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앞날은 모르고 사는 편이 낫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 29. 13:41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월 26일)

<<주역>>의 대가인 다산 김석진 선생은 "앞날은 모르고 사는 편이 낫다"고 자주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루하루 일상을 지배하며 몰입하며, 기운(氣運)을 깨끗하게 만들어 가며, 진리를 찾아가는 삶을 사는 길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알수록 걱정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2024년 들어 가장 흥미로운 일은 운동하기에 습관이 붙었고, <<주역>>을 도반들과 함께 읽기 시작한 일이다. 나는 프랑스에서 공부하여 처음에는 동양적 인문학이 익숙하지 안 했다. 그러나 최근 몇 해전부터 <<장자>>와 <<도덕경>>을 꼼꼼하게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여우숲 학교의 김용구 교장도 내 생각과 같다. 그의 글을 읽고 갈무리하여 공유한다.

서양이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규명하려는 전통을 주축으로 했을 때, 동아시아의 전통은 '유비추리(類比推理)'를 하나의 중요한 방편으로 삼고 있었다. '유비추리'라는 말은 ‘흡사한 사례들에 견주어 궁극의 이치를 헤아리는 방법’이다. 이것은 서양의 실증을 따르는 방식보다 정밀한 맛이 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대체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에 막 바로 육박하는 간결함과 대담함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 밀물과 썰물로부터, 달의 차오름과 기욺으로부터, 확장하여 계절의 순환으로부터 삶의 어떤 근원적 진실을 가늠하는 식이다.
- 꽃의 생애에서 길어 올린 통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간결하다. ‘열흘 붉은 꽃이 없더라’는 이 말은 꽃(자연의 질서와 리듬)으로부터 중요한 단서를 포착한 뒤, 팽창하고자 하는 욕망에 필연적 한계가 있음을 불변의 이치로 제시한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도 그렇게 찾아졌을 것이다.
- 노자가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말한 것도 물을 깊게 살핀 뒤 물에 견주어 선(善)의 궁극적 이치를 추상화한 예라 할 수 있다.
- 깊이 있는 추상의 전통은 불교의 선(禪)적 가르침에서 더 환하게 빛난다. ‘영산회상’의 설법에서 석가모니불이 형언하기 어려운 우주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다만 연꽃 한 송이를 들어 올리자, 이에 염화미소로 수긍 화답한 가섭 존자와의 일화라 든가, 조주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 같은 표현 역시 이런 전통이라 하겠다.
- 격물치지(格物致知), 유학의 전통 역시 우주만물의 근원적 실체와 그 역동 및 운행의 원리를 놀라운 축약을 통해 추상화 한다. ‘성’(性)과 ‘리’(理)와 ‘기’(氣), ‘태극(太極)과 음양(陰陽)’과 ‘오행’(五行), ‘상수역학(象數易學)과 의리역학(義理易學)’을 모두 품은 <주역>(周易)의 추상 등이 그 몇 가지 예라 하겠다.

두 전통 중에서 어느 전통이 더 유용할까, 혹은 탁월할까? 오늘날 그 지배력으로 볼 때 두 전통 사이의 우열과 성패는 진작 서구적 방법의 압도적 승리로 판명이 난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에 간략히 언급한 전통적 관점과 사유는 이제 그 명맥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일부 연구자들의 고군분투(孤軍奮鬪)만이 있을 뿐, 대중에게 서는 그런 전통이 외면 받기 시작한 지 오래된 것이 현실이다.

그래 일주일에 두 번씩, 지금 읽고 있는 <<주역>> 이야기를 공유할 생각이다. 우리는 <<주역>>을 말하면, 점치는 책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조용헌에 의하면, <<주역>>을 보는 관점은 다음과 같이 3가지가 있다.
- 신탁서(神託書)와 점술이다. 점술은 왜 필요한가? 그만큼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만 가지고 하느님이 두는 바둑의 포석을 알기 어렵다. 신의 섭리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신의 섭리를 슬쩍 커닝이라도 하려면 신탁과 점술이 필요하다. 아무리 미신이라고 두들겨 패도 점술이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이다.
- 인격을 수양하는 수양서로 보는 관점이다. ‘까불지 말고 조심하고 겸손하라’가 주역의 일관된 메시지이다. 이 말을 듣고 실천하면 인생에서 크게 손해 볼 일 없다. 대부분의 책상물림은 이 두 번째 관점에서 본다.
- 단학(丹學) 수련의 관점이다. 주역의 64괘를 하나의 달력, 즉 캘린더로 인식한다. 이 달력 날짜에 따라 단전호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동계(參同契)’가 이 노선을 대표하는 책이다.

첫 번째의 점술적 관점에서 주역을 해석할 수 있으려면 신기(神氣)가 있어야 한다. 신기가 없으면 주역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별 소득이 없다. 헛방이다. 차라리 그 노력을 육법전서 읽는 데 투입하면 고시라도 합격한다. 신기는 무의식의 출현이다. 누구나 신기는 각자 내장하고 있지만 욕심과 잡념이 무의식을 덮고 있어서 잘 나타나지 못할 뿐이다.

<<주역>>은 64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잇다. 이를 '64괘'라고 한다. 각 괘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선가 한 번쯤은 만나게 될 상황을 한 가지씩 담고 있다. 새로운 일을 개척할 때도 있고, 몽매함을 깨우쳐 할 때도 있다.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잇고 수모를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주역>>은 이러한 다양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지혜롭고 어떤 선택이 어리석은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주역'은 정해진 판결문이 아니다. <<주역>>은 운명의 지도이다. 지도는 길만 보여주지 않는다. 길이 아닌 곳도 함께 보여주어야 제대로 된 지도이다. <<주역>>은 그리로 가면 가시밭길인데 왜 그리로 가느냐고 질문하는 책이다. 꼼꼼하게 그리고 꾸준히 일어볼 생각이다. 특히 인문 운동가의 입장에서 읽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 사유를 공유할 예정이다.

본디 점(占)이란 복(卜)과 구(口)가 합쳐진 말이다. 갑골문에서 복(卜)은 거북의 등딱지를 태워서 갈라진 모양을 뜻한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이 모양을 보고서 신의 뜻, 즉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내려고 했다. 구(口)는 제사를 드릴 때 축문을 넣는 그릇을 형상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 그릇에 바라는 바를 담아서 기도하면서 신의 뜻을 묻곤 했다.

사람들이 신에게 물어보려 한 것은 세상의 흐름과 변화, 생성과 소멸의 이치였다. 동양에선 그 이치를 자연의 끊임없는 변화와 이에 대한 인간의 대응에서 찾으려 했다. 공자가 옛 역사를 살펴서 자연의 변화 원리를 발견한 후, 이를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해설을 덧댄 책이 '역(易)'이다. 주나라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기에 '주역(周易)'이라고도 부른다는 거다.

'역'의 가장 큰 특징은 천지자연의 변화를 살펴 인간의 이야기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하늘은 생겨나고 자라고 열매 맺고 저장한다.' '힘 있는 자들은 낮아지고, 낮은 자들은 은혜를 입는다.' 한마디로 '역'은 자연과학을 인문학으로 바꾸어 성찰하는 사고방식이다.

여기엔 큰 지혜가 있다. 자연의 변화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 아무도 꽃피는 걸 막을 수 없고, 눈이 내리는 걸 늦출 수 없다.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마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 '역'은 세상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에 어떻게 대응하느 냐를 고민하는 쪽이 좋은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가령 늙고 병들어 죽는 일은 누구도 피할 수 없으나, 그 길은 변화에 대비해 삶을 어떻게 꾸리느 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자는 그 대응, 그 꾸림을 '사업(業)'이라고 불렀다. "세상 변화의 이치를 들어 적절히 조처하는 것을 사업이라고 한다." 사업이란 자연 변화의 법칙에서 인간 삶의 원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세상의 이치와 흐름에 맞춰 삶의 방식을 그때그때 조정하는 기술이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은 변화를 견디면서 위대함을 이룩할 수 있다.

나의 삶의 슬로건은 "치둔입정(治屯立鼎)"이다. 이 말은 '어려운 운명(屯)을 몸과 마음을 다해 혁신해 좋은 결과(鼎)로 바꾼다'는 뜻이다. 정(鼎)자에 방점을 찍는다. '솥 정자'이다. 옛날 솥은 발이 3 개, 귀가 2개이었다. 발 3개는 협력과 균형을, 귀 2 개는 경청을 가리킨다. 밥을 지으려면, 깨끗이 씻어서 쌀을 안쳐야 하 듯이, 어려운 운명을 극복하려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협력, 협치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겨울 눈 속에서 떨고 있는 나무들을 볼 때 우리는 저 살풍경 속에도 새싹과 꽃향기와 그늘과 열매가 숨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래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를 읽고 희망을 되 찾으려 한다. 이 시는 류근 시인이 소개를 해서 알게 된 거다.

가지 잘린 떡갈나무/헤르만 헤세

나무여, 얼마나 가지를 잘라 댔는지
너무나 낯설고 이상한 모습이구나
어떻게 수백번의 고통을 견뎠을까
너에게는 이제 반항과 의지만 남았구나
나도 너와 같다
가지는 잘려 나가고 고통스런 삶을
차마 끝내지 못하고 야만을 견디며
매일 이마를 다시 햇빛 속으로 들이민다
내 안에 여리고 부드러운 것을
이 세상은 몹시도 경멸했지
그러나 누구도 내 존재는 파괴할 수 없다
나는 자족하고 타협하며
수 백 번 가지가 잘려 나가더라도
참을성 있게 새로운 잎을 낸다
그 모든 아픔에도 이 미친 세상을
여전히 사랑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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