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일상이 집중되지 못한다.

320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3월 28일)
1.
어떤 경우 에든 기다림은 ‘그 때’가 오기 전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기다림이 해소되는 때는 기다렸던 사람을 만나거나 기다렸던 일이 벌어지는 순간 뿐이다. 달리 말하면, 기다림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그가 아직 뭔가를 바라고 있음을 방증 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하루 하루 '선고와 비'이다. 2024년 12월3일 이후, 우리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다. 봄볕이 푸지게 쏟아지는데도 한겨울에 사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여태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와중에 또 다른 기다림이 나타난다. 의성 산불 소식을 접한 뒤 가슴을 쓸어 내리며 한시바삐 화재가 진압되기를 기다린다. 이젠 '비와 선고'를 동시에 기다린다. 자기 전에는 내일 쯤 이면 희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기다린다. 기다리는 사람은 기대하는 사람이고, 언뜻 가만있는 듯 보여도 심신이 분주한 사람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며, <하루>라는 시를 공유한다.
하루/이남일
눈을 뜨자 새벽은 또
하루치 시간을 밀어 놓고 간다.
늘상 해야 할 일과
불쑥 떠안아야 할 시간을
톱니 같은 일상을 떼어놓고
감칠 맛 나는 식사 시간은 길게
음악을 곁들인 티타임은 짧게
유리알 세듯 일감을 배분하고 나면
시간 보내기 하루는 숨이 가쁘다.
종일
일과 일 사이를 기다림으로 채우며
밀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지나온 나이에 노을 빛 하루가 보태지고
행복의 뒤에서 바쁜 하루는
시간이 왜 가는지도 모르면서
내일을 위해
또 다시 목마른 손을 내민다.
2,
기다림에 일상이 집중되지 못한다. 나의 경우는 책 읽기가 집중되지 않는다. 그런데 생업을 뒤로 미뤄두고 거의 매일 현장에 나가는 이들을 떠올리면, 개인적인 참담함은 단박에 부끄러움으로 바뀐다. 미안함은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다. 미안함마저 시민의 몫이라니 슬프다. 미안함의 자리에 고마움이 들어서기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으레 다른 기다림을 데리고 온다. 기다림을 손잡고 광장에 나간다. 추위도 잊고, 봄이 왔다는 사실도 잊고, 몸의 피곤함도 잊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있다. 함께 기다리기 시작한다. 기다림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린다. 되어야 할 일은 빠르게 되도록 하는 일이 정의의 실현이며 양심의 혹복이다.
3.
그러나 나는 '오이관복"이라는 말을 늘 기억하며, 때를 기다리는 데 익숙하다. 오늘 사진의 꽃망울처럼 말이다. "오이관복"은 <<도덕경>>의 제16장에 나온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이다. 이 말은 '완전한 비움에 이르십시오. 참된 고요를 지키십시오, 온갖 것 어울려 생겨날 때 나는 그들의 되돌아감을 눈여겨봅니다.”라고 한다. 원문은 이렇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움을 끝까지 하고, 고요한 상태를 돈독하게 하여 지키는 일상을 꾸리라'는 말로 읽는다. 다시 마음을 비우고, "오이관복(吾以觀復, 나는 돌아 감을 볼 뿐이다)"한다. 나는, 최근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이해가 안 되면, 이 문장을 소환하고, 비우고 고요 해지려고 한다. 특히 "오이관복(나는 돌아 감을 볼 뿐이다)"을 소환하며 나를 위로 한다. 세상 모든 이치이다. <<주역>>에 나오는 말이 있다. "무왕불복 (無往不復)", 즉 자연의 순환 원리를 주역에서는 "무왕불복"의 원리라고 한다. 세상의 이치는 결국 가면 반드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순환 철학은 <<주역>> 11번째 괘인 <지천태괘>에 나온다. 이 괘에 "무평불피(無平不陂)"라는 말도 나온다. 세상에 영원히 평평한 땅은 없다는 말이다. 난세를 이겨내는 중요한 인생철학이다.
'치허'를 지극하게 하고, '수정'을 돈독하게 하라.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구절이 "萬物竝作(만물병작) 吾以觀復(오이관복)"이다. 이 말은 '만물이 연이어 생겨나지만 나는 그들이 돌아가는 것을 본다'란 뜻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만물이 더불어 함께 자라는데, 나는 돌아 감을 볼 뿐이다"고 해석한다. 나는 '만물이 다 함께 자라는데, 나는 그것을 통해 되돌아가는 이치로 본다"로 읽고 싶다. 만물이 다 함께 번성하는 모양 속에서 되돌아가는 이치를 본다는 거다. 나는 이 문장을 만날 때마다 "되돌아 감"에 늘 주목한다. 도(道)의 핵심 내용은 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운동 력, 즉 반(反)이다.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동양 철학이고, 이를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해석한다. 이를 노자는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도덕경> 제40장)이라 말한다. 나는 오늘 아침도 '되 돌아 감'을 되새긴다. 달도 차면 기울고,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다. 아주 더운 여름이 되면 다시 추운 겨울로 이동하고, 심지어 온 우주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은 어느 한 쪽으로 가다가 극에 도달하면 다른 쪽으로 가는 '도'의 원리에 따르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때는 기다리면 온다. 지금 정국이 돌아가는 것에 기다림이 필요하다.
4.
2024년 12월 3일 밤을 잊지 말자. 우리가 우리의 힘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자가 말하는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 <<도덕경>>, 제40장)"이 하늘의 도이다. 도(道)의 핵심 내용은 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운동 력, 즉 반(反)이다.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동양 철학이고, 이를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해석한다. 달도 차면 기울고,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다. 아주 더운 여름이 되면 다시 추운 겨울로 이동하고, 심지어 온 우주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은 어느 한 쪽으로 가다가 극에 도달하면 다른 쪽으로 가는 '도'의 원리에 따르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때는 기다리면 온다. 지금 정국이 돌아가는 것에 기다림이 필요하다. 한 번 더 이야기 한다. 반대편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운동력으로 해서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거다. 이 운동력은 바로 자연이 본래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노자는 보는 거다. 쉽게 말해서, 만사는 그저 한 쪽으로만 무한히 뻗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쪽으로 가다가 어느 정도에 이르면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게 우주의 리듬이라는 거다. 어떤 상황이 극에 이르면 반전(反轉)하여 거꾸로 전개 된다는 이런 우주의 존재 방식이 노자가 말하는 "반(反)"이라는 거다.
5.
계엄의 밤이 끝나고 다음날 아침이 밝기를 기다렸던 이들이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에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꼭, 간절히, 애타게, 하염없이, 진득하게, 밤늦도록, 그토록, 손꼽아, 열렬히…… 기다림은 기대로 시작되고 믿음으로 이어지며 만남으로써 충족된다. 오늘도 나는 믿음으로 기다린다.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가 온다, 마침내.
좋은 삶은 인내하는 것이다. 인내는 포기나 체념과 다르다. 칸트는 '습관적 견딤'이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악에 압도되는 건 인간에게 짓밟히는 벌레나 침 없는 벌 같은 무기력한 신세로 전락시킬 뿐이다. 인내는 반드시 불의와 폭력에 저항해서 힘을 모으는 굳센 마음이어야 한다. 지혜가 없는 기다림은 어리석음 이고, 정의가 없는 견딤은 나약함이다. 쓰디쓴 인내의 열매를 달콤하게 만들려면 무엇을 위해 견디는 가를 놓치면 안 된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 과정을 그려낸다. 고난과 위험으로 얼룩진 귀향길은 인생 여로를 상징한다. 우리 역시 날마다 위기를 이기고 무사히 귀가하기를 바라지 않던가? 오디세우스는 인생에서 행복과 평화를 손에 쥐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가를 알려준다.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오디세우스의 자질은 '트로이 목마'로 상징되는 기지와 계략이다. 위기를 맞아 눈앞이 캄캄할 때마다 과연 그는 책략과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이겨낸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진짜 미덕은 인내이다.
"참아라, 마음이여!" 그는 개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도, 기발한 계략이 떠올랐을 때도, 상황이 무르익어 열매가 떨어질 때까지 참을 줄 안다. 감정에 빠져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함부로 행동해 자신을 파멸로 몰지 않는다. 그는 뒷일을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키클롭스가 동료를 살해했을 때 격분한 오디세우스는 칼을 빼 드는 대신 훗날을 기약한다. 자기 힘으론 동굴을 막은 바위를 치울 수 없기 때문이다. 때를 무시한 행동은 만용에 불과하다. 성급함은 인간을 미망에 빠뜨리고 참을성 부족은 판단 착오를 일으킨다. 울분을 참고 견디면서 그는 "고귀한 새벽의 여신이 오기"를 기다린다. 술을 건네 키클롭스를 재우고 말뚝을 깎아 그를 눈멀게 한 후 키클롭스의 힘을 역이용해 동굴에서 탈출한다. 좋은 삶은 인내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