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와외즈 빠끄(Joyeuses Pâques)!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4월 17일)
"모든 생명의 본질은 사랑, 나누는 것입니다."(조광호 신부) 이 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부활절이 오늘이다. 부활절 날짜 계산법은 춘분(春分)이 지난 다음 만월(滿月, 보름, 음력 15일)이 지나서 오는 첫 번째 주일이다. 즉, 춘분 이후에 보름달이 뜨는 음력 15일이 지난 후 첫 번째 주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부활절 날짜는 매년 달라진다. 2022년 부활절은 오늘 4얼 17일다. 서양에서 가장 큰 축제 중의 하나가 부활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교회의 종들이 로마에서 프랑스 하늘로 날아오다가 초콜릿으로 만든 계란을 떨어뜨렸고, 이것을 아이들이 정원에서 주웠다고 한다. 계란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즈와외즈 빠끄(Joyeuses Pâques)! 프랑스어로 부활을 축하합니다!란 말이다. 영어로는 해피 이스터(Happy Easter)!"라 한다. "축 부활", "찬미 예수님, 부활을 축하합니다." 오늘이 부활 주일이다.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뜻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 2CELLOS의 <Benedictus>를 여러 번 들었다. <베네딕투스>는 즈카르야의 노래 "Benedictus deus Israel(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에서 나왔다. 이건 루까 복음 1장 68절이다. '찬미'란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나 위대한 것 따위를 기리어 칭송함"인데, 여기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기리는 노래'라고 보아야 한다. 길가의 은행나무를 보라. 하느님은 어느 가지 하나도 소홀히 다루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의 하느님에게 가는 길은 '예수가 하느님이다'라고 끊임없이 고백하고 갖가지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사람들과 뭇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 분 사랑이 우리에게 완성됩니다.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요한 1서 12-16)
예수의 부활절은 각자 스스로 변화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터닝 포인트를 주는 날이다. 그래 부활은 희망이다. 우리도 과거의 잘못된 낡은 악습과 어두운 절망은 모두 무덤 속에 묻어두고 희망 가득한 새 삶으로 이 봄과 함께 부활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부활의 의미로 사는 것이다. 그 길은 봄처럼, 얼어붙은 땅을 뚫고 어린 생명이 싹을 틔우듯이 노력을 해야 한다.
"두보(杜甫)의 시 절구(絶句) 중에 '올봄도 보아하니 또 지나간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싹이 돋고 꽃이 핀다고 봄이 아닙니다. 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 의미가 있지요. 긴 겨울을 버텨온 사람만이 이 계절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조광호 신부) 여기에 이런 덧붙임을 한 분은 정경숙이라는 분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만났다. "돌아보면 힘든 시간이었지만, 괜찮다. 묵묵히 버티며 잘 살아냈다. 아픈 만큼, 강인하게 언 땅을 딛고 일어날 것이다. 이제 다시 봄이다."(정경숙) 예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이 지상을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 에서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죽어서 삶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아마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이다.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이 어쩌면 부활이 아닐까? 예수의 제자들은 자신을 구원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남들을 위해서 죽으려고 했고, 삶 전체를 걸고 복음을 알림으로써 남을 구원하려고 했기에 구원받은 거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특권과 독점의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서 더 살고 싶어한다. 서로 고마운 관계임을 알고 사랑을 실천해야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가 된다. 예수의 부활을 기억하며. 예수의 부활절은 우리에게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각자 스스로 변화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터닝 포인트를 주는 날이다. 평화는 "사랑과 정의가 충만한 상태"로 부단히 노력해야 이루어진다. 봄처럼, 얼어붙은 땅을 뚫고 어린 새 생명이 싹을 틔웠듯이, 희망의 싹을 갖고 새로 뽑힌 대통령과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부활은 희망이다. 우리도 과거의 잘못된 낡은 악습과 어두운 절망은 모두 무덤 속에 묻어두고 희망 가득한 새 삶으로 이 봄과 함께 부활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부활의 의미로 사는 것이다. 부활 주일 아침에 나는 "낫싱 스페셜(Nothing Special)!"라는 말을 소환했다. 프랑스어로는 "빠 드 스페이시알(Pas de special)!"이다. 류시화 시인은 이것을 한국 말로 이렇게 옮겼다. "큰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인 데도 우리의 마음은 그 하나를 전체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살면서 겪는 문제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괴물이 되어 더 중요한 것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걸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고, 문제와 화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문제는 작아지고 우리는 커진다. 실제로 우리 자신은 문제보다 더 큰 존재이다. "참 좋은 당신"들, 봄이 한 번에 방문해, 나는 너무 분주하고 기쁘다.
참 좋은 당신/김용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 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나는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무엇이 살면서 중요한가"라고 물으신 예수님의 첫 번째 물음을 좋아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마태 6장 25절) 이 질문은 수사학(修辭學)적 질문이다. 이것은 즉답이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질문은 오히려 질문을 받은 사람을 고민에 빠뜨려 자신만의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신앙은 분명한 해답이 아니라,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던 세계관과 신앙관의 끊임없는 파괴이며, 새로운 세계로의 과감한 여행이고 동시에 그 과정에 대한 한없는 의심이다.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크게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이다.
1. 예수는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고,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한 적도 없다.
2. 그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가 제자들에게 보여준 행동, 가난한 자들, 즉 고아, 과부 그리고 이주자들을 보살피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헐벗은 자들에게 옷을 주라고 주문했다.
3. 또한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늘의 새와 들판의 백합처럼 자연과 더불어 살며, 생명의 신비를 마련하고,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아버지-어머니 같은 존재인 신을 의지하라고 요구했다.
4. 이렇게 살려고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 피스티스, 즉 믿음이다. 이 믿음에 대한 기쁜 소식(복음)을 우리는 사회적으로 저명하거나 특권층 뿐만 아니라 창녀들과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전해야 하고, 그 믿음은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이웃을, 더 나아가 내 원수까지도 아낌 없이 사랑하는 삶의 태도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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