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삶을 이끌어가는 건 질문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2. 9. 17:56

310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2월 9일)

어제는 모처럼 동네 분들과 분당에 다녀왔다. 나이가 드니, 가까운 여행도 힘들다. 엉덩이가 아프다. 나이 먹을수록 엉덩이 살이 빠지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수고 다녀왔으면서도 힘들다. 그냥 쉬어야 했는데, 기분이 업(up)되어, 와인을 여러 병 마셨더니 하루 종일 힘들다. 그래도 힘을 내어 <인문 일지>를 이제야 쓴다.

1. 
"순례"라는 말이 오늘 찾은 화두이다. '순례(巡禮)'의 사전적 의미는 "종교상의 여러 성지나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며 참배함"이다.  왜 그런 거룩한 장소를 찾아다닐까? 그 이유는 다양하다. 초자연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서, 감사를 표시하거나, 고행을 하기 위해서, 헌신을 위해서 등의 여러 가지 동기를 가지고 순례한다. 순례자는 순례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구도자(求道者, 길을 구하는 자)로 본다. 삶은 '모른다'에서 시작한다. 내가 왜 지금 하필 여기에 던져져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삶은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앎을 향한 여정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존재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구도자(求道者)가 되는 거다. 길을 찾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도 어떤 점에서 모든 걸 다 알고 싶다고 하는 지식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순례자, 아니 구도자의 길은 타인들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깊은 내면과 만나고, 자신의 마음을 해방시키는 길이다. 오늘도 길을 떠나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 공간을 만나고, 거기서 오는 낯섦, 설렘 그리고 충격들이 일어나가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깨달음을 향해 나가는 순례자이고 구도자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이익을 위해서는 몸을 사리지 않지만 정신의 확충이나 인식의 자유에 대해선 대체로 무관심하다. 가치에 대한 사유, 삶에 대한 탐구는 게을리 한다. 그러나 철학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철학은 내 행동과 일상과의 관계, 나아가 삶 전체를 규정하는 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세계를 보는 눈을 바꿔야 행동이 나오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유행에 휩쓸려서 뭘 하게 되면 금방 식어 버린다.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이든 인생이든 뭔가를 바꾸려면 관점이나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2. 
삶을 이끌어가는 건 질문이다.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좀비가 된다. 노인은 '꼰대'가 된다. 꼰대는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것이다. 단순한 반복은 반 생명, 즉 생명과 완전히 반대이다. 반복되는 똑같은 답을 하지 않으려면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오늘도 질문을 던지며, 한 가지 더 잘 구분하고 분류하며, 알아간다. 자신의 본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사람은 감동 그 자체다. 그는 무엇을 억지로 드러내려고 치장하지 않는다. 요란한 치장은 부담스러운 옷과 같다. 그것은 자신이 진부하고 천하고 공허하다는 증거다. 그것은 내면의 공허를 외면의 요란으로 감추려는 열등감이다. 이런 시끄러운 열등이 우월이라고 광고하는 세상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은 영웅적이다. 카리스마가 있는 자는 구도자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안다. 그곳을 향해 그 누구의 눈치로 보지 않고 정진한다. 그는 마치 졸졸 흘러가는 개울물과 같다. 개울물에 방해란 없다. 커다란 바위, 작은 나무, 약간의 늪지대 등등, 이 모든 것은 오히려 그에게 유일한 길이다. 이것들은 개울물을 정화시켜주고 속도를 북돋아 주는 도움일 뿐이다.

지난 2월 7일에 <모두의질문Q>가 출범했다. 우연히 <유튜브>에 알게 되었다. 평소에 좋아하고 신뢰를 보냈던 AI 전문가인 박태웅 대표가 론칭 하였다. "질문하고 문제를 정의합시다"라는 슬로건으로 우리가 우리 사회를 질문하며 문제를 정의하고 답을 함께 찾아 보자는 제안이었다. "정치가 사고를 치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가 수습하고, 끝나면 정치인들이 그들 만의 리그를 돌리고, 또 정치가 사고를 치면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나가 수습하고, ... 또 정치가들이 그들 만의 리그를 돌리게 둘 건 가요?"  박 대표는 이렇게 질문하였다.  "수습한 사람들이 요구할 권리를 갖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무슨 문제를 안고 있을까요? 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습니까? 세상을 바꿀 질문을 던질 때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음은 유튜브 주소이다. http://www.youtube.com/@오피큐알opqr

다음은 <AI포스트(AIPOST)> 유형동 기자의 글이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국가들 로부터 원조를 받던 최빈국이었다. 비약적 경제성장 덕분에 1996년 선진국 진입의 관문인 OECD에 가입했고, 1999년 공적개발원조를 받은 지 54년 만에 피원조국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됐다. 이후엔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콘텐츠, 반도체, 조선 산업이 강한 나라로 거듭났다. 불과 몇 십 년 만이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단기간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너무 빠르게 선진국이 되다 보니 미처 따라오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느끼게 된다. 사회에 벌어지는 여러 문제를 정의하는 것부터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까지, 우리들은 그동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그저 달려왔다고 볼 수 있다." 

소위 'IT 현자'라고 불리는 박태웅 대표는 지독하게 달려온 대한민국에 "녹서(綠書)"가 필요하다고 봤다. "녹서"는 유럽연합이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사회 전체의 토론을 요청하는 제도다. 조직 구성원들의 다양한 질문과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 박 대표는 그간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의제들을 정의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장을 만들었다. 며칠 전 개설된 유튜브 채널 '오피큐알OPQR'이 그것이다. 박 대표는 영상을 통해 "문제를 정의하는 데서 시작을 한다. 선진국이 됐으니까 선진국 스러운 일을 해야 한다"라며 "문제를 우리가 정의해야 한다. 우리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의장은 "예컨대 저 출산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러나 저출산이 무엇에 관한 문제인 가에 대한 합의된 설명이 없다. 전세 사기 피해자는 대부분 30대 이다. 근본 원인을 놓고 무엇에 관한 문제인 가를 대놓고 토론한 적이 있었냐"라며 "이번에 털고 가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라 말했다. 아울러 박 대표는 영상에서 각종 문제에 대해 합의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세상을 바꿀 질문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라며 '오피큐알' 채널을 소개했다. '오피큐알(OPQR)'은 'O오늘 P필요한 Q질문을 큐레이션해서 R알려드림'이란 말이라 한다.

3. 
인문 정신을 갖는다는 것, '인문적으로 산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완성된 이론을 내면화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 그곳에서 자기 눈으로 발견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는 인문적 활동으로 일상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답하는 삶에서 질문하는 삶으로 건너가는 일이다. 이론을 숙지하는 삶에서 문제에 빠져드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의 <인문 일지>는 시간 여행자인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그 시대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기록한 것들이다. 당시의 상황이 내 영혼에 어떤 공명을 일으켰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나의 <인문 일지>는 편지를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우는 일이다. 이 이야기가 누구를 향해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도조차 없이 걸어가야 하는 인생 길에서 가끔 누군가의 글은 길잡이 구실을 해준다. 삶을 순례로 생각한다. 먹고 사는 일과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일에는 엄정하다. 현실에 투항한 채 되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듯, 후덥지근한 일상 속에 영원을 새기는 일이 순례이다.

4. 
우리의 뇌(특히 좌뇌)는 항상 재잘거린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뭔가를 떠들어 댄다. 그러면서 생각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래 우리는 이 산만함에 맞서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수렴과 집중이다. 요즈음 자신의 힘을 절제하지 못해, 원심력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잔뜩 먹기만 하고, 발산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런 사람은 중독을 유발하여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쾌락, 자극, 새로운 것을 항상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닌다. 쉽게 웃음과 울음을 자아내는 촌극을 감동이라 평가하고, 세네카의 구심력 찬양 문구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건배사로 착각하고  니체의 고통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라는 혜안인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노래방 춤쯤으로 여긴다. 원심력에 경도되어 있는 사람은 힘이 없고 불안하고 산만하다."  배철현의 <매일묵상>에서 읽은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몇 일전부터 나도 산만하다.  반면,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제어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힘이 있다. 그런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원심력의 과시를 희생하여야 한다. 나는 이 구심력과 원심력의 조화를 위해, 아침 마다 <인문 일지 >를 쓴다. 자꾸 밖으로만 출렁이는 생각과 본능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무기력하지만, 그것들을 제어하고 조절하여, 그 힘을 비축하는 사람은 강력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 원심력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힘은 인문 정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점심 시간에 TV를 통해 본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코너 돌기가 우리 선수들의 특기였다. 멀어져 가려는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잡아 주는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다.

5. 
일상을 순례하면서, 다음의 다섯가지 질문을 습관화 한다면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제임스 라이언, 하버드 교육대학원장).
▪ 잠깐, 뭐라고? (Wait, what?)
이 것은 무엇인가 명확히 이해하고자 할 때 하는 질문이다. 내가 진짜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다.
어떤 결론을 내거나,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우리는 반드시 "잠깜 뭐라고?"라고 물어야 한다.
▪ 궁금한데... (I wonder why or if...?)
I wonder why...?는 왜 그런지 궁금해요라는 말이다. 우리가 세상에 호기심을 갖도록 해준다. I wonder if...?는 ...인지 궁금한데요라는 말이다. 세상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생각하게 해준다. 예를 들면, "우리 동네는 왜 냄새가 나지?" 또는 "우리가 이것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한데?" 같은 질문들이다.
▪ 적어도 이렇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Couldn't we at least...?)
이 질문은 상대와 극심한 의견 충돌 때문에 합의된 결론을 내릴 수 없을 때 유용한 질문이다. 방법에는 동의할 수없지만 적어도 그 취지는 공감한다는 것이다. 상대와 의견 차이를 좁혀 일부 합의에 이르도록 해준다.
▪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How can I help?)
인간의 본능 중 하나는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돕느냐"가 '돕는다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 남을 돕고자 한다면,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라고 먼저 겸손하게 묻는 것이 좋다.
▪ 진짜 중요한 게 뭐지? (What truly matters?)
이 질문은 우리의 문제의 핵심, 우리가 믿는 신념의 심장부로 데려가 줄 질문이다. 사는 것의 본질이 무었인지,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를 깨닫게 해주는 질문이다. 특히 새해나, 월 초나, 주 초에 "지금 내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뭐지?"라고 질문해 보면 좋다.

6. 
왜 사는가? 그냥 사는 거다. 사람이 하루하루를 사는 데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사는 거다. 풀도 그렇고, 토끼도 그냥 산다. 그런데 그 삶이 즐거운지 아니면 괴로운지는 자기 마음을 제대로 쓰느냐 못 쓰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왜 사느냐고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가 올바른 질문이다. 괴롭게 살지 말고 즐겁게 사는 거다.  힘들다고 다 괴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면, 힘들지만 즐겁다. 삶을 멋지게 살겠다 느니, 거룩하게 살겠다 느니 그런 생각을 버리고, 그냥 그저 길 옆에 핀 한 포기 잡초처럼 사는 거다. 별 거 아니다. 잘난 척해보야, 누구나 100일만 굶으면 죽고, 코 막고 10분만 놔두면 죽는다. 내 것이라고 움켜쥐고 있지만, 내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하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만, 정말 옳은 지 점검해 봐야 한다. 우리는 사실이지 다 꿈 속에서 사는 거다. 우리가 자기라는 것을 다 내려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마음 속으로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I'm nothing'라 되 뇌이는 거다.  자기를 내려놓고 가볍게 생활하면 결과적으로 삶이 거룩 해진다

거룩이 무엇인가?  '거룩'이란 신의 현존 앞에 서는 이들이 느끼는 경외심과 분리될 수 없다. '신의 현존 앞(코람 데오)'에서의 삶은 타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사랑이다. 거룩함을 종교인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한 오용되기 쉽다. 거룩함은 속된 것과의 구별됨을 의미하지만 그 구별됨이 타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데 활용된다면 악마의 간계에 불과하다. 사람들을 가르는 분리의 담들이 무너진 자리, 적대감이 스러지고 환대의 정신이 배어드는 장소, 사람들이 만나 축제의 함성을 외칠 수 있는 곳이야 말로 신성한 땅이다. 그 땅이 넓어질 때 사회는 건강 해진다.

7. 
문제는 이 거다. 우리는 자신들의 욕망을 신의 뜻이라는 포장지에 감싸곤 한다. 지배의 욕망, 소유의 욕망을 신의 뜻과 결합시킬 때 의로운 전쟁이라는 프레임이 생성되었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자기들을 신의 군대로 인식하는 순간 마주 선 이들은 악으로 규정된다. 자기는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착각이 시작된다. ”상투스, 상투스“('거룩하시다'로 시작하는 성가)는 입만 열면 거룩한 소리로 남 한테 부담을 줄 때 하는 말이다. 맛있게 먹고, 남을 비난하거나 그러지 않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더 겸손하다. 남을 비난하지 말자, 타인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치신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수녀회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 기준은 하나였다.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나요"였다. "판단 보류의 영성"이란 말이 좋다. ”인간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하라"는 거다. "판단보류"라는 말은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이다. 보류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꾸 실수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 비슷비슷하다. "참 너도 노력하는데 뜻대로 잘 안되지"라며 연민의 정을 갖는다. 잘난 사람을 만나면, "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 낫 냐"며 당당해 한다. "십자가에 박혀 나타나는 그런 하느님 말고, 내 존재 안에 달빛처럼 스며들어서[달빛처럼 스며드는 빛의 느낌], 내 마음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친척처럼 열린 것을 나는 하느님의 현존으로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암에 걸려서 고통스럽지만 원망하지 않고 이 아픔을 통해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씩씩하게 견디는 이 힘이 은총이다." 수도의 길은 일상에서의 수도가 중요하다. 깨우침도 대나무처럼 매듭이 있다. 안 풀리면 그렇게 있다가 또다시 맺는, 그런 게 수도이다.

8. 
'나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삶이 가볍다. 그냥 사는 거다. 그러나 즐겁게 사는 거다. 삶이 원래 고통이지만, 그것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고통이란 '고(苦)'와 '통(痛)'을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 '고'란 마음으로 겪는 괴로움이며, '통'은 육신으로 겪는 괴로움이다. 우리는 어느 괴로움이 더 큰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 본다.  '고통(pain)'과 '괴로움(suffering)'은 다르다. '고통'은 어떤 경험이고, 괴로움은 어떤 경험들, 특히 고통에 의해 촉발되는 정신적 반작용이다. 예컨대 괴로움은 고통보다는 즐거운 느낌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 괴로움의 본질은 실체의 거부이다. 다시 말하면 실체의 부정이 모든 괴로움의 뿌리이다, 예컨대, 고통을 경험 할 때는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쾌락을 경험할 때는 그 쾌락이 강해지고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진 않는다는 데서 괴로움이 시작된다.  괴로워 하지 않으려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훈련해야 한다. 계속해서 고통에서 달아나고, 더 많은 쾌락을 쫓아 달려가는 대신, 보다 균형 잡힌 정신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 인생은 균형잡기(밸런싱)라고 나는 믿는다. 고통과 쾌락에 대해 불필요한 괴로움을 일으키지 않고 둘 다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9. 
움켜쥐고 있던 자기를 내려놓고 그냥 가볍게 살면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다. 행복한 삶이란 대부분 조용한 삶이다. 진정한 기쁨은 오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생(生)은 혼자 가는 길이다. 혼자만이 걷고 걸어서 깨달어야만 하는 등산로 같은 것인지 모른다.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 정상에 헬리콥터를 타고 간들 아무도 그가 산을 정복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생(生)은, 지금 힘들고, 지쳐도, 무엇보다 자기 앞에 놓인 시간과 싸워서 각자가 가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고독한 길이다. 

10.
"산다는 것은 그래도 산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오세영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산다는 것은/오세영

산다는 것은 
눈동자에 영롱한 진주 한 알을 
키우는 일이다.
땀과 눈물로 일군 하늘 밭에서  
별 하나를 따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가슴에 새 한 마리를 안아
기르는 일이다.
어느 가장 어두운 날 새벽
미명(未明)의 하늘을 열고 그 새 
멀리 보내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손 안에 꽃 한 송이를 남몰래 
가꾸는 일이다.
그 꽃 시나브로 진 뒤 빈주먹으로 
향기만을 가만히 쥐어 보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그래도 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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