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막연하게 외적 인간이 아니라, 내적 인간이라고 말하면 일상에서 실천하기가 어렵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2. 23. 16:51

311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2월 23일)

1.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자기 과잉의 시대의 인간상인 "빅미(Big Me)"에서 결함을 이겨낸 성숙한 인간으로 겸손과 절제를 겸비한 "리틀 미(Little Me)"로 넘어온 사람을 만나기 싶지 않지만,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아침이다. 이 그림과 함께 내 일상을 점검해 본다. 매우 디테일 하다. 막연하게 외적 인간이 아니라, 내적 인간이라고 말하면 일상에서 실천하기가 어렵다. 꼼꼼하게 읽으며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좋은 항목들이다.
▪ 친절하고 명랑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자기에 대해 떠벌리지 않는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겸양의 덕을 갖추고 있다.
▪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지만 세상에 대고 그 어떤 것도 증명해 보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겸손, 절제, 과묵, 중용, 존중 그리고 온화한 자기 수양을 마음으로 삼는다.
▪ 그들에게서는 일종의 도덕적 희열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든다.
▪ 거친 도전을 받아도 온화하게 응답한다.
▪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침묵을 지킨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성취를 해낸다.
▪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때도 마치 일용품을 사러 장에 가듯 눈에 뛰지 않는 겸손한 태도로 그 일을 해낸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인상적인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서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다.
▪ 그들은 결함 투성이인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기쁨을 보는 찾는 것처럼 보인다. 
▪ 그들은 해야 할 일을 인식하고 그냥 그 일을 실행에 옮긴다.
▪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자신이 더 재미있고 똑똑하다고 느낀다.
▪ 그들은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넘나들면서도 자신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 그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득 그들이 뽐내거나, 독선적으로 굴거나, 확신에 차서 절대로 의견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 언뜻언뜻 내비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신에 해낸 과거의 일을 자랑하지 않는다.
▪ 그들은 강인한 내적 인격을 연마하고, 심오한 깊이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사람의 품격, 즉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다.

2. 
노자가 꿈꾸는 '성인(聖人)'가 맞닿는다. 그들은 다음 여섯 가지를 실천한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이라 본다.
(1) 성인처무위지사(聖人處無爲之事)하고,
(2)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하고,
(3)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하고
(4) 생이불유(生而不有)하고
(5) 위이불시(爲而不恃)하고
(6)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하고, 부유불거(夫唯弗居)하면, 시이불거(是以弗居)하다.

이를 쉽게 말하면, 성인, 즉 자유인은 
(1)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2)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수행한다. 
(3) 모든 일이 생겨나게 하지만 참견하지 아니하고, 
(4) 낳았으면서도 소유하지 않는다. 
(5) 할 것 다 되게 하면서도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  
(6)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을 내가 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공을 주장하지 않기에 이룬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다.

3. 
"처무위지사(處無爲之事)"란 말은 '함이 없는 함'으로 풀어 볼 수 있다. 그래도 '무위'라는 말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런데 도올 김용옥 교수의 설명이 좋다. "'무위'는 '위(爲, 함)'가 부정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명의 최대 특징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살아있음은 그 자체로서 위(爲)가 되는 것이다. 즉 무엇인가 행동해야 하는 거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위(爲), 즉 '함(doing)'의 존재이다. 그러니까 '무위'라는 것은 '함이 없음'이 아니라. '무(無)적인 함'을 하는 것이다. 생명을 거스르는 '함'이 아닌, 우주 생명과 합치되는 창조적인 '함'이며,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에 어긋나는 망위(妄爲)가 없는 '함'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자는 우리들에게 "무위지사(함이 없는 함)" 속에서 살라고 권유하는 거다. '무위'에 대비되는 '유의', 즉 무엇인가 자꾸 억지로 하려 하지 말고, 내버려두면 저절로 풀려나가게 만드는 삶 말이다.

'무위(無爲)'는 '도'에 따르는 행위이고, 비움을 행하는 것이다. 반면 '유위(有爲)'는 상대적 분별을 따르는 억지 행위이고, 채움을 행하는 것이다. '무위'는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그러함(自然, 자연)'의 '도'를 깨닫고 따르니 만사형통이다. 반면 '유위'는 상대적인 분별의 안경을 쓰고 일을 보고 일을 하니, 힘만 들지 되는 일이 없다. '유위'를 쉽게 말하면, '억지로' '일부러'라는 부사가 붙는 행위들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그렇지 않다. '저절로' 이루어지게 하는 거다.

나는 '무'를 '없음'이라는 명사가 아니라, '지운다', '버린다'라는 동사로 본다. 그냥 없애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비우거나 버리는 거란 말이다. 그러니까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도 새롭게 해석이 된다. '무소유'란 갖지 않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기 위해 버린다'는 적극적인 실천적 의미를 갖는 거고, 또한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 물건의 물성(物性)을 유지시키는 적극적인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4. 
두 번째는 "말이 없음의 가르침(不言之敎, 불언지교)" 하라는 거다. 그러니까 훌륭한 가르침은 '불언(不言)'의 가르침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육이란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자신에게만 있는 고유한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우며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위대하고 창의적인 모든 결과가 출현한다고 믿는다. 밖에 있는 별을 찾아 밤잠을 자지 않고 노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별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자신이 바로 별이라는 것 혹은 자기에게만 있는 자기만의 고유한 별을 찾게 해주는 것이다." 언젠가 최진석 교수의 글에서 읽은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불언지교'이다.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란 말로 알 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느끼고 직접 자기만의 별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름 불러 주기를 통해, 고유한 자신의 이름 앞에서 이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로 등장하는 경험하게 하는 거다. 그러면 피교육자는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말로 하지 않는다. 어떤 행위를 지적하여 교정하도록 말하기 보다는 상대가 스스로 교정하도록, 팩트만 이야기 한다. 행위를 교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의 지시보다는 사실만을 말 해 주고, 스스로 교정하는 기회를 갖게 해주는 일이다.

5.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는 "만물이 쑥쑥 잘 자란다." "그럼에도," "성인은 사(辭)하지 않는다. "이(而)"를 계기로 주어가 만물에서 성인으로 바뀐다. "불사(不辭)"에서 '사(辭)'는 '말씀, 언사(言辭)'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만물이 잘 자라게 하면서도 (성인은) 이래라 저래라 하고 간섭하고 잔소리하지 아니한다'는 거다. 성인은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 말이 없음의 가르침을 해한다)라 했으므로 그 맥락을 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덕경>> 제34장에도 이 말이 나온다. "大道氾兮 其可左右/萬物恃之而生 而不辭/功成不名有/衣養萬物而不爲主(대도범혜 기가자우/만물시지이생 이불사/공성불명유/의양만물이불위주)" 이 문장을, "큰 도는 범람하는 물 같다. 좌로도 갈 수 있고, 우로도 갈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은 대도에 의지하여 생겨나는데도 대도는 이래라 저래라 말로 간섭하지 아니한다"의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도올은 '사(辭)'가 '사퇴한다', '사직한다', '사양한다'는 거절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만물을 잘 자라게 하는 데, 대도(=성인)는 그들이 잘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사양함(멈춤이) 없다."
 
6. 
"생이불유(生而不有)"는 자식을 낳았지만, 그 자식을 소유하려 하지 말아야 그게 도(道)라는 말이다. 내가 자식을 생하였다고 해서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최초로 부모의 생식 세포 염색체의 결합으로 접합체가 이루어지고 세포분열이 계속되어 엠브리오(싹)가 형성되어 태아로 발달해가는 과정을 거치지만 그 모든 생성과정이 고정된 실체의 연속태가 아니며, 수없이 다양한 이견을 파지(把持)해가면서 전개되어 가는 것이다. "생이불유"는 자연의 철칙이고, 만물의 생성 과정의 자연태(自然態)이다. 우리 사회의 부모들은 자녀를 소유물로 대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 란다.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작은 아이'이다. 그저 작을 뿐 성인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초대받아 성인과 종류만 다를 뿐인 불안을 견뎌내야 하는 어린 생명체이다.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모든 아이들은 자율적 인간, 공감하는 시민으로 자라나기를 우리는 바란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제도의 개선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위계적 질서를 걷어내고,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하며 타인과 공감하는 태도의 변화, 일상의 민주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7. 
"爲而不恃(위이불시)"는 '도(=성인)'은 "만물이 잘되어가도록 하면서도 그 되어가는 모습에 기대지 아니한다"는 거다. 여기서 "시(恃)"는 '기댄다', '의지한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는 <<도덕경>>의 여러 장에서 되풀이된다. 제10장에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현덕)". "낳으면서도 나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지으면서도 지은 것에 기대지 않고, 자라게 하면서도 자라는 것을 지배하지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가믈한 덕이라 한다. 제51장에도 똑같이 반복된다. 그리고 제77장에서는 "시이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현현(是以聖人委而不侍,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그러므로 성인은 만물이 자라도록 만들어가며 그 성취에 기대지 아니하고, 공이 이루어져도 그 속에서 처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슬기로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8.
끝으로, "功成而不居(공성이불거)"는 "공이 이루어져도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는 거다. 자신이 공을 쌓고 그 공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해 놓고도 뽐내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무엇을 성취한다 할지라도 그 열매를 독차지하고, 그 성과를 따먹으면서, 그 성과 속에서 안주하는 삶의 태도를 근원적으로 벗어 내버리는 거다. 성인, 자유인은 자기 행동 때문에 누가 잘되거나 무슨 일이 이루어져도 자기의 공을 주장하거나 과시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기의 의식적, 인위적 행위가 아니라, 도에 따라서 저절로 우러나온 자연적 행동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행동인지도 모르고, 그것 때문에 생긴 공이 자기 젓인지도 모른다. 이런 행동 방식, 이런 마음가짐, 이런 초월적 자세를 자진 자유인이 하는 일은 참된 일기 때문에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是以不居, 시이불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유불거, 시이불거(夫唯弗居, 是以不去)"이다. "대저 오로지 공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사라지지 아니한다"는 거다. 세월은 원래 있던 환경을 지우고 전혀 다른 환경을 세워가며 질주해 나간다. 그 동작은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세월은 무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움직이는 세상을 자신의 기억 속에 가두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러므로 살면서,  "성공이 이루어지면, 그 성공을 차고 앉지 말아야 한다"는 노자의 말 "공성이불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 

9. 
인생의 가치는 소유가 아니라, 더 깊은 인격이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끝없는 성숙이다.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은 성공이 아니라, 성품이다. 이 성품이 격이고, 매력이 '카리스마'이다. 그 '카리스마'는 가만히 풍기는 향기와 같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존재가 빛이 나기 때문이다. '카리스마'는 오랫동안 쌓인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된 기분 좋은 향수와 같다. 배철현 교수는 그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을 '격'이 있는 자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살다 보면, 드물게 격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 그런 사람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주위 사람들을 자신의 매력으로 알게 모르게 끌어들인다. 이 매력은, 흉내와 시기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여 오랫동안 오롯이 정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는 길을 내서, 그곳에서 세상을 보라고 주위 사람들을 유인한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각자의 매력을 스스로 찾도록 친절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부탁한다."(배철현) 오늘 공유하는 시 같은 "그런 사람"이고 싶다.

10. 
그런 사람/류시화

봄이면 꽃마다 찾아가 칭찬해 주는 사람
남모르는 상처 입었어도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는 사람
숨결과 웃음이 잇닿아 있는 사람
자신이 아픔이면서 그 아픔이 치료제임을 아는 사람
이따금 방문하는 슬픔 맞아들이되
기쁨의 촉수 부러뜨리지 않는 사람
한때 부서져서 온전해질 수 있게 된 사람 
사탕수수처럼 심이 거칠어도
존재 어느 층에 단맛을 간직한 사람
좋아하는 것 더 오래 좋아하기 위해
거리를 둘 줄 아는 사람
어느 길을 가든 자신 안으로도 길을 내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기 영혼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
내어 주는 사람
아직 그래 본 적 없지만
새알을 품을 수 있는 사람
하나의 얼굴을 찾아서
지상의 많은 발자국 낸 사람
세상이 요구하는 삶이
자신에게 너무 작다는 걸 아는 사람
어디에 있든 자신 안의 고요 잃지 않는 사람
마른 입술은
물이 보내는 소식이라는 걸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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