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의 삶의 구호는 '빼기'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3. 7. 08:38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르페 디엠'은 '현재를 즐겨라'보다, '현재에 충실 하라'로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때'를 포착하라는 말이다.

신은 인간에게 매일매일 생경한 시간과 낯선 장소를 선물해 주지만, 우리는 여전히 어제라는 색안경을 끼고 오늘을 맞이한다. 나는 오늘이라는 하루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삶의 구호는 '빼기'이다.
- 매일매일 오늘은 무엇을 하지 않을까?
- 무엇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까?

말이나 행동들이 내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았던 이유는 내 생각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은 빛보다 빠르다. 생각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며 씨앗이다. 말과 행동은 생각의 자연스런 그리고 당연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고통과 역경은 인간을 굴복시키기도 하지만, 인간을 역설적으로 강하게 만든다. 강한 인간은 고통과 역경을 통해서만 서서히 만들어 진다.

Dum loquimur
Fugerit invida aetas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
남 눈치를 보고 부러워하고 흉내 내다 보면 세월이 저 만큼 도망갑니다.
가르페 디엠!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신경을 덜 쓰십시오!

나는 이렇게 번역한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남들을 부러워하다 보낸 세월이 저만큼 흘러가네, 이 순간을 낚아 채십시오,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걱정하거나 믿지 마십시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글이다. 세월이 아까운 이유는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타인을 응시하고 타인의 인정을 목말라 하며, 타인이 원하는 것이 어느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스스로 최면(催眠)을 걸었기 때문이다. 최면이란 암시(暗示)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수면(睡眠)에 가까운 상태를 말한다. 그 몽롱한 상태를 라틴어로 'invidia', 즉 '부러움', '선망'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하루는 네가 아닌 다른 것이 되라고 유혹하는 선망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런 삶을 학교에서 배우고, 미디어를 통해 매순간 접한다.

현대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문법은 부러움이다. 부러움이 지나치면 시기와 질투가 되어, 자신이 아닌 남을 헐뜯는다. 호라티우스는 그런 세월을 보내는 야속한 세월을 '아에타스(aestas)'라고 명명한다. 아에타스는 자신을 위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해, 그냥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지칭한다.

카르페 디엠은 내 인생의 만트라이다. "내일은 없다. 오늘이 좋습니다"라는 족자가 내 연구실에 붙어 있다. 만트라는 나를 정신차리게 만드는 경종을 말한다. '카르페 디엠'에서 '다엠'은 하루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하루는 하늘이 주신 기회이다. 그 기회를 낚아 채야 한다. '카르페'는 카르페레(carpere)라는 동사의 단수명령형이다. '카르페레'는 '과실을 따다', '곡식을 추수하다'라는 말이다. 농부들이 사용하던 말이라고 했다. 농부에게 가을은 자신이 봄에 심은 씨앗이 만들어 낸 기적을 거두는 때이다. 농부가 잘 익은 과일을 나뭇가지에서 떼어 내기 위해서는 과일의 당분과 싱싱함이 최고인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즉 수확의 시점을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과일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다른 각도로 말하면, 잘 익은 곡식을 얻기 위해서는 봄에 씨앗을 심고, 여름에 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조치를 잘 취해야 한다. 봄에 씨앗을 심고, 오랜 기간, 그 과일이나 곡식을 돌본 사람만이 '카르페레'할 수 있다. '카르페레'를 고대 그리스어의 어원을 적용하면, 과일과 곡식은 봄부터 쓸데 없는 것들을 걸러내는 오랜 작업을 통해 얻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그러니까 빼기를 하는 이유이다.

정리하면, '카르페 디엠'을 번역하면, '오늘이라는 과일을 따먹어라', 혹은 '오늘이라는 곡식을 추수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쓸데 없는 가지를 쳐왔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가지치기는 빼기이다.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문법이 여기에 적용되어야 한다. 내가 오늘이라는 과실을 따려고 몰입할 때, 나를 혼미하게 만드는 방해꾼이 있는데, 그것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호라티우스는 이 방해꾼을 미래에 일어날 일들, postero라고 말한다. 미래는 오직 않은 것이다. 미래는 오늘의 연장이다. 미래에 마음을 두는 일은 어리석다. 미래는 오늘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가슴 뛰는 일을 하지 말고, 잘 하는 일을 해야 해요. 왜냐하면 가슴 뛰는 일을 쫓다가 가슴이 안 뛰기 시작할 수 있거든요." (김영하 작가) 그러면서 지금-이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초와 같이 된다.

모든 것의 처음은 사소하고 미약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쌓이고 쌓인다. 쌓여서 육중한 무게와 너른 넓이를 만든다. 쌓이면 누구도 꺾을 수 없다. 다발과 묶음과 무더기는 어떤 힘도 견뎌낸다. 마치 서로 의지한 갈대 묶음을 힘센 사람도 쉽게 부러뜨릴 수 없는 것처럼.

지금-여기가 맨 끝이라고 여기는 때가 맨 처음이다. 끝은 맨 앞이다. 끝에서 생겨난다. 실뿌리에서 생겨나 잔가지와 우듬지가 된다. 새순에서 생겨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아, 이제 이곳이 끝이구나 라고 자신을 아주 허물어버리지 않는다면 거기 그때가 맨 앞이 된다. 그리고 매 순간 놀랍고, 기적과도 같은 진전이 이뤄진다.

개개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낱낱의 존재들이 동일하게 소중하다. 이문재 시인은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라고 썼다. "우리는 모든 경우에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고, 맨 앞이고, 당당한 정면이다." <경향신문>에 이 시를 소개한 문태준 시인의 덧붙임도 공유한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여기서 나오는 'Carpe Diem'이라는 이름의 와인을 생산하는 Ion Luca가 몰도바 농림부 장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전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와인트로피에서 만난 심사위원이다. Carpe Diem이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 <송가>에 나오는 말인데, 1989년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문구이다. 배우 로버트 윌리엄스가 미국의 한 사립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존 키팅 선생 역을 맡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라는 경계에 서 있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장면 때문이다. "카르페 디엠! 이 날을 잡아라. 너희들의 삶을 비범(非凡)하게 만들어라!" Carpe Diem을 영어로는 "Seize the day"로 번역된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로 '현재를 즐겨라'로 사용하는데, '현재를 잡아라', '현재에 충실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존 키팅 선생이  Carpe Diem을 이야기하면서, '삶을 비범하게 만들어라'는 말은 Carpe Diem을 실천해야 한다는 충고이다. 왜냐하면 비범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나 질투가 없기 때문이다. 비범하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비범이 마음 속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의 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만들어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비범하지 못한 범인(凡人)은 이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설령 들린다 할지라도  이를 무시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이문재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