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요식 영석불식(多夕要息, 永夕不息)"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4월 15일)
어제는 매우 의미 있는 세 가지 일을 하였다. 특히 공주에 있는 친구 집(러스틱 하우스 틈, 공주 큰샘1길 11-1)에 가서 좋은 분들을 여럿 만났다. 그 만남과 공주 투어 길에서 <길담사원>이라는 책방을 처음으로 들어갔다.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런 책방을 가졌으면 한다. 거기서 기념으로 <다석 유영모>>(박재순 지음)을 샀다. 책 표지에는 '동서사상을 아우른 창조적 생명철학자"란 부제가 있었다. 나는 늘 왜 그의 호가 '많은 저녁, 다석(多夕)'일까 궁금했다. 하필이면 왜 저녁? 류 선생님에 의하면, 저녁에 어머니가 "애들아, 집에 오렴, 저녁 먹을 시간이야" 라고 부르는 이 소리는 신이 인간을 부르는 '저녁 콜'이라는 것이다. 이 '콜'은 신의 아이들인 인간을 부르는 따뜻한 소리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에게 저녁은 마음의 허기 뿐만 아니라, 몸의 피곤을 달래며 고요히 어둠으로 드는 시간이다. 따뜻하고 편안한 신이 호명하는 목소리의 시간이다. 그런 저녁이 많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저녁을 찬양하는 그의 어둠론은, 이 세상 밝음이 본질이 아니라, 어둠 이야말로 우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품이라는 인식의 산물이다. 그래 그는 "세종석신(世終夕新)"이란 말을 했다. 목숨이 끝나면 저녁을 믿는 법, 저녁은 거룩의 냄새를 맡고 거룩과 가까이 하며 거룩을 닮아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다석요식 영석불식(多夕要息, 永夕不息)"이란 말을 했다. 생애의 많은 저녁엔 쉼(휴식)이 필요하지만, 영원한 저녁에는 숨(호흡)을 쉬지 않는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면, 살아있을 때의 저녁은 휴식을 주지만, 영원한 저녁은 숨쉬기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 여기서 '다석(多夕)'이란 말이 나온다. 저녁은 어둠이 찾아오는 문턱이다.
오늘 아침 사진이 저녁이 오는 모습이다. 친구들과 공주를 탐방하다 저녁에 찍은 거다. 세상에 놀라지 말고, 할 수 일만 하자. 세상에 이름을 새기는 "빅 스토리"에 목을 매지 말자.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 인간은 돈이든 명예든 타인의 인정이라는 의미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은 결국 죽음을 향한 가벼운 발걸음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저녁(다석, 多夕) 류영모 선생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빛 빛 하지만 빛보다 어둠이 더 크다. 깬다 깬다 하지만 깸 보다는 잠이 먼저이다. 삶도 죽음이 먼저이고, 많음 보다 하나가 먼저이다." 이 말이 다음과 같이 한자로 전해진다.
▪ 적여시광(寂餘始光)
▪ 수여시각(睡餘始覺)
▪ 사여시생(死餘始生)
▪ 일여시다(一餘始多)
이 네 구절은 우리가 중요하고 대단한 것이라고 여기는 "빛, 깸, 삶, 많음"보다, 더 본질적이고 더 위대한 것, "어둠, 잠, 죽음, 하나"임을 밝혀 놓은 역설의 문장이다.
▪ 나는 빛이 어둠을 이긴다고 배워 왔다. 그래 한참 생각한 후 깨달었다. 도시문명 속에서는 확실히 빛이 강해 보인다. 그러나 우주의 어둠 속에서는 빛은 미약하며 순간적이다. 소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소리가 적막을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침묵과 고요한 적막 뿐인 절대공간에서 소리는 맥을 못 춘다.
▪ 깨어 있는 것도 잠들어 있는 것에 비하면 일부분일 뿐이며, 잠깐일 뿐이다. 깊은 잠으로부터 깨어나지 않은 깸은 깸이 아니다.
▪ 살아 있는 것 또한 죽음의 상태에서 생겨나 잠깐 뒤엔 다시 죽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 세상에 나와 있는 만물들은 번성하여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신의 '하나'가 이뤄낸 많은 것일 뿐이며 죽으면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 많음이 하나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심오하다. 내 이름이 '한표'인데, 사람들은 '만표' 또는 '천표'로 바꾸라 한다. 그러니 '만표'도 다 '한표'에서 나온다. 억지인가?
'하나'라는 이야기를 하면, 최근에 알게 된 "태일생수"라는 말이 소환된다. 도올 김용옥에 의하면, <<태일생수>>는 <<노자>>의 한 부분이었거나, <<노자>>와 같이 융합할 수 있는 동질적 사유의 문헌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도올이 소개하는 부분을 공유한다. 매우 놀랍다. 동아시아 판 <창세기>를 읽는 것 같다. 그 사유가 놀랍다. 동양의 우주론이다.
"태일(太一)은 물을 생한다. 생하여진 물은 생하는 태일(太一)을 오히려 도운다. [반보(反輔)'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리하여 하늘을 이룬다. 하늘 또한 자기를 생한 태일(太一)을 오히려 도운다. 그리하여 땅을 이룬다. 이 하늘과 땅이 다시 서로 도와서 신명(神明)을 이룬다. 신(神)과 명(明)이 다시 서로 도와서 음양을 이룬다. 음과 양이 다시 서로 도와서 네 계절을 이룬다. 이 네 계절(춘하추동, 春夏秋冬)이 다시 서로 도와서 차가움과 뜨거움(창열, 凔熱)을 이룬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다시 서로 도와서 습함과 건조함(습조, 溼燥)을 이룬다. 습함과 건조함이 다시 서로 도와서 한 해(세, 歲)를 이루고 이로써 우주의 발생이 종료된다(太一生水, 水反輔太一, 是以成天. 天反輔太一, 是以成地. 天地復相輔也, 是以成神明. 神明復相輔也, 是以成陰陽. 陰陽復相輔也, 是以成四時. 四時復輔也, 是以成凔熱, 凔熱復相輔也, 是以成溼燥. 溼燥復相輔也, 成歲而止).
그러므로 일년의 시간(세, 歲)이라 하는 것은 습조(燥溼, 습함과 건조함)에서 생한 것이요, 습함과 건조함은 창연(滄然, 차가움과 뜨거움)에서 생한 것이요, 차가움과 뜨거움은 네 계절이 생한 것이다. 네 계절은 음양(陰陽)이 생한 것이요, 음양은 신명(神明)이 생한 것이요, 신명은 천지(天地)가 생한 것이요, 천지는 태일이 생한 것이다(故歲者, 溼燥之所生也. 溼燥者, 滄然之所生也. 滄然者, 四時之所生也. 四時者, 陰陽之所生也. 陰陽者, 神明之所生也. 神明者, 天地之所生也. 天地者, 太一之所生也).
그러므로 태일은 물속에 저장되었다가 시간(=네 계절)에 의하여 운행되며[시간 속을 흘러 다니며],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만물을 생성하는 어미로 삼는다[자신을 만물의 근원(母)으로 삼게 된다]. 한번은 비워지고 한번은 채워지니 만물의 법(經=法-규칙, 법칙)으로 삼는다. 이것은(태일太一) 하늘도 소멸시킬 수 없으며, 땅도 매몰시킬 수가 없으며, 음양陰陽으로도 이룰 수가 없다(是故太一藏於水, 行於時. 周而或始, 以己為萬物母. 一缺一盈, 以己為萬物經. 此天之所不能殺, 地之所不能埋, 陰陽之所不能成).
복잡한 것 같지만, 논리 정연하고 소박한 고대인들의 우주발생론(cosmogency)이다. 중요한 것은 생(生)이라고 하는 동사가 예외 없이 모든 단계에서 일방이 아닌 쌍방적 진행이라는 점이다. 그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다.
태일(太一) → 수(水) → 천(天) → 지(地) → 신명(神明) → 음양(陰陽) → 사시(四時) → 창열(凔熱) → 습조(溼燥) → 세(歲): 모든 것을 뒤집으면 하나이다. 그러나 차별과 배제는 도의 세계가 아니다.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갔다. 잠시 멈추고 오늘의 시를 공유할 차례이다. 어제 다시 만난 내 고향 공주는 여백이 있다. 오늘 시처럼. 그런 자리와 사람들을 소개시켜 준 연수 친구에게 고맙다. 코로나-19의 변종인 오미크론이 엄청나게 극성 부리면서, 사회는 거의 단절되어 있지만, 어른 들은 끼리끼리 모여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한다. 지루하지 않은 삶을 살려면, 활동과 관계가 일상 속에서 계속 이루어지면 자신의 삶의 영토가 확장되게 하는 거다. 모여서 별 쓸모 없는 이야기를 나는 활동은 내가 여기서 말하는 활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 만남은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거다. 활동과 관계를 통해 내 삶의 차이가 생성되어야 한다.
여백/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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