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 핵심은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책임감이 모자란 사람들이 너무나 중요한 자리를 뻔뻔하게 꿰차고 있다는 점이다.

324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4월 17일)
1
복사꽃은 예로부터 남녀의 연심(戀心)을 나타낸다. 사주팔자에 도화살(桃花殺)이라는 용어가 있다. 색기(色氣)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좋게 말하면 이성으로부터 인기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 한 편 더 읽는다. 어제 아침 복사꽃들을 여기 저기서 만났지만, 잘 건너왔다.
복사꽃/송찬호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가 없다 했으니
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 가라 했다
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
나무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 막았다
바람이 한 번 불자
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후드득,
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
나는 저 앞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사정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
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려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
혼자 사는 삶은 외롭고 쓸쓸하다. 부끄러움까지 드러낼 것 같은 햇빛 아래서나 화려한 복사꽃 그늘에 서면 고독의 향기는 더 짙어 진다. “한 사나흘 푹” 자고 나도 비참한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꿈결에 무릉도원이라도 다녀오면 현실은 ‘한바탕 꿈’ 같다. 다른 세상을 사는 듯 멍하지만, 한때 “고단한 한 생을 만나” 서로에 취해 살기도 했다. 과거는 ‘헛 것’이며, 그물에 걸린 새와 같다.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고” 잊은 것 같지만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야 한다. 이 시를 소개한 김정수 시인의 덧붙임이 이 시를 이해하게 한다. 어제 아침 산책 길에서 이런 기분이었다. 도화 꽃은 그런 꽃이다.
복사꽃 아래 서면/박노식
복사꽃 아래 서면
문득 내가 비참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져
한 사나흘 푹 잠들고
싶어질 때가 있다
몽중에 누굴 호명할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고단한 한 생을
만나
서로 꽃잎 먹여주며
몹시 취해서
또
한 사나흘 푹 잠들고 나면,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고
무언가 잊어버린 것
같은
그래서 아슴한 저녁나절
밖으로 나올 때는
딴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처럼
멍한 나를 발견했으면
한다
복사꽃
아래 새들 머문 적 없으니,
언제쯤 헛것에 끌려가지
않고
언제쯤 그물에 떨어지지
않고
아름다운
이 색계(色界),
무사히 걸어 나갈 수
있을까
시인은 왜 “복사꽃 아래 서면” 초라해 지기보다 비참해 진다고 했을까. 참혹이나 참담, 처절과 비슷한 말인 비참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몹시 끔찍하다는 뜻이다. 진저리칠 만큼 무섭고, 놀랍고 싫은 감정이다. 어쩌면 시인은 복사꽃에서 호색과 음란의 도화살(桃花煞)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남녀 불문하고 도화살로, “아름다운 이 색계(色界)”에 빠져들면 패가망신을 피하기 어렵다. 한데 시방 곁엔 “누굴 호명할 일”도, “서로 꽃잎 먹여주며 몹시 취"할 사람도 없다.
2.
은퇴하고 보니, 자유인의 명함처럼 좋은 건 없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사는 것과 어른으로 사는 차이 쯤일까? 유명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순간의 실수로 세상을 하직하는 모습을 본다. 이 아름다운 인생의 풍경 길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커피 냄새, 지천에서 피어 대는 4월의 꽃 향기를 다시는 맡지 못하는 거다. 오래전 46세의 나이로 투신자살한 80~90년대 전설적인 홍콩 배우 장국영의 유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우 괴롭다. 이에 자살한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해도 정작 당사자가 불행하면 소용없는 일이다.
3
오늘 만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좋은 말 5가지를 공유한다.
▪ "'너' 라서 다른 거고, 달라서 특별한 거야."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사람처럼 되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4분의 3이나 잃는다." (쇼펜하우어)
▪ '모른다'는 참 아름다운 말이다.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은 배울 기회도 많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는 현재 가진 것의 '합(合)'이 아니라, 아직 갖지 않았지만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의 '합'으로 결정된다.
▪ 누가 나를 오해한다면 당당히 맞설 줄 알아야 한다.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는 없다.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리하지 않고 차분한 자세로 주어진 할 일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겁먹지 말고 도전하면 결국 해낼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는 우리의 천재 성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
▪ 감사하는 만큼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다. 감사하는 마음이 최고의 지혜이다. 은혜를 되 갚는 것보다 더 귀한 의무는 없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꾸면 하루가 아름다워진다.
4
기억은 언제나 불안정적이다. 재생과 녹화 버튼을 동시에 누르는 것과 같다. 회상을 하면서 신경망의 연결은 느슨해 지고, 동시에 들어오는 정보들로 재연결을 하면서 조금씩 과거 기억은 바뀌어 간다. 기억과 기억은 다르다. 기록이란 최대한 기억을 잘 보존하고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록이란 것은 잊어버리고 틀릴지 모른다는 불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 이면에는, 기록해 놓은 것은 정확하다는 가정이 있다. 하지만 경험한 전체 사건 중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일부 뿐이다. 여행 사진을 찍으면 그 장면과 관련한 정보 중심으로 기억에 남고 그 외의 일들은 상대적으로 기억에 남지 못하고 사라진다. 찍은 사진이 다르면 같이 여행을 가도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덕분에 우리는 기록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기록을 제대로 남겨야만 한다는 두 번째 불안이 생기는 것이다. 기록을 잘 관리하면 더 이상 무방비 상태에서 허둥지둥 기억의 옷장을 뒤적이지 않아도 되니 안심이 된다. 마치 법과 규칙을 만드는 일이 매번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을 수 있게 하고, 함께 살아가며 이래도 되는지 뭘 하면 되고 안 되는지 고민하고 불안 해하지 않게 해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기록과 규칙에 집착하게 되면 두 번째 불안이 더 강해지고 막상 이걸 왜 시작했는지는 잊어버리고 만다. 추상적이고 실체가 없는 불안한 마음만 가득할 수도 있다. 스마트 워치나 핸드폰 사진에 너무 의존하면, 자신 하는 일의 본질을 벗어날 수 있다. 기분 좋게 하려는 일은 기록에 너무 목 매달 필요 없다. 예를 들어, 건강을 유지하고 기분이 좋아지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데, 최근에는 기록에 매달리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5
여론조사 믿으면 안된다. 후보자-언론사-조사업체가 공생하며 만들어 낸 기획 여론조사가 실재한다. 후보자 보좌관으로 가장해 선거여론조사기관에 문의하면, 맞춤형 비공표 조사는 물론 공표용 조사도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후보자가 큰돈이 없어도 된다. 1건에 200만 원 정도 들여 자동전화응답(ARS) 시스템으로 비공표 조사를 몇 차례 돌리다가, 순위 안에 드는 결과가 예상될 때 공표 조사를 한다. 지지율이 올라가면 '바람'이 불기 시작할 테고, '대세 후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로 흙탕물을 만드는 일도 어렵지 않다. 조작 의도를 품은 오염된 여론조사로 튀는 결과를 계속 만들어 내면, 이에 편승하는 언론과 여론이 생겨나고, 여론조사가 여론을 이끄는 '밴드왜건 효과'가 발생한다.
여론조사 수치를 기사 제목으로 뽑지 않는 영국이 본다면 웃을 일이지만, 한국에선 이런 편법이 가능하다. 특히 전국 선거인단이 있는 대선보다 표본이 적은 지방선거, 교육감선거, 재보궐선거 그리고 정당의 후보 경선에서 위력을 더 발휘한다. 예를 들어,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는 이런 생태계를 잘 알고 악용한 인물이다. 명씨는 응답자 표본을 임의로 만들어 내거나 특정 연령대 조사 결과에 가중치를 멋대로 부여해 '후보 맞춤형 여론조사'를 만들어 정당 공천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여론조사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오염된 여론조사를 만드는 원가를 30만~40만 원으로 추정했다. ARS 기계가 전화를 돌려 인건비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안심번호를 구입하고 전화 회선 사용 요금만 계산한 수치다. 단돈 수십만 원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이는 여론조사를 찍어낼 수 있게 만든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한국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유일하게 여론조사로 정당 후보자를 정하며 기관의 영향력을 키워줬다. 과학적으로 불완전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로 정치할 자격을 부여하니, 명씨처럼 여론조사를 무기로 내세운 브로커에게 매달리는 우매한 정치인이 줄줄이 나온다. 인기투표로 변질된 여론조사 공천이 정치의 품격을 갉아먹은 것도 오래다. 싸고 쉽게 정당 민주주의를 외주 화한 비용은 언젠가 값을 제대로 치러야 한다. 정치 분열과 갈등은 이미 사법, 사회 시스템을 불신으로 뒤덮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조기 대선 후,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많다. 사회 대개혁이 필요하다. 내 지론은 정치는 아무나 하면 안 된다는 거다.
6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이 평소 생각인데,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박성민의 정치 컨설턴트의 주장에 눈이 번쩍 트였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실제로 정치는 아무나 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이 정치는 아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문제이다. 정치는 우리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친다. 정치는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해준다. 신체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돈도 걷어가며, 군대로 데려가기도 한다. 정치는 우리들의 '정신 세계'도 지배한다. 정치에 아무리 냉소적일지라도 정치는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단 1cm도 떨어지지 않는다.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에 대한 철학, 의지, 전문성이 없으면 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영역이다. 우리 정치의 불행은 정치가 갖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그 엄청난 힘을 아마추어들이 다룬다는 사실이다. 선거에 나가 당선되었다고 저절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너무나 위험하고 중요한 일을 다루기 때문에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나 정치를 해도 된다고 믿는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를 혐오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을 '쇼핑'한다는 점이다. 정치 경험이 전에 전혀 없는 어떤 명망가가 나라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메시아주의'는 아주 위험한 정치 포퓰리즘이다. 대니얼 부어스턴의 <<이미지와 환상>>에서 통찰 한대로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 진다'고 믿는 시대이다. "예능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이다. 오늘날 정치인은 차고 넘치지만, 진정한 정치가는 너무나 귀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 핵심은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책임감이 모자란 사람들이 너무나 중요한 자리를 뻔뻔하게 꿰차고 있다는 점이다. "이끌지도 못하면서 떠나지도 않는다(Lead or Leave)." '사자 한 마리가 이끄는 양 떼가 양 한 마리가 이끄는 사자 떼를 이긴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양 한 마리가 양 떼를 이끄는 꼴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의 핵심은 대통령의 권력이 약화되고 국회와 사법부의 힘은 커진 '과두'의 상황에서 누구도 결정할 힘은 갖지 못한 채, 상대 정당에 무조건 반대할 정도의 힘만 갖고 있는 '비토크라시(Vetocracy, 거부권 정치) 늪이었다. 우리 정치는 머리카락을 잘린 삼손처럼 결정할 힘을 잃었다. 이전 조기 대선을 치른 후,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 비전을 다시 만들고, 주류의식을 갖고 이 사회를 이끌며 결정하는 힘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정치 전문가가 다시 나와야 한다. 누구나 해도 되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정치이다.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본주의에서 부의 배분이란 정치가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이런 정치가를 꿈꾼다.
-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합목적적 유연함을 지닌 정치인이 필요하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치에 맞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학자, 종교인, 법조인, 언론인, 시민 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 정치가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산주의 소련과 '연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 정치를 '업'으로 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정치는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저 무엇이 되고 싶을 뿐인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직'을 쫓을 뿐 '업'을 지키지 않는 아마추어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
-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권력에 맞서는 것은 작은 용기만 있어도 되지만 지지자들에게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7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 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는 인간을 향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제도다. 이 신뢰는 모든 정치적 견해를 향한 것이다. 힘을 써서 타인을 내 쪽으로 끌어들이는 제도가 아니라 그 힘을 분배해 타인이 스스로 결정하게 만든 제도다. 그렇게 내려진 각각의 진실을 존중하며 나아가기로 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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