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통령은 나인 가’라는 '난가병'이 유행하고 있다.

324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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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시간이 흐르면 거리의 나무들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채워지며, 수채화가 유화가 될 것이다. 숲의 아래 쪽은 진녹색, 중간은 초록, 위 쪽은 아직 연두로 짙고 얕은 '녹색의 향연'은 좀 더 계속될 것이다. 봄이 꼭대기를 쫓아가며 농담(濃淡, 진함과 묽음)의 붓질을 해댈 것이다. 드문드문 섞인 솔숲이 암록(暗綠, 어두운 초록색)일만큼 신록이 눈부실 것이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색이 변화하며 형형색색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연두의 저녁/박완호
연두의 말이 들리는 저녁이다 간밤 비 맞은 연두의 이마가 초록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한 연두가 연두를 낳는, 한 연두가 또 한 연두를 부르는 시간이다 너를 떠올리면 널 닮은 연두가 살랑대는, 널 부르면 네 목소리 닮은 연두가 술렁이는, 달아오른 햇살들을 피해 다니는 동안 너를 떠올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지점에 닿을 때까지 네 이름을 불렀다 지금은, 나를 부르는 네 목소리가 들려올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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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난치병 중 하나가 ‘난가병’(나인가? 병)”이다. 객관적 자기 평가를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병 한다. 보통 사람들은 ‘난 아니야’ ‘난 그런 그릇이 못 돼’ 하면서 주제 파악을 잘하는 걸로 '난가병'을 예방한다. 그런데 최근 조기 대선 국면의 정치권에 ‘난가병’이 창궐한다. 조기 대선이 다가오자 ‘다음 대통령은 나인 가’라는 '난가병'이 유행하고 있다. 발병 원인은 제 각각이다.
▪ 아스팔트 극우의 환호성에 자극받아서,
▪ 큰 선거판을 체질적으로 지나칠 수 없어서,
▪ 절대 강자가 없으니 가능성이 있을 듯해서,
▪ 여의도 밖에 있어도 ‘당신 밖에 없다'는 회유에 휘둘리면 덜컥 '난가병'에 걸릴 수 있다.
'귀 울림(이명)'이라는 병이 있다. 그 병에 걸리면, 자기 귀에는 들리지만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코골이(비한)'을 앓는 이도 있다. 그 병에 걸리면, 본인은 못 듣지만 다른 사람은 듣는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공작관문고 자서>>에서 '이명'을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비한'을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 비유했다. 연암은 글쓰기 태도를 논하며 '이명과 비한'을 거론했지만, 이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명'은 ‘나 잘난병(病)’에, 비한은 ‘나몰라 병’에 비유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이명과 비한'은 일상에서 큰 문제가 아니고 치료도 가능하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나잘난 병’ ‘나몰라 병’은 여간해선 고치기 힘들다.
보통 사람들도 자신에게 유리한 건 부풀리고, 불리한 건 축소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정치인은 대체로 그런 경향성이 더 강하다. 자신의 한계에 무지하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정치인은 '난가병' 고위험군이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대통령이 되겠다면 그 무게를 감당할 능력과 자격을 갖췄는지, 주권자인 국민들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국민들 눈에는 누가 '난가병'을 앓고 있는지 훤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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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생각 나는 것이 "다모클레스의 칼" 이야기 이다. 고대 그리스의 한 왕궁에 다모클레스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자였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왕 디오니시우스 2세의 자리를 탐내며 부러워 했다. 그러자 왕은 권력의 단맛만 알고 책임을 모르는 다모클레스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왕은 자신의 신하에게 권력의 참 맛을 알려주기 위해, 왕좌 위에 말꼬리 털 한 가닥으로 커다란 칼을 머리 위에 묶어 놓았다. 왕은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정적들의 암살을 걱정하며 하루도 편하게 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왕좌에 앉게 된 다모클레스도 한 순간도 편하게 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권력을, 아니 돈이나 명예를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누린다는 것은, 그 많은 걱정, 근심 그리고 위험을 안고 산다는 것이다.

권력자가 잃어버리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라고 본다. 자기 자신으로 있을 자유, 평범하게 살아갈 자유말이다. 물론 권력은 행사하는 사람에게 굉장한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사회적 개혁을 실현하고, 자신의 열정과 부를 창조하며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높은 지위에 오르면, 부여 받은 권력과 실제 행동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들고 어려운 지혜를 확보해야 한다. 내 권력의 자리가 내 존재는 아니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면, 우리는 그 자리가 주는 권력도 함께 끝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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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 이야기를 해본다. 한 연구 실험에 따르면, 권력을 부여 받은 사람은 점점 예의가 없어지고, 점점 더 위험한 일을 감행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관점을 강요한다. 소위 '갑 질'을 한다. 또 다른 연구 실험에 따르면, 이 '갑 질'은 성격보다도 권력을 주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그런 행동을 한다. '하찮은 권력'에도 인간은 도취되고 흥분하고 이성을 잃을 수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했다는, "한 사람의 인격을 시험해 보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라"는 말은 명언이다. 거대 권력이든, 미시 권력이든, 권력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은 강한 심리적 영향을 유발해서 결국에는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망가뜨릴 수 있다. 지금부터는 권력을 부주의하게 행사하고, 취급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세 가지 중대한 결과를 공유한다.
▪ 권력 중독 현상
전 프랑스 대통령 프랑스와 미테랑은 "권력을 한 번 맛본 사람은 누구나 빠져드는 마약"이라고 말했다. 권력은 더 많은 권력을 원한다. 중독성이 있다. 중독이란 뭔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바라게 되고, 특히 아랫사람들을 괴롭히는 '갑 질' 경향이 커진다고 한다. 권력 중독은 권력을 더 소유하고 싶은 욕구와 잃고 싶지 않는 강박에서 비롯된다. 중독의 주요 위험 중 하나는 권력에 사로잡혀 자기 통제력을 잃고 마는 것이다. 예컨대, 권력이 우리의 평온함을 앗아간다. 잘못하면, 권력을 누리는 게 우리가 아니라, 권력이 우리를 누린다. 권력을 얻으면, 그만큼 자신을 위한 여유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권력자들은 힘들게 손에 넣은 것,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의 토대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항상 품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은 균형 잡힌 인생으로 향하는 길에서 중대한 장애물이 된다. 권력은 신뢰해주는 사람의 지지가 없으면 순식간에 증발해버리고, 권력자는 다른 이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 예컨대, 좋은 자리가 적고 심한 경쟁 환경에서는 반대 세력에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몹시 크고, 그래 권력자는 타인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 그리고 권력자는 권력을 잃었거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더욱 독재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 권력을 가진 자의 고독
외로운 정상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성공한 인생, 즉 직업적 지위가 부여한 특권, 높은 보수, 폐쇄적이고 영향력 있는 모임을 통한 인맥-을 살지만, 꼭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고독은 정상에서 내려오면 더욱 더 두드러진다. 오는 전화가 없어진다. 권력을 쓸 수 없게 되면, 대부분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된다. 권력이 끝난 뒤의 고독은 권력이 진행 중일 때 느끼는 깊은 고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권력자는 '사람', 즉 인격과 개성에 끌리어 서가 아니라 그가 달고 있는 '직함', 호의를 베풀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서 전화하는 것이다. 그래 권력은 인간관계를 왜곡해 피상적이고 취약하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타인의 관대한 행동은 곧바로 타산적인, 더 나아가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건강하고 소중했던 관계도 망가진다. 이러한 불신, 감사하는 마음의 결여 탓에 권력자는 고독 속에 더욱 깊이 틀어박히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의심이 권력자의 자동적 반응이 되기도 한다. 그래 권력은 사회적 관계를 약화시킨다. 권력 때문에 관계가 변질되고 진실함을 잃는다는 게 권력의 문제이다. 권력에 의한 고독이라는 복잡한 문제의 해결은 내가 하는 일과 나라는 존재를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권력의 불행은 관계를 맺고 초대를 받는 것이 바로 나라는 사람 덕분이 아니라고 착각하는 때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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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거듭 말하지만, 내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내 자리가 곧 내 존재가 아니다. 그래 나는 자리, 지위, 권력 그런 것들 부럽지 않다. 노자의 <<도덕경>> 제17장에 의하면, 가장 훌륭한 리더는 존재 정도만 알려진 자이고, 그 다음 그를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자이고, 그 다음은 그를 두려워 하고, 그 다음은 그를 비웃거나 업신여긴다. 다음과 같이 4 단계이다.
• 太上 知有之(태상부지유지) : 가장 좋은 다스림은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자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 其次 親而譽之(기차친이예지) :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송하는 것이고
• 其次 畏之(기차외지) :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고
• 其次 侮之(기차모지) : 그 다음은 사람들이 멸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信不足焉(신부족언) 有不信焉(유불신언)"이라 말한다. '말의 믿음이 부족해지니 불신이 판을 치게 된다'는 거다. 노자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무위(無爲)'와 '유위(有爲)'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무위'는 사람들이 그것이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이며 노자는 이것을 최상의 '도'라고 말한다. '유위함'에는 세 단계가 있다.
•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송하는 단계(親而譽之)이고,
•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단계(畏)이고,
• 사람들이 멸시하(업신여기는)는 단계(侮)이다.
가까이 하고 칭송한다는 것은 통치자와 피통치자, 상사와 부하 사이에 나름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민주적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위한' 리더십도 현실적으로 유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항구적일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유위'의 리더십도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화되면 틈이 생긴다. 통치자와 피통치자, 상사와 부하 사이에 틈이 벌어지면 기존의 신뢰관계만으로는 조직을 다스리거나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두려움이라는 기제를 동원해서 조직을 통제해야 한다. 이러한 기제는 현실에서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이며 불통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신뢰관계는 더욱 훼손되고 결국에는 서로를 멸시하는 단계에 이른다. '유위'의 리더십이 최악에 이르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 불신에 이르게 된다. 믿음,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최상은 '무위함'이다. '무위'로 나라를 다스리면 일이 성사되어도 시민들은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며, 서로 공로를 인정받으려고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가의 신뢰체계가 깨지지 않고, 지도자의 말에는 더욱 더 큰 무게가 실려야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신뢰가 없으면 아무 것도 만들어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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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속상한 것은 지도자를 업신여긴다는 점이다. 그래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무위'는 ‘함이 없다’고 하여 아무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함’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발적이고 은은하여 보통의 ‘함’과 너무도 다른 ‘함’, 그래서 ‘함이라고 할 수 없는 함’이다. '도'가 이렇게 ‘함이 아닌 함(無爲之爲)’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므로 우리 인간들도 '도'와 하나 된 상태에서, '도'와 함께 저절로 나오는 함을 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 반대되는 행위들은 다음과 같다.
▪ 인위적인 행위
▪ 과장된 행위
▪ 계산된 행위
▪ 쓸데없는 행위
▪ 남을 의식하고 남보라고 하는 행위
▪ 자기중심적 행위
▪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 억지로 하는 행위
▪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의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행위
이런 것들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살아가는 것이 상식이다. 그저 상식만이라도 실천하자. 이 상식을 실천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도덕경>>의 ‘무위(無爲)’의 원칙을 정치 지도자에게 적용하면,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이다.
•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법치(法治)주의 지도자
• 사람들이 따르고 칭찬하는 지도자는 덕치(德治)주의 지도자
•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무위(無爲)의 원칙을 따르는 무위의 지도자
'무위'라고 하여 방치한다는 것이 아니라 산과 들을 풍요하게 하는 이슬처럼, 가랑비처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민중들에게 도움을 주어 민중들이 일이 잘될 때 “이 모두가 우리에게 저절로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무위'를 실천하는 지도자의 통치 스타일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아야 한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 작은 생선을 구울 때는 쓸데없이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들쑤시지도 않고, 한쪽이 잘 익기 전에는 뒤집지도 않는 것이 정석이다. 그렇게 하면 망가지기 때문이다. 한쪽이 잘 익기까지 한 참 동안 지켜보면서 가만히 둔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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