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4월 11일)
"人之所畏(인지소외) 不可不畏(불가불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나 또한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 말 뜻을 나는 잘 모르겠다. 최진석 교수는 이것을 "백성들이 두려워 하는 군주는 또 그 백성들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없다(人之所畏(인지소외) 不可不畏人(불가불외인)"고 해석한다. 도올은 "사람이 두려워 하는 것을 나 또한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풀이했다. 오강남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 나도 두려워해야 합니까?"라 번역했다. 내가 이해한 것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이다.
그래 오늘 아침은 두려움에 대한 사유를 해본다. 두려움은, 술처럼, 불과 같다. 불은 겨울에는 온기를 주고, 배고플 때 음식을 조리해 준다.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빛과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통제하지 못하면 불은 우리를 다치게 한다. 마음만 먹으면 불은 우리의 목숨을 앗아버릴 수도 있다. 그래 살면서 우리는 두려움과 술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두려움 그 자체 뿐입니다." 대공황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한 말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요즈음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두려움은 생존을 위한 인체 경고 시스템이며, 두려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모함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기 쉽다." (일자 샌드(Ilse Sand), <<샌서티브>>) 역사적으로 지나친 낙관이 사람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IMF와 임진왜란이 그랬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 희망이 멀다면 가망이라도 찾아야 한다. 두려움과 민감함은 그것을 작동시키는 역설적 기제이다. 내가 과도한 낙관론보다 이유 있는 비관론을 더 믿는 이유이다. 세상 사는 일을 좀 두려워할 필요가 있다. 난 너무 낙관주의자이다. 그래서 민감하지 못하다. 민감한 사람이 두려움을 더 많이 갖고, 그들이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더 잘 준비를 한다.
『두려움의 기술(The Art of Fear)』 로 많이 알려진 크리스틴 울머(Kristine Ulmer)는 "두려움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녀에 의하면, 두려움은 밀어내려고 할수록 점점 더 광기 어리고 비이성적이고, 일그러진 모습밖에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두려움은 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음을 일깨워주고 집중력을 올려주고 더욱 선명한 흥분과 의식으로 현재에 머무르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꺼이 두려움을 느끼려 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두려움에 담긴 에너지의 지혜가 드러난다고 한다.
세계적인 성과심리학자인 짐 로허(Jim Loehr)는 크고 작은 실패의 연속 속에서 힘이 되어준 책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 수용소에서』였다고 한다. 이 책이 보여준 깊은 연민과 사랑, 용서가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임을 깨닫고, 그는 친절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역설적이다. 두려움 앞에서 오히려 연민과 사랑 그리고 용서가 인생의 소중한 가치라 한다. 좋은 통찰이다. 짐 로허는 고통 뿐이 아니라, 이길 수 없는 적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도 사랑하는 거라고 했다. 이게 이길 수 없는 적을 다루는 삶의 지혜라고 했다. 또한 동시에 나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살다 보면, 우리 인생의 실세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를 어떻게 경청할 것인지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다음의 문장이 멋지지 않은가? '내가 내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수준이 곧 나의 현재 모습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을 사랑하라'는 말이 자신에게 가하는 채찍질이 아니다. 모든 성장에는 불편이 따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메시지일 뿐이다. 그러니 고통을 이길 수 없다면, 고통을 사랑하는 편이 낫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에서 출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들어 보자. "고통은 필연적이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당신은 달리면서 '너무 아파. 더 이상 못 달리겠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픈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더 견딜지는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다." 고통과 괴로움은 다르다.
짐 로허의 말이 길지만, 인용한다. 왜냐하면, 나처럼, 실패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크게 위로를 주고 삶의 지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깨달었다고 말한다.
- 실패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높은 벽을 쌓으면서 정서적 고립이 일어난 것을.
- 그 정서적 고립에 따른 평생의 대가는 어쩌다 배신의 고통을 훨씬 초월한다는 것을,
- 깨진 믿음과 배신당한 우정의 고통은 그저 타인과 더 깊은 교감을 나누는데 따른 비용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 아픈 경험을 글로 쓰고 고통을 긍정적으로 건설적인 일로 바꾸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한 덕분에 '자유'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 배신당한 경험을 회복력을 기르고, 사람 보는 안목을 높이고 용서에 대해 배우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 그것이 곧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명령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의 밑바탕이 되어주는 다음과 같은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살다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패는 나와 타인을 용서하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다." 그러면서 짐 로허는 친절을 실천하는 삶을 권한다. 그런데, "친절해 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불편을 초래하며 배려할 수 있는 힘은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된 기회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게 용기이다.
많이 인용하는 이야기이지만, 시인 에머슨(Emmerson)은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존재했음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 성공한 삶"이라고 말했다. 이 글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삶의 기둥 같은 것이다.
그리고 두려우면, 나는 흑인 인권운동가 멜컴 엑스(Malcon X)의 말,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는 말을 좋아한다. 모든 방법을 시도하면 기회를 열어주는 한 가지 방법이 마법처럼 주어진다. 삶을 살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살아가려는 정신은 중요하다는 말이다. 눈 앞에 있는 모든 수단을 찾아가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은 결국 틀에서 벗어난 방법이 필요하다는 말과 똑같다. 새롭게 건너 가기를 시도해 보는 것이다. 한두 가지 해보고 안 된다고 주저앉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나처럼,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성공 기회는 매 순간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소중한 것은 가까운 곳에 있다"(스티브 아오키)는 것이다. 가족, 친구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관계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늘 더 멀리 가야 하기 때문에 가까운 곳을 더욱 각별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소중한 것은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멀리 가는 이유는 다시 가까운 곳으로 돌아오기 위함 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빛나는 별을 보기 위해선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별을 보는 방법이다. 가장 큰 희망은 가장 큰 절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나를 구원한 아름다운 말들이 대개 어둠 속에서 탄생했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다. 밖에 나가지 못하고 두려움과 우울 속에서 보내고 있는 친구에게 별에 대해 말했다. 눈을 감고 있을 때, 말은 더 잘 들린다고. 그때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이다. 한 세계가 닫혔으니 우리가 믿을 건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것 아닐까. 더 잘 듣게 된 사람에게는 더 잘 볼 수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릴 테니."(백영옥) 그래 우리는 가끔 눈을 감거나, 귀를 막을 필요가 있다. 아니면 내면 속으로 침잠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랬더니 오늘 산책 길에서 하늘이 보이고, 나무들이 제 할 일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건너가고 있었다. 아침 사진이 그 거다. 그런 의미에서 박노해 시인의 <여행자>를 공유한다.
여행자/박노해
여행을 나서지 않는 이에게
세상은 한 쪽만 읽은 두꺼운 책과 같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 밖의 먼 곳으로 여행을 가야 한다.
나 자신마저 문득 낯설고
아득해 지는 그 먼 속으로
하지만 낯선 땅이란 없다
단지 그 여행자만이 낯설 뿐
가자 생의 여행자여
먼 곳으로 저 먼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깊은 어둠 속으로 빛나는 길을 따라
내가 여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나 자신에게 가장 낯선 자인
나 자신을 탐험하고 찾아내는 것
그 하나를 찾아 살지 못하면
내 생의 모든 수고와 발걸음들은 다
덧없는 길이 있기에
노자 <<도덕경>> 제20장의 "人之所畏(인지소외) 不可不畏(불가불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나 또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를 읽다가 여기까지 왔다. 이어지는 문장은 "荒兮 其未央哉(황혜 기미앙재), 황량하도다! 텅 빈 곳에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으니" 그렇다는 거다. 황(荒)은 거칠고 광활한 황무지를 연상시키는 글자이다. 황무지는 아직 경지 정리가 안 된 땅이다. 이처럼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경계(央)를 정하지 안하았다는 거다. 도를 아는 사람은 어떤 특정한 경계를 지어 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도를 실천하는 사람, 노자적 삶을 사는 사람은 예와 응, 미와 추사이가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되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가치들 속에서 아주 너른 모습으로 어느 것이다. 다 포용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소환된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나는 자유다." 사실 우리는 늘 걱정거리가 많고 불안하다. 그래 우리는 두려움 속에 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야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늘 무엇을 욕망한다. 그 욕망의 배치를 잘 해야 원하는 것으로부터 좀 해방될 수 있다. 그때부터 자유가 시작된다. 나는 두렵지 않다. 최근에 이유 없는 어떤 불안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데, 무엇 때문일까? 아마 욕심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더 내려놓고,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그리고 여기서 현재를 웃으며 즐겁게 살자고 또 다짐한다. 이어지는 노자 <<도덕경>> 제20장 이야기는 내일로 옮긴다. 오늘은 서울 강의를 가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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