스는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나르키소스가 다시 “있거든 이리로 와!” 하니까, 에코도 “와!”라고 맞받았다. 그러자 나르키소스는 더 큰 소리로, “다들 나와 함께 가자!”라고 외쳤다. 이 말에 에코는 “함께 가자!”라고 외쳤다. 이 말에 에코는 “함께 가자!”라고 화답하며 나르키소스에게 달려가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나르키소스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놓아라, 너 같은 것에게 안기 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라고 소리쳤다. 에코는 “죽어버리겠다!”라고 외치며 물러났다. 나르키소스가 매몰차게 발길을 돌려 사라지자 에코는 부끄러움에 낯을 붉히며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때부터 에코는 눈에 띄지 않는 동굴이나 계곡에서만 살았으며, 실연의 아픔 때문에 날로 여위어 가다가 마침내 몸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에코가 ‘메아리(울려 퍼져 가던 소리가 산이나 절벽 같은 데 부딪쳐 되돌려오는 소리)’가 된 것이다.

에코 이외 다른 요정들이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쌀쌀맞게 뿌리치곤 했다. 사랑에 응답 받지 못한 요정들이 기도를 올렸다. “우리들이 그를 사랑했듯이, 그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하소서. 하시 되 이 사랑을 이룰 수 없게 하소서. 이로써 사랑의 아픔을 알게 하소서.” 기도가 통했는지, 어느 더운 여름날 나르키소스는 홀로 사냥에 나섰다가 목이 말라 깊은 산 속의 맑은 샘물을 찾아 물을 마시려고 몸을 숙였다. 그런데 수면 위에서 웬 아름다운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발견하고 넋을 잃었다. 자신의 얼굴을 모르고 있던 나르키소스는 그것이 샘의 요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키스하려고 입술을 수면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요정은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당황한 나르키소스가 황급히 얼굴을 들자 어느 새 요정은 다시 나타나 그의 가슴을 애타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데, 만질 수 없다. 다가가면 사라지고, 뒤로 물러서면 나타난다. 나르키소스는 샘가를 떠날 수 없었다. 그는 먹고 마시는 것을 잊은 채 수면에 비친 요정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짝사랑하다 몸이 사라져간 에코와 같이 상사병의 아픔으로 날로 야위어 갔다. 나르키소스는 마침내 샘 가에서 흔적도 없이 말라 죽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샘의 요정을 만져보려고 하다가 샘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물위에 자신에게 반해 그를 잡으려한다. 그러나 손끝이 닿으면 물빛은 흐려지고 대상은 사라졌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던 그의 가슴이 슬픔으로 가득 차 올랐다. 물위로 흩어지는 눈물방울은 물속의 연인을 도망가게 할 뿐이었다. 빤히 그를 바라보면서도 잡으려면 도망치는 연인 때문에 나르키소스는 마음이 황폐해지고 메말라 물속에 빠져 죽고 만다. 얼마 후 그 자리에 가련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그건 바로 그의 이름을 딴 꽃 수선화(水仙花, narcissus)였다.

수선화에게/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 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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