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삶에 '소금'을 치다. (11)
우리들의 삶에 '소금'을 치다. (11)

어제 '거꾸로 하는 사랑 법'을 말했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 메시지와 선이 닿는다. 그 방법은 좀 더 자세하게 더 말해본다. 일상에서 실천하면 행복하다.
1 인칭 주체 '나'를 거꾸로 뒤집는 거다. 즉 낮아져서 사랑하는 거다. 사랑의 주체인 나 자신의 인식을 달리 할 때, ‘거꾸로 하는 사랑’은 시작된다. 우리 대부분은 사랑 받은 경험이 있다. 그 때 우리는 마치 왕자와 공주가 된 것처럼 행복함을 느낀다. 이는 상대가 나를 위해 자신을 낮추기 때문이다. 교만하고 잘난 척 하기 바쁜 사람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자기가 낮아지는 순간이 자존심 상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랑에 빠지게 되면 누구나 다 내려놓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갑자기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상대가 너무 귀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너와 나는 평등해, 다를 바가 없어' 라는 말은 '너와 나는 별 관계가 없어' 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무엇이라도 변화시키는 사랑은, 자신이 낮아질 때 일어난다.
두 번째는 2 인칭 '너' 대상을 거꾸로 뒤집는 거다. 상대가 사랑할 수 없을수록 사랑하라는 거다. 사랑하는 대상을 ‘거꾸로’ 인식하는 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칭송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자신을 희생하고 물질을 투자한다. 하지만 추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위해서 진정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랑의 대상만이 아니라 그 양상도 맥락이 같다. 우리는 진정 아끼는 것을 씻길 때는 더러운 곳일수록 더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냄새 나고 불결한 곳은 피하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사랑 받기 부족함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리고 그의 사랑스러운 모습 만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 한다. 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사람, 나에게 상처 준 사람, 한 번도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을, 더구나 그런 사람의 추하고 부족한 모습까지도 받아들일 때 그 사랑은 의미를 가진다. '거꾸로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에게서 사랑의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사랑의 의욕이 불타오르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다.대상을 바꾸어서, '거꾸로' 그 상대를 사랑할 수 없을수록 사랑하라. 사랑하고 싶지 않을수록 그를 사랑하라.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수님은 낯선 자가 신이라고 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기 부족함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셋 째, 3 인칭인 '그' 방법을 거꾸로 뒤집는 거다. 즉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거다.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사랑하는 거다. 사람은 모든 사람과 동일한 수준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깊고 중요한 사이일수록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에게 특별한 사람은, 세상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행동들로 감동을 준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순간의 기억으로부터 진정한 위로와 행복을 얻는다. 그러나 세상의 논리와 방법대로 관계를 맺으면 어떠한 특별한 관계도 형성될 수 없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면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 불가능한 사랑을 할 때, 나는 상대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는다. 기존의 상식은 뒤집어져야 되고 거꾸로 되어야 한다. 회사의 회장이 청소 아주머니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정치인이 여느 국민 한 사람 앞이라도 무릎을 꿇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어날 거라고 믿지 않는 사랑이 즐비할 때 세상은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사랑은 이렇듯 늘 예상을 벗어난다. 문자 그대로 역설적이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가치보다도 위대한 힘을 가진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사랑하는 방법을 바꾸는 거다. 역설적으로 사랑하라. 가격이 아니라, 가치 있는, 보람과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면 세상의 상식과 달라야 한다. 나보다 약한 자에게 자비를 실천하는 거다.