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가 꿈꾸는 성인, 내 방식대로 하면 진정한 자유인은 다음 여섯 가지를 실천한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2월 5일)
어제 <인문 일기>에서 노자가 꿈꾸는 성인, 내 방식대로 하면 진정한 자유인은 다음 여섯 가지를 실천한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이라 보았다.
① 무위지사(無爲之事)하고
② 불언지교(不言之敎)하고
③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하고
④ 생이불유(生而不有)하고
⑤ 위이불시(爲而不恃)하고
⑥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하고, 부유불거(夫唯弗居)하면, 시이불거(是以弗居)하다.
이를 한국어 말하면, 성인, 즉 자유인은 "①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②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수행한다. ③ 모든 일이 생겨나도 참견하지 아니하고, ④ 낳으면서 소유하지 않는다. ⑤ 할 것 다 되게 하면서도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 ⑥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을 주장하지 않는다. 공을 주장하지 않기에 이룬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중에서 어제는 ② 불언지교(不言之敎,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③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 ④ 생이불유(生而不有)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만물(萬物)을 도올은 성인(聖人), 도(道)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성인은 도의 모든 덕성을 구현한 자이며 또 만인, 만물의 모범이 되는 자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도올은 위의 세 문장,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 생이불유(生而不有), 위이불시(爲而不恃)"에서 '언(焉)'에 방점을 찍었다. 이 말은 "모든 일이 생겨나도 참견하지 아니하고, 낳으면서 소유하지 않고, 할 것 다 되게 하면서도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는다"는 거다. 도올에 의하면, 중간에 낀 "언(焉)"이 "어기(語氣, 말의 기운)의 흐름을 정돈(停頓, 잠깜 멈추게 한다)시키는 기능"이라는 거다. 어기를 멈추고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거란다. 그러니까 "만물이 쑥쑥 잘 자란다." "그럼에도," "성인은 사(辭)하지 않는다. 이(而)를 계기로 주어가 만물에서 성인으로 바뀌다는 거다.
"불사(不辭)"에서 '사(辭)'는 말씀, 언사(言辭)라는 뜻이다. 구러나까 "만물이 잘 자라게 하면서도 (성인은) 이래라 저래라 하고 간섭하고 잔소리하지 아니한다'는 거다. 어제 말했던 성인은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 말이 없음의 가르침을 해한다)라 했으므로 그 맥락을 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덕경>> 제34장에도 이 말이 나온다. "大道氾兮 其可左右/萬物恃之而生 而不辭/功成不名有/衣養萬物而不爲主(대도범혜 기가자우/만물시지이생 이불사/공성불명유/의양만물이불위주)" 이 문장을, "큰 도는 범람하는 물 같다. 좌로도 갈 수 있고, 우로도 갈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은 대도에 의지하여 생겨나는데도 대도는 이래라 저래라 말로 간섭하지 아니한다"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도올은 '사(辭)'가 '사퇴한다', '사직한다', '사양한다'는 거절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만물을 잘 자라게 하는 데, 대도(=성인)는 그들이 잘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사양함(멈춤이) 없다."
그 다음 내가 좋아하는 말이 "생이불유(生而不有)"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기억해야 할 말이다. 자식을 낳았지만, 그 자식을 소유하려 하지 말아야 그게 도(道)라는 말이다. 내가 자식을 생하였다고 해서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최초로 부모의 생식 세포 염색체의 결합으로 접합체가 이루어지고 세포분열이 계속되어 엠브리오(싹)가 형성되어 태아로 발달해가는 과정을 거치지만 그 모든 생성과정이 고정된 실체의 연속태가 아니며, 수없이 다양한 이견을 파지(把持)해가면서 전개되어 가는 것이다. "생이불유"는 자연의 철칙이고, 만물의 생성 과정의 자연태(自然態)이다.
우리 사회의 부모들은 자녀를 소유물로 대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 란다.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작은 아이'이다. 그저 작을 뿐 성인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초대받아 성인과 종류만 다를 뿐인 불안을 견뎌내야 하는 어린 생명체이다.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모든 아이들은 자율적 인간, 공감하는 시민으로 자라나기를 우리는 바란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제도의 개선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위계적 질서를 걷어내고,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하며 타인과 공감하는 태도의 변화, 일상의 민주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글이 길어진다.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연휴 끝에 수녀 누님께서 찾아 주셨다. 누님은 산타 크로스이다. 차에 여러 가지를 가득 싣고 오셨다. 그래 동생도 오라고 해서 즐거운 점심 시간을 가졌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 와 <인문 일기>를 쓰고, 오늘의 사진을 찾는데, 구글의 크라우드가 언제 어디서 찍은 것인지 모르는데, 오늘 사진을 "하이라이트"라고 보여 주었다. 그래 공유한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보니, 문병란 시인의 오늘 시가 떠올랐다. 늘 바다는 말한다. "생이불유". 낳았다고 소유하려 하지마라!
바다가 내게/문병란
내 생의 고독한 정오에
세 번째의 절망을 만났을 때
나는 남몰래 바닷가에 갔다.
아무도 없는 겨울의 빈 바닷가
머리 풀고 흐느껴 우는
안타까운 파도의 울음소리
인간은 왜 비루하고 외로운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울려야 하고
마침내 못 다 채운 가슴을 안고
우리는 왜 서로 헤어져야 하는가.
작은 몸뚱이 하나 감출 수 없는
어느 절벽 끝에 서면
인간은 외로운 고아,
바다는 모로 누워
잠들지 못하는 가슴을 안고 한밤내 운다.
너를 울린 곡절도, 사랑의 업보도
한데 섞어 눈물지으면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허허 몰아쳐 웃어 버리는 바다
사랑은 고도에 깜박이는 등불로
조용히 흔들리다
조개 껍질 속에 고이는
한 줌 노을 같은 종언인가.
몸뚱이보다 무거운 절망을 안고
어느 절벽 끝에 서면
내 가슴 벽에 몰아와
허옇게 부서져 가는 파돗소리...
사랑하라 사랑하라
아직은 더욱 뜨겁게 포옹하라
바다는 내게 속삭이며
마지막 구석까지 채우고 싶어
출렁이며 출렁이며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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