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이 끝나고 노력에 대해 보장 받는다. 기쁨이 넘친다.

311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2월 19일)
1.
지난 주에는 다시 도반들과 <<주역>>을 함께 읽은 후, 맛있는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어제 부터 제13괘인 <천화 동인> 괘를 읽는다. 오늘은 지난 2월 8일에 다 읽지 못한 마지막 '상구" <효사>를 공유한다. <천지 비> 괘의 마지막 '상구'의 <효사>는 "上九(상구)는 傾否(경비)니 先否(선비)코 後喜(후희)로다" 이다. 번역하면, '상구는 비색함이 기울어지니, 먼저는 비색하고 뒤에는 기뻐하도다'가 된다. TMI 傾:기울 경, 喜:기쁠 희. 비색한 상황의 맨 위에 처하니, 드디어 비색함이 기울어지는 때이다. 앞의 상황은 비색하였지만, 이제 비색함이 사라지니 편안한 웃음이 나온다. 상구에서 편안한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것은 '구사'가 명(命)을 두어 때를 기다리고, '구오'가 나라의 근본이 무너지지 않게 굳게 지켰기 때문이다. "비(否)"의 시절이 기울어간다. 처음에는 막혔으나, 나중에는 기쁠 것이다. 고생이 끝나고 노력에 대해 보장 받는다. 기쁨이 넘친다.
'상구'는 실위, 실중한 자리이다. 하지만 '육삼'과 정응하여 그동안 '초육', '육이'의 '음'을 감화시킨 '구사', '구오'의 노고를 완성한다. 세상의 모든 '음'을 조화롭게 이끌어 폐색의 기운을 모두 없애는데 이른 것이다. '상구'가 동하면 외괘는 <태괘>가 된다. <태괘>는 하루로 보면 해가 기우는 저녁이고, 한 해로 보면 계절이 기우는 가을이다. <태괘>에서 "경(傾)"의 의미가 나오는 이유이다.
'초육'의 '음'으로 시작하여 오랜 시간 불통(不通)과 불교(不交), 절망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소인들의 세상이었기에 대인에게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굳센 마음으로 견뎌냈기에 마침내 기쁨이 넘치는 새로운 날이 도래한 것이다. 인생도 세상도 하루의 해가 저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점에 오른 순간부터 해는 서쪽을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주역>>의 제1괘인 <중천 건> 괘의 '상구'에 나오는 "항룡유회(亢龍有悔)"의 교훈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군자조차 예외가 될 수 없는데, 한낱 소인들의 전성기가 오래갈 리 없다. 눈앞의 먹고 사는 문제만을 좇는 것 같아도 국민은 결국 대의명분을 위해 크게 움직인다. 역사의 변곡점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2.
지는 해가 기울고 계절이 기우는 <태괘> 이후의 시절에 주목해야 한다. 진정한 새날이 열리려면 현실적으로 밤의 과도기를 감내해야 한다. 정부가 바뀐다고 하루 아침에 민중들의 삶이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갈등이 더 심화되고, 더 혼란스러워 진다. 하지만 갈등들은 조정되고 합리적이 해결책들이 도출되면서 모두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수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상구'가 동하면, 지괘는 제45괘인 <택지 췌> 괘가 된다. 사람들 간의 정신적 취합(聚合)을 이야기하는 괘이다. 정신적 취합뿐만 아니라 물질적, 사회적 취합도 아울러 말하는 괘이다. 이제 새로운 시절이 활짝 열리려 하고 있다. 길었던 암흑의 시절을 완전히 마감하고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단 하룻밤의 미명(未明)을 함께 인내하면 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 제13괘 <천화 동안> 괘의 세상에서 만나게 된다. 어제 오전에 도반들과 이 괘를 읽기 시작했다. 동지(同志), 뜻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 서로 신의를 지키고 공동의 목적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거다.
개인의 삶 관점에서 이 효를 읽을 때도 동일하다. 힘들었던 시기가 끝나고 있다. 새날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듯 밝음도 그렇게 열린다. 단숨에 결과를 얻으려 하지 말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성과로 이어지기 전에, 실천은 먼저 마지막 어둠을 잡아먹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3.
'상구'의 <소상전>은 "象曰(상왈) 否終則傾(비종즉경)하나니 何可長也(하가장야)리오" 이다. '상전에 말하였다. 비색함이 마치면 곧 기울어지니, 어찌 가히 오래 가겠는가?'란 의미 이다. 그렇다. <지천태(地天泰)> 괘 구삼효에서도 ‘평평해도 언덕지지 않음이 없고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无平不陂 无往不復, 부평불피, 무왕불복)’라고 했다. 아무리 비색한 상황도 때가 되면 기울어지니, 소인이 득세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던 시절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고생이 끝나고 노력에 대해 보상을 받는다. 기쁨이 넘친다.


4.
'삼음삼양(三陰三陽)' 괘의 체(體)인 <지천 태>괘와 <천지 비> 괘는 모두 '삼음삼양' 괘로 양효와 음효가 각각 내괘 외괘로 나누어져 있다. 주역 64괘 가운데 음이 셋, 양이 셋인 '삼음삼양' 괘는 모두 20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삼음삼양'으로 이루어진 괘는 그 근본 체(體)를 각각 <지천태(地天泰)> 괘와 <천지비(天地否)> 괘에 두고 있다. 때문에 뒤에 나오는 '삼음삼양' 괘를 고찰할 때에는 항상 그 근본 체가 되는 <지천태> 괘와 <천지비> 괘를 염두에 두고 고찰해야 한다.
5.
제11괘였던 <지천 태> 괘는 아홉 구멍(九竅, 구규)이 통해서 살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 정상적인 몸을 가지고 있어 제 구실을 하는데, <천지 비> 괘는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천지 비> 괘를 인간의 몸으로 보면 두 개씩 있어야 할 눈, 귀, 콧구멍이 하나씩 있는 것(☰)이고, 하나 씩만 있어야 할 입과 대, 소변 기관은 구 개씩 있는 것(☷)으로 단사에 "비지비인(否之匪人)"이라고 한 것처럼 사람이 사람 형상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즉 사람답지 못한 비정상적인 형태이다. 그래서 비색(否塞)한 세상이라 말하는 것이다.
6.
'비(否)'는 조직의 윗사람과 아랫사람 의견이 엇갈리는 시기를 의미한다. 동상이몽(同床異夢)에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고 대립각을 세울 때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합리적인 이론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으며 사안을 논의한다 해도 발전이 없다. 이러한 시기에는 정론을 피하고 분쟁을 부추기려는 자와 멀리해야 한다. 한편 <<주역>>에서는 리더라면 적극적으로 중재하려는 의지와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구라 고이치의 <<거인들은 주역에서 답을 찾는다>>에서, 비색(否塞)한 상황을 모면하려면 조직에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이 프로젝트를 실시해 수백 개가 넘는 팀을 조사하고 분석한 결과 생산성이 높은 팀은 심리적 안정감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통 부서원의 능력이나 업무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안심하고 발언할 수 있는' 심리적 요소가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었다.
7.
2016년에 구글은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를 통해 성과가 좋은 팀을 추려서 어떻게 그렇게 성과가 좋을 수 있었는지를 조사했다. 핵심은 바로 팀워크(teamwork)에 있었다고 한다. 팀워크란 개인이 아닌 팀(team)이 일을 하는 것(work)이다. 구글의 조사에 따르면, 개인기가 좋은 사람들이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팀워크가 좋은 팀이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당연히 리더는 팀워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한 팀원의 다섯 가지 행동 규범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중요하다고 굳게 믿어야 한다.
▪ 주어진 일이 자신에게도, 조직 전체에게도 중요하다고 믿어야 한다.
▪ 팀의 분명한 목표와 개인의 명확한 역할이 있어야 한다.
▪ 팀원들이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
▪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다섯번 째인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하려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필요한 조건이 있다.
▪ 팀원이 말하는 도중 끊지 말아야 한다.
▪ 팀원이 한 말을 요약해서 다시 말해준다.
▪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흔쾌히 인정한다.
▪ 참석자 전원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 곤경에 빠진 팀원에게 좌절감을 털어놓도록 독려할 수 있어야 한다.
▪ 개인적인 비판을 중지하고 갈등은 공개적 토론을 통해 해소하게 해야 한다.
▪ 팀 전체가 원활하게 정보를 공유한다.
그러면 조직에 다양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드는 메리트도 기대할 수 있다.
8.
심리적 안정감이 낮은 팀은 하나같이 실패를 감추기에 급급하다 보니, 실제로는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반대로 '심리적 안정도'가 높은 팀은 실패에 대한 보고가 많이 누적된 만큼 나중에는 문제에 대비할 수 있어 실수가 줄어들 뿐 아니라 실패를 통해 경험을 쌓는 덕분에 업무의 질도 높아진다고 한다.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son)에 의하면, 심리적 안정감과 관련된 네 가지 불안 요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무리라고 생각하는 불안: 실패나 약점을 인정하지 않거나 실수를 보고하지 않는다.
▪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불안: 궁금한 점이 있어도 좀처럼 질문하지 못한다.
▪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불안: 현실 점검이나 현상 비판을 하지 않거나 의견을 말하지 않게 한다.
▪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불안: 자발적으로 발언하기 어려워 한다.
9.
다음 문장은 잘 읽어야 이해가 된다. "사람이 성숙해지는 속도는 그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수치의 정도와 비례한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염치를 알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자기 멋대로 살 수 없다. 그것은 삶이 관계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타인은 기쁨의 샘일 때도 있지만 우리 삶을 제한하는 질곡일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을 조종하려는 충동이 우리 자신 속에서 스멀스멀 자리 잡을 때가 있다. 자기 의사를 타인에게 부과해 그가 내 뜻을 수행하는 것을 볼 때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걸 우리는 '권력에의 의지'라 한다. 그 '권력에의 의지'는 분수를 모르기에 언제나 한계를 넘는다. 성경은 이러한 과도함 혹은 오만함이 죄라 말한다. 죄는 남을 해칠 뿐 아니라 자기도 파괴한다. 여기서 서슴없음과 당당함은 자신을 강자로 여기는 이들의 한결같은 태도이다. 이기심과 결합되면 몰염치함으로 변질된다. 몰염치는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그러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조직이나 만남에서 확보한다는 말은 리더십 있는 사람이 조직 구성원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지지자의 사기를 높이는 한 편, 그들의 성장을 돕고자 환경을 정비한다는 의미이다. 절대 우는 소리나 자기 방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선 리더가 솔선해 강한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강인함을 지녀야 한다.
10.
비색(否塞)한 세상을 피하려면 중요한 것이 소통이다. ‘소통’의 뜻 자체가 ‘흐름’이다. '소(疏)'는 疋(짝 필, 발 소)에서 뜻 이자, 음인 소를 빌리고 㐬에서 물이 흐른다는 뜻을 빌렸다. '통(通)'은 나아간다는 뜻의 辶(책받침)과 甬(용 또는 동)의 발음이 합쳐졌다. '소통'의 뜻은 이렇게 ‘막힘 없이 서로 통하고 나아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통'은 '소'를 극복(通)하는 것이다. 소통이란 말은 소외의 구조에 저항하는 것이다. 소통이나 소외의 소자는 '벌어진 틈'이라는 의미이다. '소'의 뜻이 막힌 것을 트이게 하는 것이다. 꽉 막힌 것을 벌어지게 하여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다. 견고한 조직이나 문화를 흔들려면, 우선 틈부터 내야 한다. 인문운동가는 그런 틈을 벌리는 사람이다. 소통과 소외는 서로 그 반대이다. 소외는 트임을 막는 것이라면, 소통은 트임이 뚫리는 것을 말한다. 오늘 공하는 시처럼 말이다.
깨진 항아리/이은봉
당신은 깨진 항아리, 처음부터 깨지지는 않았지 오래전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으며 깨졌지
그렇지 이 집으로 시집와 살면서 깨졌지
당신은 철 테 두른 깨진 항아리
남들은 모르지 당신만 알지
마음까지 금 가 볼품이 없다는 것을
그래도 당신이 있어 부뚜막이 있지 부엌이 있지 이 집이 있지 음음, 내가 있지 세상이 있지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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