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와 눈 높이에 맞춰 산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3. 11. 08:24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매주 목요일은 지금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사는 일이 단순 해져서 좋지만, 좀 지루하다. 그래 '다른' 삶을 꿈꾸고 있다. 잘 실천하지는 못하고, 여러 사례들을 찾아 공부하고 있다. 여러 경우를 만날 때마다, 사람이 많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돈이 넘치고, 힘이 있는 지역이 아니라, 소외된 변방에서 개혁의 싹이 태동한다는 사실을 난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와 눈 높이에 맞춰 산다"는 오두막 공동체를 방문해 본다. 경남 합천군 쌍백면 하산리에 있는 이 공동체는 이재영 장로와 최영희 권사 부부가 세운 곳이라 한다.

이 공동체의 집들은 대부분의 건축 자재를 주워 오거나 얻어 다 사용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바닥 타일 문양이 제각각 이다. 그러나 깨진 유리조각도 어우러지면 멋진 모자이크가 된다, 사실 함께 어우러지는 데는 쓸모 없는 파편이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재형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어떤 조각, 어떤 사람도 빼내지 않고 내치지 않고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게 '그리스도의 몸'이겠지요."

이런 차원에서 이 오두막 공동체에서는 사회에서 골칫덩어리로 취급될 수 있는 이들이 버림받지도 않고, 왕따를 당하지도 않고 어울려 살아간다. 이곳 최영희 권사에 의하면, '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이 바로 예수님 이다. 사람들이 미워하며 십자가에 못 받아 죽인 게 예수님 이다'고 생각하면, 어떤 짓을 해도 미워할 수 없어 참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내공이 생기 것을 느낀다고 한다. 좋은 생각이다. 나도 미운 사람이 나오면 그런 식으로 해결을 할 생각이다. 그 사람이 예수라고 생각하겠다는 말이다.

이 공동체는 자연 속에서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지내면서, 사람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다. 이재영 장로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공동체로는 자연 같은 공간 구조가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도 자연과 가까이에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삶이 단순해지기 때문이다.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기계화 하면서 도시 삶은 기계처럼 복잡하다. 그러니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도시의 기준에 못 맞추면 처지게 되고, 낙오자 또는 비정상이란 수식어가 붙기 때문이다. 그런 구조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은 정신질환자가 된다.

대신 그들을 대자연 속에 풀어 놓고 모든 규제를 없애 이완시키면 달라진다. 이 공동체는 "싸우지만 말고 네 멋대로 살아라'는 한 가지 규칙만 정해 놓고, 자신들의 속도로 일하게 해준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 속도대로 살아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도 그들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세상은 상위 30% 능력자들 눈높이 맞추도록 요구한다. 하위 70%는 맹목적으로 종속되어 따라갈 뿐이다. 문제는 따라가려고 애써보지만 안 되니 고통스러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르게 살아야 한다. 못 올라온다고, 또는 못 올라간다고 비난하고 내치기보다는 그들의 수준으로 내려가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좋은 삶의 통찰이다. 자본주의가 반대하겠지만,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70%의 사람들 곁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규제하지 않고 편하게 살아가면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간다. 불필요한 긴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오두막 공동체의 예배당 앞엔 '이 모습 이대로 함께 성전을 이루는 삶'이라 쓰여 있다고 한다. 조현 기자의 책<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마을공동체 탐사기>를 읽고 갈무리한 내용이다. 언젠가 그 공동체를 방문해 볼 생각이다.

생명은 다른 생명으로 산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느라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야 했던가. 우리는 그걸 먹이사슬이라 부른다. 인간계 안에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있다. 특히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의 몫을 뺏는 게 불가피하다. 어쩌면 자연계보다 더 냉혹하다. 현대의 원죄는 '먹은 죄'가 아닐 수 없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율법대로 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하는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온 군중에게 예수가 "당신들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시오!" 라고 한 의미도 이러할 것이다. 다른 생명을 취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개체 생명의 슬픈 운명이다. 그러나 먹이사슬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다. 자연은 무위(無爲)의 세계다. 반면에 인간 군집은 유위(有爲)란 점이 다르다.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이 여기서 생겨난다.  오늘 아침에 공유할 시를 소개한  [먼. 산. 바. 라. 기.]님의 '멋진' 덧붙임이다.

먹은 죄/반칠환

새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
지빠귀를 새 매가 나꾸어 갔다
(..)
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먹는다
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일이다


이 번에는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에 있는 '민들레 공동체' 한 곳을 더 방문한다. 이 공동체는 비인가 대안학교인 민들레 중, 고등학교 과정생과 교사들과 교사 가정으로 이뤄져 있다 한다. 이 학교는 명문대학 입시를 위주로 해 또 하나의 특목고 같은 '무늬만 대안학교'가 아니라, 그야말로 철저한 대안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한다. 삶도 대안적 삶을 실천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가을이면 4일간 '민들레공동체 에너지 자립기간'을 해본다는 것이다. 이때는 전기와 가스, 수도도 끊고 외부에서 먹거리조차 차단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겨울 산에 고립되어 목숨을 부지했던 빨치산의 삶을 재현해 보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 과정은 에너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삶에서 활용되는 지 과학의 원리를 탐구하고 정리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이는 관념적 지식이 아니라 삶의 기술을 터득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학생들은 농사부, 양재부, 대안기술부, 건축부, 목굥예부 중에서 선택해 삶의 기술을 배운다.

나도 살아보니, 이 학교의 김인수 교장이 말하는, "대학 갈 생각도, 부자로 살 생각도 말라"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특히 코로나-19와 기후 위기의 시대에 스스로 생존하는 힘, '발가벗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김인수 교장이 평소 외부 강의해서 강조하는 다음 세 가지를 공유한다.
(1) 사람은 흙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된다.
(2) 대학 가봐야 별 볼일 없다.
(3) 취직 당하지 마라. 교육은 직업에 목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립해서 직업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키운다.

이어지는 글과 시의 전문은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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