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건괘> 이야기를 계속한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2월 27일)
어제에 이어, <<역경>>의 <건괘> 이야기를 계속한다. 잠룡의 시기를 거치면, 이제 현룡(見龍)으로 변한다. 현룡이란 물 밖으로 몸을 드러내 활동하는 용이다. <건괘>의 九二와 九三에서는 현장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해야 함을 강조한다. 먼저 구이의 효사는 이렇게 말한다. "九二는 見龍在田(현룡재전)이니 利見大人(이견대인)이니라." 용이 세상에 나와 밭에 있으니, 큰 사람을 봄이 이로울 것이다. 여기서 밭이란 현장이다.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아직 높은 지위에 오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현룡이 밭에 있다고 했으니 부지런히 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고 곡식을 거두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수확은 더 나은, 배울 수 있는 사람, 즉 대인을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배워야만 성장할 수 있다. 큰 배움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남으로 써만이 도약이 이루어지니, "이견대인(利見大人)"하여야 한다는 거다. 이 말은 <건괘> 6효를 통해 九二와 九五에만 나타난다. 인간(人間)은 어디까지나 '간(間)'의 존재이며 인간됨의 관계망을 떠나 고립될 수 없다. 사람은 아무리 출중해한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대인을 만나지 못하면 위축되고 실수를 범한다. "이견대인"의 핵심은 "견(見)"에 있다. "견"은 "만남'이다. 이 만남의 주체는 현룡이다. 만남을 이룩할 줄 모르는 현룡은 용이 아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혼자 크지 않는다. 여기서 "대인(大人)"이란 억센 젊은이의 뻗치는 양기를 다스려 그를 제목으로 다듬어갈 수 있는 지혜로운 스승이나 보필해주는 재상을 말한다.
<건괘>의 九三은 "九三은 君子(군자)가 終日乾乾(종일건건)하야 夕惕若(석척약)하면 厲(려)하나 无咎(무구)리라"이다. 도올의 해석을 공유한다.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자기 삶이 위태로운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루 종일 매일매일 자강불식(자강불식)하는 자세로 씩씩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君子終日乾乾). 종일건건(終日乾乾)의 '건건(乾乾)'은 '건건(健健)과 통한다. 저녁에조차도 항상 계구(戒懼)하는 자세로 조심스럽게 지내야 한다(夕惕若). 그렇게 하면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厲), 질병, 재해, 죄과와도 같은 허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無咎)."
九三은 하괘의 제일 꼭대기이므로, 上九, 항룡의 자리와 같이, 위험한 포지션이다. 절벽 낭떠러지에 휘말린 듯한 자리이다. 여기서 척약(惕若, 두려워하는 삶의 자세_하지 않고 까불다 가는, 젊은 나이에 의식없이 방황하다 골 병들어 죽는 재벌 집 자식들 꼴이 되고 만나고, 도올은 말한다. 아직 하늘에 오른 존재도 아니면서 이마에 '용'이라고 써 붙이고 다닌다고 해서 용 구실을 할 수 잇는 것은 아니다. <건괘>는 첫째 효에서 셋째 효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용이라고 주장하지 말고, 용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력과 덕을 꾸준히 닦아온 사람은 이를 바탕으로 하루 종일 굳세게 사업을 이끌어간다. 저물 녘에는 자기가 제대로 일을 추진했는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애썼는지 반성한다. 자기가 하는 일을 함부로 쉽게 여기지 않고 살얼음을 걷듯 경계심을 잃지 않는다. 이럴 수 있다면 크게 잘못될 일이 없을 것이다.
잠룡의 시기를 벗어나 밑바닥 현장까지 거쳤지만 억센 기질을 가진 이 군자는 하루 종일 씩씩하고 활기차게 실천해야 한다. 이를 "종일건건"이라 표현 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석척약"할 것을 요구한다. 즉 '저물 녘에 삼가 돌이키는 것'이다. "종일건건"하는 군자는 매우 강력한 추진력으로 어떤 조직이나 사업을 이끌고 가는 리더이다. 이렇게 추진력이 강한 인물들은 대체로 잘 돌아보지 못한다. 이런 캐릭터들은 추진력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석척약"의 시간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강건함만 믿고 앞만 보고 달린다면 자신의 내면도 황폐해지기 때문이다. "석척약"은 <<중용>의 제1장을 소환한다. 참 좋은 구절이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脩道之謂敎(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부여한 것을 일러 성(性)이라 하고, 그 性대로 따르는 것을 일러 도(道)라 하고, 道를 닦는 것을 일러 교(敎)라고 한다.
道也者(도야자) 도라고 하는 것은
不可須臾離也(불가수유리야)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으며
可離非道也(가리비도야) 떨어질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是故君子(시고군자) 이러하므로 군자는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불도)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경계하고
恐懼乎其所不聞(공구호기소불문)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걱정해야 한다.
莫見乎隱(막현호은) 숨은 것처럼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幕顯乎微(막현호미) 미세한 것처럼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故君子愼其獨也(고군자신기독야)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는 것을 삼간다.
喜怒哀樂之未發(희노애락지미발) : 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은 것
謂之中(위지중) : 이것을 <중>이라 하고
發而皆中節(발이개중절) : 나타나되 다 절도에 맞은 것
謂之和(위지화) : 이것을 <화>라고 한다.
中也者(중야자) : <중>이라고 하는 것은
天下之大本也(천하지대본야) : 천하의 큰 근본이고
和也者(화야자) : <화>라고 하는 것은
天下之達道也(천하지달도야) : 천하에 통용되는 도이다.
致中和(치중화) : <중화>를 이루면
天地位焉(천지위언) : 천지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萬物育焉(만물육언) : 만물이 자라난다.
나는 여기서 말한 군자라는 말대신에, 도올처럼, "계급적 성격을 피하기 위해", "사람다운 사람"으로 읽고 싶다. 도올의 다음 문장이 멋지다. "우리의 인생은 어차피 시간 속에 던져진 한판(장, 장)이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우리는 생장수장(생장수장)의 사계절을 거친다. 그러나 그 가정에는 온갖 타자(타자)의 시간들이 겹쳐 있다. 그 시간들은 나의 삶의 카이로스를 형성한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역(역)은 변화이다. 그것은 시간인 동시에 공간이다. 그 시공연속체 속에 나의 좌표를 알아야 한다. 6효는 그 좌표들의 대명사이다. 건괘와 곤괘는 특정인의 특정한 사람에 물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의 시공간의 디프 스트럭쳐를 깨우쳐주는 상징체계이다." 그래 <<주역>>은 읽을수록 더 흥미롭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때는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빨리 가는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사람, 영화, 책, 음악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은 왜 그토록 빨리 가버리는지. 그럴 땐 시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진정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아무 것도 계산할 필요가 없으니까. 반면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을 떠맡았을 때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런 시간의 놀라운 주관성을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다.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 분 초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이라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오직 내 마음 속에서 저마다 다른 느낌과 향기로 빛나는 시간이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면 내 시간을 아무리 퍼주어도 아깝지 않은 느낌,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때는 평생을 다 바쳐도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 때, 카이로스의 시간은 유난히 빛난다.
코로나 이후 ‘정말 하고 싶은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나누는 기준이 훨씬 선명해졌다.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법을 배우게 됐기에 카이로스의 시간은 코로나 이후 오히려 늘어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더욱 사교적 만남은 줄이고 나의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온전히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 타인의 삶을 엿보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의 순수한 기쁨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출렁이던 잡스러운 생각들이 사라지고 오직 나 자신과 대면할 용기가 생겼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깨어 있음의 시간이며,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오늘 사진은 목련 꽃이 막 피려고 하는 것을 아침 산책 길에서 만났다. 목련은 카이로스, 즉 때를 기다리고 있다. 목련은 도도하게 피었다가 질 때는 지저분하다. 모가지 부러질 정도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며 뽐내다가 질 때는 남루하다.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복효근)는 것인가? 저 꽃이 피면, 나는, 오늘 아치 시의 시인처럼, "목련 아래를 지날 때는//가만가만//발소리를 죽"이면서 걸을 생각이다.
목련 그늘 아래서는/조정인
목련 아래를 지날 때는
가만가만
발소리를 죽인다
마른 가지 어디에 물새알 같은
꽃봉오리를 품었었나
톡
톡
껍질을 깨고
꽃봉오리들이
흰 부리를 내놓는다
톡톡,
하늘을 두드린다
가지마다
포롱포롱
꽃들이 하얗게 날아오른다
목련 아래를 지날 때는
목련꽃 날아갈까 봐
발소리를 죽인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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