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화평케 하는 자'로 살자.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3. 25. 19:23

320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3월 25일)

1
이제 춘분이 지나면, 꽃들이 각각 신고식을 할 것이다. 그래 1박 2일로 '봄 찾기', 아니 '봄의 신호', '봄의 쪽지'를 찾아 남도 여행을 하고 왔다. 구례 산동마을에서 산수유 꽃을, 광양 매화마을에서 매화 꽃을 질리도록 감상하고 왔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보려 하는 사람만이 보게 되는 자그마한 봄의 단서들, 겹겹이 오므린 꽃송이나 새싹은 실제로 여러 번 접힌 쪽지를 닮아 있어 더 반갑다. 어렸을 때 소풍을 가면 선생님들이 미리 바위틈이나 덤불 속에, 소나무 가지 위에 숨겨둔 쪽지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춘분 무렵은 연중 산책 생활이 가장 바빠지는 시기이다. 나뭇가지도, 덤불도, 땅 위의 새싹도, 꽃망울도 하루 지나면 하루 만큼씩 달라져 있어서 도무지 산책을 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인문 일지는 서울에 올라 와 쓴다. 여의도 한 복판에 있는 한 스타벅스이다.

2.
그동안 한 사회가 중요시 여기던 ‘가치(價値)’라는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가치는 무엇인가?  한 번 밖에 없는 아까운 인생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돈 명예 권력 쾌락 승진 등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의 노예로 살다 보면 몹쓸 짓 하는 경우가 많다. 이웃들의 삶이 풍요롭게 되도록 하는 게 가치 있는 인생이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춥고 배고픈 육체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라, 무의미하며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체념이다. 일부 기득권 세력들은 희망을 법과 교리에서 헛되이 찾고 있다. 이들은 법전의 구절에 대한 해설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데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위안을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고 시기, 질투, 그리고 상대방의 불행을 통해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 희망의 별은 고개를 숙이고 발 아래 땅만 쳐다보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인간이 볼 수 없는 장소에 있다.

가치는 일반적으로 좋은 것, 값어치, 유용(有用), 값을 뜻하며, 동시에 인간의 욕구나 관심을 충족시키는 것, 충족시키는 성질, 충족시킨다고 생각되는 것이나 성질을 말한다. 더 나아가, 이론적인 가치는 진(眞)이고, 도덕적인 가치는 선(善)이며, 미적 관심을 충족시키는 것은 미(美)이다.

3.
‘화평케 하는 자'로 살자. '화평'의 사전적 정의는 '화목하고 평온함'이다. '화평'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는다. 헬라어로는 '에이레네(Eirene)'이다. '화평'의 비슷한 말이 '화목(和睦)'이다. '사이좋게 지내며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화목'이란 미움이 사랑, 원수 된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로 신분이 완전 뒤바뀐 것을 의미한다.

<산상수훈>의 제7복이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란 화평하게 하는 자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평화를 소유하는 것이다. 평화는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를 말하지만, 화평은 평화를 향한 움직임에 방점이 있다. 화평의 반대말은 전쟁이지만,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 외에 불안, 혼란도 된다.

화평한 자가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건강함과 온전함의 상태를 말한다. 평화는 히브리어로 "샬롬(Shalom)"이고,  그리스어로는 "에이레네(Eirene)"로 '죄나 허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박해가 없을 때, 냉장고가 가득 찼을 때, 생활에 골칫거리가 없을 때 평화롭다고 느낀다. 그런데 예수님의 평화는 다르다. 박해를 받을 때도 평화롭고, 냉장고가 비었을 때도 평화롭고, 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도 평화롭다."(차동엽 신부)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은 다음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우리가 질 수 없는 짐은 지우지 않겠다. 
▪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하지 않겠다 
▪ 우리에게 결코 불가능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겠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짐과, 고통과 희생을 피하지 말고, 사랑으로 받아들인다면 무섭거나 두려울 리 없다.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의 문제이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평화이다. 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다.

이때 쓰인 '안식(安息)'이 그리스어로 '에이레네(평화)' , 히브리어로 '샬롬'이다. "참 평화는 풍랑 속에서, 전쟁터에서, 역경의 한복판에서도 누리는 평화"라고 차동엽 신부는 설명하신 적이 있다. 그럼 이런 평화를 어떻게 해야 누릴 수 있나?  차 신부는 "먼저 나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내 안의 상처, 내 안의 허물을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말하는 거다. '사랑해! 그래도 괜찮아.' 그렇게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면 화해가 이뤄진다. 그 다음에는 사람과, 또 자연과 평화를 이루는 거다"고 했다. 평화에 대한 좋은 설명이다. 

4.
가시에 찔리면 아프다. 심한 경우엔 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상처 난 자리를 얼른 닫아 버리기에 바쁘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그 뜨끔했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무는 것도 아니고, 아찔했던 기억이 영영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시에 찔렸던 자리에 자꾸 마음이 가고 눈길이 머물러 비록 한동안일지라도 상처가 있는 곳이 가장 아픈 곳이 되며 그래서 마침내 내가 사랑하는 곳이 된다. 가슴에 찔린 상처도 그렇다. 수용하고 받아들이면, 아니 사랑하면, 평화롭고 행복하다. 그러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다시 한 번, <산상수훈> 제 7복을 말해본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5. 
가치 이야기를 하려 다가, 멀리 돌아왔다.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은 모두 오르막이다.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 당신이 소망하고 이루고 싶은 것, 당신이 누리고자 하는 것은 모두 오르막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은 오르막인데, 습관은 내리막이라는 사실이다."(존 고든, <<인생단어>> 중에서) 이미 굳어진 습관대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편안하게, 습관대로 살아가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힘겹고, 고되고, 험난하고 가혹한 경험이 함께하는 오르막을 통과해야만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이뤄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만 한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럼 무엇을 숙고하라는 말인가? 그는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이것들을 숙고하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안다고 하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니 사실 아는 것은 과거에 안 것이다. 과거에 알았다고 해서 지금도 아는 건 아니다. 소설가 김연수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지금은 '모른다'에서 '안다'로 가는 어떤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그걸 가장 잘 표현하는 동사는 아마도 '산다(生)'가 아닐까? 산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몰랐다가 알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미래에 어울리는 동사는 '모른다'뿐이다. 정리하자면, '과거=안다', 현재-산다', 미래-모른다'의 공식이다."

이 공식을 보면, 인생 문제의 대부분은 자꾸만 과거 속에서 살려고 하거나,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을 모르거나, 미래를 알려고 할 때 일어난다. 그 중에서도 문제의 근원은 자신이 지금이나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뭘 안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소설가 김연수의 주장이 흥미롭다. "미래에 대해서는 오직 모를 뿐이다. 현재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살 수는 있다. 과거는 다시 살 수 없는 대신에 알긴 안다. 하지만 이 안다는 건 지금이나 미래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여기서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니 잘 살려면,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아는 것보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하다.

문제는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이 제곱으로 많아진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 제자 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다. 지금-여기서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살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이다.
▪ 과거 속에서 살려고 한다.
▪ 현재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른다.
▪ 미래를 알려고 한다.

교통 체증, 높은 관광지 물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군가와 연계하여 한꺼번에 떠날 때 더 행복해진다. 아무 때나 쉴 수 있는 프리랜서이거나 심지어 실업자라도 공휴일에 함께 쉴 때 마음이 더 느긋해 지는 건 우리가 사람들과 연결돼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진정한 가치는 흥청망청 내 시간이 많을 때가 아니다. 그 시간을 친구나 가족, 만나고 싶은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을 때다. 조기 퇴직한 고위직 공무원이던 지인이 작가가 된 후 했던 말이 귓가에 떠오른다. “이제 시간은 많은데 함께 놀아줄 사람이 없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나라 안팎이 시끄럽고,  일이 줄었지만, 지인들과 함께 했던 남도 여행은 즐거웠다. 특히 홍매화를 실컷 만났다.


홍매화/도종환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자락 덮어도
매화 한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을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홍매화 한 송이 

6.
나라가 극우화, 정치적 견해 차이의 양극화 등의 현상들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저소득층일수록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경향 또한 이전부터 존재했으나 최근에는 정부 지출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급격하게 나타나면서 이런 현상 또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거다. 아주 부자이거나 아주 가난한 자들이 극우 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작고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는 70%의 사람들이 복지혜택, 특히 의료비 지원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수당 후보에 투표했고 지금은 자신들의 생명줄이 잘릴까 두려워 하고 있다. 애초에 ‘작은 정부’, 복지 혜택(비용, 재정지출)을 줄이고 공무원들 또한 많이 줄일 것이라고 늘 말해온 후보를 찍은 이유에 대해 물으면 대체로 자신이 받는 정말 필요한 혜택 말고 '타인(보통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가는 쓸데없는 비용을 줄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거나 뭔가 하기는 해도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식이다. 남들에게 가는 혜택은 쓸데 없는 세금 낭비이고 줄여야 마땅하지만 나는 그런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다른 약자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나 빼고 모두 다 망해버려라' 같은 사고방식이 지금의 시대 정신인 것 같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좋아한다는 말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서로 만만한 상대에게(여성, 노약자, 이민자, 장애인 등) 화풀이를 하고 있다.

여러 연구들을 보면,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 지역 사람들이 더 과격한 변화를 약속하거나 전부 뒤집어 엎겠다고 하는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준다. 낮은 삶의 만족도가 극단적이거나 포퓰리즘 적인 후보를 지지하는 행동을 보인다. 행복은 사람들의 시야를 확장 시키고 관계, 공동체, 함께 잘 사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시키는 반면, 불행은 사람들의 시야를 좁히고 나만이라도 살아야겠다 고 하는 이기심을 불러오는 현상이 확인된다. 특히 내가 세상에서 제일 괴롭고 제일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 피해자라는 피해 의식은 남들을 해치더라도 혼자 이득을 보겠다는 이기심을 높인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만 제일 큰 혜택을 받아야 하고 남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모두가 조금씩 다른 이유로 그 중요하지 않은 '남들'에 속하게 된다. 불행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고 모두가 모두를 향해 칼을 겨누는 사회를 만든다. 

과거에도 사람들의 불안과 불행한 마음을 이용해서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순수한' 자국민들을 위한 영광을 불러오겠다는 말로 인기를 끌고 수많은 비극을 낳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이 사이클을 잘 인지하고,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를 나보다 더 불행하게 만들기보다 함께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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