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구나?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3. 20. 08:50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3월 20일)

4월 10일에 있을 총선 뉴스에 온통 눈길을 빼앗겨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는 동안 <인문 일지>도 몇일 동안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에 1시간씩 빠뜨리지 않고 운동하기는 잘 이어오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 찾아오려고 노크를 하던 감기를 운동과 휴식으로 잘 막아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을 화살처럼 흘러 벌써 20일이다. 봄은 가까이 온듯하지만, 아직도 밖의 날씨는 춥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구나? 아니면 '춘래불래춘(春來不來春) 봄은 왔으나 내 마음 속에는 봄이 오지 않는구나? 어쨌든 작년에 이어 올해도 꽃이 눈에 들어 오지 않는 봄이다. 그렇다고 일상이 거꾸로 흐르는 건 아니다. 할 일들은 여전하다. 우리 동네에는  <연래춘(燕來春)> 중국 요리집이 있다. 이 '연래춘'도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든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들지 않는다."

'춘래불사춘'은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하나인 왕소군 이야기에 나온다. 왕소군은 한나라의 후궁이었지만 흉노의 후궁으로 쓸려간 여인이다. 그녀는 고향 떠나 추운 흉노 땅에서 맞이하는 봄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즉 '봄이 왔으돼 봄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녀의 별명은 '낙안(落雁)'이다. '이 왕소군의 미모를 보고선 날아가던 새도 넋을 잃고 날갯짓을 멈추는 바람에 떨어진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말이 나온 김에 중국 4대 미인 이야기를 해 본다.
- 제일 먼저 우리가 잘 아는 양귀비이다. 그녀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고사성어 주인공이다. '나라를 뒤집어엎을 미색'이란 말이다. 또 꽃도 그 앞에 서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수화(羞花)'라는 별명도 있다.
- 그리고 초선이다. 그녀의 별명은 '폐월(閉月)'이다. 그 미모에 주눅들어 달이 구름 사이로 숨어 버린다는 뜻이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시(西施)는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보낸 미인이다. 서시의 미모를 보고는 물고기마저 넋을 놓는 바람에 헤엄치는 법을 까먹어서 꼬르륵 잠겨버렸다는 뜻의 '침어(沈魚)'가 별명이다.

서시 미인 이야기 속에는 '서시빈목(西施矉目)'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서시가 눈을 찡그린다'는 말인데,  '앞뒤 사정 재지 않고 무작정 남 따라하기'를 가리킨다. 서시가 했던 무수한 연습의 결과물을 어설픈 흉내로 따라잡겠다는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무수한 연습이란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 그걸 본성이라고 한다면, 무수한 연습은 새로운 본성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한단지보(邯鄲之步)'라는 말도 소환된다. 말 그대로 하면 '한단의 걸음걸이'지만, 자신의 걸음걸이도 모르면서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그저 남이 하는 게 멋있어 보이니까 했을 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내가 해도 어울리는지는 생각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런 글을 만난 적이 있다. “인생이 서글픈 건, 승자도 결국은 얻어맞기 때문이다. 한 대도 맞지 않고 상처 없는 얼굴로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는 복서 따윈 없다. 단지 덜 맞고, 더 맞고의 차이가 있을 뿐.” 살다 보면 누구나 상처가 생긴다. 어떤 사람은 상처를 느끼고 살고, 어떤 이는 잊으려 노력하며 산다. 상처가 적은 인생이 좋지만 더 좋은 건 상처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상처를 극복해야 좋은 인생은 아니다. 현재의 고통이 모두 과거의 상처 때문이라고 믿고, 굳이 과거로 돌아가 상처를 헤집을 필요도 없다.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스스로 주워 자꾸 자신의 몸에 꽂으며 아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 이미 생긴 상처를 잘 받아들이는 게 좋을 때도 있다. 축복을 뜻하는 ‘bless’는 상처를 뜻하는 프랑스어 ‘blessure’와 어원이 같다고 한다. 우리 몸의 근육도 상처 받고 찢어지며 더 단단한 근육으로 성장한다. 비를 맞은 사람은 무지개를 볼 수 있고, 어둠 속의 사람은 별을 볼 수 있다. 복효근의 시 <상처에 대하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상처에 대하여/복효근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썩어 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색깔을 닮았다
하다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 마저도
초여름 고마리 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 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날개는 바람과 대화하는 법을 알지만, 우리는 아픔을 겪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잘 모른다." 류시화 시인의 말이다. 누군가의 아픔이 어떤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아픔을 일반화해서 말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저마다의 아픔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그 상처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상처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상처는 영혼의 일이므로 각각의 상처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한다. 그것이 상처에 대한 존중이다.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 그 고통 내가 잘 알지"라 말하는 사람은 이타주의자가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다. 지금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서 "당신 말이 옳아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 도취이다. 우리는 아픈 사람이 아픈 이야기를 하도록 내버려두고, 그의 이야기를 잘 들기만 하면 된다. 상대는 자신이 느끼는 아픔을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기억으로 공유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이야기 할 때는 상대방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좋은 삶의 지혜이다. 교사의 교사로 불리는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의 말이 답이다. "인간의 영혼은 조언을 듣거나 바로잡아지거나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 주고, 들어 주고,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원할 뿐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의 영혼에 깊은 절을 할 때, 우리의 그러한 존중은 그 사람이 고통을 극복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이따금씩 우울한 감정이 몰려왔다. 우울증에 걸리면, 마음이 하는 말이 "넌 아무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아"로 들린다고 한다. 내가 그랬다. 최근에는 찾아오거나 연락이 오는 사람이 적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은 것은 모른다. 그래 어제는 나이가 들수록 자존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 혹은 믿음'이다. 자존감은 다른 이와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지적되는 것들은 이렇다. 실력을 쌓는 것, 작은 성공을 누적시키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외부에서 긍정적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 등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자신을 '위대한 존재'로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자신의 가치가 더 높은 수준에 있음을 믿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가 높음을 스스로 확고히 믿으면, '자기 효능감'이 생긴다. 자기 효능감은 특정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능력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케냐의 마라톤 선수들은 자신의 한계는 없으며, 오늘은 '나의 날'이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낙관주의자들이다.

다가오는 봄 기운 때문인가? 어쨌든 나는 원래가 '근거 없는 낙천주의자'이다. 고통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선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내가 겨우 알게 된 건, 모든 고통에는 '의미'가 있다고 믿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를 이겨낸 사람들에겐 항체라는 훈장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근거 없는 낙천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닌다. 원래 타고난 것은 아니다. 내면의 평화를 통해, 초조함과 조급함을 몰아낸 인문정신으로 사유를 높였기 때문이다. 소설가 배영옥의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낙천성은 운 좋게 타고나는 것이지만, 낙관성은 훈련으로 키울 수 있다. 애초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낙천성이 아니라, 스트레스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낙관성, 우리가 평생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은 그것이다."  

그렇지만 의학적인 충고에서부터 사랑과 상실에 대한 조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도와 줄게, 내 말 들어 봐" 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무었이 다른 사람에게 최선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같지만,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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