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은 작은 설날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 28. 17:31

308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월 28일)

1. 
오늘은 작은 설날이다. 동시에 섣달 그믐날(除夕, 제석이라고 함)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날을 '까치 설'이라 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동요가 있기 전에는 '까치 설'이 없었다 한다. 옛날에는 '작은설'을 가리켜 '아치설', '아찬설'이라고 했다 한다. '아치'는 '작은(小)'의 뜻이 있는데, '아치설'의 '아치'의 뜻이 상실하면서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엉뚱하게 바뀌었다는 주장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이 날, 우리들에게 설빔으로 새 옷을 사 주셨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런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있다. 설날은 '낯설다.‘의 설에서 유래한 처음 맞이하는 ‘낯 설은 날’이라고 하는 뜻과 ‘서럽다’는 뜻의 ‘섧다’에서 '늙어감이 서럽다'는 뜻이 있다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삼가다'라는 뜻을 지닌 '사리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다. 각종 세시풍속 책에는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표현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조신하게 하여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이라 한다. '설' 을 언제부터 쇠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잘 알 수가 없지만, 중국의 사서에 있는 "신라 때 정월 초하루에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日月神)에게 배례했다"는 내용으로 보아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구한말인 1895년에 양력이 채택되면서 그 빛이 바래기 시작했고, 1985년 "민속의 날" 로 지정, 이후 설날 명칭을 되찾아 사흘 간의 공휴일로 결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도 '구정(舊正)'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구정'이란 이름 그대로 '옛 설' 이란 뜻이다. 구정은 일제가 한민족의 혼과 얼을 말살시키기 위해 '신정(新正)'이란 말을 만들며 생겨난 것이다. 모두 일본식 한자어이며 설날이 바른 표현이다. 조선 총독부는 1936년 <<조선의 향토오락>>이란 책을 펴 내 우리의 말, 글, 성과 이름까지 빼앗아 민족문화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이 때부터 '설' 도 구정으로 격하해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꼭 설날이라 하고, " '설' 잘 쇠십시요, 쇠셨습니까?"라고 해야 한다.

2. 
설날에 먹는 떡국은 나이 한 살 더 먹으라는 게 아니라, 희고 뽀얗게 새로이 태어나라고 만든 음식이다. 순백의 떡과 국물로 지난 해 묵은 때를 씻어 버리는 것이다. 즉 순백의 계절에  흰 한복을 입고 흰떡을 먹으며, 묵은 그림을 버리고, 하얀 도화지에 한해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래 설날에 내리는 눈을 우리는 '서설(瑞雪)'이라 한다. 올해도 나는 새롭게 주어진 하얀 도화지에 부지런히 점을 찍으며 어떤 상황에 서든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살 생각이다. 그러면서, 나는 또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존재적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갖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잊고, 다시 말하면 노골적으로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일상을 지배하면서 장기적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면 된다. 그러한 삶의 구조를 만들려면, 돈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으므로, 돈을 버는 데 집중되었던 자원을 적절히 재배치 하여야 한다.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일들은 금전적 가치 외에 비금전적 가치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동과 관계를 의도적으로 늘려야 한다. 재화의 소비측면에서, 소유적 소비보다 존재적 소비에 치중해야 한다. 존재적 소비란 훌륭한 인물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다. 가까이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와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3. 
올해는 청사(푸른 뱀)을 상징하는 을사년(乙巳年)이다. 을사는 60간지 중 42번째에 해당하는 순서로, ‘을’은 색상 중 ‘청색’을 의미하고, ‘사’는 동물 가운데 ‘뱀’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풀어서 해석하면 ‘푸른 뱀의 해’를 뜻하게 된다. 아래 12간지의 의미를 정리해 보았다.
▪ 천간 : 갑을(甲乙 - 청색-목-봄), 병정(丙丁 - 적색-화-여름), 무기(戊己 - 황색-토), 경신(庚辛 - 백색-금-가을), 임계(壬癸 - 흑색-수-겨울)
▪ 지지 :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 해자(돼지, 쥐-수-겨울), 축진미술(소, 용, 양, 개-토), 인묘(호랑이, 토끼-목-봄), 사오(뱀, 말-화-여름) 신유(원숭이, 닭-금),


동양에서는 매해 특정한 띠와 간지가 결합해 그 해의 특성을 점치곤 한다. 이는 ‘육십갑자’ 체계와 연관이 깊다. 육십갑자는 동아시아 전통에서 십간과 십이지를 조합해서 만든 60년 주기의 연도 표시 체계를 말한다. 하늘의 기운을 나타낸다는 10개의 천간(天干)과 땅의 기운을 나타낸다는 12개의 지지(地支)가 천간의 순서대로 12지신과 한 번씩 짝을 맺어 나가는 방식으로 총 60번의 간지가 채워진다. 위에서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하면, 을사년에서 ‘을(乙)’은 푸른색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양의 오행에서 ‘나무(木)’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생명력과 성장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뱀(巳)’은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력을 가진 동물이다. 이 둘이 합쳐진 을사년은 새로운 시작, 지혜로운 변혁, 성장과 발전을 의미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4. 
뱀은 12간지 동물 중에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은 아니다. 무섭거나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뱀은 다양한 문화권과 문학 속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동물이다. 먼저 뱀은 겨울잠을 자고 봄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하여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라는 ‘불사의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고, 또한 집안의 재물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뱀은 ‘논리의 신’ 혹은 ‘치유의 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WHO 마크에서 뱀이 지팡이를 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뱀을 치유의 신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대 인도와 불교에서 뱀은 비와 땅을 관장하는 ‘풍요의 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뱀띠에 태어난 사람들은 활동적이고, 문무를 겸비해 머리가 명석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지혜로운 동물 뱀을 닮은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5. 
을사년과 관련된 단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을씨년스럽다’이다. 주로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쓸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말할 때 쓰인다. 이 말은 1905년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외교권이 박탈된 불평등 조약인 ‘을사늑약’​이 맺어지면서 당시의 비통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일컫는 말로 ‘을사년스럽다’로 사용되다가 ‘을씨년스럽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을사년에 관한 또 다른 역사적 사건으로는 1545년 ‘을사사화’도 있었다. '을사사화'는 조선 중종 말기부터 인종의 외척인 대윤(윤임)과 명종의 외척인 소윤(윤원형)이 세력 다툼을 벌인 끝에 소윤이 승리하면서 대윤이 모조리 숙청된 사화를 말한다. 이 밖에도 임진왜란의 공신인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도 1545년 을사년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이 쓰일 만큼 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던 해가 아니었나 싶다. 경제가 어려운 현재의 대한민국에는 ‘집안의 재물을 지켜준다’는 ‘뱀의 해’가 오히려 역전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가오는 2025년에는 을사년의 징크스를 깨고 좋은 일들만 가득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뱀/김기택 

팔과 다리란 무엇인가 
왜 살가죽을 뚫고 몸에서 돋아나는가 
나는 안다 팔다리 달린 몸들을 
그 몸들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그 끓어오르는 몸 속에 
얼마나 많은 울음이 들어 있는가를 
갓난 것들은 태어나자마자 
몸에서 울음부터 꺼내야만 하고 
평생 동안 부지런히 지껄여 
말들을 뱉아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쉬지 않고 난폭한 힘을 배설하지 않는다면 
끝내는 자신의 열기에 못 견뎌 뇌는 녹고 
심장은 타고야 말 것이다 
몸 속의 열기가 살가죽을 밀고 터져 나오지 않도록 
살가죽 터진 자리마다 거추장스런 팔다리가 돋아나지 않도록 
그리하여 온몸에 차가운 피가 흐르도록 
모든 힘을 독으로 만들어야 한다 
얼음처럼 차고 빛나야만 맑아지는 독 
그 푸른 힘으로 끓어오르는 열기를 잠재워야 한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가늘고 긴 선 하나만 몸에 남게 될 것이다 

가벼워라 아아 편안하여라 
팔과 다리 털과 꼬리 모든 것이 생략되고 
한 줄의 긴 몸으로 단순화되니 
머리와 심장으로 언제나 땅을 만질 수 있고 
마음껏 땅의 차가운 힘을 마실 수 있고 
그 즐거움으로 독은 더욱 올라 꼿꼿하게 날이 서는구나 
나무처럼 땅의 고요한 기운을 받아 숨쉬니 
굶을수록 눈은 광채를 더하고 
빠를수록 몸은 바람보다 소리가 작구나 
번잡스럽게 바둥거리던 팔과 다리 
그 몸에서 줄 창 쏟아내는 비명과 아우성도 
독으로 소화시키면 이내 형체를 버리고 열기와 소음도 버리고 
기꺼이 화사한 꽃 비늘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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