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은 '답'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찾아내는 일이다.
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대덕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던 모임이 어제 1주년이었다. 서로 돌아가며 덕담을 할 때, 난 내 이름 '한표'의 비밀을 말하고 말았다. '한표'와 '영표'는 1과 0의 차이이다. '한표'란 미래를 읽고, 0에서 1을 창조하는 사람의 이름이다. '수천만 표'도 '한표'부터 시작한다. 그것이 '한표'의 비밀이다. 우리 커뮤니티는 어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 우린 이름을 '다시'로 정했다. '다시'는 늘 희망이다.
오늘도 김기택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새보다 낙타를 더 닮은" "타조는 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슬픔을/전혀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나도 나를 바꿀 생각은 없다. 그냥 인문운동가이다. 인문운동은 '답'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찾아내는 일이다.
안도현 시인은 '시와 연애하는 법'의 하나를 알려준다. "묘사란 감정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다" 우리는 시인이 묘사한 언어를 보고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된다. 우린 그 그림을 '이미지'라고 한다. 이 묘사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그래 오늘도 난 허리를 낮추고 무릎을 구부릴 것이다.
타조/김기택
실제로 보니
타조(駝鳥)는 새보다 낙타(駱駝)를 더 닮았다.
타조가 낙타보다 새에 더 가깝다는 증거로
날개라는 것이 달려 있기는 하다.
타조도 가끔은 가슴을 펴고 날갯짓을 하지만
깃털 몇 개로
큰 낙타를 하늘로 들어올려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단호하게 잘라버렸음이 분명하다.
타조를 처음 본 순간
나도 타조의 태도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타조의 이 확고한 의지는
나무 기둥 같은 다리로 곧게 뻗어나가
말굽처럼 단단한 발에 굳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 의지에 눌려
날개는 몸속으로 깊이 들어가
유난히도 길고 유연한 목으로 솟아오르고
말처럼 빠른 다리로 뛰어나가고 있다.
날지 못한다는 것만 빼면
타조는 나무랄 데 없이 완전한 새.
그래도 타조를 새라고 생각하니
낙타 같은 얼굴과 걸음걸이며
뱀같이 구불거리면서 먹이를 찾는 목 따위가
참을 수 없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타조는 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슬픔을
전혀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한참 동안 타조를 보고 나서
타조의 이 방약무인하고 당당한 슬픔에
나는 다시 한 번 전적으로 동의하고 말았다.
소 닭 보듯
타조들이 높이 나는 새들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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