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물러나 혼자 되는 것이 "동인"의 최종 단계이다.

318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3월 7일)
1.
동네 공원 산수유 꽃이 꽃망울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꽃이 피려면 오랜 기간 추위와 어둠을 견뎌야만 한다. 밤이 낮보다 길어야 하고, 추위가 물러가야 한다. 겨울이 춥다고, 어둠이 싫다고 방안에 들여놓은 꽃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봄꽃은 작고 연약하며 향기가 강하고 무리 지어 피지만 잎이 없다. 이른 봄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꽃 망울을 먼저 터트려야 하고, 잎이 나중에 나와야 한다. 하나를 얻으려고 하나를 버리는 거다. 그래 봄꽃은 추위와 어둠의 결핍으로 작지만 강한 향기와 무리를 얻는다. 산수유 꽃은 두 번에 걸쳐 피어난다. 처음에는 알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겉 꽃잎이 먼저 피고, 겉 꽃이 열리면 다시 속 꽃잎이 별처럼 화사하게 터져 나온다. 그러니 산수유 꽃은 자세히 들여다봐야 제 모습을 살필 수 있다.
2.
빨리 피우고, 봄이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 어제부터 기온이 조금 올랐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구나! 아니면 '춘래불래춘(春來不來春) 봄은 왔으나 내 마음 속에는 봄이 오지 않는구나! 어쨌든 작년에 이어 올해도 꽃이 눈에 들어 오지 않는 봄이다. 그렇다고 일상이 거꾸로 흐르는 건 아니다. 할 일들은 여전하다. 우리 동네에는 <연래춘(燕來春)> 중국 요리집이 있다. 이 '연래춘'도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든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들지 않는다."
'춘래불사춘'은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하나인 왕소군 이야기에 나온다. 왕소군은 한나라의 후궁이었지만 흉노의 후궁으로 쓸려간 여인이다. 그녀는 고향 떠나 추운 흉노 땅에서 맞이하는 봄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즉 '봄이 왔으돼 봄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녀의 별명은 '낙안(落雁)'이다. '이 왕소군의 미모를 보고선 날아가던 새도 넋을 잃고 날갯짓을 멈추는 바람에 떨어진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말이 나온 김에 중국 4대 미인 이야기를 해 본다.
- 제일 먼저 우리가 잘 아는 양귀비이다. 그녀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고사성어 주인공이다. '나라를 뒤집어엎을 미색'이란 말이다. 또 꽃도 그 앞에 서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수화(羞花)'라는 별명도 있다.
- 그리고 초선이다. 그녀의 별명은 '폐월(閉月)'이다. 그 미모에 주눅들어 달이 구름 사이로 숨어 버린다는 뜻이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시(西施)는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보낸 미인이다. 서시의 미모를 보고는 물고기마저 넋을 놓는 바람에 헤엄치는 법을 까먹어서 꼬르륵 잠겨버렸다는 뜻의 '침어(沈魚)'가 별명이다.
3.
오늘은 어제 다 못 읽은 <천화 동인> 괘의 '구삼' 효사부터 공유한다. '구삼' 효사는 "九三(구삼)은 伏戎于莽(복융우망)하고 升其高陵(승기고릉)하야 三歲不興(삼세불흥)이로다" 이다. 번역하면, '구삼은 군사를 숲에 매복 시키고 그 높은 언덕에 올라 3년을 일어나지 못하 도다'가 된다. TMI: 伏:엎드릴 복·숨을 복·굴복할 복, 戎:군사 융(오랑캐), 莽:풀숲 망·우거질 망, 升:오를 승·되 승, 陵:큰 언덕 릉, 歲:해 세, 興:일어날 흥. 쉽게 말하면. 우거진 풀숲에 군사를 매복 시켜 두고 높은 언덕에 오르더라도 삼 년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거다. 분수를 알고 자중하라는 말이다.

'구삼'은 양 자리에 양으로 있어 강하나, 중을 얻지 못하였다. 또한 응하는 자리인 '상구' 효가 같은 양이니 서로 응하지 못한다. 중도를 모르는 채 지나치게 강하기만 한 자이다. '삼효'는 외괘로 나아가려는 경계이고, 좋은 의미가 나오기 힘든 자리이다. 그래서 '육이' 음(陰)이 바로 아래에 있어 '육이'를 취하고 싶으나 '육이'가 '구오'와 정응하여 '구오'만을 만나게 되니, '구삼'이 '육이'를 취하고자 술수를 부린다. 나라로 치면 '구오' 왕이 '육이'만을 총애하고 있고, '구삼'은 이를 시기하여 '구오'를 정벌하고자 군사를 숲에 매복 시키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 때를 기다리지만, '구오' 왕이 정당하고 강하기에 끝내 군사를 일으키지 못한다.
"복(伏)"은 내호괘인 <손괘>의 상에서 나온다. <설괘전> 제7장에서 "손입야(巽入也, 손괘는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는 '숨기다, 감추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융(戎)'은 <설괘전> 제11장의 "리위갑주(離爲甲胄, 리괘는 갑옷과 투구가 된다)"와 "리위과병(離爲戈兵, 리괘는 무기가 된다)에서 나온다. 그런데 군사를 숨기는 장소가 "망(莽)"이다. '구삼'이 동하면, 내괘가 <진괘>가 되니 내호괘 <손괘>와 함께 풀숲의 장을 만든다. 풀과 갈대, 나무가 어우러진 곳에 <리괘> 군사들을 잘 숨겨 놓는 모습이다. 보이지 않게 군사를 잘 매복시켜 놓고는 높은 언덕에 오른다. '구삼'이 동하면, 내호괘가 <건괘>가 된다. '고통'은 이 <간괘>의 상에서 나온다. '구삼'이 동하면 내괘가 <진괘>가 되니 언덕에 오른다(升, 승)는 의미가 된다. <설괘전> 제7장에서 "震動也(진동야-진괘는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언덕에 오르는 이유는 전투를 하기 위해서이다.
'구삼'은 왜 군사를 매복 시키고 언덕에 올라 싸우려고 하는 것일까? '육이' 효사에서 보았듯이 내괘 <이괘>는 "동인우종"한 사이이다. 그런데 '육이'는 '구오'와 정응한 관계이다. 혈연, 지연, 학연이 공적 관계보다 우선될 수 없다. 개념 없는 '구삼'은 '육이'를 내줄 수 없다고 대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건괘>의 중정한 자리에 있는 '구오'와 싸워 이길 수는 없다. '구삼'이 동한 내호괘 <간괘>가 이미 결과를 암시하고 있다. <설괘전> 제7장에 "간지야(간지야)-간괘는 그치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언덕에 오르는 것 자체가 이미 "불흥(不興)"을 말하는 것이다. 3년은 선천팔괘도 상 <리괘>의 순서(진태리진손감간곤)에서 나온다. 또한 '구삼'에서 '구오'까지는 '구삼', '구사', '구오'로 3년의 뜻이 만들어진다.
요약하면, 내괘인 <이화(離火, ☲>의 끝에 '구삼'이 자리하니 불 같은 욕심이 있고, '구삼'이 변하면 양이 음으로 바뀌어 내괘가 <뇌 진, ☳>이 되니 군사를 일으키려는 상이 되며, 내호괘가 <풍 손, ☴>이니 음목(陰木)으로 풀숲이 나온다. 또한 '구삼'이 변한 상태에서 내호괘가 <간산, ☶>이 되니 높은 언덕에 오르는 상이 된다.
<소상전>은 "象曰(상왈) 伏戎于莽(복융우망)은 敵剛也(적강야)오 三歲不興(삼세불여)이어니 安行也(안행야)리오"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군사를 숲에 매복 시킴은 적이 강 함이고, 삼 년을 일어나지 못하니 어찌 행하겠는가?'가 된다. TMI: 敵:원수 적, 安:어찌 안·편안할 안. '구삼'에게 적이 되는 '구오' 왕이 중정하고 강하기 때문에 군사를 숲 속에 숨기고 기회를 노리지만 3년이 되도록 일어나지 못하니, 어찌 감히 '구오' 왕에게 대적 하겠는 가란 말이다. 공자가 말한 "적(敵)"은 '구삼'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점을 쳐서 <천화동인> 괘의 '구삼'을 얻으면 자기 분수를 알고 함부로 경거망동 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 실력을 과신하면서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상대에게 맞서다 가는 크게 망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구삼'이 동하면, 지괘는 제25괘인 <천뢰(天雷) 무망(无妄)> 괘가 된다. 이 괘의 <괘사>가 "无妄(무망)은 元亨(원형)하고 利貞(이정)하니 其匪正(기비정)이면 有眚(유생)하릴새 不利有攸往(불리유유왕)하니라" 이다. 번역하면, '무망(无妄)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우니, 그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을 것이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가 된다. 다시 말하면, '바르게 하지 않으면 재앙이 있을 것이다. 나아가는 것은 이롭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천화동인> 괘의 '구삼'을 얻으면 바르게 함으로써 재앙을 피해야 할 것이다.
4.
'구사'의 효사는 "九四(구사)는 乘其墉(승기용)이로대 弗克攻(불극공)이니 吉(길)하니라" 이다. 번역하면, '구사는 그 담에 오르되 능히 치지 않으니 길하다'가 된다. TMI: 乘:탈 승, 墉:담 용, 弗:아닐 불, 克:능할 극·이길 극, 攻:칠 공. 성벽을 올라도 공격하지 않으면 길할 것이다. '부질없는 희망을 버리고 지혜롭게 멈춰라'는 거다.
외호괘가 <건괘>이니 '구사'는 자기가 외괘 <건괘>의 중앙에 리더로 자리잡는 꿈을 꾼다. 그렇게 되면 정응의 관계를 이루어 자신이 '육이'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벽을 타고 오른다. "용(墉)"은 담장을 뜻하는 글자인데 여기서는 '구오'가 머무르고 있는 도성(都城)의 벽으로 보면 된다. "승(承)"은 타고 오르는 것이다. <건괘>에는 말(乾爲馬, 건위마-건괘는 말이 된다)의 상이 있다. 그리고 외호괘와 외괘는 <건괘> 두 괘가 겹쳐 성벽의 상을 만들어낸다. '구사'가 성벽에 매달려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구사'가 동하면 내호괘가 <감괘>가 되니 어둠을 틈타 물에 기어오르고 있다. 그리고 내호괘가 <손괘>이니 이미 높은 곳(巽爲高, 손위고)까지 오른 상태이다. '구오'를 향해 활을 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공격하지 않는다. <설괘전> 제11장에 "손위불과(巽爲不果-손괘는 과감하지 못한 것이 된다)"고 했고, "손위진토(巽爲進退-손괘는 아아가려다 멈추는 것이 된다)고 했다. 권력이 탐나서 의리를 저버리고 성벽을 오르기는 했지만 차마 화살을 날리지는 못하는 것이다. 막상 정체절명의 긴박한 순간이 되자, 활 시위를 당겼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곤궁한 상황에 빠질 것을 직감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구오' 리더를 따르는 '구사'의 본분을 회복하니 그것으로 충분히 길하다고 공자는 보았다. 흉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었는데 마음을 되돌려 흉함을 미연에 방지하게 되었으니 그 자체로 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구사'가 동한면 지괘는 제37괘인 <풍화(風火) 가인(家人)> 괘가 된다. 분별력을 되찾고 본분에 충실하면 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요약하면,
'구사'는 나라 전체로 보면 대신(大臣)에 해당하는데, 음 자리에 양으로 있어 자리는 바르지 못하다. '구오' 왕의 명을 받들어 정치를 하지만, '구오' 왕이 '육이'만을 총애하니 '구사'도 이를 시기하여 '구오' 왕에게 대적하려는 마음을 품게 된다. 그래서 왕궁의 담에 올라 시기를 노리다 가도 중정한 '구오' 왕의 힘에 마음을 돌이켜 치지 않으니 길하게 된다. '구사'가 변하면 외괘가 <손풍, ☴>이 되니 순순하게 '구오'의 명에 따르게 된다.
<소상전>은 "象曰(상왈) 乘其墉(승기용)은 義弗克也(의불극야)오 其吉(기길)은 則困而反則也(즉곤이반칙야)라"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그 담을 오름은 의리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고, 그 길함은 곧 곤해서 법에 돌아오는 것이다' 이다. TMI: 克:이길 극, 困:곤궁할 곤, 反:돌아올.반,則:법칙 칙·곧 즉. 높은 담 위에 올라 때를 노리지만, 대신으로 서의 의리로 볼 때 '구오'를 이길 수 없다. 그동안 '구오' 왕에게 대적하고자 했던 곤함에서 벗어나 대신으로 서의 법도로 돌아오기 때문에 길하다. 성벽을 오르는 것은 의리가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길한 거은 곤궁해질 것을 알고 원칙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5.
'구오'의 효사는 "九五(구오)는 同人(동인)이 先號咷而後笑(선호조이후소)니 大師克(대사극)이라아 相遇(상우)로다" 이다. 번역하면, '구오는 사람과 같이 함이 먼저는 부르짖어 울고 뒤에는 웃으니, 큰 군사로 이겨야 서로 만나도다"이다. TMI: 號:부르짖을 호, 咷:울 도(조), 笑:웃을 소, 遇:만날 우. 쉽게 말하면, 동인하고자 하는데 처음에는 울부지지만 나중에는 웃을 것이다. 큰 군대로 이겨 서로 만날 것이다.
중정한 '구오'와 중정한 '육이'가 "동인(同人)"하고자 한다. 그런데 '구삼'은 '육이'를 내줄 수 없다며 풀숲에 중무장한 군사를 매목시킨 채 언덕 위에 올라 한 판 붙어보자고 분수 넘는 짓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구사'도 어둠을 틈타 성벽을 기어오르니 권모술수를 써서 화살처럼 치명적인 한방을 '구오'에게 날리려 다가 본분을 자각하고 멈춘 바 있다. '구오'와 '육이'가 만나고자 하나 우여곡절을 겪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자리이다. 그런데 외괘에서 중정한 구오가 내괘에서 중정한 '육이' 음(陰)을 만나야 하지만, '구삼'과 '구사'가 만나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에 울부짖지만, 결국 만나게 되어 웃게 된다. 다만 양강(陽剛)한 '구삼'과 '구사'가 대적하여 방해하고 있으니, 큰 군사로 대비하여 이겨야 서로 만날 수 있다. <천화 동인> 괘를 배합하면 <지수 사(地水 師)> 괘가 되니, 일을 도모하려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내호괘는 <손괘>이다. '음목(陰木)'의 상이기도 하다. 바람이 세차게 일어 수풀이 흔들리면 소리가 난다. 나무와 풀이 바람에 기대어 자신들의 속 울음을 일제히 겉으로 터뜨리는 것만 같다. '구오'가 동하면 외호괘가 <태괘>가 되니 마침내 '구오'와 '육아'가 만나는 기쁨의 시절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큰 군대로 '구삼'을 격파해 버리니("大師克, 대사극"), 마침내 '구오'와 '육이'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돌린 '구사' 그리고 '상구'와 함께 <건괘>의 군대("大師")를 갖고 있는 '구오'에게 '구삼'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서 '천하사(天下事)'를 같이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공자는 「계사상전」 제8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사람과 같이 함(同人)이 먼저는 부르짖어 울고 뒤에는 웃는다' 하니,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군자의 도가 혹 나아가고 혹 처하고 혹 침묵하고 혹 말하나,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니 그 날카로움(이로움)이 쇠를 끊는다. 같은 마음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同人이 先號咷而後笑라하니 子曰 君子之道 或出或處或黙或語나 二人이 同心하니 其利 斷金이로다 同心之言이 其臭 如蘭이로다)."
'구오'의 <소상전>은 "象曰(상왈) 同人之先(동인지선)은 以中直也(이중직야)오 大師相遇(대사상우)는 言相克也(언상극야)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동인지선’은 가운데하고 곧기 때문이요, ‘큰 군사로 서로 만남’은 서로 이김을 말한다' 이다. 동인하고자 하는데, 처음에는 울부짖지만 나중에는 웃는 이유는 중도로 바르게 하기 때문이다. 큰 군대로 서로 만난다는 것은 서로 이긴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구오'가 '육이'를 만나고자 하는데 먼저는 만나지 못하여 울다가 뒤에는 만나게 되어 웃는 것은 '구오'가 중정하고 곧기 때문이다. 또한 큰 군사로 서로 만나는 것은 '구오'가 큰 군사로써 '구삼'과 '구사'를 이기고 '육이'를 만나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중직(中直)"을 처음에는 울부짖지만 나중에는 웃을 수 있는 근거로 제시했다. '구오'와 '육이'의 공정함, 곧고 바른 마음이 유지된 덕분이라는 것이다. 만일 '육이'가 '구삼'이나 '구사'와 동인했다면 다시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구오'와 '구삼'이 싸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구오'는 '육이'에게 마음을 돌렸을 떼니까.
의리를 갖춘 사람, 외부의 사태에 흔들림 없이 상대의 진실을 믿는 사람들 간의 사람과 어울림은 과정에 어려움이 따를지언정 끝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을 쳐서 <천화동인> 괘 구오를 얻는다면 이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암시가 도니다. 문제를 야기했던 사람들과 강하게 맞서면 승리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고 불필요한 마찰과 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상구'의 효사는 "上九(상구)는 同人于郊(동인우교)니 无悔(무회)니라" 이다. 번역하면, '상구는 사람과 같이 함을 들에서 하니 뉘우침이 없다' 이다. TMI: 郊:들 교(성 밖), 悔:뉘우칠 회. 교외에서 동인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거다. 때가 되면 물러나 혼자 소박한 삶을 살라는 거다. 그것이 동인의 최고의 경지이다.
'상구'는 사람과 같이 한다는 <천화 동인> 괘의 맨 위에 처하여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마치 현직에서 물러나 옛날의 지인(知人)들을 한적한 곳에서 만나는 격이다. 그 자체가 허물이 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뉘우침이 없다고 하였다. <천화 동인> 괘 '초구'가 문밖에서 만나는 것은 도읍지 안에서 사회의 실질적인 일을 하기 위하여 만나는 것이고, 상구가 들에서 만나는 것은, 들은 도읍지 밖에 있는 것이기에 실질적인 일을 하지는 못한다.
"교(郊)"는 '교외'라는 뜻이다. 제5괘인 <수천 수> 괘의 '초구'에 "교(郊)"가 나온다. 그때는 외괘 <감괘>의 위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는 내과 <리괘>에서 가장 먼 장소의 개념으로 쓰였다. <라괘>는 화려한 시절이다. 만물이 성장하는 여름이며 한 낮이다. 우리가 사는 색계(色界)이다. 다음 그림처럼, <건괘>는 서북방의 괘로 가을과 저녁을 상징하는 <태괘>를 지난 초겨울과 밤의 시기이다. 사람의 일생으로 보면 삶을 정리하는 노년인 것이다. 번잡한 물질 세상의 중심을 떠나 한적한 시골에 최소한의 단출한 살림만을 꾸려 자연과 벗하며 사는 자연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상구'가 동하면, 외괘가 <태괘>가 되니 기쁨이 있는 나날이다. 그곳에서 동인하니 가끔 지인들이 찾아와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다. '상구'의 <소상전>은 "象曰(상왈) 同人于郊(동인우교)는 志未得也(지미득야)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사람과 같이 함을 들에서 하는 것은 뜻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상구'는 맨 위에 처하여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앞에서 말했지만, '상구'가 변하면 <태택, ☱> 괘가 되니, 후천팔괘방위로 서방(저녁)이 되어 이미 왕성했던 기운이 석양(夕陽)처럼 기우는 상이다. "지미득야(志未得也)를 직역하면, '뜻을 얻지 않는 것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할 일을 모두 끝내고 멀리 물러났으니 새로운 뜻을 얻을 이유가 없다. 하루하루 자연과 동화된 일상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러날 때는 바로 물러나야 한다.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에 친위 세력의 여부를 더해 영원한 권력을 추구했던 독재자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안다. 내가 아니더라도 후대에 좋은 인물이 많다는 사실 말이다. 모든 것을 혼자 다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은 없다.
'상구'가 동하면 , 지괘가 제49괘인 <택화(澤火) 혁(革)> 괘이다. 이 괘의 <괘사>는 "革(혁)은 已日(이일)이라아 乃孚(내부)하리니 元亨(원형)코 利貞(이정)하야 悔 亡(회망)하니라" 이다. '혁(革)은 이미 날이어야 이에 믿을 것이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워서 뉘우침이 없어진다는 거다. 때가 무르익어야 비로소 믿음이 생기니 순리대로 따라야 후회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문 밖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때부터 '동인(同人)'의 전제는 군자, 즉 성정이 바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사실 대의란 좋은 사람들이 모일 때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쁜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토론할 리는 없을 것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하며 살았다면 서로 gdjwu 홀로 될 때도 있는 것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다. '회자정리'는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뜻으로, 불교의 윤회(輪廻)와 선이 닿는다.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과 대구로 많이 쓰인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생자필멸(生者必滅)'도 회자정리와 함의가 같다.
때가 되면 물러나 혼자되는 것이 "동인"의 최종 단계이다. 혼자가 된다고 "동인"이 아닌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그 "동인"이야말로 "원형이정"의 이치에 순응한 최고 경지의 "동인"이다. 나이 들면 고요한 자연 속에서 침묵을 즐기며 살아갈 정도의 영혼의 힘은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맑게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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