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관계와 활동이고, 이를 통해 차이를 생성 시키고, 삶의 영토를 확장하는 게 좋은 삶이다.

319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3월 12일)
1.
어제는 평소 좋아하는 한 교수님의 칠순 번개 모임으로 서울에 다녀왔다. 식사 후, 사)한국치매예방교육협회에 대한 브레인 스토밍까지 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화와 함께 찾아올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질병 중 하나가 바로 치매다. 치매 환자 규모는 매년 증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한다. 좀 지난 통계이지만, 2020년 65세 이상 노인 중 추정 치매 유병률은 10.3%(60세 이상 7.2%)로 60세 이상에서는 약 86만명, 65세 이상에서는 84만명일 것으로 전망된다. 205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의 15.9%인 약 302만명으로 증가한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도 고령자들이 죽음보다 두려워하는 질환이 바로 닌치쇼(認知症), 즉 치매다. 나이 때문에 몸이 불편해지고 각종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감내한다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가족도 못 알아보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일본 노인의 일상을 담은 이른바 <<실버 센류>> 88수를 모은 시집을 읽은 적이 있다. 센류(川柳)는 하이쿠(俳句)처럼 운을 가진 일본 고유의 시로 일본어 기준 5·7·5의 17개 글자로 이뤄져 있다. 거기에 이런 센류가 있다.
마누라 이름을 잊으면 건망증
마누라 얼굴을 잊으면 치매이다...!
2.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건너 가야 할 새로운 길을 만난다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다. 사람은 관계와 활동이고, 이를 통해 차이를 생성 시키고, 삶의 영토를 확장하는 게 좋은 삶이다. 사는 맛은 관계이고, 거기서 일어나는 활동의 폭이 확장될 때 일어난다. 게다가 관계와 활동 속에서 일어나는 수렴하고 발산하는 순환 가운데 내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는 성장이라 한다. 소유 욕망에 사로잡혀 집착하기보다 존재로 건너가기를 하며, 자유를 확장해 나갈 때 발산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관계와 활동이 작동된다.
생명은 근원적으로 '활동'과 '관계'를 좋아한다. '활동'과 "관계'가 생명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소유와 성공, 곧 돈과 물질에 관련된 것만 매달리면 꼭 막히게 되고, 끝에서는 허무할 뿐이다. 살맛이 나려면, 어떤 활동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계속 어딘가로, 누군 가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길 위의 존재'이다. 그런데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할 때 그걸 연결해 주는 건 지성밖에 없다. 사업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교환관계에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지성을 통해 누군가와 친해지면 그 공간이 바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 온다. 그 일상 속에서 소유보다는 사람, 즉 존재로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서로의 생각이 접속을 한다. 이런 접속을 통해 가치가 생성된다.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이지, '유'에서 '유'가 나오는 것은 유통기한이 아주 짧다. 돈 놓고 돈 먹는 것은 굉장히 유용하고 효율적이지만, 그건 순식간에 다 거덜나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무'에서 '유'가 나와야 가치가 되는 거다. 원래 보이지 않는 지혜에서 물질이 나온다. 예를 들면 디지털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정보가 온갖 더 한다. 이 무형의 자산 없이는 물질만 갖고 돌려 막기를 할 수 없다. 정신적인 자산을 가지고 있을 때는 설령 망해도 그 다음에 이 실패에서 뭔가 배우고 도약할 수 있는 베이스를 갖게 된다. 그런 사람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3.
서울 모임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멋진 삶을 위해서는 소유적 삶에서 존재적 삶으로 전환하는 거다. 존재는 '있다'이고, 소유는 '가짐'이다. 석가모니는 존재, 즉 있다는 있다가 없다가, 생겼다 없어졌다(생멸)하는 공(空)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공'은 아무 것도 없다가 아니다. '끊임없이' 바뀌고 변화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세상은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인드라망'이라는 것이다.
인드라망은 불교의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로써 불교에서 보는 세상에 대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드라(Indra)'는 본래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한역하여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한다. 신력(神力)이 특히 뛰어나 부처님 전생 때부터 그 수행의 장에 출현하여 수행을 외호(外護)하는 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바로 이 제석천의 궁전에는 무구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인드라망)이 있다. 그물은 한없이 넓고 그물의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 주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또 그 구슬들은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물로서 서로 연결되어져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연결되어져 있으며 서로 비추고 비추는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 또 이것은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세상과 인간과의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어제 새롭게 만난 기회는 엄청 소중한 것이었다.
존재는 이어져 있지만, 소유는 끊어져 있다. 소유는 이어져 있지 않고 끊어져 있다. 따로따로 있어, 각각 이어서 각자 가지고 산다. 그래 존재는 '있다'이고, 소유는 '가짐'인 것이다. 그냥 있는 대로 두면 되지, 가지려 하는가? 소유 의식은 내일에 대한 근심 걱정에서 생긴다. 그러다 보니, 이젠 '존재-있다'로 존재하고 싶다. 그냥 '있고' 싶다, '되다'가 되고 싶다. '하다'를 하고 싶다. '이루다'를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제 문제는 그 '싶다'가 근심 걱정, 괴로움의 뿌리가 된다는 점이다. '싶다'의 마음을 비우고, 되는 대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 괴로움이 사라진다. 존재 방식의 삶과 소유 방식의 삶을 '무위의 삶'인가 아니면 '유위의 삶'인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억지로', '일부러'가 아닌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하루를 맞이하고, 그 하루를 상황에 맞추어 충만하게 보내는 것이다. 그 충만함 속에는 기쁨과 평온이 있어야 한다. 그건 옳은 일을 하고, 바른 길을 걸어갈 때 생기는 느낌과 기분이다.
4.
충만한 삶 속에서 기쁘고 평온한 삶을 살려면,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대신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을 갖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극단을 멀리하는 거다. 그러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지 말고, 중용을 추구하는 거다. 소박하게 지낸다. 드높은 소나무는 바람에 자주 흔들리고, 가장 높은 탑은 더욱 육중하게 무너져 내리며, 산꼭대기는 번개를 맞게 되는 법이다. 순풍이 불어 돛이 부풀어 오를 때 돛을 다시 접을 수 있어야 한다. 평안한 삶은 무기력한 삶이 아니다. 본능적 과시욕을 자제하려면 용기와 명철한 정신이 필요하다. 가진 게 많을수록 잃을 것도 많은 법이다. 평온과 평안은 다르다. 평안은 일시적인 상태라면, 평온은 지속적인 상태 같다. 평온의 사전적 해석이 "조용하고 평안함"이다. 평온, 냉정, 침착은 동요, 흥분, 소란이 없는 마음의 평화를 뜻하는 정신 상태이다. 이는 평온함, 고요함, 평화의 상태를 의미한다. 평온함은 마음의 평화이다.
평화를 잘 설명한 전우용 교수의 글을 공유한다. "‘평화(平和)’를 글자 뜻 그대로 풀면 ‘수평적 조화’입니다. 위 아래 격차가 없는 것이 ‘평(平)’이니 그와 반대되는 글자는 ‘차(差)’입니다. 서로 어울리는 것이 ‘화(和)’이니, 그와 반대되는 글자는 ‘별(別)’입니다. 문자의 뜻으로 보자면,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 아니라 '차별'입니다. 평화는 '압도적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인도'로 이루어집니다. 하마스에 비해 '압도적 힘의 우위'를 가진 이스라엘이 '평화'를 이루지 못한 것도, 정의와 인도를 버리고 '압도적 힘의 우위'에만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다른 이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대접하는 마음이 평화의 정신이 아닐까?
5.
어쨌든 잘 따라온 내 뒤에게 박수를 보낸다. 늘 걸어온 길보다 나아갈 길이 걱정 아닌가? 나는 그저 묵묵히 그대만 믿고 따랐을 뿐이네. 스마트한 세상, 구글 맵 열면 초라한 골목까지 알려주지만, 인생은 아직도 지도 없는 여행 아닌가? 그대가 잘나갈 땐 나도 덩실거렸고, 그대가 속 울음 울 땐 나도 흐느꼈 다네. 하지만 모른 척할 때가 더 많았네. 그대가 돌부리를 걷어찰 때도, 한 잔 술에 비틀거릴 때에도. 내 평안한 민 낯은 그대 불편한 가면 덕분이라 네. 그대가 벤치에 누워 별을 볼 때 등 좀 배기는 거 아무것도 아니라 네. 맞바람 헤치며 앞으로 가시게. 뒤바람 밀며 끝까지 가겠네. 반칠환 시인의 덧붙임이 더 시답다.
뒤/황주현
나는 본 적 없네
나의 뒤
한번쯤 안아보고 싶어도
너무 먼 나의 뒤
한때 잘나가던 시절에도
뒤는 외로웠으리
삶이 부끄러울 때마다
먼저 어깨를 낮추고
생이 고단할수록
두둑한 뒷심으로 버텨 준
가면을 씌울 수 없는
민 낯의 뒤가 나의 앞이었으면
6.
마음이 평온하고 자신만의 방향과 정신이 있다면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심이 생긴다. 독립심은 타인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배를 조종하는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는 거다. 닻으로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있으면 외적인 감정에 함부로 휘둘리지 않고 억지로 변하려 하지도 않아서 진정으로 나-다움을 느낄 수 있다. 평온한 마음은 나약함이 아닌 '자신감'의 다른 이름이다. 자신감이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얻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나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마찬가지로 나를 괴롭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나만의 커렌시어를 가는 것이 중요하다. 스페인어 '커렌시아(querencia)'는 평온한 곳, 안식처, 휴식처 등을 뜻한다. 이 단어는 투우장의 탈진한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숨을 고르기 위해 찾아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복잡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자기만의 힐링 공간을 두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잠시 온전한 쉼의 여유를 얻는 곳이다. 현대인의 그러한 공간이 바로 커렌시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을 신적으로 만드는 궁극적인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가을의 추수를 기다리는 벼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부화뇌동 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며 몰입하는 마음, '평온(平穩)'이다."(배철현) 평안하고 평온은 뉘앙스(nuance, 미묘한 차이)가 있다. 평안과 달리, '평온'에는 의심, 공포, 걱정, 근심, 슬픔이 존재하지 않는다. 평온한 인간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조용한 희열에 휩싸여 있다. 매일 외부에서 눈과 귀를 통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평온을 유지할 능력이 있다면, 그는 이미 천국을 지금-여기에서 구현한 자다.
편안(便安)은 또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 지금 평온에서 시작하여, 평안, 평화 그리고 편안이라는 말의 뉘앙스를 찾으려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가 언어가 왜곡되어 서로 소통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하나의 약속이다. 'A'라 정의해 주고, 'A'라 말하면, 'A'로 듣고 이해한다. 그런데 이런 약속이 삐끗하여 'A'를 'B'로 이야기하고, 'C'로 알아듣는다면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무관하게 오해를 하게 된다. 최근에 계엄과 계몽을 오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세상 많은 오해는 단어 사용의 왜곡과 오해에서 생긴다. 더 나아가 고의로 역이용해 자기가 한 말에 대해 변명, 거짓말의 도구로 삼는 정치인들이 있다. 말장난으로 진실을 가리려 한다. 평안(平安), 평온(平穩)과 편안(便安)은 좀 다르게 쓰인다. 영어로는 쉽게 구별된다. 평온, 평안은 'peace'라면, 편안은 'Comfort'이다. 펴안, 평온은 주로 정신적으로 마음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경우리면, 편안은 주로 외적, 물질적으로 편하고 수월하다는 뜻이다. 편안의 반대말은 '불편'이라면, 평온, 평안의 반대말은 '불안'이다.
7.
어쨌든 이 능력을 가꾸고 신장시키는 훈련은 쉽지 않다. 곳곳에 평온을 흔들려는 적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와 부러움, 욕망, 식탐, 분노를 일으키는 잡담들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중심을 부여잡고 평온을 실천하는 것은 거의 신적인 경지다. 중심 자리를 타인에게 넘겨주면, 인간은 초라 해져 주변으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들로 무장한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구원할 가장 유용한 도움이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도움이 아니다. 우리 각자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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