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파시즘을 경계하여야 한다.

309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2월 3일)
아직도 갖가지 방법으로 갈 길 바쁜 우리 사회를 붙잡고 늘어지는 극우 파시즘 세력이 계속 된다. 평소에 하던 말들과 달리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도 안보도 국민의 살림살이도 이들에겐 하나도 안 중요하다. 내란 사태부터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국가적으로 시급한 다른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 아침 <인문 일지>에 시대 정신을 살펴본다.
1.
이게 망상(妄想)의 일상적인 예이다. 자신의 배 안에 파리 두 마리가 살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남자가 있었다. 그는 뱃속에서 윙윙대는 파리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다. 여러 병원을 찾아가 보았으나 “당신의 망상일 뿐”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는 고통이 갈수록 심해지는 바람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뱃속의 파리를 꺼내 주겠다는 어떤 한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의사는 그에게 눈을 감고 침대 위에 눕게 했다. 잠시 후 파리 두 마리를 꺼내 병에 넣고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의사는 병에 든 파리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 병을 제 게 주십시오. 당장 그 바보들에게 보여주겠습니다.” 물론 그의 증세는 깨끗이 나았다.
2.
망상이 무섭다. 망상은 본인을 파멸로 이끈다. 그런데 리더가 망상을 가지면, 그 조직도 망한다. 망상의 반대가 상상이다. 그것은 지성의 힘으로 나온다. 상상하는 능력, 상상력이 지성이기 때문이다. '망상'은 비현실적인 것을 생각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인 양 믿거나, 이치에 맞지 않게 망령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주관적 신념,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에 의하여 정정되지 아니한 믿음으로, 병적으로 생긴 잘못된 판단이나 확신을 나타내는 질환을 말한다. 현실 판단력에 장애가 생기는 정신적 질환을 의미한다.
3.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학생들에게 줄곧 상상력이 지성이라고 말해왔다 한다. 독서와 토론, 경험과 성찰을 토대로 공동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 풍부하고 구체적인 상상력을 기르는 것이 고등교육 수혜자의 시민적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부, 경험, 성찰로 구체화되는 상상력의 반대편에는 무지한 망상이 있다. 망상을 장착한 사람은 당면한 문제 앞에서 곧잘 자신을 피해자로 착각하는 자기 연민에 빠지고, 자기보다 취약한 존재를 발명하듯 찾아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등 자주 비열 해진다. 몽매한 망상이 활보 못하게 하는 일이 인문 운동가의 역할이다. 이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이다.
4.
망상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최근에 취임한 트럼프에게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유명해진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중임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이번 취임식에서 자국민 보호는 못하면서 불법 이민자들에게만큼은 피난처를 제공해왔기에 미국의 사회적 질서가 무너진 것이라는 거짓 선동과 자기연민을 쏟아냈다. 이것은 저임금과 제도적 보호 밖에서 일해온 수많은 이주 노동자 덕분에, 20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엄연한 사실에 대해 무지한 발언이다. 다 가졌으면서도 다 뺏긴 자로 자신을 규정하는 인지 오류, 망상의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로 오면, 정권 잡은 여당과 대통령이 합심해 흩뿌리는 부정선거, 반국가세력, 빨갱이, 중국인 등의 언설이 판치는 작금의 한국 상황을 보면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윤 그룹의 전복적 세계관이 무섭다. 박세열 기자의 글을 보고 다음과 같은 양상들을 소개한다. 이건 팩트이다.
▪ 우습게도, 잘 알지 못하고, 윤이 좋아한다는 '민중의 노래'는 1832년 프랑스 파리에서 군주제 폐지를 내걸고 일어난 '6월 봉기'를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뮤지컬로 옮긴 작품의 주제곡이다. 6월 5일 라마르크 장군의 시민 장례 행렬에서 군중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강렬하다. 공화주의자들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외치며 왕정 폐지를 위해 깃발을 흔든다. 그리고 파리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왕당파 군대에 맞섰다. "민중의 노래가 들리나. 분노한 자들의 노래.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민중의 음악이네. 심장 박동 소리가 북소리와 공명할 때 내일이 오면 시작될 새로운 삶이 있네." 윤의 전복적 세계관이 무섭다. 윤은 체포되기 전 관저에서 시민에 대항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스스로를 가뒀다. 의회 해산을 시도한 이 '손바닥 왕'은 갑자기 저항군에 빙의하더니, 체포된 후에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며 지지자들을 향해 '도그 휘슬'을 불었다. 성난 윤 지지자들은 '국민 저항권 ' 운운하며 영장을 집행하는 경찰을 시민이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법원에 난입해 미증유의 폭동을 일으켰다. 윤은 지금 스스로를 성난 민중의 지도자이자 체제를 뒤집어 엎을 순수한 혁명가로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 웃기지도 않다.
▪ 자신을 '민중의 지도자'의 위치에 놓고 있는 윤 그룹의 전복적 세계관의 민 낯을 똑똑하게 보아야 한다. 그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런 척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좌파와 야당과 선관위의 '부정선거 공모'를 주장하고 '북한과 중국인이 나라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극우 세력의 언어를 받아들인 윤 그룹은 거침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윤 그룹의 언어와 그 안에 깃든 의지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파괴해야만 해소 가능한 것들이다. 윤 그룹은 민주주의 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 불만이 외국인으로부터 유래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 "파시즘은 아래로부터 작동하지만 위로부터 정당 화된다." 윤 그룹의 목적은 민주주의의 파괴다. 과한 상상, 아니 망상이 아니가?
5.
지금 우리는 파시즘을 경계하여야 한다. 파시즘의 어원은 동맹이나 연맹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fascio’(파쇼)다. 원래 공화주의자, 생디칼리스트(극단주의자)가 애용하던 이 단어는 1919년 무솔리니의 친위조직이 ‘민족파시스트당’이란 이름을 채택한 뒤부터 극우적인 정권이나 운동을 일컫는 정치 용어가 됐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역사에서 보았던 파시즘은 거짓말을 쉽게 하고 거짓말로 먹고 산다. 역사학자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은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에서 "거짓말은 다른 정치 전통에서는 볼 수 없는 파시즘만의 특징이다. (정치가의) 거짓말은 자유주의에서는 부수적이지만, 파시즘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거짓말로 정치적 폭력을 방치하고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건 파시스트들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윤 그룹의 행동은 이 요건에 꼭 들어맞는다. 히틀러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진실과 거짓 사이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 투쟁은 진실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라고 했고, 베니토 무솔리니는 "나는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서나 진실을 말한다"고 역설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양상들을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역사적 살들을 알아야 한다.
6.
파시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창조한 거짓말을 스스로 믿는다는 사실이다. 괴벨스는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날조한 후 이를 뉴스로 내보내게 한 후, 자신의 일기장에 사실인 것처럼 적어두었다. 파시스트들에게 지식과 현상은 단지 '믿음'의 문제였을 뿐이다. 히틀러는 유대인과 이민족이 아리아인을 말살하려 한다는 '대안적 사실' 제시하고 그것을 진실이라 우겼다. 히틀러에게는 자신이 말한 '진실'(거짓말)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져야 할 필요가 없었다. '대안적 사실'을 믿는 사람들 안에서만 거짓말이 진실로 통용되면 그만이다. 괴벨스는 선전을 "거짓말이나 왜곡을 일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에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핀첼스타인은 "반복적인 거짓말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흔든다. 포퓰리스트들은 대의민주제의 힘을 약화하려는 것일 뿐이지만 파시스트들은 아예 민주주의를 끝장내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사실'을 '거짓말에 대항하는 반대 의견' 정도로 격하시킨다는 점이다. 이를 통한 사회 혼란이 그들의 목표다. 이제 우린 윤석열과 그의 지지자들의 행위를 '파시즘'이라 규정해야 마땅하다.
7.
한국의 파시즘 세력들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윤은 지금 극우 세력의 영혼에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 '부정 선거'와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부정선거'라는 대안적 사실을 내놓고 이를 진실이라 우긴다. 윤 변호인은 법정에서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미군기지 압송"이라는 가짜뉴스를 사실처럼 읊어대고, 내란 가담자를 변호하고 있는 한 법률가는 헌법재판관들이 모두 "빨갱이"라고 주장한다. 윤은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형법 87조 1항이 규정한 내란 우두머리 죄의 형량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다. 그도 직감했으리라. 죄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어차피 무죄 아니면 최하 무기징역이라는 걸. 형량의 예측 가능성은 지금 윤석열이 보여주고 있는 많은 행동들을 설명해준다. 그리하여 윤은 지지자(물론 그들이 정말로 윤을 지지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를 선동하고 폭동을 유도해 사회 혼란을 일으키며 극우 세력의 마음 한편에 본인의 성채를 조그마하게 나마 구축하려 한다.
8.
선동에 취약한 흥분한 대중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기득권 세력의 존재는 히틀러의 나치즘을 낳았던 정치적 배경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나치즘의 대중적 원동력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에 따른 막대한 배상금과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만이 극에 달했던 하류 중산층, 노동자, 농민이었지만, 대자본과 융커(귀족 지주)의 지지와 후원이 없었다면 나치즘의 정치적 확립은 어려웠을 거라고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에서 지적한 바 있다. 에리히 프롬의 정의에 따르면, 나치즘(파시즘)을 비롯한 권위주의(전체주의) 이념은 타인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욕망(가학성)과 압도적으로 강한 외부의 힘에 복종하고 싶어 하는 갈망(피학성)을 동시에 지닌다.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유대인)를 짓밟으면서 강력한 독재 권력에 굴종하고 싶어 하는 양면성이 나치즘의 본질이라는 설명인데, 윤을 비롯한 한국의 극우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안으로는 노동자와 성소수자,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를 멸시하면서 독재의 향수에 젖고, 밖으로는 미국과 일본에 조아리면서 북한과 중국을 깔아뭉갠다. 내부의 적을 만들어 분열을 부추기고 힘센 나라에 빌붙기, 친일-친미와 반북과 혐중, 친재벌과 반노동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니는데, 에리히 프롬식으로 말하면, 열등감과 우월감이 공존하는 분열적 심리 상태의 반영인 셈이다.
9.
상식보다는 음모, 이성보다는 분노가 극단적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치를 뒤흔드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음모, 분노, 탐욕, 기회주의, 불안감이 얽히고 설킨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합리성과 일관성의 복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정치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로남불’이 문제이다. 자기편에게 불리한 사법 판단이 나오면 불복과 인신공격으로 대응하고, 반대편에게 불리한 사법 판단에는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낯 뜨거운 언행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런 내로남불은 다수 국민에게는 정치 불신을 심화시키고, 극단적 지지층에는 상대를 더 악마 화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언론의 문제는 유튜브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비 언론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전통 미디어 매체가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어 불을 더 지피고 있다는 것이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네 편을 비판할 때는 합리적 잣대를 들이대지만 내편 비판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합리적 기준으로 일관성 있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언론이 해야 할 본연의 일이다. 내편에 유불리를 따지고 취사선택을 한다면, 언론이 아니라 특정 패거리의 선동 매체일 뿐이다.
10.
A가 잘못됐다는 지적에 B도 그렇게 했다고 답하는 정치인은 더 이상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B도 잘못했다는 양비론인지, B도 그랬으니 괜찮다는 양시론인지, 아니면 국민을 우롱하려는 심산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그런 정치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위선과 기만 그리고 그런 술수를 통한 자신의 사익 추구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이런 정치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고,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일어나야 한다.
그래도 나는 일어난다/마야 안젤루
당신은 매정하고도 왜곡된 거짓말로
나에 대한 역사를 기록할지 모릅니다.
당신은 나를 먼지 구덩이에 짓밟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먼지처럼 일어날 겁니다.
내가 건방진 것 같아 기분이 나쁩니까?
왜, 당신은 우울한 기분에 눌려 삽니까?
내가 걸어 다니는 모습은
안방에 있는 유전에서 석유를 퍼내는 사람의 걸음걸이 같습니다.
달처럼, 그리고 해처럼,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처럼 분명하게,
희망이 높이 솟아 오르는 것처럼,
그래도 나는
일어날 겁니다.
내가 깨어진 모습을 보고 싶습니까?
고개를 떨구고 눈을 내리 깐 모습을?
어깨가 눈물처럼 흘러 내리고
통곡으로 인해 혼절한 모습을?
그런데 내가 당당해 보여서 기분이 나쁩니까?
내가 뒷마당에 금광을 가진 사람처럼
웃고 다니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든 가요?
당신은 말로 나를 사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눈빛으로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증오심으로 나를 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공기처럼 나는
일어날 것입니다.
나의 매력 때문에 기분이 나쁜 가요?
허벅지 사이에 다이아몬드를 찬 사람처럼
춤을 추는 내 모습이
당신에게 놀랍게 보이나요?
수치스러운 역사의 초가집으로부터 나와, 나는
일어납니다.
고통 속에 뿌리를 둔 과거로부터, 나는
일어납니다.
나는 출렁이는 드넓은 바다,
검은 바다입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바닷물의 출렁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의 밤을 뒤로 하고, 나는
일어납니다.
상상할 수 없이 쾌청한 새벽을 향하여, 나는
일어납니다.
나의 선조들이 준 선물을 가지고 있는 나는
노예의 꿈이요 희망입니다.
나는 일어납니다.
나는 일어납니다.
나는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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