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크리스마스 전날 아침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도 한다. 이브는 전야(前夜) 또 전일(前日)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흔히 영어 evening이 줄어 eve가 된 것으로 특별한 날의 전날 저녁을 뜻한다. 그냥 넓게 사용하여 하루 전날을 가리키기도 한다.
Joyeux Noël!(주와외 노엘!) Merry Christmas!(메리 크리스마스!) 축 성탄!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을 축하 드린다.
성탄절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함께 머물기 위하여 인간(예수 그리스도)이 되어 오셨음을 축하 드리는 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임마누엘(Emmanuel)"을 외친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일년 동안 제 글을 함께 해주시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 땅 위에 살아 있는 모든 이와 모든 것들에 다 시 또한 번 외친다. "임마누엘"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어린 예수를 우리는 '구세주(메시아)'라 부른다. 당시 '로마는 로마의 지배를 통한 평화를 위한 '팍스 로마나'를 외칠 때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이 합당하다고 말하는 수구 기득권 세력과 짬짜미로 돈만 버는 언론들과 법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지키려는 소위 '법 쟁이'들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기 예수는 이것들이 '엉터리 평화'임을 목숨 걸고 저항하셨기에 우리는 그를 구세주라 부른다. 그 아기 예수가 오늘 밤 다시 오신다. 우리가 이 아기 예수에게 무릎을 꿇고 '임마뉴엘'을 외치며 경배하고 축하드리는 것은 진짜 평화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렇게 낮게 오신 아기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그러면서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을 우리는 '황금률'이라 한다. 엄청난 rule(규율)인 것이다. 내가 대덥받고 싶은만큼 다른 이를 대접하라.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다른 이를 나라고 생각하고 환대하라. 오늘 내일 만이라고 그 사랑을 내 일상에 가득하게 하고 싶다.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땅에는 평화, 나에게는 사랑'을 다시 회복시키라는 메시지이다. 그동안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내 가족만 생각하며 살았다면, 오늘 나를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가지라는 날이다. 올해는 새로운 신조어가 나왔다. '영(영) 택트'.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 말로도 우리는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생긴다. 빨리 코로나-19를 잡아,이전의 평화로운 일상이 회복도리 거라는 희망을 본다, 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 Spero!~~, Spera!~~ 나는 희망한다! 여러분들도 희망하세요!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된다. 유대인은 로마제국의 식민으로 절망한 가운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코로나-19로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절망을 이기는 생존 장비인 희망이 필요했다. 그 희망의 이야기가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로 승화된 것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들에게도 희망이 필요하다.
"토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기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은총과 평화를 청하게 됩니다. 곤경 속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성탄이 희망과 위로의 빛으로 다가 오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염수정 추기경의 메시지를 공유한다.
우리 모두 '하늘에는 영광, 땅위에는 평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성탄과 희망을 되찾았으면 한다. 배철현 교수는 "희망이란 절망을 처절하게 경험한 인간들이 피워내는 불씨다. 희망이란 가치는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신적인 존재로 만드는 이상을 저버리지 않고 작동시키려는 엔진"이라고 말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 하는 크리스마스는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걸 노래로 만든 것이 아베 마리아(성모송)이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춥고 배고픈 육체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라, 삶이 무의미하며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체념"(배철현)일 수 있다. 그래 우리는 지금 돈과 감각적 쾌락에 목을 맨다. 그리고 '아시비타'라는 말이 신조어로 나올 정도로 서로 사생결단을 다툰다.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데 세월을 다 보낸다. 아기 예수가 태어날 당시의 지식인들처럼, 우리들은 "위안을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고 시기, 질투 그리고 상대방의 불행을 통해 스스로 정의를 실현 하기"(배철현)에 바쁘다. 아기 예수가 태어날 당시의 지식인들처럼, 우리들은 희망의 별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발 아래의 땅만 쳐다보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아 가고 있다.
배교수의 글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희망의 별은 고개를 들고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을 찾으려는 소수에게 드러난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 별을 발견한 자가를 동방박사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들판에서 양떼와 감을 자던 목동들이라 했다. 그럼 여기서, 잠시 멈추고, 우리 다 함께 시를 한 편 읽는다. 황금찬 시인의 <거룩한 밤에>이다. 이 시를 읽으며 다짐한다. 오늘 공유하는 시의 양치기처럼 별을 보고, 나에게 주어진 삶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리라. 오늘 아침 사진은 대신 카드로 한다. 일년 동안 제 글을 읽으시느라 수고하신 모든 분들과 또 제에게 많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보내 드리는 카드이다. 이 카드 속에 있는 별들을 바친다.
거룩한 밤에/황금찬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그저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어린 양의 무리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조용히 조용히 뒤척이고 있는
그 소리뿐이었다.
그때 홀연히
하늘 저쪽 끝에서
별이 하나 눈부시게 빛을 흘리며
이쪽으로 이쪽으로 떠오고 있었다.
누구도 그 빛나는 별을 못 보았고
오직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늙은 양치기가 홀로 그 이상한 별을
보고 있었다.
별은 늙은 양치기 머리 위에 와서
멈추고 가지 않는다.
그 환한 빛은 들판을 밝히고
점점 그 찬란한 빛의 파문이
누리를 덮어 가고 있었다.
늙은 양치기는 놀라 소리쳤다.
무슨 하늘의 뜻입니까.
밝혀 주시오.
광명 속에서 천사의 얼굴이 나타나서
베들레헴으로 가라.
오늘 그곳에 인간 구원의 예수님이
오시었느니라.
하늘의 뭇별들이 눈을 뜨고
땅의 생명들이 영광을 얻어
저 바다 너머 그곳
땅의 끝까지 구원의 은혜 내리다.
예수여!
이 고요한 밤에 이름지어진 땅에
그리고 사람의 마음 마음에
몇 번이나 오셨습니까.
언제나 당신은 아기의 모습
그 하늘의 미소 바다 같은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 안에 진정 몇 번이나
오셨습니까.
오늘 아침, 나는, 복음서에 나오는 양치기, 즉 목자가 하는 일이 인문운동가의 일이라 생각했다. 복음서에 나오는 양치기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인도해 초원으로 가서 풀을 뜯어 먹게 하고, 시냇가로 인도해 물을 먹이는 노동자이다."(배철현) 인문운동가도 마찬가지로 돈과 쾌락, 그리고 권력과 명예에 온 정신을 팔고 사는 주변 인들에게 인문정신을 갖도록 애쓰는 자이기 때문이다. 양치기든, 목동이든, 인문운동가는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고유한 의무를 완수하는 자이다. 양치기는 양떼를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며, 양을 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는 자다."(배철현) 인문운동가도 다른 이를 나처럼 사랑하며, 함께 사람 답게 살자고 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으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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