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은 번뇌에 집착하지 않고 욕망에서 벗어나 해탈한다.

308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월 25일)
1.
어제에 이어 불교에서 말하는 '사법인'을 조금 더 이어가 본다. 어제 <인문 일지>에서, 존재의 실상, 법의 참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삼법인(三法印)이라는 가르침 이야기를 했다. '삼법인'은 '세 가지 진실한 가르침'이란 뜻으로, '도장 인(印)'자를 쓴 것은 도장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찍히듯이 이 3가지 가르침도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으며 똑같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삼법인은 불교의 핵심을 보여 주는 인감도장인 셈이다. '삼법인'은 '사법인'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초기불교시대에는 삼법인으로, 대승불교시대에는 사법인으로 정형화되었다. 사법인은
1)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2) 모든 변하는 것에는 자아(自我)라는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3)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
4) 모든 괴로움을 없앤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말한다.
2.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제행(諸行)'이란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 만들어진 모든 존재를 일컫는다. 여기에 부처님 법이나 진리, 허공은 해당되지 않는다. '무상(無常)'이란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제행무상'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됨이 없이 항상 변한다'는 의미이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있다. 그때의 무상은 '허무'의 개념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제행무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제행무상'은 '모든 존재가 한 순간도 쉼 없이 매 찰나마다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천년만년 죽지 않고 살 것처럼 생각한다. 항상 젊음과 건강을 유지할 것처럼 자랑스럽게 거닐기도 한다. 권세와 명예, 재산도 영원할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주위의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이나 권력가나 재벌 가의 몰락을 지켜본 사람, 한 세대 아름다움의 우상이었던 유명 배우의 늙은 모습을 본 사람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게 사람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겪는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생(生: 생겨나) 주(住: 머물다) 이(異: 변화하여) 멸(滅: 소멸함)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사시사철 계절이 변하고 강산도 변한다.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견고한 물체도 순간순간 변해가고 있다. 우주 역시 성(成: 이루어져) 주(住: 머물다) 괴(壞: 흩어져) 공(空)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게 흘러가기에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집착하여 고정화시키는 순간, 변화될 수밖에 없기에 갈등이 일고 고통이 발생한다. 따라서 모든 것이 변한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서 겸허하게 마음을 비워야 옳다. 그리고 차분히 모든 사물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이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잘못된 생각이 바로 '전도몽상(顚倒夢想)'이다. 모든 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영원할 것으로 믿은 잘못된 생각을 버릴 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그 속에서 바르게 사는 길을 알게 된다. 전도는 바르게 보지 않고 뒤집어 보는 것이고, 몽상은 꿈이나 헛것을 현실이나 진실로 착각하는 것이다.
3.
'제법무아(諸法無我)'는 무슨 의미인가? '제법(諸法)'이란 '모든 사물이나 존재'를 일컫는다. '무아(無我)'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생겨나고 사라진다. 나 자신도 고정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하게 다르다. 나의 연속적인 행위만 있지 고정된 나의 실체는 없다. 촛불이 계속 타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사실 새로운 불길이 일어나고 있을 따름이다. 변함없는 나의 본래 모습을 구석구석 살펴 본들 어디서도 나의 실체를 찾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란 조건에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연 따라 생긴 것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기 때문에 고정불변의 실체란 없다. '무아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자기중심적 사고와 아집이 허망한 것임을 일깨워 준다. '무아'가 되어 나를 텅 비우고 아집과 소유욕을 없애면 인연으로 형성된 존재의 실상을 깨칠 수 있다. 모든 사람과 사물이 어우러져 더불어 사는 세계를 이해하고 피부 깊숙이 느끼게 되면 인류의 화합과 평화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존재는 여러 원인과 조건(因緣, 인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연기의 세계에 있으며, 이 세계는 만들지 않으면 본래 없는 것이라는 공(空)의 세계이다. 불교의 사실판단이다. 여기에 가치판단을 하려면, 세상의 법칙이 이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여야 한다. 그러니까 깨달음은 사실 판단이며, 자비는 가치판단이다. 깨달음은 지혜이고, 가치의 판단은 자비(사랑)이다. 그러니까 모든 길은 사랑으로 통하고 사랑으로 만난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과 생명에게 편견과 차별을 거두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끌어안고 같이 기뻐하거나 아파하는 것이다.
4.
왜 일체개고(一切皆苦)인가? 세상사는 희로애락이 다 있어 괴로움만 있는 것이 아닌데, 왜 모든 것을 고통이라고 하는가? 물론 살다 보면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세상사의 기쁨과 즐거움은 일시적이다. 영원하지가 않다. 그리고 나의 기쁨과 행복은 상대방의 슬픔과 불행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생의 이러한 이율배반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 무엇보다도 무상하기 때문에 괴롭다. 덧없고 부질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괴롭다. 태어났다가 늙고 병들어 죽어가기 때문에 괴롭다. 더 괴로운 것은 그렇게 무상한 것을 모르고 욕망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롭다. 기쁨과 즐거움은 일시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집착하지만,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사실에 인간은 절망하고 분노하고 한숨짓는다. 모든 것은 변하므로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 기쁨과 즐거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중생은 언제나 자기중심의 습성에 길들어 있어서 기쁨과 즐거움을 지속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진시황이 죽지 않는 약이라는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 발버둥을 쳐도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진시황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영웅호걸부터 미천한 신분의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항상 풍족하고 즐겁기를 바라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런 일은 없는 법이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가진 이루어지지 않는 욕망을 간파하시고, 일체가 괴로움이라고 설파하신 것이다. 그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욕망의 불을 끄고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마음은 평안을 구할 수 있다.
5.
마지막으로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살펴보자. '열반(涅槃)'은 산스끄리뜨어 니르바나(nirvana), 빨리어 니빠나(nibbana)에서 온 말이다. '니르바나'란 불을 훅 불어 끈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번뇌와 갈애의 불꽃이 꺼진 상태이고, 고통이 사라져 적정(寂靜)의 상태이다.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난 한없는 평화로움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경지로서 해탈(解脫)이다. 무상하고 무아인 것을 모르고 집착하면 괴로움이고, 무상하고 무아인 것을 알고 놓으면 열반이고, 해탈이다. 따라서 불자들은 '사법인'의 가르침을 자신의 생활에 구현하여, 최상의 평화와 대자유인 열반을 향해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은 번뇌에 집착하지 않고 욕망에서 벗어나 해탈한다고 했다.
6.
'전도몽상'은 일종의 '망상(妄想)'이다. '망상'은 비현실적인 것을 생각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인 양 믿거나, 이치에 맞지 않게 망령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주관적 신념,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에 의하여 정정되지 아니한 믿음으로, 병적으로 생긴 잘못된 판단이나 확신을 나타내는 질환을 말한다. 현실 판단력에 장애가 생기는 정신적 질환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배 안에 파리 두 마리가 살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남자가 있었다. 그는 뱃속에서 윙윙대는 파리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다. 여러 병원을 찾아가 보았으나 “당신의 망상일 뿐”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는 고통이 갈수록 심해지는 바람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뱃속의 파리를 꺼내 주겠다는 어떤 한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의사는 그에게 눈을 감고 침대 위에 눕게 했다. 잠시 후 파리 두 마리를 꺼내 병에 넣고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의사는 병에 든 파리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 병을 제 게 주십시오. 당장 그 바보들에게 보여주겠습니다.” 물론 그의 증세는 깨끗이 나았다.
7.
윤10 패거리는 진지하다. 미치지 않았다. 윤10의 모든 행위를 옹호하는 국힘당 정치인과 변호사‧종교인‧언론인‧유튜버도 머리에 꽃을 달고 다니지 않는다. 지난 며칠 동안 한남동 대통령 관저와 과천 공수처,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과 체포 적부심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법을 순회하면서 시위를 벌인 태극기 부대원들과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이름을 외치며 서부지법 청사를 때려 부셨던 청년들도 미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특이할 뿐이다. 신뢰할만한 여론조사 결과로 추정하면 대한민국 국민 넷 가운데 하나는 그들과 생각이 비슷하다. 국민의 25퍼센트를 미쳤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특이한가? 보통 수준의 사유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 허구를 그들은 사실로 여긴다. 사실과 거짓을 섞어 꾸며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런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만든 가상현실과 실제상황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현실과 무관한 망상을 올바른 사상이라 확신한다.
8.
더 나아가, 그런 망상을 전파하는 자를 지도자로 모시면서 돈과 열정을 바친다. 이것은 미친 짓이 아니다. 사람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많든 적든, 그와 비슷한 행위를 하면서 산다. 게다가 그들의 지도자는 제법 그럴듯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정치학 박사, 목사, 언론인 같은 타이틀을 달고 있으며, 유튜브 방송만 하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에도 나온다. 그들이 공유하는 신념체계를 알면 비상계엄 선포에서 구속영장 발부까지 윤10이 벌인 모든 일을 한 줄에 꿰듯 이해할 수 있다. 윤10과 그들은 모두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 그들 스스로는 ‘자유 우파’라고 하고, 관찰자인 나는 ‘망상(妄想) 공동체’로 간주하는 정치적 진영이다.
9.
정신건강의학과 A 교수는 "윤10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그대로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아무리 설득해도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까지 갔다면 망상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리학과 B 교수는 "무조건 야당 탓, 북한 탓을 하며 자신이 피해자라 변명하고 정당화하면서 주변 모두를 적으로 규정하는 모습에서 피해 망상 특성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헌법과 법률 같은 규칙을 무시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행태에서는 반사회적 성격 특성도 강하게 나타난다"며 "계엄 선포 때와 이번 담화 발표 때 상당히 흥분된 모습으로 미뤄 간헐적 폭발 장애(분노 조절 장애) 여부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신건강의학과 C 교수는 "최고경영자처럼 조직의 최정점에 올라가면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하고 깊이 몰두하면서 확증 편향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윤10이 언급한 선거결과 조작설,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 주장 등이 확증 편향의 증거일 수 있다는 것이다. C 교수는 "그러나 이번 담화를 보며 확증 편향으로 설명하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심리적 문제를 넘어 병리적 문제로까지 나아간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한다"고 밝혔다. A 교수도 "권력은 권한도 주지만 극도의 스트레스도 준다.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면 누군가 자신과 국가를 해치려 한다는 편집증과 의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나만이 옳다는 과도한 자기애에 심취해 반대파를 숙청하거나 비합리적 결정으로 나라를 도탄으로 몰아넣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며 "역사 속 권력자들이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고 우려했다. 심리학과 D 교수는 "일반적으로 권력자는 권력을 통해 쉽게 성과를 내기 때문에 자기 과신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그로 인해 "타인과 소통하면서 객관적 정보에 근거해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져 상식과 괴리된 크나큰 오판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윤10이 성격적으로 권위에 집착하는 성향이라면 스스로 권력을 절제하고 균형을 잡는 데 훨씬 더 취약함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력에 취해 보이는 극단적 증상들이다.
10.
다음 네 가지를 버리려고 공자도 늘 노력했다고 한다..
▪ 이런 저런 ‘잡념’ = 意
▪ 반드시 이러해야만 한다는 ‘기대’ = 必
▪ 묵은 것을 굳게 지키는 ‘고집’ = 固
▪ 자신만을 중시하는 ‘아집’. = 我
이 네 가지 중에서 버려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아집’이다. 나를 중요시하는 아집을 없애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부질없는 망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과거 주장이나 행적에 대한 고집도 없어질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명상은 ‘모른다.’ ‘나는 내 이름도 모른다.’고 하며 자신의 ‘참나’와 만나는 것이다. 흔히 아집은 지나친 자기사랑에서 나온다. 자기를 되돌아보고 ‘나는 모른다.’는 무지(無知)와 자기의 욕심을 버리겠다는 무욕(無慾)을 지녀야 아집이 사라진다. 공자도 그래서 無知(무지)와 無欲(무욕)을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욕이 욕심을 완전히 비우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욕심을 그대로 긍정하되 남의 욕심도 긍정하며, 나와 남 모두를 배려하는 ‘양심’으로 자신의 ‘욕심’을 잘 조절해가자는 것이다. 이를 일상의 삶 속에서 잘 실천하기 위해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첫 번 째는 "지족불욕(知足不欲)", 즉 족함을 알아라. 다시 말하면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일이다. 두 번 째는 "지지불태(知止不殆)", 멈출 때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즉 ‘때’를 알아야 한다. 멈추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세 번 째는 "소사과욕(小事過慾)", 자기중심성과 욕망을 좀 줄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무지(無知)란 우리의 간지(奸智), 즉 꼼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잔 꾀 같은 것을 없애라는 말 같다. 그리고 지식을 없애라는 말은 기존에 고집하던 것을 지우고, 새로운 안목을 키워 새롭게 이 세상을 보라는 말이 아닐까?
오늘부터 긴 연휴가 시작된다. 자작나무 숲에 가고 싶다. 자작나무는 속죄 중이고, 참회할 때마다 죄의 꺼풀도 벗겨진다. 하안거나 동안거에 들어 묵언 수행하는 스님 같은 자작나무, 깨달음은 수행자의 몫이다. “자작자작”은 소신공양으로 성불에 이르는 소리쯤 되겠다. 우연하게 접한 한 스님의 에세이 집이 긴 휴식 기간의 수행들 돕는다.
자작나무 인생/나석중
흰 허물을 벗는 것은
전생이 뱀이었기 때문이다
배때기로 흙을 기는 고통보다
붙박이로 서 있는 고통이 더 크리라
눈은 있어도 보지 않는다
입은 있어도 말하지 않는다
속죄를 해도 해도 죄는 남고
허물 벗는 참회의 일생을 누가 알리
몸에 불 들어올 때나 비로소
자작자작 소리를 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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