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대청호 500리길 제16구간 ‘벌랏한지마을’ 다녀와서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6. 1. 1. 18:12

10년 전 오늘 글이에요.
그땐 많이 걸었네요.

대청호 500리길 제16구간 ‘벌랏한지마을’ 다녀와서

언제나처럼 평송수련원 주차장에 모여 출발한 인원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연말 때문인지, 아니면 추워서인지 4명뿐이었다. 나 자신도 추울까봐 아무도 안 나와 걷기가 취소되길 바랐던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늘 함께하는 고정멤버가 거의 다 나왔다. 함박사님, 나 목계, 허정 윤재숙님, 해원 이경란님 이렇게 4명은 함박사님 차를 타고 소전리보건진료쇼까지 갔다. 이번 대청호500리길 걷기는 거꾸로 도는 코스이다. 그래서 소전리보건진료소에서 출발하여 벌랏한지마을까지만 가고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였다. 어느덧 울긋불긋하던 나무들의 잎은 다 떨어지고, 들판은 황량하였고, 부서진 쌀 같은 싸라기눈이 살짝 뿌려진 길은 얼어붙었지만, 그래도 겨울 해가 떠서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오히려 알싸한 맑은 공기가 몸을 닦아주면서 기분이 좋았다.

옛날 사람들은 벌랏선착장으로 접근해야 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소전2리에서 들어가는 임도를 타고 마을 위에서 아래로 들어갔다. 이곳이 벌랏한지마을이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수확하지 않은 커다란 감나무가 꽃이 핀 것처럼 우리에게 눈길을 주었다. 이 마을은 사방천지가 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6.25때 전쟁이 나지도 몰랐단다. 지금은 약 20여 가구가 마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피난민들이 정착해서 생겼다니 마을의 역사가 500년 정도 된 셈이다. 정착민들은 산을 개간해 밭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들이 개간한 비탈진 밭들의 흔적만이 있고, 지금은 다 버려져 있었다. 벌랏은 마을 전체가 골짜기로 되어 있어 밭이 많은 것에 놀랍다는 뜻이란다. 한지마을은 이곳이 닥나무로 한지를 생산했던 마을로 유명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벌랏한지마당’이란 이름을 가진 건물이 그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방치된 것 같다. 아마 이번 봄에는 재정비를 하려는 듯 약간의 수리를 시작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때 프랑스에서 생각했던 것이 머리를 스쳤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1초에 한 명씩 입장하는 최고의 박물관이 된 것은 그 박물관 콘텐츠 내용도 중요하지만 매일매일 쓸고 닦는 관리자들의 힘이라고 언젠가부터 나는 생각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평상심을 말할 때도 평평한 평도 중요하지만 그 평평함을 항상 유지하는 마음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화려하게 이벤트로 무엇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묵묵히 그것이 잘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고 ‘벌랏한지마당’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나는 금할 수 없었다.

한지를 만들려면, 닥나무 껍질을 벗겨 삶아내고 방망이로 두드려 무르게 한 뒤 채로 걸러 한지를 만드는 방식인데, 말이 쉽지, 이 과정이 족히 1년은 걸린단다. 껍질이 벗겨진 닥나무는 얼마나 단단한지 옛날 서당에서 회초리로 사용하였단다. 길에 버려진 닥나무 회초리를 이번에도 구해왔다. 누구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 가끔씩 인생의 오답노트를 쓸 때면 사용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내가 간직하고 있는 것은 벌써 두 개다. 지난번에도 그것을 구해왔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봄에 이렇게 한지를 만들어 대전, 옥천, 청주 등지로 나가 팔았고 가을 추수 때 쌀로 종이 값을 받았단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이 농촌체험 마을로 지정돼 마을 모습이 한 번 변신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오히려 관리가 되지 않아 더 어울리지 않고 흉물스러웠다. 게다가 이번에는 태양열을 모아 전기를 만드는 시설이 여기저기 눈에 띄면서 더 생경스러웠다.

우리는 마을을 위의 임도로부터 내려와 벌랏선착장까지 꼬불꼬불한 마을길을 어슬렁거리며 마을의 할 일 없어 보이는 개와 함께 내려오니 마을 경로당이 있고, 내년 봄을 위한 꽃길을 조성하고 있었다. 특히 염티(소금재)에서 내려오는 마을 입구에 스테인리스로 등나무 터널 공사를 해놓았다. 그리고 하수종말처리장과 선착장에 어울리지 않게 돈을 들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반듯한 소나무로 만든 정자가 마을에 두 곳이 새롭게 놓여 있었다. 우리는 마을 초입에 있는 양지 바른 정자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차 소리, 사람 소리 하나 없이 스쳐가는 바람 소리만 들으며 각자 준비한 “호텔 수준의” 뷔페 점심을 먹고, 원점으로 회귀하여 대전으로 돌아 왔다.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걷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진다. 곡선이 주는 치유의 효과이다.” (황대권의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중에서). 사람 몸이 곡선이듯 마음도 곡선이다. 송곳처럼 직선으로 뻗어 있으면 그 날카로움 때문에 상처를 내기 쉽다. 하트 모양이 곡선이듯 가슴도 곡선이고 사랑도 곡선이다. 따뜻한 가슴과 가슴이 함께 포개져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낼 때 진정한 휴식을 얻고 치유도 된다. 그래서 꼬불꼬불한 마을길을 걷는 것은 행복이고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