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을 지나면서 부터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319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3월 15일)
1.
오늘의 화두는 '통유(通幽)'이다. 두 진영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탄핵 찬성과 반대의 소실 점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초단위로 변하는 세상에서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우리 사회를 혼돈에 빠지고 있다. 그 해답을 찾다가 만난 단어가 "통유'이다. 바둑에서는 바둑의 진경(眞境)을 음미할 수 있는 그윽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고, 이젠 사물과 현상의 본질에 접근했고 승부의 요체(요체)도 터득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오늘 사진처럼,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거다.
2.
노자는<<도덕경>>제 48장에서 "위학일익(爲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라는 말을 한다. '배움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도'의 목표는 날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도'에 힘쓰는 사람은 날마다 덜어낸다. 여기서 '도'가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면, 나이 들면서 조금씩 버리고 덜어내는 것이 사람 답게 잘 사는 길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 '도'로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고 싶다. 그러면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로울 것이다. 샘을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학문'과 '도'는 차원이 다르다. '도'에 이르려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야 한다. 얻으려면 주고, 가지려면 버리고, 이기려면 져주는 오묘한 역설의 세계, ‘통유’가 그 입구다. 주는 것까지는 잘 했는데, 내려놓지 않고 버티는 시간이 계속된다. 다들 주말을 빼앗겼다.
3.
기하학에 말하는 평행선의 정의에 따르면, 마주 달리는 두 직선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그런데 평행선은 과연 만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기하의 세계에서 평행선은 결코 만날 수 없지만, 회화 즉 그림의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평행선은 얼마든지 만난다. 이는 철도의 레일을 떠올려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평행으로 놓인 두 레일은 나란히 달리다가,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면서 결국에는 만나서 하나의 점이 된다. 평행선이 만나는 지점, 그곳을 회화에서는 '소실점(消失點)'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소실 점'은 평행선이 끝나는 종착역일까? 그렇지 않다. 평행선이 끝나는 곳, 즉 '소실 점'을 지나면서 부터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기하의 세계가 '로직(logic)의 세계'라면, 회화의 세계는 '매직(magic)의 세계'다. 논리를 초월하는 세계가 '소실 점'에서부터 시작된다. 평면에서는 마주 달리던 두 직선이 '소실 점'에서 만나 차원이 다른 입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실 점'은 끝 이자 시작이다. '소실 점'에 서면 이제까지 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심오한 신세계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통유(通幽)'의 세계다.
4,
바둑에서 '위기구품(圍棋九品)'의 6번째 품계인 ‘통유(通幽)’는 '바둑의 그윽한 경지를 안다'는 뜻이다. 이제까지 와는 전혀 다른 깊고도 오묘한 승부의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단계로, 비유하자면 '소실 점'을 지나는 것과 같다. 곧 배우고 쌓는 단계를 지나, 버리고 비우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는 것에 눈을 뜨게 된다. '정석을 알되 정석을 잊어라'는 바둑 격언처럼 프로 6단의 별칭인 '통유"에서 부터는 이제까지의 문법과는 정반대의 국면이 펼쳐진다. 채움을 지나서 비움의 세계로 들어가는 패러다임 대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바둑의 진경(眞境)이라 할 그 세계는 노력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써만 도달할 수 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더 높은 차원으로 비상하려면 지금까지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통유'에서부터는 실력이 날마다 꾸준히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껑충 도약한다. 바둑 품계인 "위기구품(圍棋九品)" 이야기는 블로그에 남긴다.
5.
내가 늘 주장하는 노자의 "허즉통"이다. 노자의 '허즉통(虛卽通)'은 그의 "무위자연(無爲自然)" 개념에서 얻은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살자는 것이다. 인생무상, 공수래 공수거이니 모든 것을 비우고 낮추며 섬기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보는 마음이다. 이루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렵고,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허즉통'이라고 한다. “좌정관천(坐井觀天)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은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본다'는 거다. 그러면 하늘이 제대로 보이겠는가? 그런 사람은 나무를 보지만 숲을 보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바둑에서도 잔 수에만 밝지 대세에는 어둡다. 그러면 진다. 하나의 패러다임을 넘어 또 다른 사유(思惟)의 지평이 열리는 지점이 바로 '통유'인 것이다. '통유'에 이르면 이제까지 와는 차원이 또 다른 깊고 그윽한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노자는 “배움이란 날마다 더하는 것이요, 도란 날마다 덜어내는 것(爲學日益, 爲道日損)”이라고 했다. '통유'는 배움을 넘어 도의 경지로 들어가는 이정표 와도 같다. 배우고 채우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비우는 역설의 세계는 그윽한 '도(道)'의 경지와 이어져 있다. 예전에 바둑 황제로 군림했던 이창호 9단은 자서전을 펴내면서 <<부득탐승(不得貪勝)>>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기려는 욕심을 버려라"는 뜻으로 ‘바둑 십계명’이라는 '위기십결(圍棋十訣)' 중의 하나다. 이기고자 하면 이기려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이는 바둑 뿐만이 아니라 모든 승부에서 통하는 심오한 이치이기도 하다. '통유'의 고수는 이기기 위해 이기려는 마음을 비운다. 그리고 얻기 위해 주고, 당기기 위해 늦추고, 이기기 위해 져 줄 줄을 안다. 줘야 취하고, 져야 이기는 승부의 오묘한 이치를 깨우친 까닭이다. 노자 <<도덕경>> 제36장은 “장차 빼앗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주고, 장차 약하게 만들고자 하면 먼저 강하게 해주고, 장차 멸망시키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흥하게 해줘야 한다"고 가르친다. '통유'를 넘어 '입신'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터득해야 할 승부의 묘리이다. 일단 각자 자신의 생각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일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거기서 삶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움의 미학/나승빈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을
채워갈 때가 아니라
비워갈 때이다.
사람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이건
다 비워 놓고
채우지 않을 때이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이나
다 비워 놓고도
마음이 평화로울 때이다.
6.
<<도덕경> 제36장의 원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將欲歙之(장욕흡지)하려면 必固張之(필고장지)하여야 한다: 장차 접으려 하면 반드시 먼저 펴주어라. 그러니까 오므리려면, 먼저 펴야 한다.
將欲弱之(장욕약지)하려면 必固强之(필고강지)하여야 한다: 장차 약하게 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주라. 그러니까 약하게 하려면, 먼저 강하게 해주어야 한다
將欲廢之(장욕폐지)하려면 必固興之(필고흥지)하여야 한다: 장차 폐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흥하게 해주어라. 그러니까 없애 버리려면, 먼저 흥하게 해야 한다
將欲奪之(장욕탈지)하려면 必固與之(필고여지)하여야 한다: 장차 빼앗으려 하면 먼저 주어야 한다.
여기서 "고(固)"는 '먼저(선, 先)'라는 말이다. 원래는 '본시', '원래', '고유한' 등의 의미이다. 접으려고 하면 먼저 펴주어야 하는 것은 사물의 고유한 이치라는 것이다. 우산도 접으려면 먼저 펴 줌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물이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다. 오강남 교수는 "변증법적 변화"라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반대편을 향해 열려 있고, 그 반대편의 것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제40장)과 "유무상생(有無相生)(제2장)의 내용이다. '장차 접고 싶으면 먼저 펴주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고안된 권모술수가 아니라, 우주의 존재 형식이 원래("固") 그러하고 사물들의 성질이 본래("固") 그러하다는 것이다. 제22장의 "곡즉전(曲則全)"이 우주의 운행 원리("固")를 설명하고 있다면, 여기서는 그것을 우리의 일상적 삶에 적용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노자는 우주의 원리를 근거로 하는 이런 지혜를 "미명(微明)"이라 했다.
是謂微明(시위미명)이다: 이것을 일러 미명(어둠과 밝음의 이치)라고 한다.
柔弱勝剛强(유약승강강)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딱딱하고 강한 것을 이기게 마련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유약(柔弱)"이 강강"(剛强)"을 승(勝)할 수 있는 사물의 순환의 이치이다. 이러한 순환의 이치를 "미명(微明)"이라 부른다는 거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이 "미(微)"는 '미세 하다'는 뜻이 아니고, '밝지 않다'로 풀이를 한다. 끊임없이 굴러가는 바퀴를 한 방향에서 보면 우리는 항상 그 반쪽만 보게 될 것이지만, 그 반쪽은 기실 반쪽이 아니다. 그 전체를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명(明)"의 반쪽이지만, 그 '명'의 반쪽은 '미(微)'의 반쪽을 대칭적으로 수반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 양면을 전관(全觀)하지 못하고 '명'과 '미', 한 면에만 집착하는 것은 현명한 삶의 태도가 아니다. 병가(兵家)의 작전 또한 이러한 양면을 항상 전관하고 있어야 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약하게 하려면 먼저 강하게 해주고, 폐(廢)하려면 먼저 흥(興)하게 해주고, 뺏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하늘은 늘 약자의 편이다.
보통은 "미명"을 '미묘한 밝음'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미(微)"는 '감춰져 있음', 잠복해 있음"으로 나는 읽고 싶다. "흡(歙)"에는 "장(張)"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으로 읽고 싶다. "흡"이 겉으로 드러나("明") 있으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장"이라는 성질이 잠복("微")해 있다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장"이 밝게 혹은 현실적으로 드러나("명") 있다면 거기에 "흡"이라는 성질이 아주 미미(微微)한 상태로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흡"이 "흡"으로만 있지 않고, 마찬가지로 "장"도 "장"으로만 있지 않다는 거다. 반대되는 이 두 가지 성질은 필연적인 상호 관계 속에서 서로 의존해 있다는 거다. 이게 원래("고") 그러하니, 삶의 영역에서 운용할 수 있는 지혜를 바로 "미명"이라 하는 거다.
7.
바둑의 품계(단)인 '위기구품(圍棋九品)'은 다음과 같다. 바둑의 기량을 9단계로 나눠 별칭을 붙인 것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가 송(宋)대의 학자 장의(張擬)가 지은 바둑 고전 <<기경(棋經>>에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위기(위기)"는 서로 상대하여 말이 없이도 의사가 통한다는 뜻으로, 바둑 자체를 일컫기도 하고, 바둑을 두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위기구품'은 바둑 기술의 높낮이 뿐만 아니라 기사의 정신적 경지를 묘사하는 것이다.
▪ 초단 →수졸(守拙): 졸렬하지만 이제 제 스스로를 지킬 줄 안다. 처음으로 강호에 나와 땅 넓은 줄도 알고 하늘 높은 줄도 아는 시기이다.
▪ 2단 → 약우(若愚): 어리석어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지모(智謀)와 기략(機略)을 갖추었다. 승부의 기초인 겸허와 인내를 쌓아가는 시기이다.
▪ 3단 → 투력(鬪力): 어느덧 힘이 붙어 싸워야 할 상황에서 싸울 수가 있게 되었다.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자신을 가지고 싸울 수 있다.
▪ 4단 → 소교(小巧): 소박하지만 필요한 기교(奇巧)는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인 안목은 부족하나 부분적으로 테크닉(小巧)를 구사한다.
▪ 5단 → 용지(用智): 지혜로움을 보이는 바둑을 둔다. 지혜(智慧)도 쓸 줄 안다. 큰 이득을 위해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책략도 생기고 큰 바둑을 구상한다.
▪ 6단 → 통유(通幽): 바둑의 진경(眞境)을 음미할 수 있는 그윽한 경지에 이르렀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에 접근했고 승부의 요체(요체)도 터득하게 되었다.
▪ 7단 → 구체(具體): 기술을 떠나 이제는 조화와 중용으로 바둑이 완성의 경지에 이르렀다. 옛날 일본에서는 상수(上手, superior)라고 불렀다.
▪ 8단 → 좌조(坐照): 앉아서도 천리를 보는 듯 바둑의 모든 변화를 한 눈에 꿰뚫어 본다. 옛날 일본식 표현으로 준명인(準名人, master)이다.
▪ 9단 → 입신(入神): 신(神)의 경지에 들어가서 바둑을 둔다.
8.
중국 당나라 현종(현종) 떼 바둑의 고수 왕적신(王積薪)이 바둑을 둘 때 명심해야 할 10가지를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고 가르쳐 준 것으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 부득탐승(不得貪勝): 이기려면 먼저 이기려는 마음을 버려라. 다시 말하면, 이기려 거든 욕심내지 말라는 거다.
▪ 입계의완(入界誼緩): 남이 선정한 영역으로 들어갈 때는 서두르지 마라. 다시 말하면, 경계를 넘어설 때는 느긋하게 하라.
▪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를 공격할 때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다시 말하면, 공격할 때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 기자쟁선(棄子爭先): 작은 것은 버리고 선수를 잡아라. 다시 말하면, 돌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잡아라.
▪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 봉위수기(逢危須棄): 위기에 닥쳤을 때는 과감하게 버려라. 다시 말하면, 위기에 처했을 때면 버릴 것은 버려라.
▪ 신물경속(愼勿輕速): 돌을 놓을 때 경솔히 빨리 두지 말고 천천히 두라. 다시 말하면, 경솔하게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생각하라.
▪ 동수상응(動須相應): 행마를 할 때는 모름지기 이쪽저쪽의 물이 이어지고 호응하게 하라. 다시 말하면, 상대가 움직일 때는 같이 움직여라.
▪ 피강자보(彼强自保):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내 쪽의 돌을 잘 보살펴라. 다시 말하면, 상대가 강하면 나의 안전 도모하라.
▪ 세고취화(勢孤取和): 내 세력이 약하면 싸움을 피하고 화평을 구하라. 다시 말하면, 형세가 고립되었을 때는 화평을 도모하라.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