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이를 먹을 수록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3. 27. 17:26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26일)

나이를 먹을 수록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지식을 얻어야 늙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새로운 인간으로 성숙되기 때문이다. 물 주기 싫어서 물을 가득 채운 그릇에 콩나물을 키우면 썩듯이, 독서를 통해 새로운 물을 자신에게 공급하지 않으면, 인간도 물에 고여 그대로 썩는다. 코로나-19의 변종인 오미크론이 엄청나게 극성 부리면서, 사회는 거의 단절되어 있지만, 어른 들은 끼리끼리 모여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한다. 지루하지 않은 삶을 살려면, 활동과 관계가 일상 속에서 계속 이루어지면 자신의 삶의 영토가 확장되게 하는 거다. 모여서 별 쓸모 없는 이야기를 나는 활동은 내가 여기서 말하는 활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 만남은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거다. 활동과 관계를 통해 내 삶의 차이가 생성되어야 한다. 그런 생성의 기쁨을 주는 것이 나에게는 매주 금요일 오전에 함께 읽는 노자 <<도덕경>> 읽기이다. 어제는 원정 경기를 했다 서대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서대산 갤러리>에 가서 책을 읽고, 점심까지 잘 대접을 받고 왔다.

오늘은 어제 공유하다 멈춘, 제 12장의 마지막 문장,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를 정밀 독해한다. 이 문장 직전의 것, "성인은 배가 되지 눈이 되지 않는다. 또는 성인은 배를 위할 망정 눈을 위하지 않는다"는 "是以聖人爲腹(시이성인위복) 不爲目(불위목)"을 우리는 어제 길게 이야기를 했었다. 배는 나에게 있는 것을 느끼지만, 눈은 밖을 향해 뚫려 있으면ㅅ 내가 아닌 저 멀리 있는 것을 본다. 배는 바로 내 몸 안에 있는 '이것'(此, 차)이고, 눈은 항상 밖에 있는 '저것'(彼, 피)을 행해 열려 잇다. 어떤 가치 체계 혹은 이상 등은 모두 이 세계를 벗어나 저 멀리 있는 것들이다. '저것'이란 모든 관념적 허구이며, 향이상학적 폭력이며, 감작적 허환(虛還)이다. '이것'이란 나의 일상적 현실이며, 나의 생명 중추가 느끼는 실재이며, 이 세계의 번뇌이며 보리이다.

노자는 저 멀리 있는 어떤 이상이나 체계를 상정하지 말자고 한다. 그 대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세계의 운행 원리를 모델로 하여 소박하게 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거피취차(去彼取此)"는 말 그대로 하면,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는 뜻이다. 저 멀리 걸려 있으면서 우리를 지배하려 하는 이념들과 결별하고, 바로 여기 있는 구체적인 개별자들의 자발적 생명력, 자신의 욕망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삶, 그것은 어떤 거대한 기회가 찾아올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순간, 내 삶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기적은 시작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탐욕이다. 그 탐욕은 늘 저 먼데를 보고 있어서 바로 눈 앞에 있는 행복을 못보게 한다. 지금 여기서 행복을 찾는 정신이 '거피취차'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획일적인 욕망 속에 있다는 것이다. 돈, 지위, 학벌, 권력, 이런 것들말고도 더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다양하게 욕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배철현 교수는 "사람들이 항상 ‘저기'를 바라보고, '여기'를 직시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 눈을 보고 대화하지 않고 상대방이 아닌 허상을 떠올리고 말한다. 자신의 편견을 일방적으로 토로하는데 안달하며,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지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의견을 개진한다. 흔히 사람들의 대화와 토론을 보면, 자화자찬의 전시장이며, 아니면 상대방을 창피주기 위한 격투경기장이다. 그들의 머리는 항상 자신이 가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 허상에 사로잡힌 장소인 ‘거기’에 홀려있다. ‘거기’를 위해 ‘여기’를 어리석게 희생시킨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동물이, 사물이 ‘신적’이란 사실을 망각한다. 신적인 존재는 항상 ‘여기’에 온전히 몰입한다. 내가 보는 모든 식물과 동물은 항상 자신에게 몰입되어 있어 숭고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유일하고 독특하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저것’을 흉내 내고 부러워한다.

우리를 온전한 '우리 자신'으로 인정해 주는 것은 둘이다. 하나는 ‘지금’이라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라는 장소다. ‘지금’과 ‘여기’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로 존재할 수 없다. 이 둘은 만물을 현존하게 만드는 존재의 집이다. 과거를 삭제하고 미래를 앞당겨 이 순간을 종말론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지금’이라면, ‘여기’는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나’를 생경한 나로 전환시켜주고 더 나은 나로 수련시키는 혁명의 장소다. 오늘 사진처럼, 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발 밑에 와 있었다. 우리는 지금-여기'를 보지 않고, 먼 곳에서 봄을 찾는다. 날씨가 흐리더니 간밤에는 강풍을 동반한 여름 비 같은 봄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이 비 그치면, 확연하게 봄이 다가 올 것이다.

봄/황인숙

온종일 비는 쟁여논 말씀을 풀고
나무들의 귀는 물이 오른다
나무들은 전신이 귀가 되어
채 발음되지 않은
자음의 잔뿌리도 놓치지 않는다
발가락 사이에서 졸졸거리며 작은 개울은
이파리 끝에서 떨어질 이응을 기다리고
각질들은 세례수를 부풀어
기쁘게 흘러 넘친다
그리고 나무로부터 한 발 물러나
고막이 터질 듯한 고요함 속에서
작은 거품들이 눈을 트는 것을 본다

첫 뻐꾸기 젖은 몸을 털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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