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하라는 서설(瑞雪)로 받아들인다.

308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월 29일)
오늘 아침 사진의 서설(瑞雪)처럼, 올해는 우리 사회의 '적폐'를 다 덮고 다시 시작하는 해를 희망한다.
희망/박노해
앞서간 이들이
놓지 않았던 단 하나
희망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울며 씨 뿌리며
그날은 오리라
새날은 오리라
오늘의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단 하나
감사
어려움 속에서도
덕분에 삽니다
사랑으로 삽니다
더 나누며 살겠습니다
새 빛이 밝아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희망입니다
1.
세상이 하얗게 덥혔다. 새롭게 시작하라는 서설(瑞雪)로 받아들인다. 그래도 2025년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가 밝았다. 을사(乙巳)에서 을(乙)은 청색, 사(巳)는 뱀을 의미한다. 을(乙)은 목(木)의 기운으로 성장과 적응을 의미하기도 한다. 뱀은 통찰력과 직관력을 가진 동물로도 알려져 있다. 또 나무는 생명력과 성장을 상징한다. 이에 을사년은 지혜로운 변혁, 새로운 시작 등을 통한 성장과 발전이 기대되는 해로도 해석된다.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결정짓는 능력을 지닌 지혜로운 동물로 여겨지는 뱀, 그리고 건강과 안전을 의미하는 푸른색이 결합된 만큼 2025년은 마음의 평화와 깊은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2.
뱀 하면, 헤르메스가 생각난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비서실장’으로 전령의 신이다. 오늘 날의 개념으로 말하면, ‘정무장관’이다. 그는 간사한 꾀와 술책으로 제우스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이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서 태양(제우스) 주위를 맴도는 수성(mercury)이다. 즉 그는 수성과 같은 존재이다. 아폴론과 아테나가 제우스의 공적인 업무를 보좌하는 참모진이라면, 헤르메스는 드러내 놓고 추진하기 껄끄러운 제우스의 개인적인 관심사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결해 나가는 ‘수행비서’인 셈이다.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잡고, 헤르메스의 정신으로 우리 사회를 대개혁 하는 메신저가 되었으면 한다.
헤르메스의 모습을 보자. 그는 아폴론으로부터 제우스의 전령 직분과 함께 전령의 상징인 케리케이온(Kerykeion)이라는 지팡이를 전수받는다. 이 지팡이는 헤르메스의 마스코트가 된다. 이 지팡이 케리케이온은 머리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몸통에는 뱀 두 마리가 감겨 있는 모양의 지팡이이다. 여기서 뱀은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심부름꾼을, 날개는 심부름꾼의 속도를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헤르메스는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날개 달린 모자와 신발을 착용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헤르메스는 특유의 ‘잔 머리’로 제우스의 협상 역과 제우스의 어려운 문제를 대신 처리해주는 해결사 역할을 맡는다. 제우스가 드러내놓고 풀기 어려운 문제는 주로 그의 애정 행각과 헤라의 질투에 관한 것이다. 헤르메스는 신화 속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이 많지 않지만, ‘심부름 꾼’의 역할로는 자주 등장한다. 그 이야기들을 열거 해본다.
▪ 헤르메스는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면서 제우스를 거역한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고 있는 프로메테우스를 찾아가 형벌을 면죄해주는 대가로 제우스에게 협력할 것을 종용한다.
▪ 제우스의 명을 받아 인류 최초의 여성 판도라를 지상으로 보낸다.
▪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했을 때, 헤르메스는 제우스를 대신하여 하데스와 담판 짓는 일을 맡는다.
▪ 제우스가 꺼려하는 ‘에리스의 사과’로 촉발된 그리스 여신 미인대회의 심판장 역할을 온갖 감언이설로 파리스에게 떠넘긴다.
▪ 암소로 변신한 이오를 감시꾼 아르고스로부터 해방시켜 제우스의 걱정거리를 해결해준다.
▪ 어머니를 잃은 어린 디오니소스를 니사의 요정들에게 데려다 키우게 한다.
▪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고르곤을 물리칠 때 필요한 무기를 준다.
▪ 헤라클레스와 관련된 일도 있다.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박해를 가장 심하게 받은 제우스의 자식이다. 헤르메스는 재치를 발휘하여 어린 헤라클레스의 얼굴을 가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길에 주운 부모 잃은 아기에게 젖을 한 모금 베풀라고 헤라에게 간청한다. 헤르메스의 그럴싸한 연기에 마음을 빼앗긴 헤라가 아기의 얼굴도 보지 않고 젖을 물린다. 그러나 게걸스럽게 젖을 빨아대는 아기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헤라는 화들짝 놀라 어린 헤라클레스를 가슴에서 밀쳐버린다. 이때 하늘로 튀어 오른 헤라의 젖이 만든 길을 그리스인들은 갈락시스(galaxias)라 불렀고, 로마인들은 ‘젖의 길'라는 뜻의 '비아 락테아(Via Lactea)'라 불렀다. 영어로는 '우유의 길(milky way) 또는 갤럭시(galaxy)이다. 은하수는 헤라클레스를 향한 증오심과 헤르메스의 간사한 꾀가 만들어 낸 우주의 서사시인 셈이다. 이후에도 헤르메스는 헤라클레스가 겪는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제우스의 해결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2.
그리고 뱀 하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이야기가 소환된다. 아폴론은 의술의 신이기도 하다. 그리스인들은 어두운 세계를 밝혀주는 이성의 힘과 알 수 없는 미래를 읽는 예언 능력이 수수께끼 같은 몸의 원리를 밝혀주고 치유하는 의술의 능력과 통한다고 믿었다. 그는 죽은 자도 되살리는 신통한 의술을 발휘한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리스인들은,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가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이다. 아폴론이 플레기아스 왕의 딸 코로니스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런데 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코로니스가 인간과 정을 통하자 이 사실을 아폴론의 새인 까마귀가 고자질했다. 격분한 아폴론이 쌍둥이 남매 아르테미스를 시켜서 코로니스를 활로 쏴 죽였다. 아폴론은 죽어가는 코로니스의 몸에서 아기를 끄집어냈다. 그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이다. 그리고 불행한 소식을 전해준 흰 까마귀의 색깔을 바꿔버린다. 원래 하얀색이었던 까마귀가 이때부터 까맣게 되었다고 한다.
아폴론과 처녀 코로니스 사이에서 태어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탄생 비밀을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아폴론은 애인 코로니스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른 사내의 아이로 착각하고 멀리서 활을 쏘아 코로니스를 죽였다. 아폴론이 뒤늦게 자기 아들인 것을 알고 달려갔을 때는, 코로니스의 육신이 화장터에서 까맣게 그을린 뒤였다. 아폴론은 헤르메스로 하여금 코로니스의 뱃속에 든 아기를 살려내게 하고는, 이 아기를 현명한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맡겨 의술을 가르치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스클레피오스는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웠다. 그는 죽은 자를 살려낼 정도로 의술이 뛰어났다. 그러자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한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탄원하여 아스클레피오스를 벼락에 맞아 죽게 했다. 의술은 죽음과 삶 사이에 위치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용한 의술로 죽은 사람을 살렸다가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자신은 죽는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 신이 되었고, 불사의 신인데도 죽어야 했던 모순된 존재였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아스클레피오스가 지니고 있는 뱀이 감긴 지팡이는 오늘날에도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온 몸으로 대지의 정기를 받아들이며 지하(죽음)와 지상(삶)을 누비고 다니는 뱀의 치유력을 나타낸 것 같다. 켄타우로스 케이론의 제자는 아스클레피오스뿐만 아니라 이아손, 아킬레우스도 그의 제자이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에 한 마리의 뱀이 휘감고 올라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의학과 관련된 세계 여러 나라의 기구나 단체를 상징하는 휘장으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정도였다. 어느 날 이미 숨이 끊어져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아스클레피오스는 한숨의 쉬다가 기어가는 한 마리의 뱀을 보았다. 그는 가지고 잇던 지팡이로 뱀을 내리쳐 죽였다. 그러자 잠시 후 또 다른 한 마리의 뱀이 나타났다. 그 뱀은 이상한 풀을 물고 와서는 죽은 뱀의 입에 갖다 대자, 희한하게도 죽은 뱀이 다시 살아났다. 아스클레피오스가 그 풀을 죽은 사람의 입에 물려보았더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3.
뱀 하니까, "풍연심(風憐心), 바람은 마음을 부러워한다"는 말도 생각난다. 이 말은 "虁憐蚿, 蚿憐蛇, 蛇憐風, 風憐目, 目憐心, 心憐虁, 기연현(지네), 현연사(뱀), 사연풍, 풍연목, 목연심, 심연기)"에서 나온 거다. 전설상의 동물 중에 발이 하나 밖에 없는 기(虁)는 발이 100개나 있는 지네를 부러워한다. 그 지네는 발이 없는 뱀을 부러워한다. 뱀은 거추장스러운 발이 없어도 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뱀은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도 멀리 갈 수 있는 바람을 부러워하였고, 바람은 가만히 있어도 어디든 가는 눈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눈은 보지 않고도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을 부러워했다. 그런 마음은 다시 전설상의 동물인 기를 부러워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한다.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부러워하지만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 모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나'이다. 우리가 살면서 힘들어 하는 것은 부러움 때문일 줄 모른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자신을 자책하기에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어디서 들었던 말처럼,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4.
뱀 하니까 이시영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시하에는 이렇게 사는 거다.
산다는 것의 의미/이시영
1964년 토오꾜오 올림픽을 앞두고 지은 지 삼 년 밖에 안 된 집을 부득이 헐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지붕을 들어내자 꼬리에 못이 박혀 꼼 짝도 할 수 없는 도마뱀 한 마리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 동료 도마뱀이 그 긴 시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이를 날라 다 주었기 때문이다.
5.
다음은 위의 시를 소개한 반칠환 시인이 해준 이야기이다. "1976년의 일이다. 충청도 산골에서 어떤 소년이 다람쥐 한 마리를 사로잡아 체 속에 가두었다. 장차 쳇바퀴 돌리는 서커스 기예를 펼치게 할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체가 바람에 뒤집힐까 봐 주먹만 한 돌 몇 개를 얹어 놓았다. 소년이 마당에서 노는 동안 다람쥐 여러 마리가 체 감옥에 면회를 온 듯 북적거렸다. 별 일 있으랴 싶었다. 시간이 지나서 가보니 체 감옥이 뒤집혀 있었다. 다람쥐 동료들이 와서 돌들을 밀어내고 탈옥을 시킨 것이었다." 푸른색의 '갑(甲)'과 용을 의미하는 '진(辰)'이 더해진 청룡(靑龍)을 의미했던 갑진년 2024년의 마지막 날이다. 갑진년의 갑(甲)이 지닌 동쪽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작을 상징하며, 청색은 푸르름으로 건강미 넘치게 새로이 시작하는 역동의 모습이다. 물론 새로 시작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지닐 수 있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해처럼 희망을 품고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기존의 질서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계묘년이기 때문에 갑진년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존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만 집착하면 향후 10년의 미래에 뒤처질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 올 한 해가 다산 다난했던 것일까?
6.
그리고 진(辰)은 오행으로 '토'에 해당하며, 천간 목(木, 나무)의 기운인 갑(甲)의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지지기반이 되기도 하고, 갑(甲) 목(木) 입장에서는 진(辰) 토(土)를 경작하는 '소토(燒土)'의 의미도 지닌다. '소토'란 경작의 의미로 새로운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갈아엎는 것이다. 즉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기반을 만들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면에서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꿈꾸어 보는 것이 2024년 갑진년 푸른 청룡의 해였다. 더불어 지난 것들을 털어버리고 소토하여 밭을 새롭게 갈아엎는 수고를 필요로 했다. 그래 12월에 비상 계엄으로 나라가 '소토'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일까? 좋게 해석하자. '썩은' 정권을 청소하고, 새로운 2025년은 다시 시작하는 거다. 윤석10의 기소로, 설 전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참 다행이다. 난 하늘의 순환을 믿는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