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은 봄이 기지개를 켜는 때이다.

318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3월 5일)
1.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제철에 있다면 계절마다 '아는 행복'을 다시 느끼는 거다. 봄에는 봄에 해야 좋은 일을 하고, 여름에는 여름이어서 좋은 곳에 가는 것이다. 제철을 즐기는 거다. 제철 과일이 있고 제철 음식이 있는 것처럼 제철 풍경도 있고 제철에 해야 좋은 일들이 많다. 제철은 '알맞은 시절'이란 말이다. 장마가 지나면 수박은 싱거워진다. 때를 지나 너무 익은 과일은 무르기 시작한다. 다 제철이 있다. 알맞은 시절을 산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촘촘히 느끼며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챙겨야 할 기쁨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 보는 일이다. 비 오는 날과 눈 내리는 날 어디에 있고 싶은 지 생각하며 사는 것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거다.
2.
올해는 김신지 작가가 보여준 연례 행사를 따라가 볼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내년에는 나 만의 "제철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러면 나 만의 일상에 나만의 '기다려지는 일들'이 쌓일 것이다. 작가의 아이디어처럼, 나도 '제철'의 단위를 사계절이 아닌, 24 '절기(절기)'로 여긴다. 한 달에 두 번씩 이다. '절기'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한 해를 24로 나눈, 계절의 표준이 되는 것', 더 나아가 '한 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이다. 그래 지난 3월 3일 대체 휴일날에는 통영에 '도다리쑥국'을 먹으러 다녀왔다.
도다리는 귀한 생선이다. 남해안 어민들은 ‘문치가자미’를 '도다리'라 부른다.

도다리쑥국/조명희
언니,
우리 통영 가요
첫눈 오는 날 아는 동생이 통영에 가잔다 생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도다리쑥국을 먹잔다
그 사람은 일 년에 한 번 꼭 통영엘 간대요
나는 통영에 여러 번 가 봤고 중앙시장에서 도다리쑥국을 먹었고 함께한 그 맛을 이제는 잊을 만한데
언제 갈까?
동생은 이른 봄에 가자 하고
나는 겨울 가기 전에 가자 한다
언니, 그거 알아요?
가자미를 입에 넣고 국물을 뜨면 입안에 바다가 요동친대요 그것도 쑥 향으로
그 사람이 그랬어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과
이미 끝장난 사람 둘이 앉아 통영에 가자 한다
도다리는 한쪽으로 눈이 쏠려 있다는 걸 알 듯 우리도 이제는 사람에 대해 알 때가 됐는데

3.
오늘은 3월 5일로 24절기 상 세번째 절기인 '경칩(驚蟄)'이다. 놀랄 경(驚)자에 겨울잠 잘 첩(䠟)가 합쳐진 거다. 경칩은 '개칩(啓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풀과 나무들에 물이 오르고, 겨울 잠을 자던 개구리 등 동물들과 벌레들이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천둥소리에 놀라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는 시기이다. 옛사람들은 경칩 무렵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그 소리를 듣고 놀라 깨어난다고 생각했다. 하늘의 요란한 알람에 하품하며 땅속에서 줄줄이 나왔을 벌레들과 개구리가 그려진다.
경칩은 자연을 면밀히 관찰해 지은 이름 같다. 이 무렵에는 대륙에서 한랭전선이 남하하며 대기층이 불안정해진 탓에 천둥이 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우수 절기 이후 낮에는 녹았다가 밤에는 다시 얼기를 반복하던 땅이 더 이상 '얼지 않는' 것도 경칩 무렵이다. 땅 아래까지 스민 온기는 그 속에서 겨울잠 자던 동물들을 자연스레 깨웠을 것이다. 이런 관찰이 더해져 천둥소리에 놀라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이름을 지게 된 것이 아닐까? 이처럼, 농부들은 집 앞에 심어둔 감나무를 달력 삼아서 농사를 활용했다고 한다. 빈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기 시작하면 3월, 조그만 초롱 등불 같은 꽃이 피면 5월, 감이 먹음직스럽게 익으면 10월이라고 여겼다 한다.
봄은 영어로 스프링(Spring)이다. 용수철도 철자는 같다. 봄과 스프링, 두 단어 모두 솟아 오른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봄은 솟아 오르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 솟아 오르는 대표적인 건 새싹이다. 봄이 오면 땅속에 있던 씨앗들이 발아해 땅을 뚫고 올라온다. 새싹이 올라오는 건 봄의 전령사 여서다. 쑥도, 냉이도 한 뼘씩 웃자란다. 둔덕과 야산 등지에서 쑥과 냉이 등도 캘 수 있다. 소생의 계절을 맞아 우리의 믿음도 새싹과 같이 솟아 올라야겠다. 경칩이다. 어깨를 활짝 펴고 솟아오르는 계절을 맞이하자.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4.
경칩은 봄이 기지개를 켜는 때이다. 간단하게 말해, 경칩은 '봄의 기지개'라고도 말할 수 있다. '기지개'는 '피곤할 때 몸을 쭉 펴고 팔다리를 뻗는 일; 이다. 손을 머리 위로 하고 몸을 쭉 펴 주면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정신이 든다. 우리는 흔히 '기지개를 펴다'라고 말하지만, 정확하게는 '기지개를 켜다'가 맞다. '기지개'는 이미 펴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어, '켜다'와 함께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기지개를 켜다'는 팔 다리를 쭉 펴는 행위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경기가 바닥을 찍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에서 처럼 '서서히 활동하는 상태에 들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경칩은 봄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때이다.
5.
입춘에 보리 뿌리 점만으로 부족했는지 경칩에는 '개구리 울음 점'을 치기도 했다. 개구리 울음 소리를 '서서' 들으면 그 해는 일이 많아서 바쁘고, '누워서' 들으면 편안하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여겨 흙벽을 새로 바르거나 무너진 담벼락을 보수하고 새 담을 쌓기도 했다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 때 분 갈이를 하는 것도 좋다. 화분에 물도 듬뿍 주고 마른 잎도 정리해준다. 동시에 봄맞이 대청소를 하는 거다.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 동물들이 개울을 찾듯이,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집을 씻겨주는 거다. 따라서 봄 청소는 '집의 기지개'라 할 수 있다. 경칩은 봄이 왔음을 알고 깨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기지개를 켜는 날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깨어나는 풀과 나무와 개구리처럼, 우리들의 봄 기지개는 내내 닫아 두었던 창문을 활짝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올해는 아직 춥다.
경칩 무렵에는 집안을 대 청소하는 거다. 마쓰다 미스히로의 <<청소력>>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행복한 자장(磁場)을 만드는 힘" 이다. 청소는 '비우기'이다. 요즈음 나의 사유를 지배하는 말이 '순환(循環)'이다. 노자의 철학이 강조하는 무위(無爲)와 허(虛)를 강조하는 핵심적 이유는 '허(虛)'가 있어야만 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도 피의 순환에 의하여 몸이 유지되는 생명의 체계이다. 냉장고의 속도 순환의 체계이다. 사실 냉장고는 비어 있을 때만이 냉장고이다. 냉장고는 비어 있을수록 좋다.
이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상이 병들었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 욕망의 재배치 등이 답이 아닐까? 왜냐하면 존재는 소유하는 것으로 정체성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방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욕망을 가지고 욕망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인데, 우리는 욕망을 어떤 특수한 영역에 몰아넣고, 욕망을 우리 삶과 분리시킨다. 우리는 욕망과 삶의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다. 장자는 자유를 위해 이분법을 초월하라고 한다. 그걸 알면서도, 일상에서는 그 이분법이 크게 작동한다. 고미숙은 말한다. 이 이분법을 타파해야, 우리가 욕망과 함께 욕망을 데리고 살면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그러면서 고미숙은 욕망을 에로스로 표현하며, 욕망의 현장이 곧 생명과 삶의 현장, 일상의 토대라는 관점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인간은 에로스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니까 존재 자체가 다 에로스의 총화인 것이다. 그 에로스는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힘이기도 하다. 좀 어렵지만, '비우자'는 말이다. 아무 것도 갖지 말고,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의 힘으로 욕망의 재배치를 하자는 거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을 만들어 내자는 거다. 노자의 말 중에 "반자, 도지동(反者, 道之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되돌아 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는 말이다. 반대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이 도의 움직임, 즉 순환이다. 경칩에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청소는 결국 빈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매년 경칩 때 찾아오는 봄 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거다. 바닥을 쓸고 닦고, 화분을 옮기고,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거나 나눈다. 봄에게 앉을 자리를 내주는 거다.
가장 먼저, 설유화(雪柳花) 한 다발에게 자리를 내주는 거다. '버드나무에 내린 눈 같은 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 마침 서울 다녀오는 길에 한 다발 사올 생각이다. 설유화는 눈처럼 하얀 꽃을 피우기는 하지만, 3월 초에 개화하여 봄의 시작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다.
6.
도다리쑥국을 먹으러 통영에 가는 것은 이른 봄이 좋다. 막 시작하려는 설렘과 다 끝장낸 추억이 한 냄비 속 펄펄 끓는 바다를 떠먹으면 좋겠다. 시작이 끝에 도착하고, 끝장이 다시 시작할 때까지 해마다 통영에 가는 거다. 도다리 눈이 한쪽에 쏠려 있다는 건 얼마나 맹목인가. 삶이란 어쩌면 맹목이 구원해 주는 건지도 모른다. 가재미를 한자어로는 비목어(比目魚)라 한다. 말 그대로 하면, '눈이 나란한 고기"이다.
가재미/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 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비목어(比目魚)는 머리 한쪽으로 눈 두 개가 몰려 있는 납작한 몸의 가자미나 넙치, 광어와 같은 물고기로 눈이 한 쪽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반대편을 잘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서로 반대편에 있는 눈이 달린 물고기와 붙어 다니며 서로 못 보는 부분을 도와 준다. '좌(左)광우(右)도'라는 말이 있다. 눈이 좌측에 있는 것은 광어(넙치), 우측에 있는 것은 도다리(문치가자미)'라는 뜻이다.
바다의 비목어(比目魚), 하늘의 비익조(比翼鳥), 땅의 연리지(連理枝)는 한 의미의 세 단어이다. 세상을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아가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