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존감을 잃지 않고 '화'를 내지 않게 하는 말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 27. 17:46

308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월 26일)

긴 연휴가 시작되는 오늘 아침에 추접하게, 쉽게 말해 더럽게 늙지 않으려면, 다른 식으로 말해 귀 티 나게 늙으려면 다음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1. 
오지랖은 모든 일의 원흉이다. 오지랖 펴지 말고, 다른 이의 삶에 코멘트 하지 말자. 세상은 여러 개의 세상이 있다. 정답은 없다. 충고는 상대가 원할 때 하는 거다. 진실과 오지랖은 비슷해 보이지만, 180도 다르다. 진실은 남을 편하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지만, 오지랖은 자신이 편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과잉 된 친절은 오히려 타인을 피곤하게 만든다. 차라리 친절한 무관심을 행하라. 무조건 우선 친절한 것이 먼저이다.

'오지랍'은 잘못 쓴 거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옷자락이 다른 옷을 덮는 모양을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의 성격에 빗대어 '오지랖이 넓다'라는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면이 있다'라는 표현으로 '오지랖이 넓다'고 한다. 자기와 관련 없는 일에 나서서 이러니저러니 참견하고 훈수를 두거나, 여기저기 다니며 간섭하고 모든 일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인파출명 저파비(人怕出名 豬怕肥)": 중국의 속담으로, ‘사람은 이름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손웅정씨는 자기가 감히 책을 쓴다는 것을 겸양하여 낮추면서, 아들 때문에 과분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손흥민으로 인해 알아봐 주는 이들이 생길 때마다 ‘오지랖 부리며 건방 떨고 살고 있다'며 반성하며 이 말을 새긴다고 한다.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남들보다 더 똑똑하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금 있는 이 곳에서 느리게, 편안하게, 천천히 생을 만끽하며 그냥 시시하게 살고 싶다. 이 마음이 사라지려 할 때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다.

2.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말라. 분위기에 휩쓸려 말 실수하지 말라. 지키지 못할 것을 말하지 말라. 내 마음이 아닌 말에 동하지 마라. 내 마음을 잘 읽어야 한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거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거나, 속마음을 털어 놓다가 사람들은 타인의 노예가 된다. 악의적인 사람은 맘 약한 사람을 이용하여 드니까. 침묵은 생각보다 힘이 강하다. 마음을 청정하게 만든다.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이 탐진치이다. 

깨달음, 지혜를 얻으려면, '탐진치(貪瞋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탐진치'는 우리를 삼키는 세 가지 독이다. 탐진치는 '탐욕(貪欲)', '진에(瞋恚)', '우치(愚痴)'를 줄인 말이다. 요즈음 쓰는 말로 하면,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다.
▪ 탐욕은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을 말하며, 본능적 욕구의 경계에서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것이다. 가장 강한 독이다. 왜냐면 뒤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진에는 노여움, 또는 성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부딪쳐 미워하고, 화내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뜻에 맞지 않거나 자신보다 우월한 상대에게 나타내는 증오심과 노여움, 시기심, 질투심이기도 하다.
▪ 우치는 탐욕과 진에에 가려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무식 無識)'이다.

이 '삼독(三毒)'이 살아가는데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이것을 '아집'과 '무지', 두 가지로도 말할 수 있다. 아집, 나에 대한 집착과 그 집착이 일으키는 번뇌를 알지 못하는 무지를 말한다. 공부로 지혜를 키워야, 이 삼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탐진치'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계정혜 戒定慧'이다.  진, 노여움, 즉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대인관계를 줄이고, 상대의 장점을 인정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수행이 '계戒/정定/혜慧'이다. 계율을 지켜 실천하는 계, 마음을 집중하고 통일하여 산란하지 않게 하는 정, 미혹을 끊고 진리를 주시하는 혜이다. 중생들은 무명(無明), 아니 무지(無知)와 탐욕 또는 탐진치(貪瞋痴)의 삼독(三毒)에 의해 마음의 호수가 항상 흔들리고 혼탁 해져 제법(諸法)의 실상을 바르게 보지 못한다. 하지만 호수가 고요하고 깨끗 해졌을 때, 그 호수에는 호숫가의 꽃이나 나무, 두둥실 떠가는 하늘의 흰구름까지도 그대로 비치듯, 마음이 고요해지고 청정 해졌을 때 일체만산의 참모습 또는 우주와 인생의 참다운 진리가 그대로 드러나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쉽게 말해, 마음 속의 번뇌(걱정 거리), 미혹(迷惑, 의심) 없는 마음이 라야 우주적 진리, 궁극적 실재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은 아집과 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마음의 정화를 이루어 끝없이 열려 있는 사람만이 진리에 이르고, 그래야만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러기 전에 우선 악을 행하지 않도록 힘을 쓰는 실천이 필요하다. 나는 마음의 바다에 풍랑이 치면,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에 나오는 '월인천강(月印千江)' 이미지를 기억하며 마음의 청정을 회복한다. '월인천강'은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춘다'는 의미로, '부처의 자비가 달빛처럼 모든 중생에게 비춘다'는 거다. 그러나 나 자신의 마음의 호수를 잔잔하게 '월인천강'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3. 
묻지도 않는 것을 자랑하지 말라. 가난하면서도 가난을 원망하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반대로 부유하면서도 부유를 자랑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지나친 자기 자랑은 자기 긍정이 아니다. 그저 나약한 자존감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자신은 몰라도, 보는 사람에게는 다 보인다.

4. 
군자는 조화하고, 소인은 동조한다. 대화하고 나면 유독 불쾌한 사람이 있고, 편안한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바로 조화와 동조에서 온다. 진실이 담기지 않은 동조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소인의 인간 관계는 균열이 생기고 배신이 일어난다.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릴 뿐, 상대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맞추지 않는다. 소인은 상대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맞출 뿐, 조화롭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를 "화이부동, 동이불화"라 한다. 군자는  "친화하되 무리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군자는 의(義, 정의)를 숭상한다. '의'는 도리(道理, 인간의 길)에 합당한 것을 실천하는 도덕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반면 소인은 이(利, 이익)만을 추구한다.' 동이불화(同而不和, 패거리를 지으며, 화합하지는 않는다)'의 세계를 만들자. '화이부동'은 남과 조화를 이루나 남과 동일하지는 않으려는 철학이고, '화이부동'을 아는 군자는 다름과 다름을 인정하며, 위대한 조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와 같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불주(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하여야 한다. 군자는 친하게 지내되 결탁하지 않고, 소인은 사리사욕을 위하여 결탁한다'는 것이다. ("위정편") 두루 두루 남들과 친화 하면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라인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군자이다. 군자는 두루 어울리되 편파적인 패거리를 찾지 않는다.  "한 방울의 빗방울이 또르륵 굴러 다른 하나의 빗방울에게 간다. 가서 업히거나 껴안는다. 경계가 헐린다. 이것이 소통의 환희다. 하나의 심장처럼 같이 뛴다. 화해하되 지배가 없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가 이러하지 않을까?

5. 
겉치레에 집착하지 않는다. 현명한 이는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을 가장 경계한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갉아먹고 있다면, 스스로를 안에서부터 망가트리고 있음을 이미 깨달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여지는 '나' 보다, 내가 느끼는 '나'의 소중함을 하루빨리 깨닫고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어라.

6.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의 저자 조던 B. 피터슨은 이런 가정을 소개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의심을 품고 괴로워하게 된 것은 자의식 때문이 아니다. 죽음과 추방에 대한 도덕적 깨달음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연약하고 사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 동행하지 않으려는 거부감이 주된 원인다." 여기서 나는 하느님을, 위에서 말한 도(道), 또는 자연, 하늘의 논리로 바꾸어 보았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들과 동행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 바로 와 닿는다.

사실 역사의 태동, 국가의 탄생, 병적인 자존심과 엄격함, 어긋난 상황을 바로 잡으려한 위대한 도덕적 인물들과 메시아의 출현, 축의 시대에 등장한 4대 성인 등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바로 세우려는 힘겨운 인간의 시도로 바라 볼 수 있다. 피터슨에 따르면, 세상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니 혼돈으로부터 좋은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된다. 특히 자유 선택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피터슨이 제시하는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해 본다.
▪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려면 먼저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  그 길은 다시 하느님과 동행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늘의 길, 즉 도를 따라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하는 것처럼 자신을 대할 수 있다. 그래야 세상을 똑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고, 세상을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거다.
▪ 자신을 제대로 돌보아야 한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 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황금률)을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 하라'는 것으로 이해하지 말고, 카를 융의 가르침에 따라. 이는 미덕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명령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라고 저자 피터슨은 제안하였다. 다시 말하면, 친구, 연인을 대할 때 그들을 챙기는 것만큼이나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관계에서나 양쪽 모두 강한 게 훨씬 낫다. 예수의 가르침에 담긴 의미는 서툴고 부족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도와주는 것처럼, 나약한 자신을 포용하고 사랑하라는 뜻이다.
▪ 우리는 자신과 가족 혹은 사회 속에서 그럭저럭 혼돈과 질서의 균형을 잡으며 어렵고 힘든 일을 꾸역꾸역 해낸다, 경이로운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고문하고 학대할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타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자신에 대한 학대가 다른 사람에게 재앙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살이 가장 극단적인 예이다. <창세기>에 따르면,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쉽게 이야기 하면, 우리는 신성이 없는 하느님일 수 있다. 우리 인간도 말로써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질서에서 혼돈을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느님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찮은 존재는 결코 아니다. 우리 안에는 하느님의 신성(神性)이 조금 남아 있다.
▪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다.
▪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세심하게 배려하듯이, 우리 자신도 똑같이 챙겨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찮게 여기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힘든 곳으로 전락할 것이고, 모든 사람이 세상을 더 비관적으로 보게 된다. 이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명히 아니다. 

결론으로 나 자신을 책임지고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한다는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또한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행복은 결코 좋은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예컨대, 아이가 원할 때 마다 사탕을 주면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그렇다고 사탕이 아이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사탕을 줬으면 어떻게 든 아이가 이를 닦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도덕적이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또 항상 깨어 있는 존재로서 자신과 남을 배려하고 정정당당하게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 자신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여야 한다." 그게 피터슨이 말하고 있는 '인생을 위한 두 번째 규칙'이었다.

7. 
팁으로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말을 습관처럼 자주 하는 거다. 
▪ '때문에' 대신 '덕분에'라고 자주 말한다. 타인을 비판하는 듯 한 '때문에' 보다는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쓰며 불편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볼 줄 안다.
▪ '너는 왜 그래' 대신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기에 '너는 왜 그래'라고 상대를 탓하기 보다 자신의 생각,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 '그럴 수 있지'라고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려고 노력한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상대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해가지 않아도 '그럴 수 있지' 하며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려고 노력한다.

8. 
그리고 '화'를 내지 않게 하는 말도 있다. 이를 "앵무새 방법"이라고도 한다. 앵무새의 말은 무슨 생각이 있어서 나온 말이 아니다.
▪ 화나는 일이 있으면 앵무새처럼 그 상황을 이야기 한 뒤 그 끝에 '-구나'라는 어미를 덧붙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나는 상황, 혹은 짜증 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화나는 일을 객관화 하면, 마음의 화가 조금 줄어 든다. 객관적으로 보면 화가 나는 일은 자신만 겪는 일이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가 겪는 일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안 하겠다고 하는구나!' 식으로 말이다.
▪ 그리고 화나게 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 보는 것이다. 예컨대, 갑자기 차가 신호도 없이 차선을 옮겨서 끼어들면, "차가 한 대 끼어들어 오는 구나"라 작은 소리를 말한다. 더 나아가 상대의 입장에 서서 그럴 만한 이유를 찾아 본다. 그 뒤에 '-겠지'라는 어미를 붙여 본다.
▪ 그래도 화가 안 풀리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예를 들어, '내 차를 들이 받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다'이라고 생각해 보는 거다. 다 감사할 일이다.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의 행동을 배우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그의 행동을 교훈으로 삼으면 된다.

9. 
삶을 만끽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다. 세상은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만큼만 보여준다. 그러니까 재미있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세상은 재미 투성이'인 것이다. 오래 살았다고 나이가 드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꿈을 저버릴 때 나이가 드는 것이다. 다시 열정을 불태우리라.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만들지만, 열정을 포기하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그러니까 열정을 잃고 사는 사람이 최고로 늙은 사람이다. 삶의 열정에는 마침표가 없다. 
 
10. 
삶은 그냥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행운을 부르는 우연이 찾아오지 않아도 삶은 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열쇠를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깨닫지 못한 인생의 경험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수많은 우연으로 점철된 여행이라 할지라도, 여행의 목적지는 종착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여행길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더없이 큰 기쁨일 것이다. 미완성인채로 여행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삶에 재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그저 감탄하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세상은 즐거운 일들 로만 가득 차게 되고, 삶은 신나고 재미있어 진다. 인생과 연애를 하듯 살게 된다.


나이 드는 것/헤르만 헤세

젊어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쉽다
모든 속된 것들과 거리를 두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심장이 멈출 준비를 하는데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연습이 필요하다.

여전히 밝게 타오르는 사람,
두 주먹의 힘으로 세계의 양극을 구부려
합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늙은 것이 아니다

죽음이 저편에서 기다려도
멈춰 서지 말자
그곳을 향해 가자
죽음을 몰아내자

죽음은 이쪽이나 저쪽에 있지 않고
모든 걸 위에 있으니
우리가 삶을 저버리자마자
그것은 우리 안에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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