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2. 7. 09:01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2월 7일)

어제 밤에 축구 경기를 보며, 영화 <역린>으로 유명해진 <<중용>> 제23장을 소환하였다.

이 영화에서 강조하는 "지성(至誠)"을 잘 해석해야 한다. 다음과 같이 두 단계이다. (1)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그런 식으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그 일을 정성스럽게 하게 된다. 작은 일에 최선과 그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감독이라는 자에게서 이 "지성"의 부족을 보았다.

<<중용>>의 원문을 읽어 본다.
其次(기차)는 致曲 曲能有誠(치곡 곡능유성)이니
誠則形(성즉형)하고
形則著(형즉저)하고
著則明(저즉명)하고
明則動(명즉동)하고
動則變(동즉변)하고 變則化(변즉화)니
唯天下至誠(유천하지성)이어 爲能化(위능화)니라

이를 해석하면,
숨겨진 진실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
진심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형태가 만들어지고,
형태가 만들어지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명백해지고,
명백해지만 남을 감동시킨다.
남을 감동시키면 변화하게 되고,
변화하면 되어진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다음 문장을 소환했다.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  왜냐하면 풍요로움은 필연적으로 태만을 불러 오기 때문이다. 풍요로움은 필연적으로 태만을 불러온다. 자원이 풍부할 때 우리는  게으름을 피우고 태만해진다. 또한 혁신 의지가 사라진다. 부족한 자원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불태워야 아이디어도 창출된다. 잘될수록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한다.

태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루 안에 자신이 완수해야 할 임무를 모르기 때문에 태만하다. 자신이 정한 목표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시간이 아까운지 모른다.

배철현 교수는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사는 사람은, 자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사람은 자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은 양적인 시간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인 '카이로스'이다"고 말했다.

이 카이로스는 신이 개입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금방 사라져 버리는 기회(機會)로 번역된다. 만일 우리가 그런 기회를 놓친다면, 세월은 태만해져 고통으로 가득할 것이다. 고통이란 가치가 있는 고귀한 일을 찾지 못했을 때 우리를 엄습(掩襲, 뜻하지 아니하는 사이에 갑작스레 습격하는 것)하는 게으름이 된다. 그 게으름을 우리는 태만(怠慢)이라 한다. 태만의 사전적 정의는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없고 게으름을 피움"이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자신들이 태만한 시간을 보내는 줄 모르는 무식이다. 온전히 자신을 자신 답게 만드는 시간에 대해서 태만하지 말아야 한다. 태만하게 보내는 시간 낭비는 모든 죄 중에 최고의 중죄이다.

태만한 사람은 사람들이 곁에서 떠난다. 변화의 완성은 오얏과 복숭아 향기에 취해 많은 사람들이 과수원을 찾아오는 길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에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는 말을 하려는 거다. 오얏(자두)나무와 복숭아나무는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있어 사람들이 모이게 하므로 그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을 갖고 있다. 말 그대로 하면, '복숭아 나무와 오얏(자두)나무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아래 저절로 발자국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나무들은 일 년 내내 자연의 순환에 따라 말없이 조용하게 정진해 왔던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개가 내리나 서리가 내리나, 그 나무에겐 열매를 훌륭하게 맺기 위한 당연한 과정일 뿐이었다. 적당한 시간이 되니, 마침내 탐스런 복숭아와 자두를 맺게 된 것이다. 그랬더니 그 열매를 보고 사람들이 저절로 모이게 되었다.

한문 '혜(蹊)'를 찾아 보면, 의미가 여럿이다. '좁은 길', '지름길', '발자국' 등이다. 혼자 생각해 보았다. 발자국을 남긴 좁은 길이 지름길이다. 지름길은 멀리 돌지 않고 가깝게 질러 통하는 길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을 말하기도 한다. 세상이 너무 어지럽고, 무도(無道)하다.  그래 속상하다. 그러나 복숭아 나무와 자주 나무처럼, 말없이 이런 저런 책들을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하며 보내면, 그 길이 지름길일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도 이 화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빠르고 누군가는 늦되는, 저마다의 생의 속도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조금 앞서간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뒤처졌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기다리고 기다리면 꽃 필 날 있지 않겠는가. 성급하게 뿌렸던 꽃씨에서도 싹이 나오고, 말라 죽었다고 믿었던 나무 그루터기에서도 거짓말처럼 새 가지가 돋아나듯 우리의 미래에 어떤 기적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미리 좌절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는 말자. 우리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런 어수선한 시절에 늘 위로하는 시를 공유한다.

여인숙/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거나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들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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