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연이 안내하는 '새 길"을 찾아야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삶이 확장된다.
7년 전 오늘 글이에요.

매주 수요일마다 만났던 "대덕의 꿈" 안에 있는 <다시과학문화아카데미>는 연초에 두 번의 큰 일을 준비했습니다. 주제는 "왜 대덕의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철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나"입니다. 이 사건으로 우연이 생겨나길, 이 우연을 놓치지 말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란 결과를 발견하는 도전에 용기를 내십시오. 자리가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로 신청하세요. 그 이유를 두 가지 들었습니다.
1. 우리는 우연이 안내하는 '새 길"을 찾아야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삶이 확장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는 "의도적 전략"과 "창발적 전략"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의도적 전략이란 자신이 예상하는 어떤 기회를 추구하는 것이고, 창발적 전략은 예상치 못한 기회로 인해 자신의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삶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떤 실험을해보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실험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는 것이 직장인의 유일한 시험은 아니다. 그것은 직장 내에서 해보지 않던 프로젝트에 자원을 하거나, 독서 모임에 나가거나. 사보에 글을 써보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을 내어 봉사 활동을 해보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블로그를 시작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며, 가끔씩 기사로만 접하던 어떤 행사나 컨퍼런스에 직접 참여해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참고,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우연이 안내하는 '새 길'을 응사하자" 동아일보 2018,1,2자)
2. 창의력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발휘되는 것이다. 내적으로 단련된 어떤 사람의 내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이지 해보려고 맘먹는다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창의력이 튀어나올 수 있는 내면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이 세상에 나타나지 못한다. 이렇게 하여 창의력은 기능적인 범위를 넘어서 인격적인 문제로 바뀌어 버린다. 결국 사람의 문제이다. 창의력은 기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 인문학적 성찰과 통찰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즉 사람의 문제를 알고, 사람이 우선 되어야 한다. 지적인 상승과 확장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일에서 이루어진다. 그래 장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참된 사람이 있고 나서야 참된 지식이 있다.(有眞人而後有眞知)" 여기서 참된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론이나 지식이나 관념이나 이념의 수행자에 제한 될 수 없다. 그것들의 생산자이거나 지배자일 때만 '참된 사람'이다. 그래서 '참된 사람'을 채우는 진실은 차라리 '모르는 곳'으로 덤벼드는 무모함에 있다. 탐험이고 모험이고 발버둥이고 몸부림이다. 이것을 우리는 용기라고 말한다. 이렇다면, 문명은 사람이 발휘하는 용기의 소산일 뿐이다. (참고, 최진석, "문명은 용기의 소산이다.")
다음으로 링크하시면 신청됩니다. https://goo.gl/oQjdn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