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한국 민주주의가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3. 29. 18:18

320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3월 29일)

1.
오늘 아침 날씨가 춥다. 원래는 주말 농장에 갈 생각이었는데 춥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폈다. 대신 지난 목요일에 만나 찍은 목련 꽃들을 다시 찾아 보았다. 왜냐하면 어제 오후에 나갔더니 벌써 목련 꽃들이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목련은 도도하게 피었다가 질 때는 지저분하다. 목이 부러질 듯이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 올리며 뽐내다가 질 때는 남루하다.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한꺼번에 뚝 떨어지지 않고 잎 조각들로 느리게 사라진다. 온갖 추한 모습을 보이며.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복효근)는 것인가?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꽃과 만나고 이별하면서, 행복한 봄의 한철이 지나간다.

목련(木蓮)은 나무에 핀 연꽃이란 뜻이다.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사찰의 문 살 문양에 6장 꽃잎도 목련을 형상화한 것이다. 목련은 꽃눈이 붓을 닮아서 목필이라고도 하고, 꽃봉오리가 피려고 할 때 끝이 북녘을 향한다고 해서 북향화라 한다. 이는 햇볕을 잘 받는 남쪽 화피편이 북쪽 화피편보다 빨리 자라, 꽃이 북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목련 꽃이 일제히 한 방향을 바라보는 모습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에 안간힘을 쓰는 듯 한 애절한 분위기를 느낀다. 그리고 목련 꽃의 그 화려한 개화에도 불구하고 잎이 하나도 돋아나지 않았다는 것이 처연하게 느껴진다. 목련 꽃의 고고한 자태 그것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해 왔고 그 쌀쌀한 날씨가 매서워서 다른 식물들은 꽃을 피울 엄두를 내지 못할 때 유독 목련 꽃만은 그 쌀쌀하여 냉기로 얼 것 같은 찬바람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봄꽃 중 가장 크고 순백인지라, 목련을 시의 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한입 가득 물고 있는 아이들의 예쁜 입"(제해만), "갑자기 바람 난 4월 봄비에 후두둑 날아오른 하얀 새떼의 비상"(김지나), "어두움을 밀어내려고 전 생애로 쓰는 유서"(박주택),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양희은의 <하얀 목련>),  요즈음 젊은이들은 "팝콘처럼 피었다 바나나 껍질처럼 스러진다"고 말한다. 목련이 핀 모습을 두고 “흰 붕대를 풀고 있다”(손동연), “하늘궁전을 지어 놓았다”(문태준), “내 어릴 적 어머니 분 냄새가 난다”(홍수희)거나, “빤스만 주렁주렁 널어놓고 흔적도 없네”(정병근)라는 시인도 있다. 김상현 시인의 <개화의 의미>는 압권이다. "‘목련이 일찍 피는 까닭은/세상을 몰랐기에/때묻지 않은 청순한 얼굴 드러내 보임이요/목련이 쉬 지는 까닭은/세상 절망했기 때문이요/봄에 다시 피는 까닭은 혹시나 하는 소망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도 재미난 목련 시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의 주인공은 사무쳐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모두 목련이라 해야겠다 다짐한다. 목련은 겨우내 앙상하게 혹한을 견뎌온 것이지만 사실 한순간도 봄날을 잊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무쳐 잊히지 않는 것들에게 목련이라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이 아닐까? 

목련/이대흠

사무쳐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목련이라 해야겠다 애써 지우려 하면 오히려 음각으로 새겨지는 그 이름을 연꽃으로 모시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으랴 한때 내 그리움은 겨울 목련처럼 앙상하였으나 치통처럼 저리 다시 꽃 돋는 것이니

그 이름이 하 맑아 그대로 둘 수가 없으면 그 사람은 그냥 푸른 하늘로 놓아두고 맺히는 내 마음만 꽃받침이 되어야지 목련꽃 송이마다 마음을 달아두고 하늘빛 같은 그 사람을 꽃자리에 앉혀야지 그리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꽃이 폈겠냐고 그리 오래 허공으로 계시면 내가 어찌 꽃으로 울지 않겠냐고 흔들려도 봐야지

또 바람에 쓸쓸히 질 것이라고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이라고


2.
나는 한 가지 삶의 원칙이 있다. 몇 년 전부터 내 속도로 내 일상을 꾸린다. 아침에 만난 문장이다. "세상 모든 것들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꽃도 계절도 피고 지는 속도가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효율성’이라는 속도에 맞추느라 자연스러운 몸의 리듬을 놓친다. 일을 빠르게 처리할수록 일이 더 많아지는 역설에 시달리면서 말이다.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느낀 건 멀리, 오래 가려면 자신의 속도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백영옥) 그 저마다의 속도를 따르는 것이 '도(道)'를 알고 구현하는 사람이다. 그 도는 자연을 따른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했다. 이 자연이 힘들어 한다. 춘분이 한 참 지난, 3월 말인데, 기온이 마이너스로 춥다. 꽃들이 힘들어 하고, 피었다 바로 진다. 특히 목련 꽃은 벌써 진다.

자연의 봄에는 참 여러 가지 꽃들이 순서를 가지고 피었다. 제일 먼저 봄을 기다리는 꽃은 동백꽃, 성급해서 눈 속에서 핀다. 그 다음은 버들강아지-갯버들 꽃, 다음은 산수유와 매화 그리고 목련으로 이어진다. 병아리가 생각나는 개나리가 거리를 장식하는 동안, 명자나무 꽃, 산당화 그리고 진달래가 봄 산을 장식한다. 바닷가에서는 해당화가 명함을 돌린다. 다음은 벚꽃이 깊어 가는 봄을 알린다. 그 사이에 마을마다 살구꽃, 배꽃, 복숭아꽃이 이어진다. 그 끝자락에 철쭉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그런데 올 봄은 날씨가 변덕을 부리며, 봄에 꽃이 피는 순서가 없이 동시에 피면서 화란춘성(花爛春盛, 꽃이 만발한 한창 때의 봄), 만화방창(萬化方暢,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짐)이다. 다 뒤죽박죽이다. 내 마음이 그런 가? 

3.
우리 사회가 위험하다. 한국민주주의가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우선 언론을 장식하는 정치 언어들이 훼손되어 있다. "불법이기는 하나 탄핵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라는 말은 난센스다. 언어가 훼손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서울대 한숭희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 선거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선거에 이기면 모든 것을 휩쓸어 가져가 버리는 방식 속에서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는 자랄 수 없었다는 거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얼마 전 스웨덴 예테보리대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발표한 ‘세계 민주주의 보고서’는 한국 민주주의 수준을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민주주의로 낮췄다. 지난 2년간 가파른 하락세이며, 물론 불법 계엄의 여파가 크다. 아직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재 판결은 나오지 않고 있다. 만일 이번 헌재 탄핵이 인용되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1987년 끓어올랐던 그 시민운동의 힘이 다시 불붙게 될 것이며, 이러한 힘은 보수 논객 김진이 말한 것처럼 “극우들이 벌이는 시위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제도권 정치가 선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제도권 밖의 운동 에너지에 의존하는 헌법 체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그간 제도권에 있던 정치인들의 자질이 부족했다. 알량한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급급했다.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들이 없었다.
 
한 교수의 주장을 직접 들어본다. 설득력 있고, 나도 동의한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추락은 ‘87체제’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라는 주장들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87년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힘과 지식이 급성장하던 시기였으며, 당시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 여러 가지 헌법적 흠결을 제대로 고치지 못한 채 급하게 개헌을 단행했다. 말하자면 지금의 헌정질서는 독재로부터 선거민주주의로 넘어가기 위한 ‘임시 체제’였던 셈이다. 이렇게 보면, 앞에서 말한 세계 민주주의 보고서의 평가가 박하다고 하기 전에 우리가 가진 헌법과 제도적 장치의 수준이 기껏해야 선거민주주의 정도에 머물 위험성을 내장하고 있음을 시인해야 할지 모른다."

4.
그래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발전이 법적 제도적 장치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여론과 장외투쟁은 또 다른 축이 된다.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에는 시민 운동과 시민 교육에 의한 민주주의 수호라는 또 다른 축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 현대사는 끊임없는 민주주의 학습의 역사였고, 국민들은 교육과 학습을 통해 시민성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어찌 보면, '87체제'는 그 당시를 가로지르던 민주주의 학습의 열기 속에 획득됐다고 할 수 있다. 1987년 6월 당시 시민들은 점심시간을 쪼개 진보와 민주주의 정치의 강의를 들으러 다녔고, 반독재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쟁론들이 시민들의 일상 토론거리가 됐다. 이렇게 학습한 넥타이 부대들이 거리로 나와 독재와 맞섰고, '87체제'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렇게 보면 '87체제'로 일컬어지는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진적 제도'의 한계를 '선진적 시민성'이 학습을 통해 보완해가는 방식의 민주주의였다.

최근 극우 화되는 우리 사회를 보면, 이러한 체제는 '시민담론'의 중심이 흔들리는 순간 곧바로 쉽게 추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이 정치에 무관심한 요즈음의 상황과 맞물려 등장하는 극우세력의 음모론, 색깔론, 폭력, 아무 말 대잔치 등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구축해 놓은 민주주의의 품격과 수준을 시험대에 오르게 하고 있다. 감추어져 있던 정치 문해 력의 민 낯이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5.
무엇이 해결책인가? 사실, 우리 정치사에서 성숙한 시민성이 제도정치 내부로 편입될 수 있는 참여정치의 공간은 늘 부족했고,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불만을 장외투쟁과 사회운동의 흐름으로 밀어내 버렸다. 선거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선거에 이기면 모든 것을 휩쓸어 가져가버리는 방식 속에서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는 자랄 수 없다. 선거민주주의 단계를 넘어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제도적 조건이 필요하다.
- 법 앞의 만인 평등과 정치적 자유, 
- 사법부 독립 및 행정부의 헌법 준수 여부, 
- 국회의 행정부 감시와 견제 기능 등이 선거민주주의 위에 덧대어져야 한다
불행히도 최근 사태 속에서 우리가 보는 모습은 다음과 같이 참으로 실망스럽다. 
- 개인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고, 
-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재의 결정도 가볍게 무시하며, 
- 국회의 입법은 줄줄이 정부의 거부권 대상이 되고 있다. 
그 틈새를 통해 행정부의 권한남용은 계속 이어지며, 민주주의는 상처받는다. 그러니 1987년처럼, 다시 시민이 나서야 한다.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다시 독재로 가는 것은 눈 뜨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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