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자각, 아니 사람됨의 깨달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2. 7. 08:57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2월 6일)

긴 연휴 기간동안, 2020년 <인문 일기>를 다시 읽으며 오, 탈 자를 수정하고, 비문을 찾아 고치고 있다. 이걸 월 단위로 묶어 카톨릭 교회에서 발행하는 <<매일 미사>>처럼 책을 발행하고 싶어서 이다. 문제는 받아 주려는 출판사가 없다. 출판을 도와 주실 분이 나왔으면 좋겠다. 책 제목은 <<나는 빗 속에서도 춤을 추었다>>로 정하고, "사진, 시와 함께하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를 부제로 하였다. 매월 책의 소제목은 이해인 수녀님의 시, <새해의 기도>에서 따올 생각이다. 다음과 같다.
• 1월: 해오름달,
• 2월: 시샘달,
• 3월: 물오름달,
• 4월: 잎새달,
• 5월: 푸른달,
• 6월: 누리달,
• 7월: 견우직녀달,
• 8월: 타오름달,
• 9월: 열매달,
• 10월: 하늘연달,
• 11월: 미틈달,
• 12월: 매듭달

오늘 아침은 2020년 2월 <인문 일기> 수정을 마쳤다. 그러니까 2월의 소제목은 "시샘달"이다. 이 <인문 일기>를 쓰게 된 이유는, 지난 2018년부터 대학에서의 인문학 강의를 떠나면서, 인문학자가 아니라, 나를 인문 운동가로 규정하면서부터 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는 지금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천박한 물신주의와 인간의 가치를 인격이 아닌 기능에서 찾으려 하는 비인간화라는 시대적 질병을 앓고 있다. 이 질병의 약은 '인문정신', 즉 인문적 가치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되살리는 것이다. 그 역할이 인문운동가라 보았다. 인문학자와 인문운동가는 다르다. 인문학자가 과학자라면, 인문운동가는 공학이고 기술이다. 인문학이 이론이라면, 인문정신은 일상에서 구현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사랑의 중요성을 말하면 인문학자이고, 사랑이라는 말이 생활에서 구현되어 친절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문운동가이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자각, 아니 사람됨의 깨달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현대 경쟁 사회에서 우리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삶의 작동 기제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이다. 올림픽에서 외치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를 찾거나, 더 높은 성공의 열차에 타려고 발버둥친다. 과학 기술도 기하급수적인 속도 빨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더 먼 데까지 새 물건을 갖고 달려가기 위해 경쟁한다. 이런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올림픽 정신과 그 반대에 있다.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가까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다가려 하는 노력이다. 그러니까 인문정신은 소외된 자리를 향하는 연민의 마음으로 낮은 곳을 바라보는 일이고, 느긋하게 자신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일이고, 세계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친화력이다. 이런 인문정신이 사회에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선진 사회가 된다. 그러니까 선진사회는 선진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선진문화는 인문정신이 밑에 배어 있어야 한다. 산업화니 민주화는 선진사회를 위한 전제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다시 한 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인문 정신은,
• 소외된 자리를 향하고 낮은 곳을 바라보는 연민(憐憫)의 마음,
• 느긋하게 자신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여유(餘裕)의 마음,
• 세계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공감(共感)의 마음이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은 자기가 처한 조건 속에서 일상의 잡다함이나 자질구레함 속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결정하고 지배할 더 높은 위치에서의 결정을 시도할 수 있는 높이이다. 그런 시선은 '천박하게 놀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인문 운동가가 보는 인문(人文)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로 인간의 동선이다. 인문적 활동이란 인간의 동선을 파악한 후, 그 높이에서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상상이나 창의는 인문의 높이에서 튀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낮은 단계에서는 실현되지 못한다. 인문적 시야를 가지려면, 시선의 높이를 상승시켜야 한다. 그건 전략적 높이에서 자기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 길을 결정하는 일이다. 시선의 높이는 생각의 높이이고, 생각의 높이가 삶의 높이이다.

이런 생각은 <<장자>>와 <노자>>를 읽으면서 나의 인문적 시선이 높아졌다. 특히 <<장자>>는 거의 전부가 이야기나 우화로 꾸려져 있어 읽는 이가 거기에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에게 필요한 깨우침을 얻도록 되어 있다.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적이고 통속적인 고정 관념, 이분법적 사고방식, 거기에 기초한 인습적 세계관이나 종교관의 내적 모순을 우리 스스로 살펴보고 스스로 타파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줄 뿐이다. 우리의 얼굴을 씻겨 주고 단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거울을 들어 주는 셈이다. 그 장자적인 글쓰기가 인문 운동가의 역할이다. 똑같이 거울을 들어 주는 일이다.

거울에 방점을 찍었더니, 이우걸 시인의 <이름>이란 시가 생각났다. <<장자>> 제7편 "응제왕", 그러니까 내편의 마지막에 마음을 거울처럼 하라고 한다. 장자는 지인(至人) - 노자가 말하는 성인(聖人), 내가 말하는 자유인 - 의 마음을 '거울'에 비유한다. 이우걸 시인은 이름이 거울이라 한다. 장자가 말하는 흥미로운 "거울 같은 마음"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이름/이우걸

자주 먼지 털고 소중히 닦아서
가슴에 달고 있다가 저승 올 때 가져오라고
어머닌 눈감으시며 그렇게 당부하셨다
가끔 이름을 보면 어머니를 생각한다
먼지 묻은 이름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내 이름을 써 보곤 한다
티끌처럼 가벼운 한 생을 상징하는
상처 많은, 때묻은, 이름의 비애여
천지에
너는 걸려서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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