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은 개구리가 봄이 오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다는 경칩이다. 거리는 매화 꽃이 피기 시작했다. 매화는 봄이 왔음을 먼저 알리는 꽃 중의 하나이다. 매화(梅花) 하면 생각나는 것이 퇴계 이황이 자신의 좌우명을 삼았다는 다음 구절이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일생에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도 비록 와인장사를 하지만, 매화처럼, 함부로 그 향기를 팔지 않을 작정이다.
매화의 이름은 다양하다. 매화가 피었는데 그 꽃 위로 눈이 내리면 설중매(雪中梅)이다. 이 설중매는 청주에 매실을 넣은 리큐어 이름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한다. 달 밝은 바람에 보면 월매(月梅)이다. 왠지 요정집이 생각난다. 옥같이 곱다하여 옥매(玉梅)도 있다. 향기를 강조하면 매향(梅香)이 된다. 이른 봄에 처음 피어나는 매화를 찾아 나서는 것을 심매(尋梅) 또는 탐매(探梅)라 한다. 내 바로 위의 누나가 아눈시아따 수녀이신데, 본명은 한매(漢梅)이다. 매(梅)자가 들어간다. 매화꽃만 보면 누나 수녀님이 생각난다. 우리 형제는 나처럼 한(漢)자가 돌림이다. 그 수녀님이 예수님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다고, 경기도 안성에서 독거노인들의 식사를 만들어 배달하는 일을 자처하셨다. 멋지다. 바빠서 나보다 힘든 분들을 돕지 못한다면 후원을 하면 된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곳에 후원하는 계좌 수가 그 사람의 인격으로 여긴다. 연대정신이라 본다. 나도 어제 딸과 같이 후원계좌에 입금했다.
나무 측면에서 꽃을 강조하면 매화나무,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梅實) 나무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는 절이 전남 순천에 있는 선암사이다. 퇴계 이황처럼, 나도 "매화는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을 내 삶의 지표로 삼는다. 최근에 나를 아프게 하는 무리들이 있어 이 구절을 더 마음 깊이 새긴다. 사람들은 이 문장을 놓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의지와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삼지만, 나는 그만큼 진지하지는 않다. 자존감 문제일 뿐이다. 어쨌든 매화의 기품과 절개를 생각하는 아침이다.
견디다/천양희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황새와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는 낙타와
일생에 단 한 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새와
백년에 단 한 번
피우는 용설란과
한 꽃대에 삼천 송이 꽃을 피우다
하루 만에 죽는 호텔펠리니아 꽃과
물 속에서 천 일을 견디다
스물다섯 번 허물 벗고
성충이 된 뒤
하루 만에 죽는 하루살이와
울지 않는 흰띠거품벌레에게
나는 말하네.
견디는 자만이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가 그토록 견디는가
오늘 아침은 이른 조용한 새벽에, 세계일보 논설위원이신 배연국의 블로그 <행복편지>를 연속적으로 읽었다. 거기서 읽은 내용이다. 위로가 된다. "카프만 부인이 자신의 책 ‘광야의 샘’에서 이런 경험을 털어놓았다. 어느 날 그녀는 누에고치에서 번데기가 나방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바늘구멍만한 틈새에서 몸 전체가 비집고 나오려고 한나절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안쓰러운 생각에 가위로 구멍을 넓혀 주었다. 커진 구멍으로 쉽게 빠져나온 나방은 공중으로 솟아오르려고 몇 번을 시도하더니 결국 날지 못하고 땅바닥을 맴돌았다. 그녀는 나방이 작은 틈새로 나오려고 애쓰는 시련을 거치면서 날개의 힘이 길러지고 물기가 알맞게 말라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우리는 누구나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고통을 싫어하고, 기쁨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고통이 없고 기쁨만 있다면 인간의 내면은 절대 여물 수 없다. 나방처럼 난관을 헤쳐가는 과정에서 생존의 힘을 기를 수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이다. 삶은 휘황찬란한 마법에 있지 않다. 오늘 하루 내 삶을 당당히 살았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달팽이도 자기 속도대로 걸어간다.
우리는 성공담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성공 이후 행복했는지에 대한 생각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소중한 일상에 대해선 살피지 않는다. 외적 기준만으로 '위너'와 '루저'를 판정한다.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 '성공이란 무엇인 가'에서는 성공에 대해 다양한 정의를 내린다. '자주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사람들에게 칭송 받고 아이들의 애정을 얻는 것, 아름다운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남에게서 좋은 장점을 발견하는 것 (…)"이라 했다.
"시골 쥐와 도시 쥐"로 알려진 <이솝우화> 243장의 원래 제목은 <들쥐와 집쥐>이다. 나는 들 쥐처럼 살기로 마음 먹었다. 가난한 시골 쥐가 때깔 좋은 부자 도시 쥐를 부러워한다. 막상 도시 쥐 집을 방문해보니 맛있는 것은 많을 망정 사람이 들어오면 숨느라 바빠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시골 쥐는 이를 보고 자기 집이 더 낫다며 돌아간다. "친구여, 잘 있게. 자네나 배 터지게 먹으며 큰 즐거움을 누리시게 나. 많은 위험과 두려움을 감수하면서 말일 세! 가련한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면서 아무 두려움 없이 보리와 곡식을 갉아먹으며 살아갈 것이네."
매주 금요일은 동양 고전을 공유하기로 했다. 오늘은 <장자>에 나오는 두 가지 이야기를 공유한다. 하나는 들꿩의 즐거움과 심재(心齋, 마음 굶김)를 이야기를 한다. 어제부터 <장자> 함께 읽기를 다시 시작했다. 우리 동네 마을 커뮤니티 공간 "이음"은 밝고 따뜻하고 쾌적하다. 어제는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tistory.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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