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할 수 있는 일보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큰 일이 아니라, 작은 일부터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 오후는 오랜만에 시청에 나갔다. 우리마을대학을 협동조합으로 만들기 위해 자문을 얻으러 갔다. 시청광장은 무슨 행사를 하는지,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화나무는 아무 말 없이 꽃 전차를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사진이 그 거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시청이다. 하늘은 맑았다. 그냥 경찰들만 봉쇄 바리케이트를 치고 '쓸데 없이' 분주했다.
코로나-19가 1년 넘게 진행되면서, 세상은 크게 흔들리며 바뀌고 있다. 이번 주 소설가 백영옥의 글을 보면, 왜 <우리마을대학>이 필요한지 잘 말해준다. "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과거의 말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100세 시대를 맞아 직업을 5~6가지 가지게 될 것이란 미래학자들의 예견을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는 요즘이다. 디자이너, 유튜버, 작가, 사진가, 동기 부여 강사. 며칠 전, 건네 받은 명함 속 다섯 직업은 ‘N잡러’라는 신조어를 몰라도 낯설지 않다." 소설가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액체성"을 소개했다. 이 말은 이 시대의 흐름이다. "액체성은 어디에도 담기고, 어떻게 든 흘러가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현재를 적확하게 정의했으니, 코로나가 촉발한 이런 변화 속도라면 우리는 ‘물만큼’ 유연 해져야 생존할 것 같다. 최근 귀에 인이 박이게 들은 ‘뉴 노멀’도 결국 세상의 기준점이 바뀌었다는 뜻 아닌가." 이젠 정말 유연해야 산다.
나는 지난 주에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 돈 버는 일"이라는 글을 읽었다. 글쓴이는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지영이라는 분이다. 코로나-19 이후로 소위 '프리랜서'는 힘들다. 그래 나를 전체적으로 되돌아 보았다. 그래 다음 같은 문장들이 내 눈으로 들어 왔다.
- 좋아하는 것은 결코 잘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돈 버는 것과는 더욱이 다를 수밖에 없다.
- 좋아하는 일=잘하는 일=돈 버는 일의 등식이 성립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 좋아하기보다는 그럭저럭 잘하는 일로 돈을 벌고,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위해 기꺼이 자원과 마음을 할애한다.
-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돈 버는 일이 반드시 같아야 할 필요도 없다. 각각이 역할을 나누어 분화돼 있는 존재 방식도 사실은 썩 괜찮다.
- 어떤 일은 생각만으로 가슴이 뛰고 시도만으로 삶을 기대하게 한다. 어떤 일은 생계와 무관한 영역에 남도록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어떤 일은, 이 모든 일이 지속될 수 있도록 일상을 지탱한다.
나도 위 문장들을 다시 읽어가며, 나를 비추어 보았다. 잘 할 수 있는 일보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큰 일이 아니라, 작은 일부터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의식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 사진의 매화꽃을 보면 알 수 있다. 때가 되면 자기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돈, 명예, 권력을 얻으려고 앞만 보고 달려 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희열을 맛보며 행복하게 하루 하루를 이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일을 위해 약속한 것들을 행하다가 죽는 거다. 산다는 것은 늘 어떤 약속을 지키는 것의 연속이다. 그런 식으로 주어지는 새 아침을 맞이하며 살다가, 오늘 나에게 주어진 약속들인 그 일들을 하다가, 죽는 거다. 그러니 특별한 삶, 특이한 죽음 같은 건 없다. 요즈음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도 봄은 왔다.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을 아무런 호들갑을 떨지도 않고 말없이 봄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 봄이 나를 잔인하게 한다. 깨어나라고 하니까.
무언(無言)으로 오는 봄/박재삼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천지신명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연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보게나
다시 소설가 백영옥의 주장으로 되돌아 온다. 그녀에 의하면, ‘전문가’'일수록 혁신이 힘들다고 한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문제를 정의할 때부터 이미 오랜 경험과 관점이 내면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의 언어를 빌리면, 경력이 긴 전문가는 오히려 기준점 편향, 즉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가령 휴가철이 되면 비는 집을 빌려주거나, 사용하지 않는 자동차를 이용해 돈을 버는 아이템도 전혀 다른 분야에서 ‘흘러’나왔다. 그래 요즈음 그녀는 ‘모른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모른다’는 말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르니 멍청하다’가 아니라, 모르니 알고 싶다'는 말로 말이다. 숭산 스님도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말미에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말을 쓰곤 했다. 이제 ‘일한다’는 ‘배운다’는 말과 동의어다. 예측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그래 어서 우리 주변의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마을이 학교로 배우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마음이 복잡하다. 세상의 문법과 내 문법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나를 바치고, 일상을 지배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거다. 오늘 아침은 언젠가 적어 두었던 숭산스님의 제자 현각 스님의 생각을 다시 읽으며 마음을 추수 린다.
"스티브 잡스는 "스테이 헝그리(Stay hungry!)"라고 했다. 배고프게 살라는 뜻이다. 내게는 그런 배고픔이 필요하다. 서산대사는 '춥고 배고플 때 도심(道心)이 생긴다'고 말했다. 출가할 때 내가 가졌던 굶주림, 그걸 다시 찾아야 했다." 그가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수행을 하는 이유라 했다. 그러니까, 그의 말에 따르면, 낯설고 외로운 곳에 있어야 하루 하루가 도전하는 삶이 된다는 것이다. 익숙한 곳에서 번잡하게 살다 보면, 시스템에 안주하며 매일 똑같은 삶을 살며, 시간에 함몰된다. 아니면, 굶주려야 한다.
이어지는 이야기와 시의 전문은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tistory.com 에 새 둥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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