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월 1일 오늘은 만우절(萬愚節)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4. 1. 18:11

323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4월 1일)

1.
윤10이 다시 구속되고, 헌재는 내일 파면 선고를 한다는 소식이다. 곧바로 60일 이후에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선다는 거다. 이로써 지난 12월 3일에 있었던 헌법 질서를 뒤흔든 계엄이 해결되기 시작한다는 거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다 뻥이다. 그런데 이런 가짜 소식이 허락되는 날이 오늘이다, 만우절이니까.

2.
4월 1일 오늘은 만우절(萬愚節)이다. 모두가 바보가 되는 날이다. 악의 없는 가벼운 거짓말로 서로 속이면서 즐기면서 말이다. 언젠가부터 삶이 더 팍팍 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면서, 우리의 만우절은 그냥 지나가는 듯 하다.  "대우(大愚-큰 바보)는 대도(大道)와 통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늘 속지 않고 바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속여도 보고, 속아도 보면서 인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필요도 있다.

3.
프랑스는 매년 4월 1일에 어른이나 아이들이 농담과 장난을 하거나, 물고기 모양의 초콜릿을 주고받는다. 영어로는 April Fool's day(4월 바보의 날)이라고 하고, 프랑스어로는 Le poisson d'avril(4월의 물고기)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프랑스에서는 이날 종이로 물고기를 만들어 친구나 선생님 등에 몰래 붙여 놓는 장난을 쳤다. 왜 생선인가? 이 시기가 대개 사순절 시기여서(이 식기에 고기를 먹지 않음) 사람들은 생선을 선물했다. 또는 이 시기에 물고기가 유독 잘 낚이더라 는 것에서 유래되었는 설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다 같이 악의 없이 장난으로 낚시하는 날이라 한다. 




4.
사실은 프랑스에서는 1564년까지 한 해의 시작이 4월 1일이었다고 한다. 율리우스력에서 그레고리력으로 바꾼 샤를 9세 때 새로운 달력이 생겨나고 이 때부터 1월 1일이 새해 초가 되었다, 1565년의 1월 1일, 프랑스 인들은 희망찬 한해를 기원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새해를 맞이하였다. 그런데 정작 4월 1일이 되자 사람들은 예전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그냥 조용히 지내기에는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물을 준비하되 정말 값진 선물이 아닌 웃음을 자아내는 가짜 선물을 주고받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새학기에 갓 적응하고 있는 학생들이 서로 장난치고 깔깔대면서 서로 부쩍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날이기도 한다. 프랑스 거리의 초콜릿 가게에서는 가지각색의 물고기 모양 초콜릿과 디저트가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물론 만우절이니 만큼 웃음 터지는 거짓말도 빠지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이 날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유쾌한 거짓말을 치곤 한다. 이런 식으로, 사는 데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4월 1일의 만우절은 없다.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5.
 ‘4월’을 뜻하는 영어 'April'은,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그래서 4월은 ‘아프로디테의 달’이다. 실제 4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온갖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4월이 아름다움의 여신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그리고 4월하면, 시를 좋아하는 나는, 영국 시인 엘리엇의 <황무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쓰고 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 “

왜 "잔인한"가? 4월이 잔인한 것은 마치 겨울잠을 자듯 자기 존재를 자각하지 않으려는 인간들을 뒤흔들어 깨우는 봄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말이다. 엘리엇은 봄비가 잠든 식물 뿌리를 뒤흔드는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며, 망각의 눈(雪)으로 덮인 겨울이 차라리 따뜻하다고 했다. 얼어붙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약동과 변화를 일깨우는 봄의 정신이 숭고하면서도 잔인하기 때문이다.


4월에는/목필균
  
축축해진 내 마음에 
아주 작은 씨앗 하나 
떨구렵니다 

새벽마다 출렁대는 
그리움 하나 

연둣빛 새잎으로 
돋아나라고 
여린 보라 꽃으로 
피어나라고 

양지쪽으로 가슴을 열어 
떡잎 하나 곱게 가꾸렵니다. 

6.
고통이란 자기 삶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디딤돌이다. 나는 니체를 좋아한다. 왜 그는 아무도 울어주지 않는 이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망치를 들고서 인간의 자유를 옥죄는 모든 기존의 가치를 산산이 조각 내려 했기 때문이다. 동양 철학자로는 장자를 좋아한다. 그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평생 고군분투했다. 피곤하기 이를 데 없는 여러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본성에 충실하고 만족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니체와 장자는 이점에 서로 만난다. 니체의 중심 철학은 니힐리즘(Nihilism),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 영원회귀 사상이고, 장자 철학의 중심은 무(無), 진인(眞人), 만물의 순환 상상에 있다. 

현대 사회의 위기는 '마음'의 위기이다. 왜냐하면 빛의 속도로 바뀌어 가는 사회 환경의 변화와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물질만능주의는 우리를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대체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좋다고 평가하는 것을 쫓으면서 살아간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기'가 실종된 삶을 산다.

니체와 장자의 중요한 가르침은 남의 호흡에 끌려 다니지 말고 자기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남의 평판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곹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에르히 프롬은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야말로 함께 있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당연히 마음이 아프다. 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을 했다. 한동안 힘들었지만, 그 상실을 극복한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고 부터 이다. 그 방법을 되찾은 것은 매일 아침 <인문 일지>를 쓰면서 내 마음을 들여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실 후 마음이 아팠던 것은 많이 사랑해서 괴로웠던 것이 라기보다는 많이 의지 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나 자신의 '자기애'를 굳건히 지키면서 상대를 사랑했더라면 기대에서 오는 상실감이나 의존에서 오는 허전함은 없었을 것이다.

7.
그래 필요한 것이 '나의 방식대로' 떳떳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우리들의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떳떳함의 결여에서 나온다. 떳떳함을 말하다 보니 '구차(苟且)'라는 말이 소환된다. 구차하게 살지 말자. 이는 떳떳하지 못하고 답답하고 좀스러운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버젓하지 않거나 번듯하지 않은 것이다. 원래는 구저(苟菹)라는 말에서 나온 거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저(菹, 채소 절임 저) 자에서 풀 초가 빠지고 차(且, 버금 차)로 바뀐 것이라 한다. '구저'란 신발 바닥에 까는 지푸라기를 말하는 것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는 의인을 살리기 위해 천리 길을 가는 그의 신발이 닮아서 발에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나 애처로워 볏짚을 모아 그의 신발에 깔아주었다. 이 일을 보고 사람들은 모멸을 감수하고 적은 동정을 받는다 뜻으로 "구저 구저" 하다가, 세월이 흘러 '구차'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당장 굶어 죽어도 구차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구차함이 당당하게 대중들 앞에서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요즈음의 정치인들을 보면 구차하다. 한 세상 당당하게 살고 싶으면, 구차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 "재물 앞에 놓였을 때 올바른 방법이 아니면 구차하게 얻지 말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마라. 다투게 되어도 이기려 하지 말고, 재물을 나누어도 많이 얻으려 하지 말라" 고대의 일상 생활에 적용되었던 규범들을 실은 <<예기>>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가 떳떳하지 못한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야말로 행복의 지름길이다.


8
그 다음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우리를 아주 불편하게 한다. 후회와 불안보다 좋은 음식을 먹고 충분한 잠을 작 나면, 새롭게 일을 도모할 힘을 얻는다. 하나하나의 시간이 시작이며 또한 끝이다. 얼마나 오래 만나느냐 하는 것보다 하나하나의 시간을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 듣는 음악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 만나는 꽃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있음을 늘 잊지 않는 거다. 기쁨의 싹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나는 늘 "고집스럽게 기쁨"을 추구한다. 잭 길버트의 시 <변론 취지서>에는 “우리는 과감히 기쁨을 추구해야 한다. 쾌락 없이는 살 수 있지만, 기쁨 없이는 안 된다/ 이 세상이라는 무자비한 불구덩이에서 고집스럽게 기쁨을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적확한 시인의 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기쁨’이 아니라 ‘고집스러운 기쁨’이다. 눈이 녹으면 더러워서, 비가 내리면 단풍이 하수구를 막아서, 봄의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이 모든 계절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삶은 어떤 풍경일까? 한 번뿐인 삶을 충만하게 살고 싶다면 우리는 고집스레 기쁨을 찾아내야 한다. 아주 조금, 관점을 바꾸는 순간 나의 삶은 많은 것이 긍정적으로 변한다. 이미 지나가서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상황으로, '지금, 이 순간'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 때 마음의 근육이 늘고, 감정연금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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