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각자의 삶이 다르기에 인생의 속도와 방향도 모두가 다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3. 4. 16:36

318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3월 4일)

어제는 눈이 섞인 비가 내렸다. 봄비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어쨌든 비는 자기 차례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이다. 여름 비에 열매들이 튼실해 지고, 가을 비에 나뭇잎 보내고, 훤하게 벗은 나무에 결을 주는 겨울 비 내리듯이, 봄비가 내리면, 만물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봄은 '보기' 때문에 봄이라는 이가 있다. 그러니까 이 봄비가 그치면, 세상 만물이 더 잘 보일 것이다. 새싹을 기르는 봄비는 꽃의 부모라고 한다. 봄비를 꽃을 재촉하는 비란 뜻의 '최화우(催花雨, 꽃을 재촉하는 비)'라고도 한다. 어제는 이 비와 함께 남도 여행 제2탄을 했다. 그 이야기는 내일로 넘긴다.

1.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에는  ‘스프링 벅(spring buck)’이란 산양이  살고 있다.  평소에는 작은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점점 큰 무리를 이루게 되면 아주  이상한 습성이 나온다고 한다.  무리가 커지면 앞에 있는 양들이  풀을 먹어버리고  결국 뒤쪽에 따라가는 양들이 뜯어먹을 풀이 없게 되자 좀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러면 다시 제일 뒤로 처진 양들은 다른 양들이 풀을 다 뜯어먹기 전에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모든 양들이 풀을 먹기 위해 경쟁적으로 앞으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면  앞에 있는 양들은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더 빨리 내달린다.  앞에서 뛰니 뒤에서도 따라 뛰고 그러다 보면 모두가 필사적으로 달음박질을 한다.  결국 풀을 뜯으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오로지 다른 양들보다 앞서겠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뛰게 된다.  그렇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계속 뛰다가 절벽을 만나면  그대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2. 
우리는 간혹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고민 없이 그저 남들처럼 되기 위해 남이 달리면 나도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릴 때가 있다.  그러나 각자의 삶이 다르기에 인생의 속도와 방향도 모두가 다르다. 중요한 것은  ‘남이 얼마나 잘 달리느냐’가  아니라 ‘나는 잘 가고 있는가’이다.  꽃은 꽃 그대로가 아름답다. 너도 너 그대로가 아름다움인데, 왜 다른 사람에게서 너를 찾으려고 하는가?  점 하나에 웃고 우는 것이 인생이다. '나'의 점을 바꾸면, '너'가 되고, '남'에서 점 하나만 빼면, '님'이 되는 신기한 세상이다. '고질병'에 점 하나를, '고칠 병'이 되니, 점 하나가 그렇게 중요하다. 무심코 찍은 점 하나가 의미와 목적을 바꾸듯, 용기를 내 무심코 바꾼 생각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 '자살' 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고, '역경'을 거꾸로 읽으면, '경력'이 되고, '인연' 을 거꾸로 읽으면, '연인'되고, '내 힘들다'를 거꾸로 읽으면 '다들 힘내'가 된다. 모든 것은 생각에 달려있지만, 꽃은 그마저 "분별"하지 않고 꽃을 피운다.

꽃이 찬란한 것은 늙지 않기 때문이다. 필 때 다 써 버리기 때문이다. 꽃의 피 속에는 주름의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눈부신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찬란한 착란이다.  지금을 탕진하는 것들은 황홀한 향기를 내뿜는다. 태양이 저물 때도 황홀한 이유다. 꽃이 만발한 봄이다. "꽃의 생애가 순간"인 것처럼, 오늘도 향기로운 하루를 위해 "힘을 내!", "봉 꾸라쥐"이다. 


늙은 꽃/문정희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3. 
프랑스 학생에게 ‘엘리트 코스’는 하나의 선택일 뿐이지, 그것에 굳이 목매지 않는다. 프랑스의 대학은 평준화되어 있어서 고교를 졸업하고 바칼로레아를 치르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명문대나 학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파리 및 수도권 소재 13개 대학들에 매겨져 있는 파리 1대학부터 13대학까지의 번호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하며 (미터법의 원조인 프랑스인들은 무엇이든 숫자를 붙여서 호칭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사이에 어떤 서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파리와 지방의 대학들 간에 격차나 우열을 따지는 것도 아무 의미 없다. 그러나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 간에는 분야별로 철저하게 순위가 매겨지며, 여기에 진학하고자 하는 소수 상위권 학생들 간의 입시경쟁 또한 치열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랑제콜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프레파(CPGE)’, 즉 예비학교들 또한 해마다 어느 그랑제콜 합격생을 몇 명이나 배출 했느냐에 따라 다양한 순위들이 발표되고는 한다. 순위가 높은 '프레파'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 역시 치열한데, 이는 다시 어느 고등학교가 어느 '프레파'에 학생들을 많이 보냈는가를 평가하는 순위표로 이어진다. 이 ‘프레파’라는 것이 알고 보면 꽤나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고교 졸업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이 다음 단계의 고등교육 기관에 진학하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얼핏 듣기에 우리나라 대학입시학원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으나, 실은 전혀 다르다. 일단 '프레파'는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국공립이며, (그 뿌리는 나폴레옹이 수립한 국가교육체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업료도 거의 없거나 의료보험료 정도 수준이다. 즉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의 일부로서, 우리 나라에서 처럼 개개인이 더 나은 학벌과 기회를 얻기 위해 개인의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나라와 사회와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을 국가에서 비용을 들여 선별하는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프레파'의 학습 강도는 우리나라 고3 수험생들의 그것을 가볍게 능가할 정도이다. 학생들은 2년 내내 매주 35~45시간의 수업과 4~6시간의 지필 고사, 2~4시간의 구두시험을 견뎌내야 한다. 물론 그 외 남은 시간은 엄청난 양의 숙제로 채워진다. 

4. 
프레파 과정을 마친다고 해서 모두가 그랑제콜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년여의 혹독한 수험생 생활을 마친 학생들은 수주에 걸쳐 일련의 필기 및 구두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이에 따라 매겨진 전국 단위의 석차를 들고 각자 원하는 그랑제콜에 복수지원을 할 수 있다. 이 그랑제콜들은 공학, 상경 그리고 행정 등 각 분야에 따라 철저히 서열화되어 있으며,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많아야 불과 수백 명에 불과한 소수정예 학생들만 선발한다.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은 '프레파'에서 1년 더 공부하거나 (우리나라의 재수생과 비슷한 처지이다) 일반 대학의 졸업반에 편입할 수 있다. 명문 그랑제콜에 합격한 학생들은 최고의 교수 진들 로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게 되며, 재학 기간 내내 등록금은 커녕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아가며 공부할 수 있다. 사실 상 이미 공무원이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학습량을 소화해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혹독한 교육과정을 거쳐 사회에 첫발을 들이게 되는 그랑제콜 출신 엘리트들은 정치와 재계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의 고위직에 진출하게 된다. 예를 들어,
- 프랑스 상위 40개 대기업을 망라하는 리스트인 ‘CAC40’의 최고경영자 면면들을 보면, 흔히 ‘그랑제콜 위의 그랑제콜’로 불리는 에콜 폴리테크닉(Ecole polytechnique)과 상경 계열 최고 명문인 HEC(Ecole des hautes etudes commerciales de Paris) 출신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 나머지는 폴리테크닉 못지않은 명문이지만 고급 공무원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어 재계보다는 정치와 관료계 진출이 더 활발한 ENA(Ecole nationale de l’administration)를 비롯한 기타 상위권 그랑제콜 동문들이 채우고 있다. (전, 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프랑스의 장관이나 정치인들은 대부분 ENA 출신들이다)

5. 
그렇다고 해서 이를 굳이 학벌주의라고 치부하기는 곤란한 것이 우리가 ‘학벌’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리게 마련인 동문끼리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폐쇄적인 ‘그들 만의 리그’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능력 최우선주의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프랑스인은 이런 엘리트들의 삶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그냥 ‘다른 삶’으로 여긴다 고나 할까? 특정 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들에게는 일반 대학 출신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소위 ‘출세’의 탄탄대로가 펼쳐지는데도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이고,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무엇 하나 ‘당연한’ 것으로 넘어가는 일이 없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유일한 국민적 관심사라 할 만한 나라에서 이는 놀라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프랑스인들이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며 부러워하기보다 철저히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고를 하도록 교육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자면, 뛰어난 자질과 좋은 머리를 갖고 태어나서 남들 놀 때 열심히 공부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국가의 사회와 경제를 이끌어 가는 것에 대해 특별히 거부감을 갖거나 하지 않는다.

6. 
프랑스인들에게 엘리트의 길은 타고난 재능에 의해 좌우되는 면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선택의 문제로 본다. 집안이나 배경 등도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닌 듯하다. 평범한 프랑스 인들은 다음과 같이 반응을 보인다. “물론 그들은 나보다 돈도 많이 벌고, 더 많은 성장 기회와 대우를 받고는 하지.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잖아. 가족과 보내는 시간들 이라든지, 업무 시간 외에 취미에 몰두할 수 있는 여유 라든지 하는 것들. 나는 그런 것들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그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해서라도 조직을 이끌고 성과를 내야만 하겠지. 마침 그들이 그 어려운 짐을 떠맡겠다고 하니 고맙지 뭐 야.” 프랑스 교육과 이에 기반을 둔 사회 시스템은 단순히 평준 화니 서열 화니 학벌이니 하는 걸로 우리나라와 비교하기에는 배경이 되는 철학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소수의 엘리트 교육 기관과 다수의 평준화 대학으로 구분되어 있는 프랑스식 고등교육 시스템은, 적어도 전 국민이 입시에 매달려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하며 살아가게 하지는 않는다는 면에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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