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내 일상의 삶에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하는 것이 인문학적 태도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3. 24. 17:53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23일)

인문학은 말한다. 반드시 알아야 할 세상의 두 가지 법칙이 있다. 이런 식으로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실제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이 인문적 삶이다.
(1) 세상에는 카르마(業)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죄 지으면 그 벌을 받는 게 순리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운이 좋아 이번 생에 죄값을 안 받았다면 후손이나 다음 생에 벌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니 제 1법칙은 업보 안 쌓고 남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싫어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왜냐하면 내가 벌하지 않아도 상대가 계속 죄를 쌓고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거다.
(2) 세상의 모든 거래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 어떤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하여야 하는 경제 관계)이다. 뭔가를 얻으려면 그만한 비용을 내야 한다. 내 스타일로 말하면,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공짜로 얻는 건 없고 어쩌다 운이 좋아 뭔가를 쉽게 얻었 어도 신은 때가 되면 그 값을 받아 가기 마련이다.

이 두 법칙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각자 자신만의 원칙들을 실제 일상에 몇 가지 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착하게는 못 살아도 나쁜 짓은 하고 싶지 않다. 항상 정당한 비용을 내려고 노력한다. 친해지고 싶지 않은 상대에겐 사소한 부탁도 안 한다. 모든 은혜는 어떤 식으로 든 갚아야 하기에 마음의 빚을 함부로 쌓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인문정신이다. 그리고 이런 인문정신으로 살자고 외치는 사람이 인문 운동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 <도덕경>>을 공유하는 거다. 노자가 말하는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고 익혀, 내 삶에 구현하며 '노자적 삶'을 살자는 거다. 오늘 읽을 제 12장은 후기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로 바뀌며 극에 이르다가, 지난 2년 전부터 코로나-19로 우리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되돌아 보기 시작했다. 아쉬운 것은 거의 2500년 전에 노자가 이미 우리들에게 말해 주었는데, 공부를 안 한 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노자가 제12장의 전문을 우선 공유한다.

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오미는 사람의 입을 버리게 한다.

말달리며 들사냥질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행동을 어지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가 되지 눈이 되질 않는다. (성인은 배를 위할 망정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원문은 이렇다. 한문을 아시는 분은 꼼꼼하게 눈 길을 주면 흥미롭다. "맹", "롱", "상", 운율이 느껴진다.

五色令人目盲(오색령인목맹)
五音令人耳聾(오음령인이롱)
五味令人口爽(오미령인구상)

馳騁畋獵令人心發狂(치빙전렵령인심발광)
難得之貨令人行妨(난득지화령인행방)

是以聖人爲腹(시이성인위복) 不爲目(불위목)
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

이같은 인문적 지식을 듣고 배워 익힐 차례이다. 내 일상의 삶에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하는 것이 인문학적 태도이다. 오만 가지의 색깔(오색), 오만 가지의 소리(오음), 오만 가지의 맛(오미)는 사람을 도(道, 삶의 원칙과 문법)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말을 달리면서 하는 사냥(치빙전렵, 오늘날의 스피드광적인 제 형태들)과 구하기 힘든 재물(난득지화)도 사람의 행동을 번잡하고, 광포하고, 방자하게 만든다. 재물이 많다고 삶이 도(道)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을 비울 때 도에 가까워진다. 성인은 배를 위하되 눈을 위하지 않는다는 대목은 삶의 본질적 요소와 비본질적 요소를 구분하라는 의미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는 거피취차(去彼取此)도 같은 맥락이다. 버려야 할 저것은 많은 재물, 많은 음식과 같은 비본질적인 것이고 취해야 할 것은 소박하고 단출한 생활, 즉 삶의 본질이다.

새로운 교육문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문법은 ‘능력주의’였다. 인간의 좋은 품격이나 좋은 삶에 대한 성찰보다는 경쟁에서 이겨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점수를 올리는 기법에만 몰두하는 문법이었다.그런데 우리 교육은 1990년대 이후 ‘훌륭한’ 사람, 즉 자기를 희생하며 국가나 가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옮겨갔다. 문제는 행복의 내용이었다. “큰 집은 필요 없어, 적당히 30평짜리. 좋은 차 필요 없어, 3,000cc.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냐.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 다녀오는 정도면 돼.” 이 말을 잘 들여다보면, 이런 행복의 실체는 우리 사회에서 고용의 불안이 전혀 없고 수입이 상당히 보장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이다. 소박하다고 말하는 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노자적 삶과 학교 문법이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늘 고맙습니다/작자미상

멋진 사람이 되지 말고
따뜻한 사람이 되세요.
멋진 사람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따뜻한 사람은
마음을 데워 줍니다.

잘난 사람이 되지 말고
진실한 사람이 되세요.
잘난 사람은
피하고 싶어 지지만
진실한 사람은
곁에 두고 싶어 집니다.

대단한 사람이
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세요.
대단한 사람은
부담을 주지만
좋은 사람은
행복을 줍니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사진하나_시하나 #오강남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노자_도덕경_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